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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67화 (567/687)

567화

물론 데스 나이트들의 말에도 이한은 믿지 않았다.

‘속임수일 수 있다.’

데스 나이트들이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고, 혹은 데스 나이트들이 모르는 하수인일 수도 있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 챈 데스 나이트들은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보십시오. 워다나즈 학생. 저런 통제 안 되는 괴물을 주인님께서 갖고 계시... 긴 한데, 하여간 저런 놈은 안 갖고 계십니다!

-저런 위험해 보이는 놈을 주인님께서 갖고 계시... 긴 하지만, 저 놈은 본 적이 없단 말입니다!

“......”

“......”

이한뿐만 아니라 사제들도 슬슬 의심쩍은 눈으로 데스 나이트들을 쳐다보았다.

데스 나이트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흡혈괴물을 포위했다.

-처리해라. 딱 봐도 성가신 놈이다.

-어디서 튀어 나온 놈이냐? 입이 달렸다면 지껄여봐라.

시푸른 음에너지가 일렁이는 창칼이 흡혈괴물에게 겨눠졌다. 위협을 느낀 흡혈괴물이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쉭!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만큼 놈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들은 굳이 놈과 속도로 대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쾅!

데스 나이트 하나가 흡혈괴물에게 공격당해서 날아갔다.

-■■■■■■■!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는 괴물이었지만 그건 성급한 판단이었다. 흡혈괴물의 왼쪽 다리에 데스 나이트의 검이 깊숙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쩌저저저저적-

순식간에 괴물의 왼쪽 다리가 땅까지 얼어붙었다. 날아간 데스 나이트가 박살난 갑옷과 으깨진 투구를 복구시키며 일어났다.

-이 영지에서 빠르다고 계속 자랑해봐라.

데스 나이트들은 흡혈괴물을 비웃으며 킬킬댔다. 이한은 새삼스럽게 이 소환수들의 강함을 느꼈다.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힘이 그들을 강화시켜주고 있다고 하지만, 소환수 하나 하나가 이렇게 고등한 판단력과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어? 갑자기?

-왜?

대기하고 있던 데스 나이트들은 이한의 칭찬에 당황했다.

“제 소환수들은 여러분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요.”

-아.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같은 죽음의 기사를 부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일단 소재부터 찾기 힘들 겁니다. 맹세와 미련이 남은 기사가 필요한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억울한 게 많은 기사들이라고 하자 바로 흰 호랑이 탑 기사들부터 떠올랐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전방에 있는 데스 나이트들은 흡혈괴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한쪽 다리가 묶인 흡혈괴물은 데스 나이트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당했다.

-아까처럼! 해봐라! 아까처럼!

-이 건방진! 응? 해보란 말이다!

음에너지가 응축된 장병기가 흡혈괴물을 찌를 때마다 존재 깊숙한 곳에 타격을 입혔다.

살벌하게 발톱을 휘두르고 피를 날카로운 가시 형태로 만들어서 쏘아냈지만, 데스 나이트들은 ‘너는 때려라 나는 친다’ 방식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대부분은 갑주도 뚫지 못했고 어쩌다가 갑주를 뚫은 공격은 그 안에서 일렁이는 암흑이 바로 회복시켰다.

이한은 왜 동화에서 데스 나이트들이 사악한 흑마법사가 부리는 소환수의 대표적인 예시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묵직한 공격력과 단단한 방어력.

생전에 쌓은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적의 약점을 판단해서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이끄는 지능.

생전의 명예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비열한 방식도 서슴지 않는 지독함까지.

마지막은 욕에 가까웠지만 이한은 칭찬으로 생각했다.

‘계속 회복시켜주는 마법사만 있으면 답이 없겠군.’

언데드를 퇴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소환수 자체에 회복 불가능할 만큼 커다란 타격을 입혀 역소환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법사를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데스 나이트는 전자가 거의 불가능했다. 방어력과 생명력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

흡혈괴물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두들겨 맞고, 찔리고, 베인 괴물은 처음에 보여줬던 흉흉한 기세는 어디 갔는지 시체처럼 널브러졌다.

데스 나이트들은 놈의 몸 위에 검과 창을 꽂아 놓고 혀를 찼다.

-웬 미친 놈이 나와서...

-보아하니까 학생들이 소환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아닙니까?!”

이한은 깜짝 놀랐다.

해골 교장의 하수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선배들이 만들어 낸 괴물인 줄 알았던 것이다.

‘키메라 만들다가 실패한 줄 알았는데.’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이 이런 걸 만들진 않소.

-맞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번에 선배 한 분이 인공 정령 만들겠다고 하다가 숲에 괴물들 푸셨는데요.”

-......

-......

데스 나이트들은 말문이 막혀서 시선을 피했다.

-그, 워다나즈 군. 주인님 밑에서 오랫동안 섬기다보면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게 있네. 학생들이 사고친 건 느낌이 달라.

삼왕국(三王國) 시절 출신의 늙은 데스 나이트 하나가 설명에 나섰다.

같은 흡혈괴물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이 사고 쳐서 만든 괴물은 어딘가 티가 났다.

이런저런 마법을 연습하고 시도한 흔적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 잡은 흡혈괴물은 그런 흔적이 없었다. 이건 자연적으로 타고난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가 대체 여기 왜? 위험한 거 아닙니까?”

이한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데스 나이트들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맞네. 가끔씩 일어나는 일일세. 아마 산맥에서 흘러들어왔거나... 아니군. 이런 괴물은 아마 지하겠군. 지하 어딘가에서 동면하고 있다가 나왔을 수도 있겠네.

-선배님의 판단이 맞는 것 같습니다. 빛을 싫어하는 언데드 계열의 괴물이니 산맥보다는 지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

“......”

1학년들은 질린 얼굴로 데스 나이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이런 살벌한 괴물이 튀어나왔는데 ‘가끔씩 있는 일이지 허허’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니.

-■■■■...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다시 들렸다.

데스 나이트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까 격렬한 전투로 저 멀리 나뭇가지 위에 날아갔던 흡혈괴물의 살점 일부.

그 일부를 중심으로 흡혈괴물이 순식간에 재생했다. 바닥에 꽂혀 있던 흡혈괴물의 시체가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라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재생력에 데스 나이트들은 경악했다.

머리나 심장도 아니라 살덩어리 조금으로 저런 재생이 가능하다니.

심지어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들이 쓰는 무기는 평범한 무기가 아닌, 음에너지가 지독하게 실린 병장기였던 것이다.

한 번 베이고 찔리면 아무리 재생력이 좋은 몬스터라 하더라도 그 재생력이 억제되는데 그걸 뚫고 저렇게 재생했다고?

재생력만 놓고 보면 데스 나이트들이 본 몬스터들 중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허.

-그냥 태워버려야겠군. 어디서 나온 놈인지 조사하려고 했는데.

데스 나이트들은 귀화(鬼火)를 불러내며 중얼거렸다.

재생력 때문에 놀랐지만 한 번 보여준 이상 얼마든지 상대할 방법이 있었다.

-■■■!

그러나 흡혈괴물은 데스 나이트들에게 덤벼드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사라졌다.

나무 몇 개를 박차고 숲 속으로 들어간 다음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지는 모습에 데스 나이트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

“어, 도망간 겁니까?”

-...도망갔다고 볼 수는 없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우리의 실수라기보다는 전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에 가깝다고나 할까?

‘놓친 거 맞잖아.’

이한은 한심하다는 듯이 데스 나이트들을 쳐다보았다.

아까까지 가졌던 존경심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         *

“지하에 갇혀 있던 괴물 하나가 올라왔다고?”

“교장 선생님이 풀어놓은 거 아니야?”

“재생력이 그렇게 세? 재생력을 막을 수단을 갖고 다녀야 하나?”

“교장 선생님이 풀어놓은 거 아니야?”

“그런데 데스 나이트들한테 크게 당했으면 학교 근처로는 못 오지 않을까? 산맥 쪽으로 도망쳤다면서.”

“교장 선생님이 풀어놓은 거 아니야?”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은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안 그래도 기말고사를 앞둔 상황에 웬 미친 몬스터 하나가 날뛰고 있다는 사실은 뜨거운 화젯거리가 됐다.

“자경단을 만들어서 조를 짜고 다녀야 한다니까.”

“너무 과민반응 아니야? 놈은 결국 도망쳤잖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학생들은 ‘대비해야 한다’ 파와 ‘아니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파로 나뉘었다.

다른 의견으로는 가이난도처럼 ‘교장 선생님의 음모다’ 소수파도 있었지만 별 영향을 주진 못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이한은 묵묵하게 깃펜을 움직였다.

학기 끝나기 전에 볼라디 교수의 과제들을 어떻게든 보여줄 만한 수준으로 완성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워다나즈. 넌 어떻게 생각해?”

“뭐라고?”

“흡혈괴물 말이야.”

“배그렉 교수님을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 아. 교수님을 말하는 게 아니었군.”

“...??”

“어쩔 수 없지 않나? 지금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럿이서 뭉쳐 다니는 게 최선이겠지.”

“그걸로 충분할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갑옷은 어때?”

“그건 좋은 거 같다.”

“갑옷으로 부족할 수 있으니까 저번에 도서관에서 버틸 때 만들어놨던 쇠뇌도 갖고 다녀. 흑마법 시간에 독 배웠는데, 독 만들어서 돌릴 테니까 쇠뇌에 바르고. 참. 신호용 마법 폭죽 남은 게 버두스 교수님 공방에 있을 텐데 그것도 갖고 와야겠군.”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라며...’

이게 별로 없는 거면 많은 건 대체 뭔데?

친구들의 불안을 달래주고 이한은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한 본인도 조금 놀랄 때가 있었다.

아무리 에인로가드가 사람을 비일상에 적응시킨다지만, 어제 같은 흡혈괴물을 보고서도 이렇게 냉정하게 행동하다니.

심지어 지금도 다른 친구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매우 무덤덤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이한은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이한이 겁이 없어진 데에는 이 강의실 안의 교수가 큰 지분을 차지했다.

‘걸어다니는 공포지.’

시커먼 밤에 으슥한 수풀에 숨어 다니며 피를 노리는 흡혈괴물이 뭐가 그리 무섭겠는가.

진정한 두려움은 대낮 속에 당당하게 걸어오는 법이었다.

볼라디 교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한을 반겼다.

“왔군.”

“이게... 뭡니까?”

이한은 평소와 다른 지하 강의실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평소에는 정말 필요한 가구와 학용품만 있던 살풍경한 강의실이었는데 오늘은 무언가 못 보던 물건들이 많았던 것이다.

커다란 양철그릇(안에는 녹색으로 꾸물거리는 고깃덩이가 있었다), 장난감으로 만든 것 같은 경주로, 서커스 묘기에 쓰일 법한 고리들...

심지어 볼라디 교수 본인은 한손에 희한하게 생긴 장난감을 들고 있었다. 마치 애완동물과 놀아주기 위한 장난감 같았다.

검을 들고 있던 볼라디 교수도 두려웠지만 장난감을 들고 있는 볼라디 교수도 만만찮게 무서웠다. 이한은 뒤를 힐끔거리며 퇴로를 확인했다.

“바실리스크의 성장이 더뎌서.”

“아하.”

이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기말고사를 앞두고 이한의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지랄맞은 수련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아니었던 것이다.

소매 안에서 바실리스크가 노골적으로 쉿쉿소리를 냈다.

매우 매우 싫다는 소리였다.

“미안하다. 나도 힘이 없어.”

-?!

이한은 새끼 바실리스크한테 사과했다.

다른 상황에서는 바실리스크를 위해 싸워줄 수 있었지만 볼라디 교수 앞에서는 아니었다.

이한과 바실리스크가 같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

“번개걸음 교수에게 부탁해서 만든 식사다. 먹어보도록.”

새끼 바실리스크는 당연히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볼라디 교수는 한손으로 바실리스크의 목을 콱 붙잡더니 눈빛으로 염동력 주문을 시전했다. 바실리스크의 입이 쩍 열렸다.

-■■■■■!

새끼 바실리스크가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녹색 고깃덩이가 맛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한은 다시 한 번 속으로 사과했다.

바실리스크한테 먹이를 주던 볼라디 교수가 이한을 보며 물었다.

“번개 원소의 형태 변화에 성공했다고 들었는데?”

“■■■■■!”

이한은 방금 바실리스크가 내뱉은, 목이 졸리는 것 같은 소리를 똑같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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