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58화 (558/687)

558화

“......”

호드롱은 묵묵히 얼굴에 묻은 커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상관의 얼굴에 먹던 커피를 뱉은 이운라데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됐다. 됐어.”

커피를 다 닦아낸 호드롱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고나달테스 공이 시킨 거냐?”

“...아닙니다!!”

졸지에 해골 교장에게 목이 졸릴 오해를 산 이운라데는 기겁하고 부정했다.

“그런 짓을 왜 하시겠습니까!?”

“이유야 많지. 커피를 뿌려서 혼란스럽게 만든 다음 내 가방을 훔치거나. 아니면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 습격을 하던가.”

호드롱은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호드롱 뿐만 아니라 제국의 관료들은 대부분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을 잘 믿지 않았다.

예전에도 에인로가드를 방문했다가 불행한 마법 사고에 휘말린 사람들이 몇몇 있었던 것이다.

고나달테스 공은 정말 우연이었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지만 관료들은 믿지 않았다.

“혹은 감정적인 보복이겠지.”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알겠다. 일단 믿어주도록 하지. 하지만 좀 떨어져라.”

호드롱은 부하를 노골적으로 의심하며 손짓했다. 이운라데는 온몸으로 억울함을 표하며 물러섰다.

“자. 그럼 가보자.”

“예? 어딜 말입니까?”

“방금 들었을 텐데? 에인로가드 학생이 현상수배범을 잡았다고 했잖아.”

“어.”

이운라데는 그제야 자신이 왜 커피를 뿜었는지 떠올렸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큰일났군!’

도시의 사람들이 ‘에인로가드 학생이 현상수배범을 잡았어!’라고 외쳤지만 이운라데는 속지 않았다.

애초에 이운라데도 에인로가드 출신이지 않은가.

아마 사람들이 착각했을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에인로가드 학생이 현상수배범이야!’란 외침이었는데, 그게 옆에서 옆으로 퍼지다 보니 ‘뭐? 에인로가드 학생이 현상수배범을 잡았다고?’로 바뀐 것이다.

“호, 호드롱 님. 아마 헛소문 아닐까요? 도시는 원래 헛소문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실 것까지는 없으세요!”

이운라데는 상관을 말리면서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속으로 한탄했다.

사실 후배들이 알아서 잘 하면 문제가 없는 일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지금? 따라와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봐야겠다.”

“아, 아니... 사람도 많고 소매치기도 있을지도...”

호드롱은 이운라데의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고 더욱 확신을 얻은 것 같았다.

에인로가드 학생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말리라!

*         *         *

“이 살가죽을 벗겨버리고 소금을 칠, 산봉우리 장대에 매달아서 까마귀한테 살점이 뜯길, 부러지고 녹슨 검 토막보다 못한 개자식아!”

“이 징벌방에서도 가장 깊숙한 지하에 갇혀서 영원히 썩을, 돌로 변해서 눈도 깜박이지 못할, 앞 감방에는 버두스 교수가 들어갈 개자식아!”

붙잡힌 가르담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을 허우적댔다. 어떻게 바닥을 기어서라도 도망치려는 발버둥이었다.

산전수전을 겪고, 그 치열했던 인카탄 반란에서도 살아나왔지만, 그 모든 경험들은 진짜 마법사라는 공포의 존재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두 마법사는 쓰러진 가르담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끌어당겼다.

“한 번만 더 벗어나려고 하면 바람구멍을 몇 개 더 뚫어주지.”

“항복하면 됐을 일을 이렇게 키우다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지 아냔 말이다!”

‘모른다, 개새끼들아!’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는 마법사들에게 가르담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정문을 돌파하고 마법 아이템을 전부 소모해서 길을 막았을 때만 해도 탈출에 성공한 줄 알았다.

-비켜라! 비켜!

대로를 채운 시민들을 밀치고 걷어차며 가르담은 내달렸다.

이 사람들의 벽이 쫓아오는 마법사들이 함부로 마법을 갈기지 못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바실리스크가 나타났습니다 그랑덴 시민 여러분! 포박해서 밖으로 이동해야 하니 비켜주십시오!

그러나 마법사들은 가르담 못지않게 사람들을 옆으로 쫙쫙 치워가며 쫓아왔다.

게다가 마법을 쓰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살벌하게 마법이 날아왔다.

-워다나즈, 빗나가면, 어쩌려고?

-안, 빗나간다! 모라디. 강화 마법, 걸어줄 테니, 준비해라!

-알겠, 잠깐, 부작용...

끈기라면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두 마법사들은 집요하게 가르담을 쫓아오고 쫓아오고 또 쫓아왔다.

쌓인 과일 상자를 넘어뜨려서 길을 막으면 상자를 부수고, 골목길로 빠지면 소환수를 불러내서 쫓고, 운하로 뛰어들면 얼어죽을 때까지 냉기 마법을 날리고...

가르담 본인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도망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포의 힘이었다.

그러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

힘이 빠지고 마력이 흩어지자 근육에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으직!

옆에서 뛰쳐나온 표범 소환수에게 가르담은 그대로 발목을 물렸다.

동시에 지젤은 가르담의 양쪽 팔을 베어버렸다. 들고 있던 무기가 날아갔다.

뒤에 있던 이한은 수옥탄을 날려 가르담의 양쪽 다리를 정확히 골절시켰다.

“항, 항ㅂ...”

“이 살가죽을 벗겨버리고 소금을 칠, 산봉우리 장대에 매달아서 까마귀한테 살점이 뜯길, 부러지고 녹슨 검 토막보다 못한 개자식아!”

“이 징벌방에서도 가장 깊숙한 지하에 갇혀서 영원히 썩을, 돌로 변해서 눈도 깜박이지 못할, 앞 감방에는 버두스 교수가 들어갈 개자식아!”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항복을 선언하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달려 온 마법사들은 보통 분노한 게 아니었다.

가르담은 시민들에게 외쳤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마법사들이 날...”

퍽!

이한은 가르담의 명치에 침묵 마법을 날리고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재빨리 설명했다.

“아닙니다. 시민 여러분! 이 자는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입니다!”

“앗, 저 놈!! ‘피 흘리는 손’ 가르담이잖아!?”

“맞네, 맞아!”

‘휴.’

이한과 지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면 도시 경비대한테 체포되어서 불편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었는데, 가르담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잘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입니까?”

“어... 우린 그랑덴 시 모험가 길드 소속 모험가입니다. 그렇지? 구본?”

“...그, 그렇지.”

‘구본이 누구야?’

지젤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맞춰줬다.

여기서 학생인 걸 들켜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어? 에인로가드의 마법사 님 아니십니까?”

“맞네, 맞아! 저 허름하고 볼품없는 검소한 복장. 거기에 지팡이까지! 에인로가드의 마법사 님들이시네!”

“떠돌이 마법사가 어떻게 저런 마법을 쓰겠어?”

“......”

“......”

이한과 지젤은 경악해서 시선을 교환했다.

나름 외투로 에인로가드의 문양을 전부 가렸는데도 허름하고 볼품없다는 특징만으로 의심을 받다니.

‘어떡하지?’

‘뒤집어. 워다나즈. 뒤집으라고!’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에인로가드 마법사라니! 아닙니다!”

이한은 크게 외쳤다.

“우리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흙바닥을 자리 삼고 하늘을 이불 삼는 모험가인데...”

“어, 귀족 같으신데?”

“귀족 아니십니까?”

이한의 얼굴을 본 도시 사람들은 매우 의혹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이한은 벌컥 화를 냈다.

“아니라니까! 큰일날 소리를!”

“하, 하지만 얼굴이...”

“다들 얼굴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여기 모... 구본도 겉으로 보기에는 예쁘장하지만, 속은 음흉하고 사악해서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단칼에 베어버리는 검객이란 말입니다!”

‘이 새끼가...’

지젤은 울컥했지만 분위기를 망가뜨릴 순 없었다. 묵묵히 입을 다물고 사람들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앗. 마법사 님!”

모험가, 구본은 동료들과 지나가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자 반갑게 인사했다.

“뭐하고 계십니까? 반갑습니다!”

“아는 사이인가?”

“예. 저 분은 에인로가드의 마법사이신 워다나즈 님이십니다.”

“......”

“......”

지젤은 이한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         *         *

“...어쨌든 아닙니다.”

“예... 뭐.”

“알겠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에인로가드에서 나온 마법사들인데, 괜히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 존중해주자’의 표정이었다.

이한과 지젤은 시무룩해졌다.

‘망했군.’

‘망했다.’

징벌방까지 남은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한은 쓰러진 가르담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가르담은 기겁해서 고개를 땅에 박았다.

“이 자를 도시 경비대한테 넘겨주시겠습니까?”

“마법사 님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해드려야죠.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법사 님께서 하신 일인데...”

“...됐습니다.”

이한은 손을 흔들며 쓸쓸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세상의 명성이나 재물은 마법사의 길에 있어서 하찮기 그지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일처럼 진한 감동을 느꼈다.

“모라디. 물건이나 사러 가자.”

“...그러자. 어쩔 수 없지.”

지젤은 옅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나서 현실을 받아들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워다나즈한테 욕을 한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잡히는 걸 각오하고 최대한 빨리 물건을 사서 돌아갈 수밖에.

“잠깐. 워다나즈. 저택에 안 들렸는데 돈은?”

“저번에 맡긴 은화를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이한은 저번에 구본에게 맡겨놨던 은화를 돌려받았다.

“다음 은화는 지팡이 제작 가게에 맡겨놨으니까 그쪽으로 가면서 쓰자고.”

“미친놈이야?”

“왜 욕을 하지?”

*         *         *

뒤늦게 도착한 호드롱은 이운라데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한 다음 상황을 파악했다.

품격 있는 그랑덴의 시민들은 제국을 위해 일하는 호드롱에게 신뢰도 높은 증언을 제공했다.

“그러니까 용병 놈이 바실리스크를 풀겠다고 협박을 하니까, 마법사가 물려가면서 자기 손에 꽉 붙잡지 뭡니까?”

“허!”

“어찌나 끈질기게 쫓던지, 가문의 원수도 저렇게 쫓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 그렇게 쫓았다고 생각합니까?”

“그야 하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 악덕으로 가득 찬 용병 놈이 시민의 물건을 박살내고 넘어뜨린 걸 보시고 분노한 거죠!”

“허!”

호드롱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으며 몇 번이고 증언을 확인했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1학년 학생이다?”

“그렇습니다.”

구본은 신실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품격 있는 그랑덴의 시민들이 구본을 못미덥게 쳐다보았다.

“착각한 거 아닌가?”

“모험가 놈들 허풍은 알아주잖나.”

“내가 보기에 1학년 같지 않더군. 내가 마법에 대해 좀 아는데 3학년 같아.”

“아, 아니... 1학년이 맞다! 같이 일도 했단 말이다!”

구본은 발끈해서 외쳤지만 그랑덴 시민들에게는 역효과였다.

“하!”

“그러시겠지.”

“내가 사실 젊었을 적에 황제 폐하를 알현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 한 적 있나? 그 커다랗고 아름다운...”

“그래, 그래. 나는 사실 백작 가문의 서자라네.”

“......”

구본은 치욕에 부들부들 떨었다.

더 억울한 건 본인도 다른 모험가가 저런 소리를 했으면 ‘뭔 미친 개소리를 하는 거냐’ 취급을 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호드롱은 증언을 전부 기록한 뒤 감탄하며 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에인로가드에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죄,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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