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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46화 (546/687)

546화

“뭐야. 너희들도 해봤으면서 엄살 떤 거야?”

여기서 유일하게 기사 가문 출신 아닌 이한이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아니... 워다나즈. 미친놈아. 야영 같은 훈련을 하긴 하는데 이렇게 하진 않지.”

“맞아. 에인로가드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맨몸으로 하는 셈이잖아.”

흔히 제국의 기사 가문이라고 하면 무식하고 단순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건 편견이었다.

기사 가문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매우 영리하고 체계적으로 행동했다.

이런 야영 훈련도 그랬다.

깊은 산맥 속에서 움직이며 지내는 훈련을 할 때에는 적어도 수십 명 이상이 같이 움직이며, 필요한 물자나 장비도 넉넉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애초에 어지간히 특이한 기사 가문이 아니면 혼자서 맨몸으로 산맥에 떨어졌을 때를 대비하지 않았다.

그런 건 떠돌이 용병이나 하는 일이었다. 기사는 종자와 호위병들을 이끌고 들어가는 자였지 혼자서 맨몸으로 구르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어?’

이한은 알라르롱이 자신을 데리고 그냥 산에 들어갔던 걸 떠올렸다.

어라?

“하지 않... 나?”

“안 한다니까.”

“워다나즈 이 자식. 네가 검술 잘하는 건 아는데 기사 가문은 우리라고. 왜 의심하는 거야.”

“그, 그래. 미안하다.”

이한은 더 말해봤자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 것 같아서 그만 말했다.

돌아오니 더르규와 지젤은 벌써 간단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미리 물자를 숨겨놓자고?”

“그래. 교수님 성격에 갖고 올라갈 양에 제한 걸 테니까. 미리 산에 숨겨놔야 해.”

“하지만 그건 규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이 학교 자체가 규칙에 어긋나는데.”

“모라디 말이 맞아.”

이한은 동의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산맥 곳곳에 미리 준비를 해놔야 해. 게다가 2주 후잖아. 날씨가 더 험악해질 수도 있어. 예전에 서리거인의 왕 나왔을 때 기억하지? 서리거인 왕의 왕이라도 나오면 어떡할래?”

“그런 게 있나?”

더르규가 놀라서 물었다. 이한은 대충 넘겼다.

“몰라. 있을 수도 있겠지. 하여간 중요한 건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거지. 산에 움막 좀 몇 개 만들어놓자.”

“나쁜 생각은 아니군.”

지젤도 동의했다.

워다나즈가 호감 가는 놈은 아니었지만 일을 준비할 때에는 생각이 맞았다.

“모라디. 교수님이 몬스터 추가로 풀 것 같나?”

“으음... 그럴지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합니까?”

잉걸델 교수가 의아해하며 다가왔다.

이한은 재빨리 대답했다.

“이번 기말고사가 너무 기대돼서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말입니까?”

잉걸델 교수는 이한의 말에 멋쩍어했다.

“다들 좋아할지 자신이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니 좀 기쁩니다. 하하. 힘들까봐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대가 된다면 꼭 해야겠군요.”

“......”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한을 노려보았지만 이한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힘들다고 했어도 교수는 했을 거다.’

원래 교수들은 저렇게 말해도 사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이한은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보다 워다나즈. 검의 움직임이 조금 달라졌는데 무언가 깨달음이라도 있었습니까?”

“아. 저번에 말해주신 흡의 묘리를 좀 더 익숙하게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이한의 말에 엘프 검사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렇습니까! 정말 잘 됐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이한은 거인 씨름 도중에 살아남기 위해 깨달았다고 말하려다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서 참았다.

“지금 워다나즈는 벽암검의 몇 초식을 쓰고 있습니까? 다섯 초식?”

“맞습니다.”

잉걸델 교수가 이한이 배운 검술에 대해 생각보다 자세히 알았지만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교수 본인부터가 알라르롱과 친분이 있는데다가 제국 내에서 모르는 검술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워다나즈는 벽암검을 처음 배웠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예?”

이한은 뭔 소린가 싶었다.

그냥 알라르롱이 검 잘 휘두르고 나무도 잘 베고 바위도 잘 베고 엄청 세니까 앞에서 까불지 말아야겠다 정도 생각했었는데?

“벽암검은 얼핏 보면 단순하지 않습니까.”

“아.”

벽암검은 제국의 검술 중에서 무겁고 강한 중검 계열의 검술이었다.

일격 일격이 커다란 바위처럼 짓쳐들어오는 검술.

그런 만큼 벽암검은 검술의 초식이 그리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한 축에 속했다.

검술에 뜻을 가진 사람에게 이런 단순한 검술은 하급 검술 같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물론 이한은 달랐다.

‘난 애초에 호신용으로 배운 건데...’

시간 남아서 몸 좀 단련하고 호신 좀 하겠다고 배우는 건데 무슨 검술에 화려함이 부족하다느니 심오한 맛이 없다느니 이딴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그건 그냥 미친 사람이었다.

“저는 그냥 했습니다만...?”

“훌륭합니다.”

“?”

잉걸델 교수가 필요 이상으로 감동받은 표정을 짓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방금 말한 것 중에 감동을 받을 부분이 있었나?

“검객이 검술을 고른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나는 검술이 검객을 고른다고 생각합니다. 워다나즈. 마치 에인로가드가 워다나즈를 고른 것처럼 말입니다.”

‘끔찍한 비유를 저런 감동적인 표정으로 하시다니.’

이한은 질색했지만 잉걸델 교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벽암검은 단순해 보이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심오한 검술입니다. 그러나 그 경지는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검술만을 추구하면 볼 수 없지요. 오직 묵묵히 땀방울을 흘릴 수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배워서 아직까지 휘두르고 있던 이한은 점점 더 머쓱해졌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 없는데...’

잉걸델 교수는 손가락으로 저 멀리 절벽을 가리켰다.

수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가파른 절벽이었다.

“알라르롱 경이 전반부의 다섯 초식만 가르쳐 준 건 워다나즈의 준비가 아직 덜 되어서일 겁니다. 그 다음은 오러를 쓸 줄 알아야 하니. 하지만 워다나즈의 성장세를 봤을 때 그리 멀지 않다는 확신이 듭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번 함선에서 어떻게든 깨달음을 갈무리했어야 했는데. 억지를 부려서라도 다시 한 번 했어야...”

“......”

이한은 등골이 서늘해져서 화제를 돌렸다.

“저 절벽을 보니 제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실감이 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좋은 자세인데 그거 때문에 가리킨 건 아닙니다. 워다나즈. 예전에 알라르롱 경이 벽암검으로 저만한 괴물의 목을 단칼에 잘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워다나즈도 분명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예...”

처음에는 무섭긴 했지만 듣다 보니 일반적인 덕담 같아서 이한은 살짝 긴장을 풀었다.

“자. 이제 닿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겠습니다.”

“??”

“이번에 흡의 묘리를 한층 더 깨달은 건 아주 운이 좋았습니다.”

잉걸델 교수는 이한을 앉혀놓고 매우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농담 아니라 정말로 몇 년 안에 오러의 벽을 뚫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 진지함이 느껴졌다.

“저번 함선에서도 그랬지만 워다나즈의 길은 그쪽에 있다고 봅니다.”

검사는 어떻게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선인(先人)들이 쌓아올린 체계적인 학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마법사들과 달리 검사의 길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고독한 길이었다.

그런 만큼 검사가 경지에 오르기 위한 깨달음 또한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스승에게 배운 검술을 한 치의 틀림도 없이 평생 똑같이 휘두르는 검사는 경지에 오를 수 없었다.

진정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자신이 겪고 깨달은 모든 것을 담아 배운 검술을 진화시켜야했다.

그 진화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순간에야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잉걸델 교수가 보기에 워다나즈의 가능성 높은 길은 흡의 묘리였다.

스스로 깨달은 마력 성질 변환을 깊게 파고든 끝에 지금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어난 상태.

게다가 저번 함선에서도 흡의 묘리를 정신없이 사용하다가 경지의 벽 가까이 도달한 걸 보면 더욱 더 가능성이 높았다.

“흡의 묘리를 중점으로 워다나즈가 새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벽암검에 녹여내는 겁니다.”

“과, 과연.”

이한은 속으로 ‘그걸 제가 해낼 수 있으면 에인로가드가 아니라 황궁기사단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동의하는 척 했다.

이한이 배운 것들은...

“지금 흡의 묘리 말고 떠오르는 게 뭐가 있습니까? 고민하지 말고 바로.”

“저번에 가르쳐주신 의념 싣는 법이 떠올랐습니다?”

“좋습니다. 또?”

“기사들한테 배웠던 속임수 기술들?”

“으음. 그건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그것도 뭐...”

잉걸델 교수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이한을 밀어붙여 갖고 있던 생각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자. 이걸 녹여내면 됩니다.”

“어... 방법이 있을까요?”

“지름길은 없습니다만 워다나즈를 도와줄 사람들은 있습니다.”

잉걸델 교수는 지젤과 더르규를 불렀다.

“워다나즈는 공격하지 말고 방어만 해보세요.”

강제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없던 능력이 개발되기 마련.

잉걸델 교수는 뛰어난 검사인 만큼 어떻게 하면 실력이 오를지 잘 알았다.

“아니. 교수님. 최소한 한 명으로...”

“한 명으로 하면 압박이 너무 안 됩니다. 벽암검은 특히 방어에 유리한 검술이라.”

지젤이 손을 들고 공손하게 물었다.

“교수님. 워다나즈의 눈을 가리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모라디. 워다나즈가 잘 막으면 다음에는 눈을 가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친구를 생각해주는 지젤의 마음에 잉걸델은 흐뭇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다른 탑 학생이라고 배척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이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         *         *

“안녕하세요. 플뤼워크 교수님.”

“다들 안녕.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오리퓰라스 법무관 님.”

다들 반갑네. 어린 마법사들. 자네들은 섣불리 계약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나처럼 괴롭지 않으려면.

로지네 교수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악마는 눈을 찡긋거리며 충고했다.

각종 위험한 마법 계약을 배우는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강의 시간에 저만큼 어울리는 교재도 찾기 드물었다.

바지를 염색하려고 열심히 지팡이를 흔들던 가이난도가 옆을 보더니 물었다.

“워다나즈. 흰 호랑이 탑 애들 왜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혹시 몰래 간식이라도 찾은 거 아니야?”

“아니. 다른 이유다.”

이한은 얼얼한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올해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저렇게 행복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한 대 맞았다고 저러다니.

‘두 대 맞으면 저 자식들 축제 여는 거 아니야?’

“자자. 다들 받았죠?”

로지네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러 학생들에게 두툼한 서류 뭉치를 하나씩 안겨줬다.

“이게 뭔가요?”

“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뢰 요청서들입니다. 실제 서류들을 모아서 갖고 온 거예요.”

“!”

이한은 흥미로워하며 하나 읽어봤다.

긴급!

몬스터 사냥, 그랑덴 시 남서쪽 외곽 지역, 보수 추후협의가능...

“쓰레기군.”

이한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서류를 노려보았다.

여우 수인 교수는 이한의 말을 듣고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잘 지적했어요! 이걸 보면 알겠지만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지역의 특징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의뢰, 아주 위험해요. 자. 모두 박수!”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보수를 구체적으로 안 알려줘서 욕한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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