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이한의 말에 알펜 교수는 무언가 놓친 게 있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
확실히 버두스 교수가 잘 가르쳤다는 게 느껴질 만큼 뛰어난 구성이었다.
별도의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깔끔하게 아티팩트를 배치한 이 구성은 설령 이한의 선배라 하더라도 더 낫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한이 결론을 낸 것만큼 마력 소모를 줄이지는 못했다.
“어떻게?”
“예?”
“그러니까... 보게. 워다나즈 군. 여기 남쪽 성문에 위치한 아티팩트들만 봐도, <경도 강화>에 <부식 방지>에 <적의 감지> 마법들이 걸려 있지 않나. 그러면 적어도 하루에 중급 품질 이상의 마석들이 세 궤짝은 소모되지 않겠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적어놓는 걸 잊었습니다.”
이한은 사과하며 덧붙였다.
“아티팩트를 제작할 때 마력을 과충전시킨다는 가정 하에 계산한 결과입니다. 요새에 배치되는 아티팩트들 중 단순한 아티팩트들은 제작 시 마력을 과충전하면 별도의 마력 공급 없이도 십 년 이상 유지가 되니 말입니다.”
“?”
“??”
알펜 교수도 길드원들도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눈앞의 1학년 학생이 하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런 게 있습니까? 교수님. 저희가 마법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저런 아티팩트들도 있는 겁니까? 처음 들어보는데요.”
“흐음. 내가 알기로는... 이론상 그런 효과가 있긴 하네.”
알펜 교수는 당황스러워하는 길드원들에게 설명해줬다.
아티팩트의 구조를 크게 나눈다면 마법을 구성하는 핵과 그 핵에 마력을 공급하는 동력부로 나눌 수 있었다.
이 때 부여 마법사들은 이 동력부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 마법진을 깎고 가다듬으며 심혈을 기울이곤 했다.
이 부분의 완성도에 따라 아티팩트가 잡아먹는 마력의 양이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이론상, 이런 심혈을 기울이는 대신 핵에 마력을 한계까지 강하게 부여한 다음 밀폐시켜버린다면?
밖에서 별다른 수고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마력 수급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만드는 마법사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
알펜 교수나 길드원들이 당황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아티팩트를 만드는 마법사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과부여된 마력을 견딜 수 있게 구조를 짜거나 강도를 올리는 건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고,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까지 마력을 부여할 마법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정기적으로 마력을 공급하면 훨씬 안정적인데 무엇하러 마법사가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양의 마력을 불어넣어야 한단 말인가?
무슨 한 번 만들면 다시는 마력을 공급하지 못하는 아티팩트도 아니고...
“어? 없습니까?”
“내가 알기론 없네만.”
“......”
이한은 당혹스러워했다.
이건 버두스 교수 밑에서 배우거나 일을 도울 때 너무나도 일반적으로 썼던 방식이었다.
-교수님.
-......
-교수님.
-......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으악! 왜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 왜 이러는데?
-죄송합니다. 안 들으셔서요.
-무슨 소리야? 안 불렀잖아.
-...하여간 교수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가 본 부여 마법 마도서들은 아티팩트에 이렇게 마력을 부여하지 않던데, 너무 많이 부여하는 거 아닙니까?
-괜찮아. 괜찮아. 봐. 많이 부여하니까 더 효율적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왜 마도서에서는?
-옛날에 찍은 마도서라서 그래.
-작년에 나온 책인데요?
-옛날이네 뭐. 그리고 그거 마도서 쓴 놈이 멍청해서 그래.
-아니... 나름 경력 있으시고 논문도 여럿 내신 마법사인데...?
-그래도 멍청할 수 있어. 자. 괜찮잖아. 문제없지? 효율적이지?
-안전성은 괜찮은 겁니까?
-그러니까 안 터지게 잘 해야지. 이제까지 안 터진 거 보니까 잘 하고 있는 거야.
-교수님 지금 귀찮아서 대충 말하시는 거 아니죠?
-왜 날 못 믿어? 날 믿어.
‘젠장. 믿었는데.’
이한은 버두스 교수를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또 당하다니!
역시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밖에서는 이렇게 잘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런 식으로 할 리가 없지.’
새삼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이한은 왜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나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에인로가드에 들어오면 지능이 내려가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만들면 마법사의 마력이 너무 지나치게 소모되고, 제작 도중 실수라도 한 번 할 경우 사고의 위험성도 크게 올라갈 텐데...
“죄송합니다. 버두스 교수님과 같이 작업하던 습관 때문에 무심코 이렇게 계산해버렸군요.”
“버두스 교수 말인가? 버두스 교수한테 이렇게 배운 건가?”
“예.”
이한은 노교수가 상당히 크게 반응하자 살짝 기대했다.
‘혹시 버두스 교수님을 두들겨 패러 가시나?’
만약 그렇다면 조금 보고 싶을 것 같았다.
“실로 대단하군. 버두스 교수! 천재는 괜히 천재가 아니군그래.”
“...???”
이한이 경악해하는 것도 모르고 알펜 교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사실 버두스 교수의 천재성이 지나칠 만큼 뛰어난 탓에 제자를 가르치는 데에 곤욕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걸 보니 그 말은 좀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 같군. 이렇게 자신의 비전을 훌륭하게 제자한테 계승시키다니.”
“아니... 어... 비전입니까 이게?”
이한은 당황했다.
물론 비밀스럽게 내려오는 방법이라면 다 비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가이난도의 <강의 시간 도중 몰래 간식 먹기>도 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그런 걸 비전이라고 하고 다니면 미친 사람 취급 받지 않나?
“충분히 비전이라고 할 수 있지. 워다나즈 군. 이렇게 아티팩트의 효율을 올렸지 않나? 군은 아직 경험이 적어서 잘 모를 수 있지만, 이건 정말 대단한 결과물일세.”
“그... 마력 소모도 위험하고... 사고도 위험하고...”
“버두스 교수와 계속 같이 작업하면서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죠...”
알펜 교수는 억센 손으로 이한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워다나즈 군. 나는 보통 학생들에게 겸손하라고 조언하네. 하지만 군에게는 조금 다른 조언을 해줘야겠군. 적당히 겸손하게나! 이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일이야. 자네도, 그리고 자네를 가르친 버두스 교수도 말일세.”
매우 억울해진 이한은 최후의 수법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교수님. 버두스 교수님이 좀 평소에 괴짜처럼 행동하진 않으십니까?”
버두스 교수의 평판을 꺼내서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알펜 교수가 아무리 에인로가드에 적게 있었다 하더라도, 가끔 버두스 교수에게 당한 일들을 떠올린다면 지금 이 결과물이 ‘천재 스승과 천재 제자의 아름다운 계승’보다는 ‘미친 스승이 안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제자를 혹사’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
“그렇죠?”
“그런데 그건 에인로가드 교수들이 다 그렇지 않나?”
“......”
이한은 오랜만에 말문이 턱 막혔다.
* * *
마저 설명을 듣고 이해한 길드원들은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에인로가드의 천재 교수한테 직접 사사받은 제자가 비전을 동원해서 요새의 아티팩트들 배치를 구성해주겠다니.
“이거... 우리는 지금 혹시 역사적인 자리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맞, 맞아.”
여러 길드에서 나온 길드원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똑같은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세 마법사의 기적> 같군 그래.”
길드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동시에 중얼거렸다.
세 마법사의 기적.
그 당시 가니스탈라스 성주의 금고는 반란과 습격에 완전히 비어 있었다.
성의 세 마법사가 쓸 수 있었던 예산은 평소와 비교해서 채 1/10도 안 되는 금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마법사들은 가니스탈라스의 건축 길드들과 손을 잡고 기적을 이뤄냈다.
이 기적은 단순히 마법사만의 기적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을 도와 성문을 완성시킨 길드원들의 기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법사들은 저 일화에서 마법의 대단함에 전율했지만, 망치와 끌을 쥔 길드원들은 저 일화에서 기술의 아름다움에 전율했다.
‘아니 왜 그딴 일화를?’
이한은 상대방이 대화하는 걸 듣고 기겁했다.
사악한 성주가 1/10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마법사들과 길드원들을 부려먹은 지독한 일화를 왜 굳이 갖고 와서 감동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영혼을 담은 건물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법이지. 그래. 어쩌면 이 <주머니칼 요새>가 우리에게 있어서 <세 마법사의 기적>이 될지도 모르겠네.”
“길드의 이름을 제국에 알리자!”
“그래, 길드의 이름을 제국에 알리자!!”
방금까지 서로 서먹한 감이 있었던 석공 길드와 목공 길드의 사람들이 악수를 하며 굳게 다짐했다.
그 모습에 알펜 교수는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교수도 저들의 서먹한 사이를 알고 있었다.
여러 길드가 힘을 합쳐서 수주를 받은 만큼 서로 이득이나 손해를 계산적으로 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국에 이름을 날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영광이 눈앞에 찾아오자, 이들은 장인답게 똘똘 뭉쳤다.
“워다나즈 군. 보고 있는가? 자네의 마법이 저들을 뭉치게 한 걸세.”
“아니... 아무리 양보해도 그건 아니죠...”
“허허. 적당히 겸손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의뢰 괜히 받았나?’
이한은 이제까지 돈이 나오는 의뢰를 받으면서 후회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후회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게 버두스 교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 일이 끝나면 버두스 교수한테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다고, 이한은 그렇게 다짐했다.
* * *
알펜 교수의 방에서 나온 이한은 아까보다 몇 배는 피곤해진 기분이 들었다.
-반드시 마법사 님의 명성을 제국 전역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근데 그냥 보수나 잘 주시면 저는 충분한...
-아닙니다! 기다리고 계십시오!
‘으음. 설마 보수가 늦어지진 않겠지.’
길드원들이 신나서 ‘제국 전역에 알릴 건축물을 만들겠다’라고 떠들어봤자 이한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그보다는 상대방이 너무 신날까봐 걱정이 됐다.
상대방이 신나하는 걸 걱정하는 게 얼핏 보면 이상했지만, 걱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제국에게서 받은 예산으로 건축물을 만든다->신이 나서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한다->처음에 계산한 견적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든다->마법사님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기껏 비용 절감해줬는데 다른 부분에서 퀄리티를 올리려고 할까봐 이한은 걱정이 됐다.
‘혹시 모르니 교수님한테 나중에 다시 한 번 말씀드려야겠군.’
직설적으로 말하면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 ‘길드원들이 걱정되니까 적당히 만들죠?’라고 보내볼 생각이었다.
“이한 학생. 이한 학생.”
“앗. 교수님.”
가르시아 교수가 부르자 이한은 반가워하며 고개를 들었다.
에인로가드에서 교수가 불렀을 때 반가운 감정이 드는 경우가 매우 적었는데, 그 매우 적은 경우 중 하나가 이 가르시아 교수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잠깐 들어와 볼래요?”
이한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가르시아 교수의 뒤를 따라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강의실 가운데에는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캄캄한 구덩이가 나있었다.
“...교수님을 믿었는데!!”
이한은 바로 지팡이를 뽑고 옆으로 굴렀다.
가르시아 교수는 그 모습에 당황했다.
“왜, 왜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구덩이로 밀어 넣으시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한 학생. 혹시 배그렉 교수님이 이한 학생을 이런 구덩이에 밀어 넣은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