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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38화 (538/687)

538화

“음악 마법?”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안에서는 잔잔한 충격이 느껴졌다.

마치 ‘네가 그런 쓰레기 같은 마법을 배우다니,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반항을 하는 거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푸른 용의 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가이난도! 그... 그 피는 뭐야! 너 설마 우리가 카드 게임 금지시켰다고 사악한 비술을...?

물론 가이난도가 옷에 잔뜩 묻힌 건 피가 아니라 잼이었지만 하여간 친구들이나 볼라디 교수나 보여준 감정은 비슷했던 것이다.

“교수님. 제가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이한은 최대한 빠르게 말했다.

가이난도가 피가 아니라 잼이라는 걸 설명해서 징벌방에 끌려가는 일을 막았듯이, 이한도 최대한 빠르게 설명해야 볼라디 교수한테 공격당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음악 마법은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그게 사실 맹점이 있었던 겁니다!”

이한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부풀려서 말했다.

음악 마법이 가진 이점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이한을 엄습했다.

그 장황한 설명에 이파두르가 감동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음악 마법에 이렇게나 관심을 가져주다니...’

워다나즈 가문은 음악 같은 예술에 별 관심 없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 소년은 확실히 달랐다.

이파두르는 최선을 다해 이 워다나즈 가문 소년이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제국의 다른 유명 연주가들이나 음유시인들도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음악에 이리도 열정적이라는 걸 듣는다면 흥미로워하며 도울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그렇군.”

볼라디 교수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나?’

“그럼 그냥 언령을 배우면 안 되나?”

‘안 됐군.’

이한은 방금 끝난 줄 알았던 오만한 자신을 비난했다.

아직도 에인로가드에서 가져선 안 되는 오만의 찌꺼기가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언령 마법은 교장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이만큼이나 걸린다고 하시더군요.”

이한은 손가락을 하나 폈다. 볼라디 교수는 놀라지 않고 말했다.

“물론 언령 마법은 제대로 파면 천 년 가까이 걸릴 수 있긴 하다.”

“......”

이한은 0 하나가 늘은 것에 경악했다.

해골 교장이 은근슬쩍 이한을 속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말에 마력을 담을 수만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제대로 된 언령 마법이 아닌, 전투에 특화된 형태로 간략화 된...”

“그래서 음악 마법을 배우려고 한 겁니다!”

이한은 위기감을 느끼고 볼라디 교수의 말을 끊었다.

“언령 마법의 한계를 음악 마법으로 나름대로 극복해보려고 한 거지요!”

“흠.”

볼라디 교수는 말이 없어졌다.

이한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극도로 긴장했다. 소매 속에 있던 새끼 바실리스크가 쉿쉿 소리를 냈다.

‘참아라. 네가 진다.’

불행히도 새끼 바실리스크가 볼라디 교수에게 덤벼봤자 이길 것 같지 않았다.

성체가 되어도 힘들 것 같은데...

“난 여전히 언령 마법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도전을 말리진 않겠다.”

볼라디 교수가 생각하기에 좋은 스승은 제자가 원하는 걸 최대한 지원해주는 사람이었다.

음악 마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제자가 도전해보겠다면 말릴 생각까진 없었다.

교수 본인이 모르는 새로운 마법이 나올지도 모르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최선을 다해서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알겠다. 밖에서는 잘 쉬었나?”

“예. 즐거웠습니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여기서 끝냈겠지만 프로 학생인 이한은 한 마디를 추가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연습해야 할 마법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초조하더군요.”

이파두르는 이한의 속마음도 모르고 다시 감탄했다.

세상에 이리 성실한 천재가 있다니!

“그랬나?”

“예.”

“흠.”

“...?”

볼라디 교수가 잠깐 시간을 확인하자 이한은 불길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도 평범한 교수가 아니라 프로 교수였던 것이다.

“취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연습을 도와주겠다.”

“......”

프로 교수를 얕본 이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이파두르 님하고 저녁 식사를...”

“아니, 아니. 괜찮습니다. 워다나즈 학생. 이 늙은이는 신경 쓰지 말고, 마법에 전념하세요. 오늘 도와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음유시인들은 다 개새끼들인가?’

이한은 워다나즈 가문이 왜 음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         *         *

이한이 배우는 마법 학파마다 다 관심을 갖고 있는 볼라디 교수였지만,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는 건 번개 원소 형태 변화였다.

번개 원소는 원소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축에 속했다.

그 통제할 수 없는 파괴력과 부정형(不定形)의 형태까지.

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그런 번개 원소를 물 원소처럼 쉽게 통제할 수 있다면...

“전투에서 유리해지지.”

볼라디 교수가 번개로 된 창을 빙글 돌리자 새끼 바실리스크가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저 마법사를 이길 자신이 없어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교수님. 일반적인 대인 전투에서 번개 원소까지 쓸 필요가 있습니까?”

당장 비교적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물 원소만 해도 응용만 잘 하면 파괴적인 운용이 가능했다.

유미디후스만 봐도 증기 폭발부터 체액 조절까지 물 원소 마법으로 별의별 짓을 다 하지 않던가.

“좋은 질문이군. 보통 형태 변화를 사용한 번개 마법은 강력한 마법사를 상대할 때 유용하다.”

볼라디 교수는 차분히 설명했다.

마법사들 중에서 방어 마법에 노련한 이들은 이한이 날리는 물 원소 마법이나 기타 투사체 마법을 전부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럴 때 의외로 잘 먹히는 전략이 이런 근접전이었다.

게다가 번개 원소는 흔한 마법도 아니라 더욱 더 대비하기 힘들었다.

‘...보통 그거 다 막을 정도면 나보다 몇 수 위의 마법사인데 내가 상대해야 하나?’

그쯤 되면 교수들이 상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한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조용히 참았다.

“받아라.”

교수는 묵직한 은괴를 내밀었다.

뜻밖의 선물에 이한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 아껴서 잘 사용하겠습니다!”

“...?”

볼라디 교수는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자신이 뭔가 잘못 짚은 건가 싶어서 당황했다.

“형태 변화에 사용해야 하는데 아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아.”

이한은 교수의 말뜻을 이해하고 머쓱해졌다.

아무것도 없이 순수하게 번개의 형태를 잡는 건 실로 힘든 일이었다.

마법사의 의지만으로 벼락을 길들여야 한다니.

그러나 순수한 은(銀)은 단단한 형태를 갖고 있었고 비교적 번개와 친숙한 물질.

번개가 깃든 은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데에 익숙해지면 번개 자체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은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교장 선생님의 방에서.”

“......”

이한은 빌렸는지 훔쳤는지 묻지 않았다. 들어서 좋을 게 없는 내용이었다.

*         *         *

파지지지직!

‘괴롭다!’

이한은 바닥으로 튀어버리는 번개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이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마법 연습 자체는 잘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다만 실패할 때마다 은이 조금씩 증발되어서 그렇지.

콰직!

창의 형태로 변형된 은이 번개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틀리다가 파직거리며 형태를 잃어버리자, 번개가 사방으로 튀며 은도 찌그러졌다.

응축된 번개의 힘이 워낙 강한 만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단단한 금속도 견디지 못하고 제멋대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증발도 되고...

이한이 눈에 띄게 괴로워하자 볼라디 교수가 말을 걸었다.

“지금 잘 하고 있다. 형태 변화를 유지하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이한은 일어났다.

이 마법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은이 소모될지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슬슬 하늘이 어두워지고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자 볼라디 교수가 회중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참. 내일 강의는 조금 일찍 시작할 수 있나?”

“어느 정도 말입니까?”

“두 시간 정도.”

“......”

월요일 오전 9시에 강의가 잡혀 있는데 2시간 당겨서 시작하는 건 절대 ‘조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한은 프로 학생이었다.

‘2시간 일찍 끝난다고 생각하자.’

“하하.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준비할 게 있습니까?”

“아니. 거인들을 만나야 해서.”

“......”

*         *         *

-인간 마법사! 인간 마법사다!

-반갑다, 반가워!

이른 아침.

이제 2학기의 끝이 다가옴과 같이 하루하루가 추워지고 있었다.

외투 위에 마법을 걸지 않으면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들 정도로.

이한은 입김을 내쉬며 거인들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다들.”

-마법 보고 싶다. 마법!

“예?”

이한은 무슨 마법을 써줘야 하나 고민했다.

거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볼라디 교수한테 수옥탄을 한 방 정도 날려도 납득해주시지 않을까?

-그거 말이다. 그거!

거인은 두꺼운 나무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탕탕 두드렸다.

“...요리 이야기였군.”

잔뜩 기대한 얼굴로 모여 있는 거인들을 밀어내고, 가장 똑똑한 거인 이쿠루샤가 나왔다.

-다들 반갑군. 배그렉 교수. 잘 지냈나.

“잘 지냈소. 고맙소.”

-곧 기말고사 기간인 만큼 교수들은 다들 바쁘겠어. 이렇게 올 시간이 나나?

“괜찮소.”

“......”

이한은 무의식적으로 ‘교수님 제자는 저밖에 없잖습니까’라고 하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참았다.

남들 앞에서 교수의 험담을 하는 건 미친 짓이었으니까.

“곧 시험을 앞둔 만큼 거인들과 더 친해지고 싶소. 일을 도와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사실 원래 교수의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쿠루샤는 볼라디 교수의 광기 넘치는 계획, ‘거인의 힘을 빌려서 신입생을 시험한다’를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미친 생각 같아서 ‘시험을 보더라도 거인과 좀 친해진 다음에 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주장했었다.

어린 마법사와 거인을 싸움 붙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거인학살자> 같은 칭호를 단 대마법사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단기간에 외부인, 그것도 마법사가 거인들과 친해지긴 힘든 일이니 소년이 친해지지 못하면 그걸 핑계로 다시 교수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거인들과 빨리 친해졌다.

양을 돌보는 것도 도와주고 요리도 열심히 공부해오더니 거인들의 호감을 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실제로 거인들이 이쿠루샤를 불러서 물어봤을 정도였다.

-그 마법사 언제 오나?

-나도 모른다.

-내려가서 물어봐라.

-물어봤는데 모른다더라.

-그럼 또 내려가! 또 내려가!

거인들이 이렇게 단기간에 호감을 보이기 쉽지 않았는데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쿠루샤는 볼라디 교수의 계획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로 친해졌으면 거인들과 겨룰 자격이 충분했다.

-저렇게 친해지다니...

“당연한 일이오.”

이쿠루샤는 볼라디 교수와 같이 거인들에게 헹가래받는 이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도 모르고 거인들에게 환호성을 받고 있었다.

-마법사 만세! 마법사 만세!

-우리의 친구!

“하하. 여러분들이 저를 좋게 봐주신 덕분입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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