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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37화 (537/687)

537화

원했던 능력은 아니었지만, 에인로가드에서 일 년 가까이 보내자 이한은 해골 교장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지금도 그랬다.

창고에서 나가기 위해 훈련하는 용병들을 보니, 이번 연말에 무슨 일이 있을지 이상하게 구체적으로 상상이 됐다.

해골 교장이 갑자기 외부에서 습격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을 떨고, 외부인들 조심하라고 하고, 묘하게 마법사들 상대하는 데에 익숙한 용병놈들이 우르르 달려들고...

‘설마 저번에 반마법주의자 놈들이나 모험가 놈들도 해골 교장의 함정 아니야?’

해골 교장이 듣는다면 매우 억울해했겠지만 이건 사실 업보에 가까웠다.

양치기소년이 반복된 장난으로 신뢰를 잃은 것처럼 이미 해골 교장도 신뢰를 잃은 것이다.

이한은 창고의 벽 틈 사이로 용병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사람 몇 명 정도는 점심 식사 하듯이 쉽게 죽였을 인상을 가진 용병들이 데스 나이트에게 겁을 먹고 자기들끼리 ‘어떻게 마법사를 상대해야 하나’ 떠드는 걸 보니 참으로 황당했다.

‘얼굴 기억해 놨으니 다른 놈들한테도 조심하라고 해야겠군.’

기말고사, 아니, 용병들의 확인을 끝낸 이한은 돌아섰다.

괜히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했다.

*         *         *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

원래 있던 카페로 돌아온 이한은 당황했다.

아까 이파두르가 한 곡 불렀을 때보다 훨씬 더 격렬한 박수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혹시 에인로가드라도 망했나?’

이한의 상상 속에서 에인로가드가 망하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 힘들었다.

소음 속에서, 이한은 최대한 침착하게 옆의 엘프 상인을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엘프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커다란 감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제발 한 곡만 더 불러주십시오!”

“한 곡만 더! 한 곡만!”

“슬슬 가야 할 것 같소. 그보다 워다나즈 이놈은 어디 있는 거야?”

해골 교장의 말에 이한은 손을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왜 거기 있냐?”

“사람들이 절 밀어서요?”

“밀린다고 밀려? 네가 에인로가드를 다닌 것이냐 아니면 양떼들이 한가롭게 풀 뜯고 다니는 목장을 다닌 것이냐?”

해골 교장은 이한에게 핀잔을 주며 손짓했다.

감격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그 손짓에 황홀한 표정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무형(無形)의 힘에 크게 밀려났다.

“가자. 쓸데없는 마법 하겠다고 고집 부리는 제자들 때문에 별 짓을 다 하는군.”

“어, 실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한은 눈치껏 말했다.

해골 교장의 노래를 듣진 못했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니 꽤 감동적인 노래 같았다.

이파두르는 격렬히 동의했다. 늙은 음유시인의 눈가는 촉촉해져있었다.

“맞습니다...! 이런 노래야말로 이 늙은 시인이 살아 있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아니 뭘 어떻게 불렀길래?’

이한은 해골 교장이 데스 나이트들을 불러서 감동받으라고 협박한 거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만하시오. 별로 기분 좋은 칭찬도 아니니.”

“대체 어떻게 그런 기막힌 노래를 익히셨습니까?”

“왕자였을 때 궁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익혔었지. 아주 오래 전 일이오.”

이파두르는 가슴 찡한 사연에 감동했다.

그러나 이한은 좀 당황했다.

‘상상이 안 가는데.’

해골 교장의 어린 시절을 말해줘봤자 그냥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마치 ‘볼라디 교수가 어린 시절에는 참 착하고 선량한 꼬마였단다’같은 말을 들어봤자 당황스러운 것처럼.

“가자. 문 닫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있으니.”

“예? 어딜요?”

“악기도 구해야겠지. 음악 마법을 연습하려면.”

그랑덴 시의 중앙 구역은 도시귀족들이나 부유한 이들이 주로 출몰하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위치한 여러 고풍스러운 가게 중 <인팔레닌의 삼중주>가 있었다.

“아. 이름을 들어봤습니다. 뛰어난 악기 장인이지요.”

“아마 그럴 것이오. 예전에 아티팩트 관련으로 불렀을 때도 실력이 괜찮았지.”

‘왜 삼중주지?’

이한은 의아해하며 둘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악기들의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이한이 이름을 알고 있는 익숙한 악기들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새의 악기들까지 다양한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선가 작게 칠현금(七絃琴) 소리가 들려오다가 뚝 멈췄다.

그리고는 곧 가게 주인인 인팔레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한은 왜 가게 이름이 삼중주인지 알 수 있었다. 인팔레닌은 삼두육비인 아수라였던 것이다.

“세... 세... 세상에. 제가 가장 존경하옵는 두 분께서 제 가게에...!”

“진정하게. 팔들 좀 가만히 내버려두고.”

해골 교장은 인팔레닌이 여섯 개의 팔을 닥치는 대로 휘둘러서 악기라도 무너뜨릴까봐 서둘러 말렸다.

적갈색으로 잘 갈무리된 이 공간이 부서진 악기 잔해로 엉망이 되는 걸 볼 수는 없었다.

“무, 무슨 일로... 혹시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필요하신 겁니까? 하지만 저는... 저는... 그...”

“아티팩트 부탁하러 온 게 아니네.”

해골 교장의 말에 인팔레닌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다행입니다! 그 마법사 님의 요구를 맞출 자신이 없었거든요...!”

“......”

이한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버 모 마법사의 행패에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해골 교장도 진심으로 미안했는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미안하네. 그 새... 그 자와는 엮일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만약 앞으로 일을 부탁하더라도 꼭 거리를 두게 해주지.”

“아닙니다. 저한테 맡겨주신 것은 영광입니다만, 제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오늘 온 건 악기를 사러 온 걸세. 여기 제자가 연주를 하나 하려고 하는데... 참.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나?”

해골 교장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당연히 없을 테니 가장 쉬운 악기를 골라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팬플룻이나 칼림바 같은...

“바이올린 켤 줄 압니다.”

“바이올린?”

의외의 대답에 해골 교장은 놀랐다.

귀족들의 교양에 음악이 들어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상이었지 연주는 아니었다.

쓸만한 수준의 연주까지 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만큼 게으른 귀족들과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바이올린을 켤 줄 안다니.

“워다나즈 가문은 연주회도 잘 안 열 텐데?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아니...”

별 생각 없이 배웠던 악기를 말했다가 갑자기 음악 애호가가 되자 이한은 당황했다.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그래. 그래. 그러시겠지.”

“......”

해골 교장은 이한의 말을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취급한 다음 이파두르와 악기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을 노려보았다.

“이건 어떻소?”

“나무가 너무 사납습니다. 이런 악기는 연주자의 명성을 해치지요.”

“하긴 맞는 말이오. 이건 뒷판이 너무 독특하군. 울림은 좋아도 나쁜 습관이 들겠어.”

“훌륭하십니다. 아. 이거 참 괜찮습니다. 적요목을 사용했네요.”

“적요목? 원소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 같은데... 일단 골라는 놓겠소. 한 번 켜보면 알 수 있겠지.”

신이 난 인팔레닌도 달려왔다.

“제가 보기에 저 학생분께서 쓰신다면 이건 어떨까 싶습니다. 이 활대를 만들기 위해서 추운 사금파리 산맥에서 한 달을 기다렸는데...”

셋이 신나게 떠드는 걸 우두커니 보고 있던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악기는 누구 돈으로 사는 겁니까? 설마 제가 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다른 사람 들으면 오해하겠군.”

해골 교장은 옆에 듣는 귀가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

“당연히 내 금화로 지불할 거다. 마법 연구에 필요한 물건이니까.”

“어? 그래도 됩니까?”

“그래. 더럽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잘 기억해둬라. 마법 연구에서 괜히 돈을 아꼈다가는 나중에 돈이 더 나가는 법이니.”

‘이래서 제국 관료들이 에인로가드를 싫어하나?’

해골 교장의 말도 일리가 있긴 했다.

괜히 금화를 아낀답시고 싸구려 재료에 장비를 쓰면 결과가 잘못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면 결국 다시 실험을 해야 하고 비용도 그만큼...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최대한 작정하고 준비해서 하는 게 좋았다.

물론 그런 소리를 해봤자 제국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에게는 크게 설득력이 없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마법을 탐구하기 위해 순금 반 톤을 태웠습니다 하하 근데 아직 미완성인데 지원 좀 더 해주시면’같은 보고서를 받으면 뒷목이 뻣뻣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래. 어디 가서 팔지 말고.”

“.......”

“왜 바로 대답을 못하지?”

“누군가 훔쳐갈까봐 잠깐 걱정했습니다.”

“걱정 마라. 내가 마법을 걸어놓을 테니 누가 훔쳐가면 쫓아가서 찾아다주마.”

‘칫.’

이한은 철저한 해골 교장의 발언에 속으로 혀를 찼다.

어떤 핑계를 대든 간에 파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이 세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좋겠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길고 긴 토론 끝에 세 개로 선택지가 좁혀졌다.

하나는 다 자란 팔단목을 잘라서 만든 물건으로, 인팔레닌이 제국의 여러 바이올린 중 가장 유명한 것들만을 보고 장점을 취합한 안정적인 바이올린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직 어린 적요목을 사용한 물건이었다. 몸통이나 지판의 구조도 상당히 모험적으로 잡은 녀석이라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독특한 맛이 있어 젊은 연주자와 같이 성장하기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인팔레닌이 만든 바이올린이 아니라 사들인 바이올린이었다.

전 연주자는 치정 문제로 사망, 전 전 연주자는 연주 도중 일어난 불행한 사고로 사망, 전 전 전 연주자는 화재로 사망 등 온갖 피에 젖은 역사만 서려 있는 불길한 물건이었다.

“첫 번째가 무난할 것 같습니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학생 분께서 경험이 적기도 하고...”

이한도 당연히 첫 번째를 고르려고 했지만 해골 교장은 단호하게 선택했다.

“세 번째가 좋겠군.”

“대체 어째서입니까?”

이한의 질문에 해골 교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느냐? 자연의 물건에 저 정도 마력이 깃드는 건 흔치 않다.”

“아니...”

악기 고르러 왔지 마력 걸린 물건 고르러 왔나?

당연히 이한도 세 번째 바이올린에게서 마력이 느껴지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게 더럽게 흉흉하고 난폭해서 그렇지.

주인들이 다 하나같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는데 느껴지는 마력이 정순하고 평온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음악 마법을 생각하면 당연히 마력 높은 물건을 골라야지.”

“하지만 불길한 물건이잖습니까.”

“네 팔을 봐라.”

“?”

이한은 해골 교장의 말에 자신의 팔을 봤다.

평소 차고 다니던 저주 받은 아티팩트들이 찰랑거렸다.

“저주 받은 아티팩트를 주렁주렁 차고 있는 놈이 무슨... 이걸 주게.”

“정, 정말 괜찮으십니까? 이건 팔려고 내놓은 물건이 아닌데...”

“그럼 더 싸겠군!”

*         *         *

모든 일정을 마치자 주말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한은 마차를 타고 에인로가드의 성문을 통과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황금 같은 주말이 이렇게 끝나버리자 아무리 이한이라도 씁쓸했던 것이다.

“엇.”

해골 교장이 앞을 보다가 무심코 입을 열자 이한도 시선을 돌렸다.

볼라디 교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왜 저러고 계십니까?”

“아차... 제기랄. 잊고 있었군. 원래 주말에 배그렉 교수가 너한테 가르쳐 줄 게 있다고 말했었는데.”

“왜 주말에?”

“평일에는 다른 교수들 때문에 시간이 꽉 차있었겠지.”

“...?”

이한은 대화에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들의 정보 공유가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뭐지?

“배그렉 교수! 일정을 흔들어서 미안하지만 이유가 있었네.”

마차에서 내린 해골 교장은 볼라디 교수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이파두르를 부축하고 내리느라 발이 묶여 있던 이한은 이어지는 말에 경악했다.

“저 녀석이 음악 마법에 관심이 많아서 같이 나가자고 조르더군. 그래서 어쩔 수 없었네. 그럼 난 이만.”

해골 교장은 해골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슝 하고 사라졌다.

이한은 무표정한 볼라디 교수와 시선을 마주치자 무심코 이파두르를 쳐다보았다.

‘음. 난 무리겠군.’

이파두르 탓을 하고 사라지기에는 이한의 마법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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