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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40화 (540/687)

540화

이한이 당황해하는 사이 쪽지에 글씨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머저리 모라디가 지금 일을 망쳐버린 탓에...

“??”

-라개임팦닷마닝잉마어를

“????”

‘혼자가 아니신가?’

마치 둘이 깃펜을 잡고 종이를 뺏으려고 다투면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 싶은 혼란스러운 글씨들.

시간이 지나자 글씨가 멈추더니 안파곤이 제대로 된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발파탄과 같이 시약을 찾기 위해 왔다가 사소한 말다툼이 붙어서...

‘사소한 말다툼?’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벌하게 마법으로 찢겨나간 숲의 잔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사소한 말다툼이라면 심각한 싸움은 어떤 수준인 거지?

-그래서 왜 거인들하고 같이 있는 거지? 붙잡힌 건가?

-아. 그런 건 아니고요. 거인들의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

“?”

잠깐 쪽지에 올라오던 글씨가 멈췄다.

이한은 선배들이 왜 그러나 의아해했다.

-왜 거인들의 일을?

-친해져서요.

다시 침묵.

이한은 선배들이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글씨를 썼다.

-죄송하지만 후배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지금 두 분께서 말다툼을 하는 건 좋은 생각 같지 않습니다.

글씨를 쓰자 바로 답이 올라왔다.

-말다툼 하지 않았다. 하여튼 알겠다.

-근데 너 가이난도라고 하지 않았냐 저번에?

이한은 마지막 말은 못 본 척 슬쩍 무시했다.

*         *         *

“거인하고 대체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 거지? 이해가 안 가는데?”

“에인로가드에서는 무엇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군.”

“지랄하지 마. 그래서 니 친구나 선배 중에 거인하고 친한 사람 있냐?”

“......”

안파곤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대체 무슨 짓을 해야 거인하고 친해질 수 있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근데 왜 이름 물어본 건 대답이 없는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안파곤은 발파탄의 말에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인들이 눈앞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저 후배가 예전에 자기 이름을 가이난도라고 했던 워다나즈라고 했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마 잘못 들었거나 했겠지!

“거인들을 말려야 해.”

“아. 맞아.”

처음에는 후배가 거인들을 속이고 위장해있는 건가 싶었지만 사실 친해졌다면 더 유리하긴 했다.

물론 아직도 믿겨지진 않았지만...

‘나중에 꼭 물어봐야지.’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어지간해서는 남에게 관심 없는 부여 마법 학파인 안파곤도 궁금했다.

-거인들을 물러나게...

“잠깐.”

“뭐? 왜 멈춰?”

“대가는 누가 지불하지?”

“네가 지불해야지.”

“흥미로운 개소리군. 그냥 짖지 그러나?”

“그래. 참고로 네가 지금 내 간격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아둬라.”

“마음대로 해봐라. 거인 앞에 두고 시끄럽게 소리를 낼 정도로 멍청하단 걸 자랑하고 싶으면.”

투닥대던 둘은 결국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합의했다.

후배한테 부탁하는 비용은 서로 절반씩 나눠 내기로.

-거인들을 물러나게 해준다면 다음과 같은 보상을...

-보상이요?

후배의 대답에 둘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네가 쓰레기를 넣어서 그런 거지!”

“네 보상이 허섭스레기다.”

*         *         *

이한은 살짝 감동했다.

‘교수들은 일시키면서 보상 하나 안 주는데 선배들은 다르군.’

사실 교수들이 일을 시킨 게 아니라 강의를 한 거였지만 이한은 신경 쓰지 않았다.

푸른 용의 탑 근처 수풀에 적두사자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 열 벌, 바람 방벽 스크롤 열 개, 달맞이꿀 다섯 통 등등을 보관해두겠다니.

원래 그냥 시켰어도 했을 텐데 이런 보상은 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 어디로 갔는지 알겠습니다. 제가 가리키는 대로 가주십시오.”

-오오!

-마법사 똑똑하다!

이한이 자신 있게 외치자 거인들은 기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한은 선배들이 있을 법한 방향을 쳐다보고 살짝 눈짓했다.

알아서 잘 빠져나가란 신호였다.

‘후후. 완벽하군.’

거인들이 걸어 나가는 모습에 이한은 뿌듯해했다.

누가 봐도 기특하기 그지없는 후배의 모습이었다.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발파탄과 안파곤 모두 이한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

“......”

발파탄과 안파곤은 입을 떡 벌리고 걸어가는 거인들을 지켜보았다.

자신만만하게 자기만 믿고 맡겨달라고 해서 설마 했는데 저렇게 쉽게 거인들을 부릴 줄이야.

“거... 거인조종자...!”

이한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배들 사이에서 도는 별명이 추가되었다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그런데 왜 여기로 가는 거지?

“범인은 언제나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여기 마력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지팡이로 앞을 가리키면서 이한은 대충 아무 말이나 주워서 뱉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거인들을 대충 끌고 가서 거리를 벌린 다음 ‘아차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하면 되는 일.

에인로가드에서 단련된 이한에게는 눈 깜박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과연! 여기 바위 부서졌다!

“바로 그겁니다.”

-여기 나무도 박살났다! 여기로 도망친 게 맞다!

“?”

대충 지껄이던 이한은 멈칫했다.

거인들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어라?’

지금 이한과 거인은 아예 다른 쪽으로 빠져서 걷고 있었다.

봉우리 정상 쪽이 아닌 산맥의 깊숙한 어딘가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사람의 흔적이 발견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바위가 부서지고 나무가 부서졌다니.

‘뭔가 이상한데...?’

-저기! 저기다!

-저 놈이다! 야차 늙은이! 야차 늙은이다! 이럴 줄 알았다!

“????”

이한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반대쪽 숲 너머로 야차(夜叉)가 나무와 바위를 치우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인에 버금가는 커다란 덩치에, 귀신을 연상시키는 흉악한 생김새.

야차도 거인처럼 제국에서 보기 쉬운 종족은 아니었다.

야차는 거인들이 소리치는 걸 들었는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멍청이들이 왜 또 어르신 앞에서 떽떽대느냐?

-우! 야차 늙은이! 저번에도 나무 부쉈고 이번에도 나무 부쉈다!

-무식한 놈들아. 죽고 썩은 나무는 치워줘야 옆의 나무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다.

-거짓말하지 마라! 멀쩡한 나무들도 박살냈다!

“......”

이한은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멀쩡한 나무들을 박살낸 건 이한의 선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불만 있으면 덤벼라. 아해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씨름으로 덤벼도 받아주마.

-우...

-저 야차 너무 강하다.

거인들은 움찔하며 기죽은 모습을 보였다.

보아하니 몇 번 저 야차와 맞붙어서 호된 꼴을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덩치에서는 여러분들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야차는 이상한 기술 쓴다.

-우리 못 당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 야차가 한 걸음 다가왔다.

거기에 자극을 받은 거인 하나가 가슴을 두드리며 외쳤다.

-마법사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봐라!

거인은 발을 구르더니 살벌하게 달려들었다.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그 서슬에 날아갔다.

야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 어린 놈들은 대체 왜 자기 덩치를 생각 못하는 것이냐?

-끙! 끄응!

거인은 야차와 맞붙더니 힘으로 야차를 넘기려고 끙끙 애를 썼다.

그러자 야차가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선업(善業)을 쌓았어야지. 너희 아해들이 하고 다니는 일은 기껏해봤자 무기업(無記業) 정도다. 그런 힘으로 뭘 하겠다고?

“!”

이한은 야차의 겉에서 느껴지는 초자연적인 마력의 흐름에 놀라워했다.

원래 제국의 희귀 종족들은 마법으로도 따라하기 힘든 특이한 능력들을 갖고 태어난다지만, 야차의 능력은 그것 중에서도 특이했다.

자신 주변의 선업과 악업을 유형의 힘으로 구체화시키는 능력!

야차 자신은 쌓은 선업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꾸고, 야차와 맞붙은 악인들은 자신의 악업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인들은 악업은 없었지만 마땅한 선업도 없어서 저렇게 끙끙 밀리는 것이었고...

‘정말 신기한 능력이군.’

이한은 왜 마법사들이 그렇게 대단한 학문을 만들어놓고서도 원시 마법이나 저런 초능력에 관심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마법에서는 볼 수 없는 희한한 흐름과 패턴이 마법사라면 관심을 안 가지기가 힘들었다.

-우... 나도 간다!

-우우!

동료가 밀리자 거인들은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야차는 껄껄 웃으며 거인들의 돌격을 다른 팔로 받아냈다.

-더 해봐라. 더! 이 어린 놈들아!

-나도 간다!

“어. 잠깐...”

이한은 자신을 어깨에 올린 거인이 돌격하자 당황했다.

친구들이 밀리자 화가 난 건 좋았지만 자기 어깨 위에 있는 작은 마법사를 잊어버린 거 아닌가?

-우!

-어디 해... 컥!

이한을 태운 거인이 들이받자 자신만만하던 야차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어?

-어어?

거인들 본인들도 이런 결과를 생각하진 못했는지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 어어! 우리가 이겼다!

-야차 늙은이를 우리가 이겼다!

이한은 거인 어깨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흡의 묘리까지 사용해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간신히 올라왔다.

거인들이 신나서 서로 박수치고 있는 동안 야차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뭐냐? 없는 사이 무슨 선업을 쌓았길래 이렇게 무거워졌지?

-마법사의 요리가 맛있었다. 내 몸도 그만큼 튼튼해졌지!

이한을 태운 거인이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야차는 무슨 개소린가 싶어하다가 뒤늦게 이한을 발견했다.

-에인로가드의 어린 핏덩이가 여기는 왜 있는 거냐?? 그것도 거인들하고 같이??

야차가 깜짝 놀라서 묻자 이한은 새삼 거인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선배들도 그래서 놀랐던 건가? 아니겠지. 에인로가드 학생이신데 설마 이런 거 가지고.’

“거인들하고 친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 친하다!

-우정이다, 야차 늙은이!

야차는 거인들의 소리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한을 노려보았다. 마치 얼마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나 판단하려는 듯이.

-선업이... 무슨...?

“어, 제가 선업을 많이 쌓았습니까?”

-쌓은 자기가 모르면 어떡한다는 거냐!

야차는 기막혀했지만, 처음에 보여주던 적개심은 한풀 꺾였다.

저 정도로 선업을 많이 쌓은 마법사라면 악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침 잘 됐군. 너희 어린놈들. 따라와라. 너희들이 도울 게 있다.

-야차 늙은이 말 안 듣는다!

-저번에도 우리한테 일 시켜놓고 아무것도 안 줬다!

야차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설명했다.

-말했지 않느냐. 그 빙하를 내버려뒀으면 너희가 자는 동굴을 덮쳐서 무너져 내렸을 거라고.

-일 시켰으면 보상 줘야 한다!

-...이쿠루샤 없나? 이쿠루샤?

야차는 말이 안 통하자 이쿠루샤를 찾았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거인은 이쿠루샤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 여러분들. 일단 말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이한은 거인들을 설득했다.

야차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악인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보다는 이쿠루샤에 가까워보였다.

거인들의 말에 속터져하면서도 어떻게든 챙겨주려는 모습이 꼭...

-흥. 말해봐라.

-이번만 들어주는 거다.

-???

야차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외부인, 그것도 마법사가 저렇게 거인들을 잘 부리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늪에 골치 아픈 놈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 놈 때문에 주변 숲이 다 죽어나가고 있다. 너희 어린 놈들이 좀 도와줘야겠구나.

-하! 또 속임수! 속임수!

“어... 숲이 다 죽어나가면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나무도 죽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 어떡하지 그럼?

“막아야죠?”

-흥. 어쩔 수 없이 도와주겠다!

-...혹시 에인로가드에 안 돌아가고 여기서 일해볼 생각은 없나?

야차는 진지하게 에인로가드의 어린 핏덩이에게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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