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24화 (524/687)

524화

“드디어!”

“고생했습니다.”

이한이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는 데에 성공하자 욘라모 교수는 박수를 쳐줬다.

그 박수에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박수 받을 일인가?’

다른 친구들은 벌써 머리카락의 색을 바꿨고, 요네르처럼 진도 빠른 친구는 손톱에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한의 당혹스러움을 눈치챘는지 욘라모 교수는 슬쩍 박수를 멈추고 말했다.

“지금 늦다고 해서 딱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잘 생각해봐요. 다른 물질들을 변환시킨 걸.”

이한이 가진 변환 마법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당장 금속 변환만 봐도 그 어렵다는 수은 변환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성공시키지 않았던가.

외부 변환과 마법사 자신을 변신시키는 게 다르다 하더라도 결국 원리는 일치하는 만큼...

펑!

이한이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을 활활 타오르는 화염으로 바꾸는 걸 본 욘라모 교수는 멈칫했다.

...어쩌면 조금 더 걸릴지도?

*         *         *

친구들이 강철로 변한 이한의 머리카락 한 올을 어떻게든 끊어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욘라모 교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이번 기말 시험은 변신 마법이 될 겁니다. 다들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변신시켜서 즐거운 건 압니다만, 사실 이건 시작일 뿐이죠.”

즐거운 학생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말고사 시험을 머리카락이나 손톱의 색을 변하는 걸로 할 수는 없었으니까.

“설, 설마 통째로 변신해야 하나요?”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욘라모 교수는 작게 웃으면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욘라모 교수의 팔이 마치 오우거의 팔처럼 변했다.

“팔 하나까지만 변신시키면 됩니다.”

“......”

‘어차피 어렵잖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기대했던 학생들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 반응에 욘라모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어?’

분명 팔 하나 정도면 다른 교수들에 비해 관대한 편이었으니, ‘와, 관대하신 우리 교수님!’ ‘변환 마법을 듣는 우리는 너무 너무 행운아인걸?’하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이상하다?’

“팔 하나가 어렵습니까?”

“......”

“아, 아니요?”

“안 어렵죠!”

눈치 빠른 학생들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에인로가드의 경험상 교수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걸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뭐든지 특징을 명심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부터 시작하세요. 샤일스 군 같은 경우는 가장 친한 동물, 요네르 양 같은 경우에는 많이 다뤄본 시약이 좋겠습니다. 이한 군은...”

욘라모 교수는 이한을 훑어보더니 살짝 고민했다.

“...뭐, 하고 싶은 거 하세요.”

“?!”

너무 대충인 말에 이한은 당황했다.

‘음. 저렇게 말하시니 더 당황스럽군.’

자신한테 익숙한 것을 고르라고 하니 더 고르기 힘들었다.

당장...

‘번개나 물, 암흑 원소...는 안 좋은 거 같다.’

자신의 팔을 번개나 물, 암흑 원소처럼 부정형(不定形)의 원소로 바꾸는 건 변신 마법 중에서도 매우 난이도가 높은 축에 속했다.

불규칙하게 약동하는 원소를 자신의 육신으로 삼아 형체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볼라디 교수가 기뻐서 눈물을 흘리겠군.’

안 그래도 번개 원소의 심화를 꾸준히 밀고 있는 볼라디 교수라면 기뻐하며 당장 하자고 할 터.

이한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금 안전한 선택지를 골라야 했다.

‘나무나 흙은 내가 그다지 많이 다루지 않았다. 강철... 강철인가?’

고민하던 이한은 선택지를 무생물에서 생물로 돌려볼까 싶었다.

“으음. 내가 익숙한 생물이... 샤르칸, 그리폰, 바실리스크, 스켈레톤...?”

“......”

옆에서 황동 변환을 고민하고 있던 요네르는 친구가 중얼거리는 말에 경악의 시선을 던졌다.

“이한. 위험한 생물로 잘못 변신시키면 역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는 거 알고 있지?”

‘그보다 스켈레톤은 생물도 아니잖아.’

옆에 있던 샤일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물 변신의 위험한 점은 그 예측불허성에 있었다.

손을 몬스터의 일부로 변신시켰다가 그 몬스터에게 공격당한 마법사들은 흔한 사례였다.

“하긴 샤르칸이나 그리폰, 바실리스크가 난폭하긴 하지.”

-?

얌전히 듣고 있던 새끼 바실리스크는 당황했다.

샤르칸이나 그리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바실리스크가 왜 저기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흠. 샤르칸의 앞발을 떠올리면서 연습해볼까...”

일단 샤르칸의 발톱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닮은 부위를 늘려가며 최종적으로는 샤르칸의 앞발을 불러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팔이여, 짐승의 앞발이...”

펑!

이한의 한쪽 팔이 갑자기 스켈레톤의 팔로 바뀌더니 동시에 트롤의 팔로 변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거인의 팔로, 그 다음에는 샤르칸의 앞발로, 그 다음에는 그리폰의 앞발로, 그 다음에는 바실리스크의 머리로, 그 다음에는 드래곤의 앞발로...

연속으로 통제 불가능하게 쉭쉭 바뀌던 팔은 간신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이미 기겁해서 뒤로 물러난 뒤였다.

“...좀 더 차분하게 연습을 해봐야겠군.”

이한은 좀 더 준비를 한 다음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처럼 변신 가능한 부위 하나씩을 늘려가는 방식은 이한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         *         *

“하하. 오늘은 가볍게 운동장을 백 바퀴 돌고 저 산봉우리 위를 찍고 내려온 다음 특별히 준비한 이 무게추를 차고 강을 건너는 정도만 합시다.”

“......”

“......”

기말고사가 슬슬 가까워지자 잉걸델 교수의 강의도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었다.

이한은 원래 교육 과정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잉걸델 교수가 에인로가드의 분위기에 물들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실 잉걸델 교수의 강의가 틀린 건 아니었다.

마법사야 이론과 학문으로 현상을 탐구한다지만 검사는 자신의 육신과 감각으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난해하고 심오한 검술을 익히고 싶다?

육신을 던져서 직접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검술에 숨겨진 비기를 익히고 싶다?

마찬가지로 육신을 던져서 직접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오러를 깨우치고 싶다?

더더욱 육신을...

“그렇기 때문에 흘리는 땀을 아쉬워하면 안 됩니다.”

잉걸델 교수는 목검을 탁탁 치며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아무래도 마법이 본업인 만큼 기사 가문 출신이라 하더라도 단련이 부족해질 때가 많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잉걸델 교수는 자신의 역할이 그걸 막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들 아시겠습니까? 단련된 육체에서 나오는 감각이 마력을 컨트롤하는데에 도움이...”

“헉, 허억.”

“크허억.”

“교, 교수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땀에 푹 젖은 채 핏발 선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워다나즈는 왜 안 뛰나요?”

“......”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이.’

안 그래도 잉걸델 교수가 ‘워다나즈는 오늘 쉬는 게 낫겠습니다’해서 냉큼 ‘감사합니다!’하고 앉아 있었는데, 물귀신처럼 끌어들이다니.

친구가 살아남았으면 기뻐할 일이지 아주 괘씸한 놈이었다.

“나는 기사 가문 출신이 아니ㄹ...”

“워다나즈는 축제에서 난전을 벌인 탓에 몸이 아직 다 낫지 않았습니다.”

잉걸델 교수는 팔의 근육을 쭉 펴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기사 가문 출신이 아니라 봐준 줄 알았던 이한은 멈칫했다.

“어.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히 귀에 들어옵니다. 워다나즈. 그게 안 들어오겠습니까.”

엘프 검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이한을 보았다.

지금 흰 호랑이 탑 선배들은 벌써 수군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탑에 저런 인재가!

-교수님. 어느 가문의 후배인지 혹시 아십니까? 대체 어느 가문이길래...

잉걸델 교수는 신이 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차마 실망시킬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악마에게 몸을 빌려줬다고?”

“아. 그게. 사실 악마가 강제로 뺏은 겁니다.”

이한은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슬쩍 안푸르사스에게 책임을 돌렸다.

안푸르사스도 악마니 욕을 좀 먹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워다나즈가 빌려줬다고 했습니다만?”

“...속은 거죠 사실상.”

“아. 그렇습니까?”

잉걸델 교수는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속았든 안 속았든 뺏겼든 안 뺏겼든 그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 악마는 언제 다시 불러올 수 있답니까?”

“어... 글쎄요?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가능한 빨리 또 부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혹시 해골 교장이 칼을 들고 협박했나? 아니, 몸을 뺏었나?’

그러나 이한의 의심과 달리 잉걸델 교수는 순수한 선의로 말하고 있었다.

“워다나즈. 제국의 모든 검사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검사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천금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워다나즈는 자신보다 뛰어난 검사의 검기(劍技)를 직접 자신의 몸으로 펼칠 기회를 손에 얻은 겁니다!”

“......”

잉걸델 교수는 평소와 달리 뜨겁게 말했지만 이한의 눈빛은 심연처럼 차가웠다.

‘해골 교장이 몸을 뺏었나...’

물론 잉걸델 교수의 말은 나름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논리로 따지면 거인 산맥에 들어가서 거인들과 싸우면 마법 능력이 향상될 거라는 볼라디 교수의 말도 논리는 있었다.

논리보다 중요한 게 이한의 목숨 아닌가.

이한은 험한 말을 하려다가 상대의 신분을 떠올리고 정신줄을 붙잡았다.

“아쉽게도 악마는 제 말을 순순히 듣지 않아서 제가 나오라고 한다고 나오지 않을 겁니다.”

“저런. 아쉽습니다.”

잉걸델 교수는 탄식하며 안타까워했다.

참 좋은 기회였는데!

“헉, 교, 교수님. 그런데, 워다나즈가, 정말, 몸이 안 좋나요?”

“그렇다니까.”

“...거짓말 하지 마 이 자식아! 멀쩡하게 격구도 했잖아!”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진 채 고함을 질렀다.

이한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번개걸음 교수님이 마취 물약 먹이고 경기 뛰게 한 거다.”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다시 일어나서 조용히 뛰기 시작했다.

잉걸델 교수는 옆에서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경기가 중요해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         *         *

“흐억, 헉. 크헉.”

“쿨럭, 쿨럭.”

돌아온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원독 섞인 눈빛으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잉걸델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진 학생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가볍게 훈련을 시킨 건, 단순히 기말 시험을 대비해서 체력을 향상시킨 것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줄 게 있어서입니다.”

잉걸델 교수는 의외로 검술 그 자체를 가르치진 않았다.

학생이 초식에 대해 물어본다면 대답을 피하진 않았지만, 학생한테 새로운 검술이나 초식을 가르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각자 기사 가문 출신인 탓이 컸다.

모두 가문의 검술을 배우면서 컸고 다른 검술이 더 좋아 보인다 하더라도 쉽게 바꾸지 않았다.

이런 학생들인 만큼 잉걸델 교수도 검술 자체를 건드리기보다는 일반론적으로 도움이 될 법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런 교수가 새로 가르쳐 줄 게 있다니. 학생들은 힘든 와중에도 흥미로워하며 시선을 던졌다.

“바로 검에 의념(意念)을 싣는 방법입니다. 워다나즈. 평소 원망스러운 상대가 있습니까?”

“예?”

이한은 잉걸델 교수의 질문에 멈칫했다.

너무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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