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화
앙라고는 친구들이 자신을 욕하자 발끈했다.
“그 때 그 염소는 너무 불쌍해보였다고! 거꾸로 매달려 있었는데!”
“그래서 대신 잡혔냐?”
“에인로가드에서는 동물도 믿으면 안 된다니까.”
떠들던 학생들은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 헛소문일 게 분명하다고!
워다나즈든 모라디든 오늘 같은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친구들은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 * *
“...!!!”
이한과 지젤은 경악의 눈으로 길 아래에서 별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도시에는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길가의 마력등이 빛을 발하고, 그 많던 사람들도 점점 숫자가 줄어드는 게 보였다.
그리고 저녁과 함께 데스 나이트들이 찾아와 있었다.
별장 정문 앞에.
‘늦었다...!’
이한은 지젤을 쳐다보았다. 지젤은 이미 각오를 마쳤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워다나즈. 부탁할 게 있어.”
“말해봐라.”
“넌 교장 선생님하고 친하니까 징벌방 좀 따로 배정해달라고 해. 네 면상 보면서 갇혀 있으면 두 배로 열 받을 거 같아서.”
“안 친하거든?”
데스 나이트들은 나름 제국 시민처럼 보이려고 호화롭고 알록달록한 외투를 걸쳤지만 별로 효과적이진 않았다.
숨만 쉬어도 음(陰)의 에너지가 퍼져나가는데 안 들킬 수가 있겠는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죄수들이 탈주했다!!
-아니 주인님께서는 대체 뭐하시는 거야? 자기 마법만 믿으라고 하셔놓고! 죄수들이 도망갔잖나! 그냥 감시를 섰으면 됐는데!
-자네가 참게. 주인님께서는 주인님만의 미학을 추구하시거든.
-그게 대체 뭡니까?
-원래 죄인들은 무기력하게 있으면 안 되네. 그 무슨 시시한 일인가? 죄인들은 계속 헛되이 몸부림치고 발악을 해야지. 그러려면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을 줘야 한다네.
-허... 알 것도 같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화가 풀리는군요. 주인님께서는 실로 생각이 깊으십니다.
‘알긴 뭘 알아.’
‘풀리긴 뭘 풀려.’
투명화 마법 걸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이한과 지젤은 데스 나이트들의 대화를 듣고 속으로 욕했다.
저게 지금 무슨 미친 대화란 말인가!
죄수들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데스 나이트들을 감시로 세우지 않았다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골 교장의 이러한 악취미가 학생들에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만약 데스 나이트들이 감시를 서고 있었다면 탈출은 몇 배로 어려워졌을 테니.
아예 탈출도 하지 못하고 별장에서 잡혔을 수도 있었다.
“모라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한은 눈빛을 의지로 불태웠다.
지금 정문에 모인 데스 나이트들을 보니, 아직 이들은 상황 파악이 덜 된 게 분명했다.
죄수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할 테니 그들의 추적을 우선시하리라.
그러면 충분히 그들을 뚫고 별장 상층의 관문에 도착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죄수 놈들이 어떻게 탈출한 거지? 놈들이 가진 마법 아이템으로는 정문을 못 열 텐데. 혹시 마법 재능이 있는 놈이 있었나?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정문을 열지는 못했을 텐데...
-주인님 후계자라도 왔다 간 거 아닌가?
“교장 선생님 후계자가 누구야?”
지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한은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워다나즈 소년은 이런 난폭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닐세. 그런 선량한 소년이 죄수들을 왜 풀어주겠나?
-하긴 그렇습니다.
“......”
지젤은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눈빛으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이한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저건 저 데스 나이트가 이상한 놈이라 그래...”
“저리 꺼져, 후계자.”
-수색해라.
데스 나이트 중 한 명이 건틀렛에 감싸인 주먹을 쥐었다 펴자, 주변에 푸른 기운이 퍼져나갔다.
별장 저택 정문 근처에 남겨진 흔적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많은 발자국들과 마법의 흔적들.
-???
-?????
데스 나이트들은 혼란에 빠졌다.
-뭔...?
-용병들이 습격을 당했나?
-용병들 중에 마법사가 있었나?
-무슨 괴상망측한 마도서라도 갖고 있었던 거 아닐까요? 자기 몸에 악마라도 강림시킨 게 아닌지...
-그랬으면 그랑덴 시에서 벌써 연락이 왔을 것 같군. 하여간 도시 경비대에 연락하게. 죄수들이 도망쳤으니 연락은 해둬야지.
-예.
-정문 밖으로 도망친 놈들이 있는 것 같으니 쫓게. 발자국이 아직 남아 있어.
‘살았다!’
이한은 데스 나이트들이 절반 이상 저택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용병들 중 가장 민폐를 끼친 놈의 흔적이 데스 나이트들을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고맙진 않다!’
둘은 필사의 각오로 별장의 정문을 향했다.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차원 관문을 뚫을 생각이었다.
* * *
“워다나즈!!”
“모라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한과 지젤이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차원 관문을 통과한 이한은 바로 아티팩트부터 껐다. 과열된 아티팩트가 기괴한 소리를 냈다.
“헉... 헉.”
“허억... 헉.”
둘은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창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
“왜 그래? 어, 짐은?”
둘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손짓했다.
앙라고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모라디. 뭔 소린지 모르겠어.”
“■...”
“뭐?”
앙라고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지젤은 거칠게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물 갖고 오라고...”
“내 것도 한 잔만...”
“......”
앙라고가 천천히 일어나자 친구들은 궁금해했다.
“뭐래?”
“무슨 저주 맞은 거야? 왜 늦은 건데? 짐은?”
“...물 갖고 오래.”
잠시 후.
이한과 지젤은 찬물을 한 잔 들이키고 정신을 차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종이 새를 소환해서 시선을 돌리고, 뼈다귀 손으로 소리를 내고, 샤르칸을 불러내서 별장의 나뭇가지를 꺾고, 고나달테스의 끓어오르는 힘 마법을 사용해서 벽장을 옮기고, 분신을 보내 데스 나이트들을 마지막으로 밖에 보내고...
문을 자르고, 2층 테라스로 나가서 워다나즈를 업은 채 위로 뛰고, 시선을 피하기 위해 천장의 샹들리에에 매달리고, 한 층 착각한 워다나즈한테 욕하고...
“...진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설명을 들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택에서 저런 장대한 모험을 겪었단 말인가!?
“이야기하자면 길어. 일단 각자 기숙사로 돌아간다. 여기서 잡히는 것만은 피해야 해. 참. 애들아.”
이한의 말에 친구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내가 징벌방에 가면 사식 좀 갖다 줄 수 있나?”
“......”
진심으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 * *
“그러니까 용병들을 잡느라 들키신 거군요.”
“그래.”
“어쩔 수 없죠. 운이 나빴어요. 또, 워다나즈 님이 밖에서 명성을 쌓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불사조 탑 휴게실.
사제들은 이한의 말을 듣고 애써 위로했다.
다른 학생들은 가게를 거덜 낼 기세로 물건을 들여왔는데 정작 가장 노력한 이한은 잡힐 위기에 처하다니.
시아나 사제는 마음이 아파서 훌쩍였다.
“그래도 그거 하나면 증언이 부정확해서 괜찮을지도 몰라요. 다른 건 안 걸리셨죠?”
* * *
“...강도를 잡았지.”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앙라고였다면 ‘뭐하냐’ 소리가 바로 나왔을 테지만 상대는 지젤 아닌가.
‘뭐하냐’ 소리를 했다가는 바로 ‘뭐하는지 알려주지 검 들고 따라나와’란 대답이 나올 수 있었다.
가장 용기 있는 학생, 더르규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널 존경한다. 모라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명예란, 설령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나서서 정의를 실천하는 거다.”
“맞, 맞아. 모라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암! 그게 진짜 명예지!”
더르규가 입을 열자 다른 친구들도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한 마디씩 얹었다.
지젤은 친구들의 응원에 정말 기뻐했다.
“다들 닥쳐.”
“......”
“......”
‘내가 그러니까 가만히 있자고 했잖아...’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더르규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도 네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컸을 거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그 지팡이 장인의 가게는 방어가 보통이 아니던데. 과연 그랬을지 모르겠네.”
“...그, 그래도 그건 용병처럼 본 사람이 많지 않았을 거다. 아직 희망이 있다!”
“맞아! 증언이 적고 부정확하면 교장 선생님도 그걸로 징벌방에 넣지 못할 거야. 우리가 입을 모아서 허점을 지적하자고!”
“다른 건 없지?”
“뭔 재수 없는 질문이야. 다른 게 뭐가 있다고? 있을 리가 없잖아?”
* * *
“...사고가 나서 다친 사람을 구했는데.”
“......”
“시아나 사제? 왜 내 시선을 피하지?”
“그, 그게...”
시아나 사제는 이한을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쯤 했으면 그냥 징벌방에 갈 것 같았던 것이다.
증인을 모으면 한 백 명은 나올 것 같은데...
“징벌방 가시면 제가 매일매일 면회 갈게요.”
“고맙다... 그런데 징벌방 길이 복잡하고 매일 바뀌는 건 알지?”
“...3, 3일에 한 번은 꼭 갈게요.”
사제들은 이한이 징벌방에 갈 것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슬퍼했다.
“제가 교장 선생님에게 따져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했는데 징벌방에 가야 한다니요!”
“맞아! 이건 뭔가 이상하죠!”
이한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통할 리 없는 외침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십니까?
“!!!”
데스 나이트가 휴게실의 문을 두드리자, 사제들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섰다.
“없어요!”
-워다나즈 님. 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없다니까!”
“들어오기만 해봐라! 네놈의 낯짝에 아프하 님의 불을 질러주마!”
데스 나이트는 사제들의 반응에 상처받았다.
원래 다른 탑과 달리 불사조 탑은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한 사제들만 들어왔는데, 이번 해의 사제들은 너무 말이 심하지 않은가.
“됐다. 다들 고마워. 갔다오마.”
이한은 친구들을 말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이미 각오한 일이었던 것이다.
* * *
너희 둘이 정말 자랑스럽다!
“??”
“????”
해골 교장이 밝은 목소리로 둘에게 외치자 둘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몸을 움츠렸다.
욕을 하는 해골 교장보다 더 무서운 건 칭찬을 하는 해골 교장이었다.
대체 왜?
역시 탑의 명예를 드높이는 건 탑의 수석들이지! 혹시 먹고 싶은 거라도 있느냐?
“징벌방에 사식으로 넣어주시려고요?”
이한의 질문에 해골 교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해골 교장이(지젤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한과 지젤의 어깨를 아주 강하게 두드렸다.
하하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느냐? 농담도 참.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하겠구나!
“...?”
“...??”
이한과 지젤은 더더욱 몸을 움츠러뜨렸다.
대체?
물론 너희들이 기말고사로 준비한 교재를 망치고, 내 별장을 부수고, 무단으로 외출해서 도시를 누비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놈들도 단체로 내보내서 돌아다니고, 대체 공간 마법 좌표를 어떻게 찍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데스 나이트들이 너희 둘을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내가 너희들을 징벌방에 넣을 리가 없지 않느냐? 오해하지 말려무나!
“...그냥 징벌방에 들어갔다 올까요?”
이한은 해골 교장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독기에 손을 들고 자청했다.
보아하니 그냥 들어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