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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22화 (522/687)

522화

“저를 선봉에 세워주십시오! 제가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앙라고는 기운 좋게 외쳤다.

근육통에 시달리던 이한은 앙라고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무슨 자신감으로 저딴 소리를?’

말하는 걸 들어보니 상대는 밥 먹고 격구만 하는 격구 광인들이었고 여기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마법이 우선인 마법사들이었다.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앙라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긴다는 거냐?”

“워다나즈.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격구를 해왔다. 어떨 때는 열 판도 넘게 했지.”

“......”

이한은 경멸의 시선으로 앙라고를 쳐다보았다.

‘이 새끼가 공부할 때 어쩐지 졸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격구 같은 운동은 교칙으로 금지를 해야 했다.

만약 그런다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20점은 너끈히 오르리라.

“교수님! 저를 선봉에...”

“잠깐. 알파. 너 저번 경주 때 낙마하지 않았었나?”

“예? 예. 그렇긴 한데 그건 실수...”

“그럼 넌 후보다.”

“...아, 아니! 교수님! 이건 아니죠! 이건 아니죠!!”

앙라고는 평소 학업에 관심 없던 태도와 다르게 격렬히 항의했지만 번개걸음 교수는 냉정했다.

안 그래도 불리한데 입만 산 놈을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필요한 건 오직 실력이었다.

“워다나즈. 리치몬드. 다른 녀석들도 중요하지만 너희 둘은 특히 더 중요해. 알겠느냐?”

“교수님. 저 이번 주에 돌 던지기 축제 때문에 아직 회복이 덜 됐습니다.”

“돌 던지기 축제? 아. 성 이악투스 축제? 잠깐. 네가 거기는 대체 왜... 됐다. 버두스 교수가 데리고 갔겠지.”

‘아닌데.’

이한은 라그린데 교수님이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굳이 지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근육통이 심하냐?”

“예.”

“흐음.”

번개걸음 교수는 짐을 뒤적거리더니 물약 하나를 꺼내왔다.

“이건 괜찮겠지. 규정에 안 들어가는 물약이니까. 마셔라.”

“감사합니다... 음. 회복 물약인가요?”

뚜껑을 열고 물약을 마신 이한은 의아해했다.

온몸의 통증이 빠르게 사라진 것이다.

이 정도면 치유실에서 받은 촉진 물약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아니. 통증을 못 느끼게 해주는 물약이다.”

“......”

이한이 경악해하는 사이 번개걸음 교수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불러 모아서 지시했다.

“너희들은 팀 단위의 전술도, 개인적인 실력도 부족하다. 심지어 탈것도 좀 밀리는 편이지.”

닐리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손을 들고 물었다.

“최소한 탈것이라도 바꿔주시면 안 됩니까?”

상대방은 타조, 산양, 늑대, 거북이 등을 데리고 왔는데 이쪽은 그냥 말이라니.

그러나 번개걸음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너희들한테는 저게 더 유리한 거다. 특이한 탈것이 유리한 점도 있지만, 더 다루기 까다롭고 난폭하거든. 그에 비해 너희들의 말은 충성스럽고 우직하지. 너희들이 올해 한 해 동안 잘 보살펴줬다면 더더욱.”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한 해 동안 마구간을 오고 가며 말에게 정성을 쏟았던 게 떠오른 것이다.

흘린 땀과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가이난도는 투덜대며 아직 남은 지푸라기를 머리에서 떼어냈다.

“말이 충성스럽고 우직하기는 무슨... 맨날 제 머리만 보면 깨문다구요.”

번개걸음 교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전술은 지구전이다. 오래 가면 상대방의 체력이 먼저 떨어질 거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 샤일스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마차 운송업을 가문의 업으로 삼은 만큼 여러 탈것의 특성에 대해 잘 알았던 것이다.

“상대방들의 탈것이 말에 비해 딱히 체력이 부족한 탈것이 아니잖습니까?”

“아. 너희들이 타는 말은 내가 좀 특별하게 키워서 지구력이 훨씬 더 좋다. 상대방한테는 들키지 말고.”

“......”

“......”

“자. 그럼 수비 라인 낮추고, 최대한 말고삐 놓치지 말고, 한 대 맞았다고 울지 말고... 워다나즈. 이리 와봐라.”

“?”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한테 따로 불리자 의아해했다.

“혹시 다른 물약을 주시려는 겁니까? 반칙으로 알고 있는데, 안 걸릴 방법이 있다면야...”

“뭐? 아니야. 그건 반칙이잖냐. 그런 것까지 시킬 생각은 없다.”

‘시키셔도 안 이상할 것 같은데.’

“사실 이번 친선 경기에서 내가 승리를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다.”

“예?”

이한은 멈칫했다.

마법도 못 쓰고 마력을 사용한 공격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한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말을 잘 타고 검술에 능하다 하더라도 숙련된 격구 선수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네가 뭘 타고 나가지?”

“폰리그요?”

“그래. 그리고 폰리그는...”

“아.”

이한은 교수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하!’

“폰리그의 변신을 풀어서 다른 선수들의 탈것을 전부 쓸어버리면 됩니까?”

“...혹시 내가 강제로 내보내서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있으면 제발 지금 말해다오.”

*         *         *

준비를 끝낸 번개걸음 교수는 팔짱을 끼고 인상을 찌푸린 채 경기장을 쳐다보았다.

옆에 선 도시귀족 출신 주장, 불파드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명성 높은 에인로가드 학생들과 겨루는 것만큼 또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 이번에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 소속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면서요?”

“우승을 못한 이상 아무 의미 없는 셈이지...”

“무슨 말씀을. 과정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음.”

번개걸음 교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사실 상대는 정말 잘못이 없었다.

제안을 받고 ‘좋은 제안이다’싶어서 찾아온 순수한 상대지만...

원래 기분 나쁠 때 눈치 없이 굴면 괜히 더 미운 법이었다.

게다가 격구 클럽 선수들 중 주장을 포함한 주전 여럿이 빠져 있다는 것도 번개걸음 교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물론 상대는 아직 격구 경험이 없는 신입생들을 배려해주기 위해 저렇게 배치한 것이었지만, 원래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관련되면 매우 속이 좁아지기 마련.

최근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거둔 불충분한 결과에, 번개걸음 교수는 승리에 매우 목마른 상태였다.

“부디 오늘 친선 경기에서 격구의 매력을 느끼고 내년 격구 클럽에 들어가실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들어갈 겁니다!”

앙라고가 관중석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불파드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같이 만나서 격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저 학생은 왜 앉아 있는 건가요? 격구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다리가 부러졌소.”

“저런...”

멀쩡해 보이는데 다리가 부러졌다니. 불파드는 안쓰러워하며 앙라고를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과 선수들은 서로 마주보고 인사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인로가드의 학생들과 친선 경기를 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그랑덴 시 선수들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문득 궁금해진 이한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선배님들 중에는 교내 격구 클럽에 소속되신 분들도 있을 텐데, 이제까지 친선 경기가 없었습니까?”

“아.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보통 다른 마법학교 분들과 하죠?”

“그런... 아니.”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우리는 왜...’

다른 마법학교 학생들이 바쁘면 기다렸다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이런 고난이도 상대를 데려와야 하나?

“그렇군요...”

이한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신이 난 상대 선수는 격구의 매력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댔다.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은 정말 역사 있는 클럽입니다. 예전에 세웠던 제국 상금 신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어요.”

“상금이요?”

“예.”

“격구에 상금도 있습니까?”

“있지요?”

이한은 놀랐다.

옆에 있던 샤일스도 놀랐다.

‘그걸 왜 몰라...?’

관중들이 내는 돈부터 시작해서 각종 저명인사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건 상금까지.

이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벌 수 있는 게 격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걸 대체 왜 워다나즈가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마법학교 학생들은 받은 상금을 마법 연구에 사용하잖습니까.”

“아. 예. 뭐 그렇죠.”

이한은 격구 클럽에 들어가서 배분 받은 상금을 횡령해서 사업비로 빼돌릴 상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지금 친선 경기에는 아무런 돈도 나오지 않을 것 아닌가.

‘집중하자.’

“헛. 혹시 리치몬드 가문 출신이십니까?”

“앗. 네.”

선수들은 옆에 있던 샤일스에게도 말을 걸었다.

사람 좋던 선수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서로 수군거렸다.

“저 학생부터 먼저 견제...”

“혹시 모르니까 절대 방심하지 마.”

“......”

*         *         *

삑!

시작하자마자 드넓은 경기장에 먼지가 치솟았다.

타조와 늑대를 탄 선수 둘이 살벌하게 장대로 공을 드리블하며 달려들었다.

우측을 맡은 샤일스는 다급하게 외쳤다.

“다들 대형 유지하고 밀리지... 컥큭컥컥!?”

늑대가 샤일스의 말을 못 움직이게 하더니 타조가 재빨리 발차기를 날렸다.

샤일스는 그대로 튕겨나가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걸 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저런 고급 기술을!”

“완벽한 <선수 떨어뜨리기>야!”

‘무슨 놈의 기술 이름이...’

“다들 버텨! 내가 간다!”

이한은 친구들과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면 버티기는커녕 그대로 돌파당해서 골 하나를 먹을 것 같았다.

지금 그나마 시간을 끌 수 있는 건 그리폰을 타고 있는 이한밖에 없었다.

“폰리그. 부탁한다.”

정말 참으로 오랜만에 주인한테 애정 어린 말을 들은 폰리그의 눈빛이 붉게 타오르고 입에서는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쾅!

“조심! 오른쪽!”

“막아!”

좌측에 있던 이한이 우측으로 급격히 기동하자 다른 선수들이 공을 몰고 있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막아섰다.

이한은 이를 악물고 충돌에 대비했다.

어깨 위로 직접적인 공격을 무리더라도 아까 봤듯이 탈것을 사용한 공격부터 어깨 아래 공격까지 상황은 다양했다.

노련한 선수들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는 없었으니, 폰리그의 질량을 믿고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깎깎깎!!!!

“?”

앞을 막아선 산양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방향을 틀자 위에 있던 선수도 당황했다.

계속 호흡을 맞춰 온 동료가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옆에 있던 늑대도 마찬가지였다.

폰리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기겁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순식간에 돌파구가 만들어지자 이한은 일단 달렸다. 그걸 본 번개걸음 교수가 주먹으로 허공을 쳤다.

“그렇지!”

“어, 어떻게?!”

불파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외쳤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생각보다 훨씬 효과가 좋군!’

번개걸음 교수는 미소를 애써 참으며 속으로 기뻐했다.

지금 당장 만점을 외치고 싶을 정도의 활약이었다.

“저 말은 원래 그리폰이었소.”

“예? 하지만...”

상대가 당황해하며 말문이 막히자 번개걸음 교수는 먼저 선수를 쳤다.

“물론 1학년 학생이 그리폰을 다루는 게 위험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 하지만 확실한 사전준비가 있다면 그리폰을 다루는 건 그렇게 위험하지 않소.”

번개걸음 교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무슨 준비를 하더라도 그리폰을 다루는 건 매우 매우 위험한 일이 맞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

“저희는 경기 상대로 그리폰을 만났을 때를 대비해서 훈련도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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