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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36화 (536/687)

536화

‘기분이 더러우셔서 시비를 거시는 건가?’

해골 교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해골 교장은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좋을 때보다 많은 사람이었다. 황금 같은 주말을 귀찮은 음유시인과 귀찮은 제자와 같이 보내야 하니 얼마나 심통이 나겠는가.

“그럼 다음 장소로 가보겠습니다.”

“예.”

메모를 끝낸 이파두르는 다음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은 야생 와이번의 습격으로 부서진 성벽을 고치고 있는 석공 길드원들이었다.

-열 손가락 드워프가 망치를 휘두르네, 아홉 손가락 드워프가 되었네, 아홉 손가락 드워프가 망치를 휘두르네, 여덟 손가락 드워프가 되었네...

-훌륭해, 훌륭해!

-이건 기적이야!

그 다음은 거리에서 최고의 맥주를 파는 <트발라들라> 선술집이었다.

-어느 날 길 잃은 몬스터가 마을을 습격해서 쓰러뜨렸지. 사람들이 보상을 물었지만 나는 맥주면 돼! 더 커다란 몬스터들이 영지를 불태우길래 쓰러뜨렸지. 사람들이 칭송했지만 나는 맥주면 돼!

-우우! 꺼져라!

-저걸 노래라고!

그 다음은 마법사 카드 게임을 크게 벌이고 있는 도박장...

-한 장 한 장 인생을 걸면...

-거 좀 조용히 해주면 안 됩니까?

-지금 당신 때문에 쓰레기 카드가 자꾸 나오는 거 아니야!

또 그 다음은 인근 역사학자들이 모인 작은 클럽이었다.

-책 속에 비밀이 있다는 걸 우리는...

-방금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이건 기적의 노래야!

한바탕 순회를 마치고 나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카페에 앉은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원시 마법은 변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무슨 규칙인지 알 수가 없네요.”

석공 길드원들이나 역사학자 클럽에서는 극찬을 받았지만 선술집이나 도박장에서는 야유를 받았다.

이한은 그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

“......”

이파두르와 해골 교장은 시선을 교환했다.

이한과 달리 둘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북이 수인은 헛기침을 하더니 이한을 보며 말을 걸었다.

“워다나즈 학생. 혹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예???”

이한은 깜짝 놀랐다.

이한이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니.

마치 ‘너는 사실 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라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모욕적이었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 아니...”

늙은 음유시인은 이 모범적인 학생이 처음 보여주는 격렬한 모습에 당황했다.

해골 교장이 이파두르를 위해 대신 대답해줬다.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하오.”

“아니!”

“넌 안 좋아하는 게 맞다. 이 전 학파 수강자야.”

“아니 그건...!”

그 중에 몇 개는 당신 때문이라고 따지려고 했지만 해골 교장은 틈을 주지 않고 넘어갔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정말 뚜렷하게 경향성이 나타나는군. 이 정도면 불확실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규칙적이라고 해야겠소.”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파두르는 주름진 손가락으로 기록을 훑으며 동의했다.

원래 원시 마법들은 그 조건이 난해해 규칙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지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 같은 경우라면 차라리 이해하기 쉬웠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맞는 노래는 잘 부르지만, 그렇지 않은 노래는 감정을 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원래라면 맞는 노래도 성공 확률이 낮아야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특유의 능력으로 전부 성공시킨 덕분에 이렇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고맙습니다. 워다나즈 학생.”

“혹시 이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이한은 슬쩍 트집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둘은 그냥 무시했다.

이파두르는 오늘 기록해 온 악보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흐음. 이 곡조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걸 보면...”

“먼저 악보 체계부터 잡은 다음에 공통된 기준으로 악보를 다시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한은 이파두르의 낙서 같은 악보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제각각 다른 이들의 노래를 적거나 받아온 만큼 음정이나 음률을 기록한 방법도 뒤죽박죽이었고 어떤 부분은 생략되기까지 했다.

이파두르가 혼자 부르고 다닐 때에는 상관없었지만 음악 마법으로 정리하려면 공통된 규격이 필요했다.

“아하... 맞는 말입니다.”

늙은 음유시인은 이한의 말에 감탄했다.

확실히 에인로가드 학생인 만큼 이파두르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지적해줬다.

이파두르는 간단한 악보의 틀과 기호를 그리더니 이한에게 메모 절반을 건네주었다.

“한 번 정리해주시겠습니까?”

“......”

스스로 무덤을 판 이한은 우울한 얼굴로 정리를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해골 교장은 쯧쯧 혀를 찼다.

저 정도면 노는 걸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         *         *

깔끔하게 정리를 끝낸 이파두르는 공통되는 몇 부분의 소절과 화음을 찾아내고서 만족스러워했다.

음악 마법의 8할이 시전자의 감정이라지만 언제나 그런 과정에서도 이런 규칙이 발견되기 마련이었다.

이런 규칙들은 앞으로 새로운 음악 마법을 만들고 시도해볼 때 훌륭한 지침이 되어주리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시전 아니오. 시전.”

“옳으신 지적이십니다.”

이파두르도 동의했다.

마법 자체의 힘이 너무 약해서 시전하기 힘들다는 게 음악 마법의 가장 큰 약점이었으니까.

“혹시 조언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나달테스 공의 지혜라면...”

“방법이 없지는 않소.”

연신 음악 마법 싫다고 투덜거린 해골 교장이었지만 요청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주변의 마력 농도를 높이던, 말에 마력을 담던. 둘 다 실질적으로 바로 구현하기는 힘든 방법들이오. 그러니 이 마법에 도전하려는 마법사들은 두 방법 모두를 사용해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오.”

“두 방법 모두라니...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이파두르가 감탄하자 해골 교장은 거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소. 먼저 여럿이서 합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오. 혼자서는 힘들어도 여럿이서라면 어느 정도 주변의 마력 농도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말에 마력을 담는 것도 마찬가지요. 사례를 보면 순간적으로 감정에 취해 자신의 마력을 쥐어짜내는 일반인들이 있었소. 말 자체에 담는 것보다는 훨씬 하등한 방식이지만 돌파구는 되어줄 것이오.”

이파두르는 해골 교장의 금과옥조 같은 조언들을 열심히 메모했다.

“여럿이서 마력 농도를 높이는 방법은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적소. 드문 방법이기도 하고 그럴 일이 없었을 테니. 워다나즈가 하는 걸 계속 보여주고 구현하게 하시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지.”

“?”

옆에서 쉬고 있던 이한은 갑자기 화살이 날아오자 당황했다.

“마력을 쥐어짜내는 건...”

“그것도 마찬가지요. 그런 난폭한 방법에 익숙한 학생은 드물 테니까. 마찬가지로 워다나즈를 계속 노래시키시오. 언령도 그렇듯이 결국 보고 듣는 걸 반복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마력을 말에 담지는 못하더라도 마력을 짜내서 최대한 가깝게 쏟아낼 수는 있겠지.”

“조언에 실로 감사드립니다!”

“어...”

잔뜩 기분이 좋아진 이파두르는 카페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별 관심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게 만들 노래 솜씨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모인 사람들은 다들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음악과 함께 모두가 행복했다. 이한과 해골 교장을 빼고.

“......”

“그러게 내가 음악 마법은 별로 도움 안 될 거라고 했잖느냐.”

“...아닙니다. 저는 기쁩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을 기쁘게 해주기 싫어서 허세를 부렸다.

해골 교장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온갖 쓰레기 마법들도 다 주워서 공부하겠구나.”

-주인님.

다른 도시 사람들을 겁주지 않기 위해 온몸을 칭칭 가린 데스 나이트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자들을 대기시켜놨습니다.

“알겠다. 고생했다. 좀 더 대기하라고 해라. 불평하는 자는 없고?”

-주인님의 이름을 듣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래.”

“...?”

해골 교장과 데스 나이트의 대화에 이한은 바로 눈빛을 빛냈다.

대화에 무언가 숨겨진 정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굽니까?”

“이번 공사에 필요한 일꾼들이다. 왜? 그것도 같이 일하려고?”

“아닙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해골 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수많은 학생들을 상대해 온 사람답게 여기서 괜히 숨기거나 역정을 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위장은 평소와 같은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한도 만만치 않았다.

해골 교장이 뭐라고 말하던 간에 일단 무조건 믿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확인하고 간다.’

마침 이파두르가 노래 한 곡을 끝내고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고 있었다. 이한은 차가운 물을 가져다 바치면서 이파두르에게 속삭였다.

“이파두르 님.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학교의 규칙이 엄해서 외출할 기회가 없었는데,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흑흑.”

이한은 최대한 안쓰러워보이게 애쓰며 말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이파두르는 매우 안타까워했다.

안 그래도 음악 마법을 열심히 도와주느라 뭔가 보답해주고 싶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한창 피 끓는 학생들인 이상 규칙이 엄하다 하더라도 밖에 나가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이파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워다나즈 학생?”

“잠깐 교장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하시면서 시간을 끌어주시겠습니까? 그러면 바로 책을 사오겠습니다.”

늙은 거북이 수인은 맡겨만 달라는 듯이 눈을 찡긋거렸다.

“자... 여러분. 여러분. 이 늙은이의 노래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다음 곡은 다른 사람과 같이 부르려고 합니다.”

“설, 설마 우리 중 한 사람을?”

“말도 안 돼. 그럴 수만 있다면 손자의 손자까지도 영광일 거야!”

“여러분들도 그 이름을 아시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고나달테스 공! 저와 같이 한 곡 불러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

해골 교장은 좌석에 앉아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뭐라고?

“고, 고나달테스 님?? 그 대마법사 말인가?”

“내... 내가 알기로는 예전에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돌이 됐다고 들었는데. 그 돌로 된 사람들을 자기 던전에 가둬놓고 장식으로 쓴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분께서 그런 난폭한 일을 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 적들이 악의적으로 낸 소문이겠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그 중에 있던 도시의 호사가들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외쳤다.

이파두르의 노래도 대단한 일인데 거기에 고나달테스 같은 대마법사의 노래라니!

평생 파티나 연회장에서 떠들어도 질리지 않을 이야깃거리 하나가 생기는 셈이었다.

“고나달테스 님. 한 번만 불러주신다면 평생의 영광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제발요! 부탁드립니다!”

‘다 죽여버릴까...’

해골 교장은 이 도시 가문들이 바치는 기부금을 생각했다.

그러자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         *         *

“샤르칸. 고맙다.”

이한은 샤르칸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데스 나이트의 뒤를 잡았다.

데스 나이트는 점점 더 도시의 한적한 곳으로 빠져나왔다. 이한은 들키지 않기 위해 투명화 마법을 시전했다.

‘정말 일꾼인가?’

데스 나이트가 허름한 창고로 향하는 걸 보고 이한은 자신이 너무 과민했나 싶었다.

하긴 에인로가드가 겉으로는 조용해보여도 그 안에서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인원이 인원인 만큼 상인들이나 일꾼들이 안 들어올 수가 없는 것이다.

쿵!

문이 닫히자 이한은 재빨리 창고 가까이 붙어 귀를 기울였다.

-다들 오래 기다렸군.

“빌어먹을, 지금 삼일 내내 여기 가둬놓고 할 소리냐?! 내가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건 정말...”

퍽!

-닥쳐라. 쓰레기들아.

데스 나이트는 말을 꺼낸 용병을 후려갈겼다.

-너희 같은 범죄자들의 목숨을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도록. 한 번만 더 불평을 지껄이면 석상으로 바꿔서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지하에 처박아버리겠다.

용병들은 겁에 질려서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수련하고 연습해라. 마법사들과 정면에서 붙어도 쓰러뜨릴 수 있도록.

“뭔 마법사를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려오라고! 지금이라도 죽일 수 있으니까!”

-아직 멀었다. 더 수련해라. 기준을 통과한 자만 내보내주겠다.

“......”

이한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용병들을 왜 데리고 왔는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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