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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47화 (547/687)

547화

“오늘 할 일은 이 의뢰 요청서들을 읽어보고 옥석을 가려내는 거예요.”

마법사들은 스스로를 제국 지성의 첨단을 이끄는 빛 같은 존재라고 여겼지만, 사실 마법사들이 언제나 똑똑하진 않았다.

특히 계약이나 의뢰 같은 부분에 들어오면 더욱 그랬다.

평생 남 속여 먹는 걸 업으로 삼아 온 제국의 닳고 닳은 사기꾼들한테 잘못 걸리면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당하는 것이다.

“실제 의뢰 요청서들인 만큼,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신청해도 좋아요!”

“방학 때 하는 건가요?”

“네네. 보통은 방학 때 하죠! 학기 도중에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학업이 우선이니.”

교수의 설명을 들은 친구들은 웅성거렸다.

“학기 도중에 하는 사람도 있다고?”

“미친 거 아니야?”

“할 수도 있지 자식들아.”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발끈해서 변호했다.

지금 강제로 알펜 교수가 주선한 의뢰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냥 듣자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강의나 실험, 연구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지 알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고. 아무리 학기 도중이라 하더라도 의뢰를 받을 수도 있는 거야.”

“알, 알겠어. 워다나즈. 우리가 잘못했어.”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설마 아까 팔 맞았을 때 환호성 질러서 화난 건 아니지?”

친구들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워다나즈가 저 정도로 변호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근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학기 도중에 의뢰는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지금 공부도 따라가기 힘들잖아.’

사람 구합니다!

인간 종족이어야 함!

음주 습관 없어야 함!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해야 함!

마법 실험 받은 적 없어야 함!

...

“헉. 이한. 이한. 이거 완전 날로 먹는 거 같아!”

가이난도는 이한이 평소 말하던 ‘날로 먹고 싶다’에 맞는 의뢰를 찾은 것 같아서 신이 났다.

이한은 가이난도의 의뢰서를 꼼꼼히 읽은 다음 교수님을 불렀다.

“교수님. 경비대에 신고해야 할 거 같은데요.”

“?!”

메이킨 가문의 연금술 공방에서 일하고 싶으신가요?

-연금술사 길드 출신 우대

-야간 근무 가능 우대

-일주일 이상 비수면 가능자 우대

장기근무 시 다음과 같은 혜택들을 제공하오니 많은 관심을...

‘이것도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한은 살짝 고민했다.

아무리 봐도 요네르의 언니인 요아넨이 낸 공고였던 것이다.

‘방학 때 다시 일할지도 모르니까 넘어가야지.’

학생들은 흥미로워하며 의뢰 요청서를 확인했다.

다들 여름 방학 때 일한 적이 있는 만큼 괜찮은 의뢰에 관심이 있었다.

“이거 괜찮은 거 같아.”

“난 이거.”

이상한 의뢰들과 달리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의뢰는 다들 비슷했다.

마도서 번역!

유적에서 찾은 마도서 번역 부탁드립니다. 비싼 값에 팔릴 경우 추가금 지급하겠습니다.

마법 교육에 관하여

1서클 마법, <빛 생성>이나 <화염 생성> 등을 가르치실 수 있는 마법사 분을 찾습니다.

그럴 실력이 없는데 마법사를 사칭하시는 분은 정중하게 사절하겠습니다(실패 시 보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생각보다 좋은 의뢰가 많잖아?’

이한은 로지네 교수를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방학 때 쓸만한 일을 찾느라 고생했던 이한인 만큼 이 의뢰들이 얼마나 질 좋은 의뢰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국 관료 출신 교수인 만큼 갖고 오는 의뢰의 수준이 이한과 차원이 달랐다.

물론 이상한 의뢰들도 많았지만 그건 강의용으로 일부러 챙겨온 게 분명했고...

‘존경합니다. 교수님.’

앉아서 오리퓰라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로지네 교수는 갑자기 워다나즈가 존경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자 당황스러워했다.

“이야기하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마법사 자네의 강의를 존경하는 거겠지. 자랑스러워 할 일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듣는 강의가 몇 개인데?”

로지네 교수는 자기객관화에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에인로가드의 날고 기는 강의들을 전부 다 듣고 있는 워다나즈가 고작 이런 의뢰서 보는 강의에 저런 눈빛을 보낼 리 없지 않은가.

“마도서 해석이나 번역이 좋은 것 같은데.”

“난 가정교사. 이 정도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목숨 걸고 던전이나 유적에 들어가는 의뢰는 사실 마법사한테 그리 매력적인 의뢰가 아니었다.

마법사의 능력을 탐내는 곳이 많고 많은 만큼 안전하고 편안한 의뢰가 수두룩한 것이다.

그 중 마도서 번역이나 해석, 혹은 마법 교육 같은 일들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빈곤한 주머니를 쉽게 채워주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건 근데 누가 의뢰한 거지?”

“상인 아닌가?”

“마법사 같기도 한데...”

마도서는 난해한 문자로 쓰여 있지 않더라도 마법사 개인이 풀어서 쓰지 않은 이상 외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걸 팔거나 가치를 매기려면 안의 내용을 분석하거나 해석하긴 해야 했다.

이 때 인기가 있는 게 에인로가드 학생들 같은 정통 마법사들이었다.

“자자. 이런 번역 의뢰는 대체로 좋아요! 다들 잘 골랐어요. 하지만 명심해둘 게 있는데, 상인들이나 수집가가 한 의뢰라면 괜찮지만, 다른 마법사가 한 의뢰라면 거절하세요! 마법사들은 대부분 다 인성파탄 난 사람들이니까요!”

“...?”

“???”

학생들은 듣다가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제국의 마법사 대부분은 저런 마도서를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제대로 된 마법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익힌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만을 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들은 자신의 실력이나 지식의 부족을 실감하기에 해석된 마도서에 더욱 집착하곤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손에 넣으려고 할 정도로.

당연히 이런 마법사들과 엮여봤자 좋을 게 없는 만큼 거절하는 게 맞긴 했는데...

어째 들으니까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이런 교육 의뢰는 어떻습니까?”

“아. 좋죠! 마법에 흥미를 가진 제국 사람들이 많은 건 참 좋은 일이에요.”

마법사들은 그 지성에 걸맞게 명예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제국의 귀족 가문이나 신흥 부자 가문들 중에서도 자기 자식이 마법사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제법 됐다.

하지만 가문의 핏줄을 기숙학교에 보내는 걸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는 법.

이런 이들을 위해 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마법사들도 종종 나왔다.

저택이나 영지에 머무르며 그 가문의 사람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런 의뢰도 대체로 좋아요! 다들 잘 골랐어요. 하지만 명심해둘 게 있는데, 그 가문의 평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평판이 좋지 못한 가문의 일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요?”

“헉. 금화 지불을 어깁니까?”

이한은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로지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불을 안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사소한 일이죠.”

‘어떻게 사소한 일이지 그게?’

“잘못하다가는 저택에 반강제로 붙잡혀서 계속 마법을 가르쳐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마법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보통 독한 게 아니니까요.”

교수의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놀라워하며 수군거렸다.

가르치는데도 뛰어난 마법사를 찾기 힘든 만큼, 그런 마법사를 찾으면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

그러나 그걸 직접 들으니 충격이 컸다.

“이, 이한. 나 방문했다가 붙잡히면 어떡하지?”

“흠. 가이난도. 흑마법은 보통 잘...”

이한은 가이난도의 두려움을 달래주기 위해 ‘흑마법은 보통 사람들이 잘 가르쳐달라고 안 해’라고 말하려고 했다.

“가둬놓고 초콜릿만 주면? 협박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야 할까??”

“어차피 방학 끝날 때까지 복귀 안 하면 교장 선생님이 찾아다니지 않나...”

친구들과 같이 이상한 의뢰서를 최대한 골라낸 이한은 쓸만해 보이는 마도서 해석 의뢰서와 교육 의뢰서 몇 개를 챙겼다.

‘후후. 나중에 방학 되면 처리해봐야지.’

그러나 이한의 얼굴은 곧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친구들도 이한이 고른 것과 똑같은 의뢰서를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좋은 의뢰는 겹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먼저 신청을 해야 하나...”

“응?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가이난도.”

이한은 가이난도의 손아귀에서 <마법사 카드의 달인 구함> 의뢰를 뺏은 뒤 가볍게 던져버렸다.

*         *         *

수요일이 지나자 눈이 더 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쌓이는 눈을 본 학생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미 1학기 때 경험한 덕분에 학교가 눈으로 뒤덮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쪽에서 썰매 꺼내!”

“하나, 둘! 하나, 둘!”

그나마 다행인 건 이한과 친구들이 부여 마법 강의 때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각종 겨울용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학생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정도 준비면 충분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흰 호랑이 탑 놈들 썰매는 왜 꺼내는 거지? 설마 말을 꺼내서 썰매를 끌게 할 생각인가?”

“이 날씨에 말은 위험... 저, 저 자식들! 직접 끌고 있어!”

인원을 나눠서 한쪽은 썰매를 끌고 한쪽은 썰매 위에 타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부터 시작해서, 기숙사 탑 바깥에 줄과 폴대를 연결해가며 길을 만드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까지.

몇 번 시련을 겪은 덕분에 학생들은 흔들리거나 욕을 할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았다.

“고생한다. 고생해.”

우레걸음 교수가 길쭉한 스키를 타고 내려오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강의량을 좀 줄여줘야겠군. 작업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겠어.”

“교수님...!”

이한은 아까 로지네 교수를 봤던 눈빛으로 우레걸음 교수를 다시 쳐다보았다.

사람의 진면목은 역시 위기 때 나오는 것일까?

“참. 텃밭에 자꾸 불청객이 찾아오는데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워다나즈.”

“...아니, 학생들 공부할 시간도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방금.”

이한은 황당해하며 말했다.

방금 학생들 걱정해놓고 이한은 추가 작업을 부탁한다니.

혹시 이한은 학생이 아닌가?

“아. 맞다. 그렇지. 미안하다. 워다나즈. 너는 무심코 따로 생각해버렸군.”

“......”

“너 주려고 식량 준비해놨는데.”

“그래서 무슨 일이신데요?”

이한은 트집을 잡는 대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즘 눈이 심하게 내리는 바람에 텃밭에서 건지는 식량이 점점 줄고 있었다.

추위에 강한 몇몇 야채나 달걀들은 괜찮았지만 그 외는 막혀버린 것이다.

언제나 주방이나 외부에서 넉넉하게 식료품을 구해오는 우레걸음 교수라면 큰 도움이 되리라.

“불청객이라니. 너무 강한 놈이면 제가 상대하기 힘듭니다.”

“강한 놈은 아니다.”

말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우레걸음 교수는 문득 궁금해졌는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네가 말하는 강한 놈은 보통 어느 정도냐?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랑 조금 다를 수도 있어서 물어보는 거다.”

“...그냥 정체나 말해주시죠.”

“정령이다. 정령. 냉기 정령.”

“!”

이한은 그 말에 반색했다.

겨울이 찾아오면 추운 기운이 강해짐에 따라 정령들이 눈을 타고 찾아온다더니.

정말로 냉기 계열 정령이 주변에 나타날 줄이야!

정령계에 이한이 찾아가면 정령들이 도망가서 무리였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정령이 직접 찾아오는 만큼 이한을 뒤늦게 발견한다 하더라도 도망치기 그리 쉽지 않을 터.

“냉기 정령이라면 역시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것 같은 그런 정령들이죠?”

“그렇지.”

“여러모로 참 유능한 녀석들이던데.”

“맞다.”

“혹시 이번 기회에 제가 계약할 수도 있겠습니까?”

“그건 무리지.”

“......”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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