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화
‘헛소문 퍼뜨리는 놈들은 모두 다 징벌방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한은 분노해서 답변을 휘갈겼다.
-대체 어디서 그런 이상한 정보만을 주워듣는지 모르겠군. 저번에도 그랬지만 넌 정보 얻는 곳을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대체 어디서 그런 헛소문들만 주워오는...
‘성격이 더럽군.’
거울 너머의 상대는 빠르게 떠오르는 글자를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의 능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 약점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높게 평가해줬을 텐데.
‘하지만 쓸만하다는 건 확실하다. 아마 1학년들과 접촉하고 있나보군.’
교장의 창고를 심심찮게 터는 거친 학생들도 1학년들과의 접촉은 최대한 꺼리는 편이었다.
해골 교장한테 한 번 걸렸다가는 징벌방에서 제대로 썩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교장의 창고를 털다가 붙잡히는 것보다 1학년 접촉이 더 중죄로 취급받았으니, 별 이득도 안 되는 1학년들과의 접촉을 할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흰 호랑이 탑이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라면 그런 예외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감정적이고, 쓸데없이 참견하는 성격들이니.’
신입생 중에 아는 지인이나 가문의 친척이 있다면 충분히 도와주려고 나설 이들.
거울 너머의 상대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마법을 배우러 왔으면 자신의 마법에나 집중할 것이지 남의 마법에는 왜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저런 쓸데없는 행동이 이득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소문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1학년과 직접 접촉하는 사람이 진상 파악에는 유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알겠다. 참고하도록 하지.
-왜 자꾸 1학년한테 관심을 갖는 거냐?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 녀석은 여러 학파를 듣는 이상한 놈이다. 데려가서 작업을 따로 시키기에는 부적합해.
어지간해서는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좋은 명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한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조금 안 좋은 소문이 퍼지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아 이 후배는 일 시키기 별로 좋은 녀석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그렇지 않을 경우 2학년이 되는 순간 웬 선배들한테 끌려가서 추가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생각이 짧군.
-뭐라고?
알려준 대가로 하나 충고를 하지. 후배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다. 후배가 다른 일로 바쁘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지?
-...그냥 바쁜 거 아닌가?
그게 틀렸다는 거다. 그 후배는 다른 일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거지. 내 제안이 그 후배한테 가장 도움이 될 텐데.
‘확실하게 미친 사람이군.’
이한은 혹시 상대가 버두스 교수인가 싶어서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무슨 뜻이지? 당연히 내 마법이 가장 뛰어나니 가장 도움이 되겠지.
“......”
이한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미친 사람하고 논쟁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알겠다. 네 실력이 자신감만큼 대단하길 빌지. 하지만 그 후배는 네 생각에 동의 안 할 가능성이 높을 거다. 지금도 여러 학파를 듣고 있으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설득할 방법이 있다.
-물어봐도 되나?
정보를 알려줬으니 마저 말해주도록 하지. 일렌딜과 친할 정도로 괴짜고...
-친하지 않다니까?
그래. 일렌딜과 어울릴 정도로 괴짜고, 흑마법 학파 학생들과 친분이 깊은 거 보면 이 워다나즈 가문의 1학년은 교우 관계가 좁고 원만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말도 안 되는 폭언에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너무 지레짐작 아닌가?
아니.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니 거의 확실하다.
‘이 새끼가 진짜.’
이한은 상대가 선배인 것도 잊고 순간 얼굴 좀 보자고 쓸 뻔했다.
그러니 내 클럽에 초대해서 적절한 교우 관계를 제공하면 크게 만족할 거다.
‘클럽에 먼저 초대하는 사람 있으면 무조건 의심부터 해야겠군.’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답장했다.
-그래. 듣고 보니 또 그럴듯하군. 열심히 해봐라.
고맙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네 정보가 가장 정확하군. 히드라는 확인했나?
거울 너머의 상대는 이한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자 조금 더 평가를 높였다.
이 자는 감정적으로 고집을 세우기보다는 인정할 때는 인정할 줄도 알았다.
그건 꽤 높게 평가해줄 만한 자질이었다.
-그래.
정보에 대한 값으로 한 가지만 더 주도록 하지. 그 히드라는 수면이 잘 통하지 않을 거다. 교장이 보완을 해놨더군.
-와. 정말 고맙군.
그래. 수고하도록.
거울 너머의 상대는 만족스럽게 대화를 끝냈다.
이제까지 통신 아티팩트로 대화한 이들은 여럿 있었지만, 이 자와는 꽤 오래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성질이 난폭하고 급하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꽤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자 또한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매우 감사해하는 것 같았으니...
‘슬슬 그냥 차단할까?’
이한은 개쓸데없는 정보를 주는 상대를 욕했다.
* * *
“이한. 이한.”
개구멍을 기어서 비밀기지 안으로 들어온 가이난도가 이한을 부르자, 이한은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가이난도. 저녁까지 차려주고 왔잖아. 간식은 알아서 찾아. 저번에 준 과자는 벌써 다 먹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마법사 카드하자고? 어제 해줬잖아. 다섯 판 해서 다섯 판 다 졌으니까 오늘은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흑마법 과제는 스스로 해야지. 가이난도. 말했지만 뼈 원소 마법은 시약인 뼈의 상태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니까.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제대로 마법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봐.”
“아니 그게 아니라!!!”
구박 받던 가이난도는 폭발했다.
바닥에 드러눕더니 양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외쳤다.
“내일! 밖으로!! 나가야 하잖아!!! 애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아.”
이한은 그제야 이번 주말에 친구들과 같이 탈출을 시도하기로 약속했다는 걸 떠올렸다.
다음 주가 기말고사 직전인 만큼 이번 주에 나가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졌던 것이다.
“미안하다. 가이난도. 잊고 있었네.”
“그걸 어떻게 잊어? 난 이번 주 내내 잘 때마다 그 생각만 했는데.”
말하던 가이난도는 이한 앞에 쌓여 있는 책과 종이 뭉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잊을 수 있겠다.”
“아냐. 잊으면 안 되지. 와줘서 고맙다.”
“그럼 나 간식 좀 더 주면 안 돼?”
“그건 안 돼. 과제나 끝내.”
이한은 풀 죽은 가이난도를 데리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향했다.
본관 2층에 숨겨진 통로로 들어가면, 선배들의 선배들의 선배들부터 작업했던 차원 관문 아티팩트가 잠든 창고가 나왔다.
원래라면 마력 부족 때문에 절대 가동이 불가능했던 이 아티팩트는 이한이 발견한 덕분에 생명력을 되찾게 되었다.
학교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차원 관문!
...그 목적지가 하필이면 해골 교장의 별장이라는 게 매우 찜찜하긴 했지만, 밖에 나가고 싶은 욕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학생들에게 이건 별 문제도 아니었다.
“참가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오라고 했는데, 얼마나 더 모였지?”
“어. 그게.”
“?”
가이난도가 머뭇거리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거기서 아무도 더 안 모였나?”
“아니.”
“그럼 너무 많이 모였나?”
“그런 셈인데... 어...”
“얼마나 많이 모였는데?”
“전부?”
“......”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전부???”
“내가 알기로는 전부 다 모였다고 하던데...”
가이난도는 자기가 생각해도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우물쭈물했다.
괜히 나중에 틀리면 자기만 욕먹는 셈 아닌가.
“아니, 다른 탑이야 그렇다 쳐도 불사조 탑 사제들도?”
“이한 네가 나간다니까 같이 나가서 도와주고 싶으시다고 하던데...”
“......”
이한은 순간 자신이 선량한 불사조 탑 사제들을 물들인 건가 고민했다.
‘아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다른 학생들 잘못이다.’
살코나 모라디 같은 놈들 때문에 물든 것이지, 결코 이한의 탓이 아니었다.
이한은 그렇게 믿기로 마음먹었다.
끼이익-
창고 안으로 들어오자, 각 탑을 대표해서 몇몇 학생들만 와서 긴장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워다나즈?”
“정말 전원 다 나간다고?”
“일단 확인했을 때는 그랬다.”
시아나 사제와 티질링 사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나가신다고 했어요.”
“징벌방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만, 궁금하다고...”
“......”
이한은 아주 살짝 양심이 찔렸지만 고개를 살짝 흔들며 견뎌냈다.
“다 모이면 들킬 수도 있으니, 이렇게 모이기로 했다.”
“잘했다. 살코. 계획은...”
지젤이 들고 있던 두툼한 종이뭉치를 던졌다.
각 탑의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돌려보고 보완한 덕분에 너덜너덜 해져있었다.
-검은 거북이 탑은 미리 옷을 준비한다(나가자마자 갈아입기. 학생인 것을 절대 들키지 않도록 주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의 가문 저택으로 향해서 자금 확보(가능한 넉넉하게)
-흰 호랑이 탑 학생/불사조 탑 학생들은 기사들과 사제들에게 부탁해서 동행인 구하기(입 무거운 사람들로)
-각자 흩어져서 들키지 않게...
이한은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야기를 몇 번 했던 만큼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몇 가지 더 추가할 게 있다.”
“뭐지?”
“외출권도 쓸 거다.”
이만한 인원들이 전부 외출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갖고 들어오는 순간 의심을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한은 가능한 여럿을 내보내 시선을 교란시킬 생각이었다.
“워다나즈 네가 나가려고?”
“아니. 난 차원 관문도 열어야 하고, 내가 외출권을 쓰면 교장 선생님이 의심할 가능성이 높아. 안 그래도 요즘 의심을 많이 해서.”
몇 번 무단 외출을 한 탓에 해골 교장의 경계심은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외출권을 쓰는 순간 ‘이 자식이 또 새로운 탈출로를 찾는 거 아닌가’하고 미행이 붙을지도 몰랐다.
“사제들 중에 믿음직스러운 사람들한테 부탁하자. 가장 의심을 덜 받을 테니까.”
이한은 외출권들을 과감하게 사용해서 사제들을 내보낼 생각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의심을 덜 받고 나갔다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시아나 사제는 그 말에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
이한은 뭔 소린가 멈칫했다가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대답했다.
“앗. 시아나 사제. 시아나 사제는 차원 관문으로 나가줬으면 좋겠군. 아무래도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이쪽에도 필요해서. 절대 시아나 사제가 못 믿음직스럽다는 건 아니야. 알겠나?”
“아.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쉽군.’
티질링 사제가 이한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이한은 못 본 척 무시했다.
“외출권 받은 사제들은 밖에서 평범하게 물건을 사서 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차례대로 나갔다 오는 거다. 알겠지?”
“알겠어.”
학생들의 눈동자는 의욕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이번 해 동안 마법을 배운 건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가증스럽고 사악한 대마법사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
* * *
파직, 파지지지지지지직!!
저번보다 몇 배는 많은 양의 마력을 받은 차원 관문 아티팩트는 공간을 찢고 다시 한 번 통로를 개방했다.
자리에 있던 아덴아르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보다 몇 배는 강한 마력인데다가, 아티팩트의 내구도가 그리 견고해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덴아르트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정말 괜찮은...?”
“돌아올 때까지 유지시키려면 어쩔 수 없어. 계산해봤는데 괜찮을 거야.”
“그런가요. 후. 다행입니다.”
“...아마.”
“?!”
아덴아르트는 황급히 놀라서 이한을 다시 쳐다보았지만, 이미 학생들은 들어가기 시작한 뒤였다.
이한은 황녀의 추종자들에게 손짓했다.
추종자들에게 끌려가면서 황녀는 이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이한은 무시했다.
요즘 시선을 무시하는 재능이 는 기분이었다.
‘이론상 분명 왕복은 가능해.’
선배들이 아티팩트를 만들면서 실수하거나 잘못 끼워놓지만 않았다면 가능했다.
이한은 선배들을 믿었다.
미친 해골은 우리가 어디를 목표로 삼고 있는지 상상도 못할 거다. 하하. 완성만 된다면 도시의 당신 별장은 우리 것이 될 거다!
이한은 옆에 놓인 일지를 덮고 옆으로 치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