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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28화 (528/687)

528화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티질링 사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교수에게 물었다.

이한의 눈동자에 서린 이채(異彩)가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파셀레트 교수도 그걸 깨달았는지 살짝 당황스러워하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괜찮나?”

이한은 대답이 없었다. 마치 허공에 무언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빤히 시선을 던지며 침묵할 뿐이었다.

제자가 강화된 예지력으로 미래를 엿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파셀레트 교수는 곤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뭐가 안 되는 겁니까!?”

사태가 심상찮다는 걸 깨달은 티질링 사제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원래 몇 초 정도여야 하는데, 이렇게 길면... 그만큼 보는 미래도 길어지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미래를 엿보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지만, 노련한 예지 마법사일수록 미래를 엿보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미래를 엿본다는 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확인하는 것.

확인하는 순간부터 그 가능성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강렬한 운명이 되어 마법사를 끌어들였다.

어떻게 보면 미래를 엿본 마법사가 운명의 꼭두각시가 되는 셈이었다.

짧고 간략하게 미래의 파편만을 엿본다면 비교적 안전했지만 강화된 예지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미래를 보고 거기에 속박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 제자의 예지 능력이 뛰어나단 건 예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면... 예지를 끊어주십시오!”

티질링 사제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에 비해 파셀레트 교수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갔다.

“마력이... 많아서... 외부 간섭이...”

“......”

티질링 사제는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고민한 끝에 이해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지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외부 저항력이 너무 높은 탓에 간섭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소리인가?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기다리는 것밖엔...”

“얼마나?! 아니, 그보다 왜 이렇게 효과가 오래 가는 겁니까!”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파셀레트 교수는 다른 인격들한테 나오라고 불렀지만, 다른 인격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까 제자한테 샘물을 마시게 할 때는 좋다고 하던 인격들이 문제가 생기자 단체로 입을 다문 것이다.

“원래 재능이 뛰어나다고 시간이 더 오래 갈 수가 있는 겁니까?”

“일반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서 계산에 두지 않았...”

뚝-

허공을 쳐다보던 이한이 고개를 숙였다가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았다.”

“...???”

“잠깐!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생각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니야!”

파셀레트 교수는 제자를 말리려고 했다.

보통 예지에 깊게 빠진 마법사들은 자신이 본 미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확신에 가득 차 움직이곤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었고 과신에 빠져서 좋을 게 없...

“교수님. 저는 이미 제가 해야 할 일을 압니다.”

이한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안에는 평소에 볼 수 없는 광신적인 확신이 서려 있었다.

파셀레트 교수는 좌절했다.

제자가 수많은 마법사들이 먼저 겪었던 사례들을 똑같이 겪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생각해봐. 너보다 경험 많고 뛰어난 마법사의 말을 왜 믿지 않으려고 하는데?”

“교수님들은 저희를 계속 속이시잖습니까.”

“......”

파셀레트 교수는 솔직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티질링 사제. 가자. 할 일이 있다.”

“앗, 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평소에도 강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지만, 미래에 속박된 지금은 더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었다.

조금의 반론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투에 티질링 사제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작업용 골렘을 앞에 두고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니까 라파드엘. 이걸 왜 못 움직이는 거냐.”

“...말했잖냐. 흑마법을 배운다고 해서 무조건 다 골렘을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까 왜 흑마법을 배우는데 골렘을... 컥.”

“말려! 말려!”

분노한 라파드엘이 친구의 멱살을 잡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재빨리 달려들어서 싸움을 말렸다.

“저 골렘을 어떻게든 움직이긴 해야 한다니까. 작업량이 너무 많아.”

“맞아. 마법을 왜 배웠겠어? 이럴 때 쓰라고 배운 거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번 주 맡은 당번 일은 본관 서쪽의 커다란 창고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안에 보관된 물건들이 하필이면 성벽에 사용되는 커다란 바윗돌 같은 건축 자재들이라 일일이 힘으로 치우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렸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마법이라지만 1학년 학생들에게 이번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난이도가 높았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저번에 발굴해낸 골렘이었는데, 이 골렘도 가동이나 조종이 쉽지 않았으니...

“그냥 워다나즈 부르자니까. 워다나즈한테 줄 보수도 준비해놨어.”

“끄응. 기말도 다가오는 만큼 돈 아껴야 하는데. 기말 공부할 때 워다나즈 놈 부르려면 돈이 또 나갈 거 아냐.”

“......”

라파드엘은 친구들이 식료품을 돈이라고 부르는 걸 지적해야 할지, 아니면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 워다나즈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걸 지적해야 할지 고민했다.

“왜 이렇게 작동을 안 하지? 마력 꽤 투입했는데...”

“좀 더 증폭시켜봐.”

“그러다가 고장나면?”

“그런 걸로 고장나겠어? 워다나즈 놈 마력도 버티던데...”

탁탁-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골렘을 둘러싸고 토의하는 현장에 도착한 이한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워... 워다나즈!”

“무슨 일로 여기 온 거냐?”

“혹시 누가 불렀어?”

친구들이 당황하든 말든,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따라와라.”

“...?”

“????”

이한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홱 돌아섰다.

그 모습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발끈해서 외쳤다.

“야, 워다나즈! 설명은 제대로 해줘야 할 거 아니냐!”

“맞아! 니가 그냥 따라오라고 하면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줄 아냐? 우리를 그렇게 본 거냐?!”

학생들은 그렇게 외치며 앞서 걷는 이한의 뒤를 쫓아왔다.

“......”

이한의 옆에 있던 티질링 사제는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따라오고 있잖아?’

따라오면서 저렇게 투덜거리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입으로 말하는 것만 보면 분명 따라오지 않겠다는 거절의 말인데...?

*         *         *

“투탄타. 워다나즈가 혹시 왜 저러는지 아나?”

“아니. 모라디. 나도 너한테 물으려고 했는데.”

밤중에 모인 각 탑 학생들은 의아해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한이 굳은 얼굴로 문을 두드리며 따라오라고 해서 일단 오긴 왔는데,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하품을 하던 가이난도가 다른 탑의 리더를 맡고 있는 둘을 보며 물었다.

“뭐야. 너희들도 모르고 왔어?”

“그래. 황자. 혹시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아니. 나도 모르는데? 그보다 너희도 모르고 온 거면... 나랑 똑같은 이유로 온 거야?”

“똑같은 이유라니?”

지젤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하고 되물었다.

가이난도는 여기 온 다른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워다나즈와 친한 만큼 무언가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한한테 혼날까봐 온 거 아니야?”

“......”

“......”

“아, 아닌가?”

분노한 두 친구가 공격하려고 하자 가이난도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서 푸른 용의 탑 학생들한테 피했다.

가이난도 본인은 몰랐지만 방금 한 말은 의외로 두 사람의 정곡을 찔렀다.

원래라면 저런 밑도 끝도 없는 명령을 들을 두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이한의 기세에 압도되었던 것!

그 사실을 가이난도의 지적으로 깨달은 둘은 자존심이 상해서 얼굴을 붉혔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티질링 사제가 둘을 불렀다.

사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다른 학생들이 듣지 못하게 말했다.

“지금 워다나즈 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닙니다.”

“...역시 그렇군!”

“사실 그럴 줄 알고 있었어.”

“???”

티질링 사제는 둘의 반응에 당황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사제님. 저는 나름 길드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표정만 봐도 정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사제님. 저는 북방의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칼날과 함께 자랐습니다. 눈빛만 봐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지요.”

‘기사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나?’

티질링 사제는 의아했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두 분께서 미리 알고 계셨다니 이야기가 편하겠네요.”

사제는 지금 이한이 무슨 상태인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워다나즈가 정령이나 악마를 잘못 소환해서 의식을 뺏겼나 싶었던 살코는 놀라서 되물었다.

“지금 그러니까 일종의 각성 상태... 인 겁니까? 미래를 본 탓에 거기에 얽매인?”

“비슷합니다. 스스로 본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티질링 사제가 말하는 사이 요네르가 시무룩한 얼굴로 찾아왔다.

“구토 물약을 먹게 해보려고 했는데 거절했어.”

“통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예지력이 줄어들면 미래를 완성하는 데에 방해가 될 테니 말입니다. 참. 메이킨 님. 이 두 분께서는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뭐? 진짜?”

요네르는 놀라서 둘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짐작만 했던 거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서 메이킨. 구토 물약을 강제로 먹여보는 건?”

“그게 가능한가...?”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압도적인 전투력을 갖고 있던 친구였지만 지금은 날카로운 예지까지 가진 상태였다.

어지간한 접근은 미리 알아차리고 응징할 수 있었다.

“......”

그 사실을 깨달은 친구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다들 모였나? 출발하지.”

이한은 친구들을 둘러보더니 돌아섰다.

그러자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네 발로 기어서 덤불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남은 시간을 일하면서 보낼 수는 없어!’

퍽!

이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 구슬을 날려서 친구를 제압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모두 경악했다.

‘빈틈이...!’

‘시전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잖아!?’

안 그래도 괴물 같이 강했던 놈이 더 강화되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워다나즈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미래를 봤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살코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점을 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젤은 그 말에 살짝 흔들렸다.

확실히 워다나즈가 좀 미친놈이긴 했지만 자기 혼자 이익을 보려고 얕은 수작을 부리는 치사한 놈은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 정말로 학생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나?

“잠깐. 여긴...”

“설마...?”

이한의 뒤를 쫓아 본관 안으로 들어간 학생들은 위화감을 느꼈다.

본관 2층, 창고, 연결된 통로라면...?

-도전자들을 환영한다.

거대한 조각상이 학생들을 환영한다는 듯이 걸어오고 있었다.

저번에 이한을 포함한 친구들을 단숨에 제압한 강력한 조각상.

그 조각상의 등장에 학생들은 얼어붙었다.

*         *         *

“뭔데? 왜 그래?”

“저게 뭔데?”

조각상의 정체를 모르는 학생들은 그 접근에도 경계하지 않고 방심했다.

팟!

그러자 조각상은 바로 학생의 지팡이를 순간이동시켜서 자신의 손아귀로 옮겼다.

“...?!?!?”

“뭐, 뭐야 이거?!”

그 마법에 잘 모르던 학생들도 조각상의 강력함을 직감한 것 같았다.

이런 조각상이 있었단 말인가?

“물러서지 마라.”

이한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적은 두려운 적이 아니다.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는 적이다.”

“워다나즈, 난 지금 니가 더 무서워...”

친구들은 눈앞의 조각상이 더 무서운지 뒤에 있는 워다나즈가 더 무서운지 격렬한 갈등에 시달렸다.

“전진해라!”

이한은 외침과 함께 친구들을 뒤에서 몰아붙이며 같이 전진했다.

오늘 이 조각상을 꺾고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손에 쥐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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