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50화 (550/687)

550화

“교, 교수님.”

우레걸음 교수의 목소리를 들은 이한이 손짓했다.

교수는 고개를 돌려 제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더욱 깜짝 놀랐다.

“진짜 전쟁 났냐?!”

제자의 꼴이 마치 삼일 동안 전장에서 구른 것처럼 엉망이었던 것이다.

망토는 절반쯤 찢어지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얼굴은 진흙과 먼지투성이에 말라붙은 피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사이에 어쩌다 저렇게 격렬하게 싸운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한은 기침하며 말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뭐가 어쩔 수가 없었다는 거냐?”

“오염체들이 정령들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 잠깐, 잠깐.”

정령을 생각해주는 따뜻한 제자의 마음에 살짝 감동 받으려던 우레걸음 교수는 정신줄을 붙잡았다.

뭔가 이상한 점들이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오두막 안쪽에 있었을 텐데? 마법진들이 보호해주고 있었을 테고?”

“그랬었죠.”

요네르와 시아나 사제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한만큼 꼴이 엉망이진 않았지만 둘도 만만찮게 힘든 싸움이었는지 먼지투성이였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싸웠거든요.”

“...왜?”

“정령들을 보호하려구요.”

“그렇구나. ...왜???!”

우레걸음 교수는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마법진 안쪽에서 안전하게 있어도 되는 일을 굳이 정령들을 구하겠다고 이렇게 뛰쳐나오다니.

정령들한테 무슨 빚이라도 있는 것인가?

*         *         *

‘나는 아직 멀었다.’

다람쥐 정령이 애정을 표시하자 이한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까지 정령들이 이한을 싫어했던 건 노력이 부족해서였던 것이다.

노력만 있다면 정령들도 이한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정령들을 위험에 빠뜨려야했던 거다.’

생각해보니 기존의 정령들은 이한에게 호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위험한 상태라면?

그 상태에서 이한이 구해준다면?

“나한테 호감을 가질 수도 있는 거지.”

“이한... 내가 어지간하면 네가 하려는 걸 돕고 싶은데, 지금 네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요네르는 진심 어린 눈동자로 친구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한의 새로운 정령 계약 이론을 듣다 보니 매우 걱정이 되었다.

물론 정령들은 은혜에 민감한 존재였고, 구해줄 경우 호감을 살 수도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친구는 마치 억지로라도 정령을 위험에 빠뜨려 강제로 은혜를 베풀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에이. 괜찮을 거예요. 지금 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위기에 빠진 정령들을 도와주는 일이잖아요?”

시아나 사제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긴 한데...”

“그리고 워다나즈 님이 정령을 억지로 위험에 빠뜨릴 리가 없잖아요.”

앞에서 걸어가던 이한은 그 말에 멈칫했다.

요네르는 그걸 보자 더욱 걱정이 됐다.

“오염체다. 모두 조심해!”

이한은 전투 마법사로 혹독하게 훈련 받고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철저하게 움직였다.

친구들을 투명 마법의 영역 안에 넣은 다음 그것도 모자라서 <오고닌의 박무(薄霧)>, <펭에린의 냉기 원소 분신>까지 시전한 것이다.

넓은 영역에 환영 안개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 분신까지 움직이자 밖에서는 더더욱 초점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거기에 이어지는 강화 마법.

“워다나즈 님. 기민한 발걸음 주문은요?”

“그거 부작용 심해서 안 돼.”

“?”

시아나 사제는 ‘그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요?’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이한은 곧바로 쉬지 않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일어나라, 뼈로 이루어진 전사들이여!”

주머니에서 검은 뼛조각을 꺼내 던지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학생들이 있는 반대 쪽에서 스켈레톤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스켈레톤 전사들이 아닌 암흑 원소가 압축된 뼛조각의 영향을 받은 스켈레톤 전사들이었다.

오염체들은 자신과 비슷한 원소의 기운을 느꼈는지 민감하게 반응했다.

“준비 다 됐어. 공격해!”

아군 쪽은 각종 마법으로 보호가 완료됐고, 적의 뒤쪽에서 소환수까지 동원해서 시야를 끈 이상 이제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할 때였다.

이한과 친구들은 날 선 마법들을 퍼부으며 오염체들을 타격했다.

“몰아쳐라, 페르쿤트라의 벼락이여!”

번쩍이는 벼락이 오염체들을 타격했다.

원래라면 일격에 불타버렸을 하급 언데드였지만, 암흑 정령과 결합한 덕분에 어떻게든 버티는 놈들도 나타났다.

서로 몸을 붙여서 덩치를 키우고 장갑을 두텁게 만드는 놈, 땅을 파고 들어가서 공격을 피하는 놈, 암흑 원소를 안개처럼 뿜어내며 위력을 줄이려는 놈...

요네르는 친구의 마법 폭격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다가 기회를 잡자마자 지팡이를 휘둘렀다.

“깨져라, 증폭해라!”

요네르 같은 연금술사들은 미리 준비만 잘 해놓으면 주문으로 인한 마력 소모가 훨씬 적었다.

물약이 든 병이 빙글 돌며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깨지며 그 힘을 폭발시켰다.

화르르륵!

“불의 위력이 약해졌어요!”

“어쩔 수 없어!”

요네르와 시아나 사제는 발화 물약의 힘이 약해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절의 힘이 화염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불의 위력이 약해졌다고?”

“응?”

“타올라라!”

이한은 바로 가까운 오염체를 불로 지져버렸다.

갑자기 타오르는 화염에 직격당한 오염체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요네르는 이 계절에도 화력을 유지하는 친구를 보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다들 조금만 버티세요! 정령들이 빠져나가고 있어요!”

시아나 사제가 반색하며 외쳤다.

오염체들이 양쪽에 둘러싸여서 맞고 있는 동안 쫓기던 정령들이 숲속으로 빠져나갈 길을 찾은 것이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자 분노한 오염체들이 서로 합치고 몸을 부풀려서 발톱을 휘둘러댔지만 처음에 기습을 당한 게 치명적이었다.

뒤쪽의 마법사들은 안개 때문에 제대로 위치도 잡을 수 없었고, 앞쪽의 암흑 스켈레톤 전사들은 원소로 강화된 덕분에 끈덕지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빠져나가고 있다고?”

“네? 네.”

“......”

이한은 잠시 고민했다.

그걸 본 요네르는 설마 싶어서 친구를 불렀다.

“이한? 이한... 설마 아니지?”

“정령들을 도와줘야겠군!”

이한은 투명화 마법을 풀고 안개 속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정령들이 잘 빠져나가고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 ■■???

오염체들은 갑자기 마법사 한 명이 안개에서 튀어나오자 당연히 그쪽으로 반응했다.

쉭!

마치 채찍처럼, 오염체의 이마에서 길쭉한 가시가 솟구쳐 나오더니 이한을 노렸다.

정해진 육신이 없는 오염체의 이런 변칙적인 공격은 근접전에서 대응하기 힘든 강점이었다.

하지만 오염체에게는 불행히도, 이한은 흑마법 학파의 수석 학생이었다.

“암흑이여, 여기에 모여라!”

이한은 바로 암흑 원소 흡수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원래는 공기 중에 있는 암흑 원소를 지팡이 끝에 결집시키는 주문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암흑 원소에 대한 통제력 싸움에 가까웠다.

실로 무시무시한 완력이었다.

몸의 대부분이 암흑 원소로 이뤄진 오염체는 갑작스럽게 육신이 뜯겨져나가는 느낌에 허우적거렸다. 어지간해서는 느껴볼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었던 것이다. 이한은 기다리지 않고 다른 손으로 새벽별을 뽑아서 휘둘렀다.

이런 마력 구성체한테 새벽별 같은 아티팩트만큼 효과적인 무기도 드물었다.

촤아악!

암흑 원소를 흡수당해 비틀거리던 오염체가 그대로 쓰러졌다.

이한은 정령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모두 도망쳐라! 내가 막겠다!”

■!

■■■! ■■!

가지각색의 형태를 가진 정령들은 이한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더니 마법사를 발견하고 소리를 냈다.

‘통했다!’

이한은 정령들이 호의 넘치는 시선을 보내자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투명화 마법을 풀고 달려온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콰드드드드드득!

순간 암흑 스켈레톤 전사들이 옆으로 튕겨 날아가며 역소환됐다.

■■■■■...

“......”

다른 오염체들과는 차원이 다른 덩치를 가진 거대 오염체가 앞에서 나타났다.

이한은 오염체들을 쳐다보고 정령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도망쳐라! 내가 막겠다!”

“이한! 제발 그만하고 돌아오라고!”

*         *         *

“그래서?”

우레걸음 교수는 이한에게 연고를 던져주고서 물었다.

“어떻게 피한 거냐?”

“잡았는데요?”

“...정말로?”

“예.”

“어떻게??”

“그냥 계속 피하고 구르면서 쓰러질 때까지 마법 날렸는데...”

“......”

마법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식한 방법에 우레걸음 교수는 경악했다.

마법사가 몬스터 상대로 지구전을 펼치다니.

기본적으로 마법사의 마력과 몬스터의 생명력을 싸움 붙이면 후자가 무조건적으로 유리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지구전으로 가서 잡아버린 것이다.

어쩐지 이 주변이 전쟁이라도 난 것마냥 엉망이더니...

“수염에 맹세코 정령한테 잘보이겠다고 이런 짓을 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

“정령한테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닙니다. 교수님. 그냥 정령을 도와주고 싶어서...”

“퍽이나 그렇겠다!”

설득력 없는 거짓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제자를 보며 우레걸음 교수는 혀를 찼다.

물론 정령과 계약하기 위해 여러모로 공을 들이는 마법사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어느 누구도 지금 눈앞의 소년처럼 과격하고 격렬하게 구애하지는 않았다.

정령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목숨 걸고 저런 싸움을 보여주다니.

“윽. 감사합니다.”

대충 피를 닦아내고 상처에 연고를 바른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

“정령들이 아까 숲 안쪽으로 도망가던데, 부르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잠깐. 기다려라.”

우레걸음 교수는 제자를 붙잡았다.

“지금 오염체들이 나오는 거 보니까 에인로가드 부지 어딘가에서 난리가 난 게 분명하다. 한동안 숲 쪽에는 얼씬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알겠습니다. 정령들만 만나고 돌아오겠습니다.”

바실리스크와 다람쥐 정령이 이한의 양쪽 손목에 가지 말라는 듯이 매달렸다.

요네르와 시아나 사제도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이한. 지금 네 상태는 위험해. 아까 싸움을 봤을 때 체력도 마력도 소모됐을 거야.”

“마력은 소모 안 됐...”

“조용히 해. 하여간 체력은 소모됐을 거 아냐.”

요네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쌀쌀맞았다.

시아나 사제도 진지했다.

“솔직히 정령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 목숨 걸고 들어갈 이유가 있나요?”

“그런가... 잠깐. 시아나 사제는 지금 몇 명의 정령하고 계약했지?”

“세 명이요?”

이한은 정색하고 시아나 사제의 손을 밀어냈다.

평소 태도를 봤을 때 정령에 별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아, 아니.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애정이 중요한 거라구요. 워다나즈 님. 여기 정령들을 보세요.”

“......”

이한이 좀 누그러지자 요네르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이한. 잘 생각해봐. 정령들은 어차피 은혜를 잊지 않을 거야. 교수님이 오염체를 다 사냥하시고 가도 되잖아.”

“어?”

우레걸음 교수는 가만히 있다가 화살이 날아오자 당황했다.

아쉬운 놈이 오염체를 사냥해야지 왜?

“...그럴지도 모르겠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말리자 이한도 생각을 바꾸었다.

“오염체가 다 사라지면 들어가도 되니까. 정령들은 은혜를 잊지 않겠지.”

“어. 근데 정령들도 자기들 차원으로 돌아갈 텐데? 애초에 정식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는 일이잖느냐.”

우레걸음 교수는 별 생각 없이 지적했다가 요네르와 시아나 사제가 동시에 황급히 쳐다보자 아차 싶었다.

“교수님.”

“아, 아니. 오래 있을 수도 있지...”

“같이 가시죠.”

이한은 들어줄 때까지 물고 늘어질 각오로 눈빛을 불태우며 말했다.

“아니...! 내가 왜 그런 짓을...!”

“같이 가시죠.”

우레걸음 교수는 활활 타오르는 제자의 눈빛에 그대로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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