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화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아티팩트가 작동하는데? 워다나즈. 네가 작동시킨 거야?”
이한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아니. 멋대로 작동했다.”
“뭐? 말도 안 돼. 아티팩트가 멋대로 작동하다니. 어떤 멍청이가 그렇게 만든 거냐?”
살코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시전자가 원할 때에만 시전되는 안전성은 아티팩트에 있어서 기초 중의 기초였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작동되는 아티팩트는 아티팩트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건 보통 함정이라고 불렀다.
“선배들이.”
“......”
“......”
학생들은 어이가 없어서 침묵했다.
선배 맞아?
“아니... 어이가 없군.”
“그래. 살코. 나도 어이가 없다.”
이한은 타오르듯이 점멸하고 있는 차원 관문 아티팩트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이걸 만든 선배들은 안전성 따위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라면 아티팩트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명확한 주문과 동작이 필요했다.
그런데 선배들은 조금이나마 효율을 쥐어짜내기 위해 그런 걸 모조리 생략시켰다.
그냥 아티팩트 인근 영역에 발을 올리는 순간 마력을 강제로 빨아들여서 가동시키는, 단순무식한 방식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이게 좋게 말해서 단순무식한 방식이었지 매우 위험한 방식이었다.
선배들이야 자기들이 설계했고 경험이 많으니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물러날 수 있었지만 경험 적은 후배들은 실수 한 번에 마력 고갈로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졸업할 때에는 후배들을 걱정해서 좀 더 안전장치를 달아놓고 갔어야 하지 않나?
‘선배들은 다 개새끼들밖에 없나?’
“아니. 워다나즈. 내가 어이가 없다고 한 건 넌데.”
“?”
이한은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살코를 쳐다보았다.
“아티팩트가 이만한 마력을 흡수하는 동안 왜 눈치를 못 챈 거냐.”
“...일지 읽다보면 눈치 못 챌 수도 있지. 이 자식아.”
실수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타박하는 못된 친구의 태도에 이한은 투덜거렸다.
물론 부여 마법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이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몇 미터 떨어진 곳의 미약한 마력 흐름도 느끼는 녀석이 뭐라는 거야...’
우우웅. 우우웅. 우우우웅-
차원 관문 아티팩트는 점멸하면서 굉음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점점 불빛이 강해지고 허공에 스파크가 튀었지만, 차원 관문 아티팩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작동했다.
“워다나즈. 괜찮은 거 맞나? 왜 이러는 거지? 아티팩트는 작동했는데...?”
“아무래도 이제 막 시작한 거 같군.”
이 주변을 진동시킬 만한 막대한 마력을 흡수했는데도 차원 관문 아티팩트는 그저 막 작동했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관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방금 흡수한 것보다 몇십배는 많은 마력을 흡수해야 했다.
탐욕스럽게 마력을 흡수하는 아티팩트의 구조를 파악한 이한은 친구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가까이 오지 마라. 괜히 마력 흡수하는 영역 늘어나면 너희들까지 마력 고갈 걸린다.”
“워다나즈...”
“뭘. 이 정도 걱정은 당연한 거지.”
이한은 감동받은 것 같은 친구들에게 훈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친구들을 좀 혹사시킨 만큼 지금 걱정해주는 시늉을 조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아니. 넌 안 나오냐고...”
“......”
친구들은 수군거리며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마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지금 워다나즈를 내버려두는 게 맞나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티팩트가 요구하는 마력량이 너무 비정상적이었던 것이다.
아까 그 막대한 마력량도 그저 작동시키는 것에 불과했다니.
그렇다면 대체 제대로 관문을 형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마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난 괜찮아.”
“보통 그렇게 말하면 안 괜찮던데.”
가이난도가 중얼거렸다.
보통 가이난도가 ‘난 괜찮아!’라고 말했을 때 잘 풀렸던 적이 드물었던 것이다.
“이 자식이 불길하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가이난도의 등짝을 매섭게 때렸다.
‘다른 게 걱정이군.’
이한은 폭포처럼 흡수해가는 마력은 사실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마력 고갈로 인한 괴로움을 느꼈다면 바로 빠져나갈 생각이었지만, 몸은 매우 멀쩡했다. 친구들의 걱정이 더 민망할 정도였다.
이한이 걱정하는 건 이 아티팩트의 내구도였다.
안 그래도 효율과 성능을 위해 온갖 기능을 다 제거하고 어떻게든 완성시킨 아티팩트였다.
만약 마력을 충전시키다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해골 교장이 정말 크게 비웃겠군.’
기껏 그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고 안의 보물을 찾았는데, 선배들이 이상하게 만든 아티팩트 때문에 전멸한다니.
해골 교장이 일주일은 낄낄대며 웃을 이야기였다.
“다들 탁자를 저쪽에 세워주겠나?”
“어, 어.”
“알겠어.”
이한의 말에 학생들은 급히 탁자를 세웠다.
아티팩트가 터질 때를 대비해 엄폐물을 준비하는 건 현명한 일이었다.
“흠. 살코. 마법을 시전해서 흙을 사이에 채워줬으면 좋겠는데.”
“알겠다.”
살코는 흙 원소 마법을 시전해서 탁자 뒤를 보강했다.
이걸로 충격이 날아와도 쉽게 날아가지 않을 터였다.
“흠. 황녀님. 정령을 불러와서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덴아르트는 재빨리 정령을 불러서 바리케이드를 강화시켰다.
모래와 물, 자갈이 섞인 바리케이드는 어지간한 발길질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흠. 이걸로 좀 애매하려나. 가이난도. 뼈 원소 좀 소환해봐. 더 섞어서 강화시켜보자.”
“......”
“......”
학생들의 표정이 점점 미묘하게 변했다.
이 정도로 바리케이드를 강화해야 한다면...
...그냥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친구들의 표정을 눈치 챈 이한은 재빨리 변명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하는 거야. 아직 괜찮아. 마력 흐름에 별 문제가 없거든.”
“아까 아티팩트가 마법사 몇 명은 죽일 마력을 흡수하는 동안 눈치를 못 챘...”
“살코. 넌 친구의 실수를 그렇게 계속 물고 늘어지면 기분이 좋으냐? 응?”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었다.”
이한이 안 하던 감정에 호소하자 살코는 살짝 당황했다.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파직, 파지직!!
“!”
“저, 저거 봐! 균열이다!”
학생들은 눈을 크게 떴다.
놀랍게도 허공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다른 차원의 강대한 존재가 이 대륙으로 넘어올 때처럼, 공간에 균열이 생기고 그 너머로 지하 창고와 전혀 다른 풍경이 일렁거렸다.
“워... 워다나즈!!!”
“넌 영웅이야!!! 넌 우리의 영웅이라고!!!”
아까까지만 해도 ‘워다나즈 저 새끼 예지력 물약 한 병 더 마시면 우리 다 죽겠다’하고 투덜대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함성을 질렀다.
반신반의했었지만 지금 이 공간의 균열은 차원 관문 아티팩트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확인해봐! 확인! 어디로 연결되어 있어?”
“보, 보고 있어. 보고 있는데... 안 보여! 크윽! 워다나즈! 가까이 가면 안 돼?!”
“말라서 뒤지고 싶으면 가까이 와보던가.”
“그...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이한은 파직거리는 차원 관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최대한 기억해두려고 애썼다.
‘저택 안인가?’
한눈에 봐도 차원 관문이 연결된 곳은 꽤나 고풍스러운 저택이었다.
이한은 이 관문이 에인로가드에서 멀지 않은 마을이나 도시에 있는 귀족 가문의 저택과 연결되어 있나 싶었다.
만약 선배들 중에 푸른 용의 탑 학생이 있었다면 가문의 저택과 연결해놓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을 테니까.
끼기긱-
“!”
아티팩트에서 들리는 섬뜩한 소음에 이한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잡동사니를 얼기설기 기어서 만든 것 같은 형태의 차원 관문 아티팩트.
그 아티팩트의 뼈대가 마력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뒤틀리고 삐걱거리고 있었다.
내구도가 걱정되긴 했지만 벌써 이러다니.
이한은 이를 악물고 재빨리 아티팩트에서 벗어났다.
“터, 터져!? 터지는 거야!?”
가이난도는 이한이 달려오는 걸 보자 비명에 가깝게 물었다.
“아니. 일단 중지시키는 거다!”
“그... 그렇구나.”
가이난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작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터져?”
“...안 터진다고.”
다른 애들을 속이고 자기한테만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가이난도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이한은 아티팩트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계산대로 마력원이 사라진 아티팩트는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차원 관문이 사라지고, 공간의 균열이 닫히더니, 방금 있었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
“다, 다행이다. 안 고장났군.”
학생들은 차원 관문 아티팩트를 마치 기말고사 시험지처럼 애틋하고 소중하게 다뤘다.
“워다나즈. 언제 다시 작동시킬 거야?”
“...너희 저게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고 있냐?”
어딘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들어가려는 생각부터 하는 친구들의 눈빛에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도 나름 논리를 갖고 있었다.
“알 게 뭐야. 어디든 에인로가드보단 낫겠지.”
“......”
이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그런가?
“잠깐 기다려봐. 일지 좀 다시 읽어볼 테니까.”
아까 강제 마력 충전 때문에 읽다가 말았던 이한은 지팡이를 뻗어 일지를 갖고 왔다.
‘어디에 연결해놓은 거야?’
뒤적거리던 이한의 얼굴이 갑자기 바실리스크와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요네르는 의아해하며 슬쩍 일지를 쳐다보았다.
‘이한이 왜 저러지?’
미친 해골은 우리가 어디를 목표로 삼고 있는지 상상도 못할 거다. 하하. 완성만 된다면 도시의 당신 별장은 우리 것이 될 거다! 모든 보물을 바닥까지 긁어모은 다음 불을 질러주마!
“......”
“......”
이한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왜 이딴 곳에?
‘선배들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군.’
“이한. 그래도 갈 거지?”
“워다나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해라. 교장 선생님의 외부 별장이라면 비어 있을 거 아니냐!”
“조용. 다들 눈 감아라.”
이한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가이난도는 실눈을 뜨려다가 한 대 얻어맞았다.
“자. 알다시피 이 차원 관문 아티팩트는 몇 번 더 작동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 번 사용할 때 최대한의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써야 하는데...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
지금 밖에 나가고 싶어서 눈이 벌게진 몇몇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한은 냉정했다.
해골 교장의 별장에 잘못 들어갔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야 허세를 부리며 센 척을 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똑같은 마음은 아닐 터.
이한은 가고 싶지 않은 학생을 억지로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별장이 목적지라 하더라도 차원 관문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보고 싶은 사람?”
천천히, 학생 전원이 손을 들었다.
“......”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자식들...’
너무 에인로가드에 물든 거 아니야?
* * *
“정말 힘든 날이었어.”
“다들 고생 많았다.”
이한과 친구들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밤을 꼬박 새서 싸운 탓에 본관 밖으로 걸어나왔을 때에는 이미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워다나즈. 주말에 같이 가는 거다.”
“그래.”
“워다나즈. 주말에 꼭 같이 가는 거다. 우리 두고 가면 안 된다.”
“그래.”
“워다나즈. 주말에... 악! 악!”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지팡이를 휘둘러 쫓아냈다.
이번 주말에 다시 모여서 도전해보자고 약속을 해놓고서 자꾸 귀찮게 질척거렸던 것이다.
“오전 강의 없지? 다들 들어가서 좀 쉬자.”
“주말에 나갈 생각하니까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야.”
“확실히. 교장 선생님의 별장은 만만치 않지.”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놓은 게 하나 있긴 한데.”
“오. 뭔데?”
친구들은 이한이 무슨 생각을 떠올렸나 궁금해했다.
과연 어떤 비책을 떠올린 걸까?
“예지력 물약이 곧 완성될 텐데 그걸 마시면...”
“안 돼!”
“그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