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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66화 (566/687)

566화

잠시 후.

이한은 심각한 얼굴로 <아흐락의 붉은 독>을 마셨다.

“그런데 선배님. 이거 무슨 독입니까?”

마실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마시고 나니 갑자기 이게 무슨 독인지 궁금해졌다.

독 안의 마력 흐름이 난폭하고 복잡한 게 보통 독은 아닌 것 같았다.

디레트는 검지손가락을 뻗으며 경고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독에 집중해. 반응이 느껴지면 바로 말하고.”

아무리 독을 다루는 흑마법사라 하더라도 중독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독을 다루기에 더 심하게 중독될 수 있었다.

스스로의 내성을 키우고 면역을 만들어도 새로운 독을 만들다보면 조금의 실수가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아흐락의 최후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때? 반응이 느껴져?”

“음... 아니요. 별 효과 없습니다.”

이한은 독에 집중해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마시고나서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독 기운이 전혀 돌지 않았다.

독이 이한의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그라진 탓이었다.

“이것도? 으음...”

디레트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흐락의 붉은 독>이라면 혹시나 이 후배의 독 저항력을 뚫고 중독 상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하다니.

“죄송합니다.”

“후배 네 잘못은 아니지. 그보다 중독 때 대응법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디레트가 어떻게든 후배를 중독시키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독 원소를 다루는 흑마법사에게는 중독 상태를 경험하는 것도 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중독 상태에서 어떻게 마력을 움직여서 진행을 막고, 또 어떻게 해독을 시도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은 흑마법사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독 원소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문제는 이 후배가 어느 독을 먹여도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컥. 커헉. 크헉헉.”

“크하학. 케헥. 케헤헥.”

그에 비해 가이난도와 라파드엘은 사색이 되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디레트는 차분하게 경고했다.

“숨쉬기 힘들다고 억지로 숨 쉬려고 하지 마. 1분은 버틸 수 있으니까 숨은 포기하고 해독 방법을 찾아.”

“거허헉, 거헉.”

“그러럭, 그럭.”

둘은 책상을 긁으며 디레트를 노려보았다.

처음 보는 모습도 아니었기에 디레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넌 괜찮고?”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이미르그는 팔뚝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훌륭한 대응법이었다.

‘조금 쓸쓸한데.’

이한은 소외감을 느꼈다.

물론 중독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다 중독되어서 컥컥대는데 혼자 가만히 있는 것도 좀 머쓱한 일이었다.

“더 강한 독은 안 될까요?”

“안 돼. 지금 <아흐락의 붉은 독>도 치사(致死)에는 충분한 독이거든.”

“그런... 어? <아흐락의 붉은 독>이요?”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그걸 먹여도 되는 거 맞나?

“일단 후배 네 저항력이 강하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좀 더 두고 보자. 후배 네가 위험할 정도의 독과 접촉하려면 몇 년은 더 걸릴 테니까.”

“예. 그냥 독을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한다고 되는 게 또 아니라서. 내년에는 5학년으로 올라갈 거라 이렇게 확인해주기도 힘들 거야.”

“세상에. 대체 왜 그런 선택을?”

“......”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아냐.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 고마워.”

디레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후배 얘는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없지 않나?’

신입생이 전 학파 수강하고 있으면서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만약 5학년이라도 된다면 고대의 거열형 비슷한 꼴이 될 것 같은데...

“선배님?”

“어? 아니야.”

“?”

이한은 디레트의 반응에 의아해했다.

딴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평소의 집중력 있던 때와 반응이 달랐다.

‘5학년으로 올라가셔서 마음이 심란하신 걸까?’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다. 이한은 이해가 가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이거 보십시오.”

“달걀? 이런 거 가져다 줄 필요 없다니까.”

디레트는 난색을 표했다.

물론 이 후배의 디저트 만드는 솜씨는 연금술 수석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뛰어났다.

저번에 갖고 온 수플레 팬케이크가 에인로가드 안에서 직접 재료 구해서 만든 거라는 걸 듣고 날개의 깃털이 빠질 정도로 놀랐으니까.

하지만 선배로서 간식을 주진 못할망정 간식을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저번에 수플레 팬케이크 별로셨습니까? 시판되는 간식이 나았던 걸지도...”

“진짜 맛있긴 했는데, 받기 미안해서 그렇지. 코홀티는 학교 시장에서 달걀이란 달걀은 다 사서 계속 수플레 팬케이크만 만들더라. 네가 만들어 온 그 맛을 재현해보겠다고.”

“저런. 그냥 만들어 올 거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건 간식이 아니라 시약 재료로 갖고 온 건데요.”

이한은 귀신닭이 낳은 달걀을 바구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원래는 바실리스크의 알을 돌보던 오두막에 귀신닭을 기르고 있는 이한이었다.

그리고 귀신닭이 낳는 달걀들은 매우 귀한 흑마법 시약.

“귀신닭?!”

디레트는 깜짝 놀라서 달걀을 받아들었다.

“이건 정말... 대단한데? 대체 어떻게 이걸?”

“방법은 묻지 말아주십시오. 하여간 이걸 팔고 싶은데, 팔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런데...”

디레트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한은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물었다.

“혹시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 대행해주시는 만큼 값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후배의 말에 디레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냥 후배들이 밖에 파는 대신 자기들이 사려고 할 거 같아서. 알다시피 희귀한 시약들은 밖에서 사려면 훨씬 가격이 뛰거든.”

마법사의 시약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는 분야였다.

흔한 재료들이야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희귀한 재료들은 서로 경쟁이 붙고 가격이 뛰었다.

귀신닭의 달걀 같은 건 안 그래도 구하기도 힘든데 구하는 이들이 하필 흑마법사들이라 더욱 공급이 적어졌다. 덕분에 가끔 나올 때마다 흑마법사들만 비명을 지르게 됐다.

“필요하시다면 그냥 선배들에게 팔겠습니다.”

“뭐? 안 돼. 후배 네가 왜 그런 양보를 해.”

“같은 학파잖습니까.”

‘다른 놈들한테 말하지 말아야겠다.’

디레트는 착실한 후배의 말에 속으로 다짐했다.

다른 놈들한테 말하지 않고 그냥 외부의 상인들한테 연락해서 파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후배 너는 신경 쓰지 마. 중독은 무리니까... 독 원소 연습으로 넘어가자. 독 원소를 연습하다보면 느끼겠지만, 독은 생각보다 상대한테 거는 게 까다롭지.”

아무리 마법으로 만들어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성질을 가진 독이라 하더라도 상대한테 걸기 까다롭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독은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가지도, 불처럼 맹렬하게 번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적은 양의 액체 형태가 기본인 만큼 상대를 중독시키는 것도 제법 난관이었다.

“수준이 올라가면 시선만으로도 중독시킬 수 있지만 그건 쉽지 않아. 그 전에는 머리를 많이 쓰게 될 거야.”

독 안개나 독 구름처럼 주변의 환경을 이용하는 방식.

혹은 위력이 조금 약화되더라도 물 원소와 결합시켜서 독 화살을 쏘아 보내는 방식.

아니면 뼈 원소처럼 독에 친화적인 원소에 압축시켜서 사용하는 방식.

“후배 네가 우선적으로 연습해 볼 방법은...”

“독 안개나 독 구름이죠?”

“...뼈 원소에 독 원소를 압축시키는 방법이지. 암흑 원소도 성공했으니까 독 원소는 더 쉬울 거야. 암흑 원소가 더 난이도 높거든. 잠깐. 뭐라고?”

디레트는 이한의 대답을 뒤늦게 깨닫고 의아해했다.

“왜 안개나 구름이라고 생각한 거지?”

“어, 독 저항이 강하니까 그냥 제가 걸리는 걸 감수하고 주변을 덮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참신하고 좋은 방법이긴 한데, 뼈 원소에 담는 것부터 배우자. 이게 더 안정적이니까.”

5분 뒤.

이한은 뼈 원소에 독을 압축시키는 것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디레트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다음 물었다.

“그래. 독 안개 불러오고 싶다고?”

*         *         *

한 학기 내내 각 탑의 학생들은 당번을 나눠서 해왔었다.

에인로가드의 일인 만큼 난이도가 쉽지도 않았고, 다들 알게 모르게 피곤함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제 곧 기말고사를 앞둔 상황.

당번 일을 맡은 학생들의 움직임이 둔하고 느려진 건 어쩔 수 없었다.

네 탑 학생들 중 가장 성실하고 근면한 불사조 탑 사제들도 이랬으니...

‘좀 걱정되는군.’

이한은 기말고사를 걱정하기보다는 해골 교장의 습격을 걱정했다.

기말고사는 평소 공부하던 걸로 보는 거니 어쩔 수 없다지만, 해골 교장의 습격은 가장 약해지고 방심했을 때 날아오기 마련.

게다가 해골 교장은 요즘 독기가 올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학년 학생들이 외출 신기록을 세운 데다가 물자를 대량으로 갖고 와서 사치를 즐기고 있었으니까.

-후후. 이거 봐! 주머니가 달린 외투야! 밖에서 사왔어.

-어이,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니야?

-그러는 너는 진짜 가죽으로 된 장갑을 쓰고 있잖아!

-하하, 맞아! 우린 이럴 자격이 있어!

이한은 해골 교장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말리고 싶었지만 이건 말릴 수 없는 일이었다.

일 년 내내 굶주려 온 친구들이 자제해야 한다고 들어봤자 자제할 수 있겠는가?

“워다나즈 님. 여기는 퇴치 끝났어요.”

“지금 갈게.”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시전한 다음 움직였다.

지금 이한과 불사조 탑 사제들은 인근 수풀에 출몰하는 흡혈충을 퇴치하러 나온 상태였다.

흡혈충은 한 마리만 놓고 보면 마법을 쓰지 않아도 쉽게 퇴치할 수 있을 만큼 약한 놈이었지만, 수풀 속에서 수십 마리가 벌떼처럼 몰려나오면 보통 위협적인 게 아니었다.

그러기 전에 주변을 확인하고 흡혈충이 머무를 만한 곳에 마법을 시전해 퇴치를 해놔야 했다.

사실 뛰어난 마법보다는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그리고 끈기가 없어도 막대한 마력이 있다면 해결하기 쉬운 일이기도 했다.

이한은 의심가는 곳을 확확 태워가면서 움직였다.

불사조 탑 사제들은 만들어 온 퇴치 물약을 웅덩이나 수풀에 붓고 있었다.

이 또한 좋은 방법이었다. 흡혈충들을 간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워다나즈 님. 이거 보셨어요?”

“?”

이한은 시아나 사제의 부름에 시선을 돌렸다.

수풀 뒤에 커다란 발자국이 나있었다.

거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였다.

‘뭐지?’

이한은 빛을 띄워 주변을 확인했다.

무슨 몬스터인지 상당히 살벌하게 흔적을 남겨놓았다. 발자국뿐만 아니라 주변 바위나 나무에도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

이한의 빛은 다른 학생들의 빛보다 몇 배는 강하게 퍼져나갔다.

그 탓에 나무 사이에 서있던 이족보행 형태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붉은 눈동자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폭주한 라이칸스로프를 닮았지만 라이칸스로프는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흡혈충들을 폭식했는지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살기와 위압감에 사제들 중 몇 명이 넘어졌지만 이한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후. 또 교장 선생님이 보냈냐?”

-■■■!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암흑이여 휩쓸어라!”

암흑 원소가 파동의 형태로 변해서 앞으로 터져나갔다.

흡혈괴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로 뛰어 마법을 피했다.

‘빠르다!’

하지만 이한은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당번을 맡을 때마다 언제 교장 선생님의 습격이 일어날지 몰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배그렉의 일순 예지>와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이 이한의 신경을 날카롭고 예민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사제 중 한 명이 순찰하던 데스 나이트를 불렀는지 빠르게 달려왔다.

이한은 데스 나이트도 경계하며 지팡이를 붙잡았다.

‘공범 아니야?’

-저 괴물은 대체?! 1학년 학생들은 물러나라.

데스 나이트는 나팔을 불어 동료들을 불렀다.

뿌우우우-

“교장 선생님의 하수인이 아닙니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데스 나이트들은 깜짝 놀라서 부정했다.

저런 괴물은 그들의 동료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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