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화
“괜찮나?”
볼라디 교수는 사레들린 것 같은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한은 콜록대며 손을 흔들었다.
“예. 괜찮습니다.”
“그래서 번개 원소의 형태 변화 말인데.”
“커헉헉.”
다시 기침을 했지만 볼라디 교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예.”
체념한 목소리로, 이한은 대답했다.
“아직 불안정하다고 들었다.”
“예.”
“번개 원소는 형태 변화 난이도가 높으니 계속 연습하도록.”
“예.”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언제 공격할지 예리하게 관찰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슬슬 ‘내가 연습을 도와주겠다 죽어라’할 때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새끼 바실리스크의 입을 벌리고 녹색 고깃덩이를 다시 쑤셔넣었다.
“?”
이러자 오히려 이한이 당황스러웠다.
‘뭐지? 속임수인가?’
먹이를 주던 볼라디 교수가 이한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이라도 있나?”
“교수님이 공격하실 줄 알았는데요.”
“어째서지?”
“......”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한단 말인가?
‘이제까지 강의 시간에 공격 안 한 경우가 드물지 않나?’
솔직히 강의 이름을 <볼라디 교수의 잔혹한 습격>으로 바꿔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마법 연습에 도움이 된다고 종종 공격하셨잖습니까?”
“아.”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나치게 성급한 제자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너무 서두르는군.”
“예?”
“번개 원소의 형태 변화는 그런 식으로 수련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예???”
이상할 정도로 놀라는 제자에게 볼라디 교수는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물 원소는 형태 변화에 실패해서 통제를 잃는다 하더라도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물이라는 것은 날카롭게 제련되지 않는다면 위험도가 확 줄어드는 것이다.
그에 비해 번개 원소는 형태 변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할 경우 그 위험도가 훨씬 높았다.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평소의 몇 배는 되는 능력을 발휘하는 건 잘 알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번개 원소는 그런 식으로 형태 변화를 수련하기 위험했다.
설명이 끝나자 이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해가 어렵나?”
“아닙니다! 이해했습니다!”
이한은 경악을 속으로 삼켰다.
이제까지 볼라디 교수가 별 생각 없이 ‘죽기 싫으면 익히겠지’ 스타일의 가르침을 고수한 줄 알았는데 사실 나름 생각이 있었다니.
마치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사실 난 생각이 있었단다’하고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었다.
‘다행... 인가?’
기분이 복잡했지만 공격이 날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했다.
안 그래도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너덜너덜해진 채 돌아가면 손해가 너무 컸으니까.
“몇 번이고 말했지만, 서두르지 말도록.”
“......”
다행인 것과 별개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한은 이 모든 게 사실 자신을 덤비게 만들려고 하는 볼라디 교수의 책략인가 의심했다.
-■■■■! ■■■■!
‘음. 진정하자.’
구슬픈 비명을 지르면서 고깃덩이를 먹는 새끼 바실리스크를 보자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한은 오늘 목숨을 건진 행운에 순수하게 감사해하기로 했다.
“예.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현재 지팡이에 창 형태로는 고정이 가능한데, 다른 형태는 힘들더군요.”
“그렇겠지.”
사실 물 원소처럼 비교적 형태 변화가 쉬운 원소도 자유자재로 바꾸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그게 마법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만큼 다른 마법사들도 여기에 크게 집착하진 않았다. 에인로가드의 선배들 중에서도 저런 형태 변화의 끝을 보고 넘어가는 사람은 적을 정도로.
예를 들어 화염 원소라면 화살 형태, 창 형태, 장벽 형태, 이 세 개 정도만 익혀도 마법 시전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것이다.
만약 다른 형태가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새로운 마법으로 대응하면 그만.
이한도 마법 전투에 있어서 기본기를 매우 중요시하는 볼라디 교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파고들 일이 없었다.
“창 형태를 먼저 익힌 게 운이 좋았군. 범용성이 높은 형태다. 그 다음은 창을 쪼갠다는 느낌으로 접근해보도록.”
“단검 같은 느낌으로 나누는 겁니까?”
“그래. 단검이어도 좋고, 구슬 형태여도 좋겠지. 친숙한 형태로 나눠보도록. 그게 유리할 테니.”
이한은 지팡이에 번개의 창을 불러온 뒤 형태를 변화시켰다.
창의 끝이 쪼개지더니 허공에 고정됐다. 마치 물 구슬의 형태를 바꿨던 것처럼 이한은 번개의 형태도 바꿔보려고 집중했다.
‘구슬보다는 돌멩이에 가깝군.’
구체의 형태로 매끄럽게 유지되던 물 원소와 달리, 번개 원소는 구슬 형태를 잡아도 사방으로 튀며 울퉁불퉁한 모양이 나왔다.
파직!
잠깐 집중을 잃자 번개 원소가 통제를 잃고 발사됐다.
새끼 바실리스크는 자기 앞에 번개가 날아오자 기겁했다.
“연습하고 있도록.”
볼라디 교수는 새끼 바실리스크한테 먹이를 다 주자 뒷목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덜 자란 뱀의 왕은 낑낑대며 저항했지만 벗어나진 못했다.
탁-
“돌아라.”
-......
바실리스크는 눈앞에 놓인 장난감들을 보고 황당하다는 듯이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강의실 중앙에 배치된 장난감들과 경주로.
설마 지금 여길 돌란 뜻인가?
새끼 바실리스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까 억지로 보양식을 먹은 것도 억울했지만 이건 정말 자존심의 문제였다.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운 맹수이자 고고한 뱀의 왕인 바실리스크가 어떻게 저런 애완동물이나 돌 법한 장난감을 뛰어넘으며 논단 말인가?
볼라디 교수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 짐승에게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네가 성장이 느린 건 운동부족일 수 있다.”
-......
새끼 바실리스크는 쉿쉿 소리를 내며 저항을 표했지만 볼라디 교수는 더 이상 들어주지 않았다.
장난감 막대를 들더니 바실리스크가 움직일 때까지 뒤에서 찔러대기 시작했다.
새끼 바실리스크는 분노와 굴욕을 참으며 코스를 돌 수밖에 없었다.
“멈추지 마라.”
옆에서 번개 마법에 집중하던 이한은 볼라디 교수와 새끼 바실리스크가 강의실 중앙을 산책하듯 빙빙 돌자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바실리스크가 저런 산책을 좋아했나?
“원래 바실리스크가 산책을 좋아합니까?”
“그렇다. 번개걸음 교수한테 듣기로는 꽤 영역이 넓은 몬스터라는군.”
“이런, 저는 운동을 안 시켜줬는데...”
“지금부터라도 시켜주면 되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했다.
새끼 바실리스크가 맨날 칭칭 감겨있는 것만 좋아해서 산책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저렇게 빠르게 기어가는 걸 보니 사실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주인의 사정 때문에 참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앞으로는 산책을 시켜줘야겠군.’
이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볼라디 교수는 장난감 막대로 바실리스크를 사정없이 찔렀다.
“속도를 올려라. 더. 더. 더. 더. 더. 더. 더.”
새끼 바실리스크는 거센 쉿쉿 소리를 내며 코스를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고리 사이로 점프해서 통과하고, 장난감으로 된 계단을 기어오르고, 거친 모래로 채워진 구간을 헤엄쳐서 건너고...
탈진할 때쯤 되자 볼라디 교수는 장난감 막대로 찌르는 걸 멈췄다.
대신 바실리스크 앞에서 막대를 흔들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야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물어라.”
-......
“아직 산책이 부족한 모양이군.”
볼라디 교수가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새끼 바실리스크는 황급하게 막대를 물어뜯었다.
그제야 볼라디 교수는 만족스러워했다.
계속 이렇게 훈련을 시키다보면 언젠가는 이 새끼 바실리스크도 쓸만해지리라.
“참. 교수님. 흡혈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볼라디 교수는 막대를 멈추더니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말고사는 거인으로 충분하다. 욕심 좀 그만 내도록.”
“...아니 그냥 말한 겁니다!”
“그런가?”
교수는 ‘난 안 믿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니 믿는 척 해주겠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한은 순간 이성을 잃고 환장할 뻔했다.
“혹시 조언해주실 게 있으십니까? ...제가 잡으려고 여쭤보는 게 절대, 절대 아닙니다. 흡혈괴물이 습격할까봐 여쭤보는 겁니다.”
“죽음의 기사들에게 죽을 뻔했는데 학교 근처에 다시 나타난다고?”
“...나타날 수도 있죠.”
“그렇군.”
볼라디 교수는 무표정하게 제자를 한 번 쳐다보고 말을 이어갔다.
“전형적인 재생력 특화 몬스터다.”
에인로가드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예측 불가능한 곳에서 튀어나왔고, 이 모든 몬스터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건 교수라 하더라도 무리였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직접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스 나이트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적이 어떤 타입의 몬스터인지 파악했다.
아무리 특이하고 희한한 몬스터라 하더라도 자연의 법칙 자체를 어기고 존재할 수는 없었다.
몬스터들의 습성과 특성, 그리고 법칙들을 익혀놓는다면 특이한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파악이 가능해졌다.
먼저 데스 나이트들의 공격에 맞고서도 재생에 성공했다는 건, 어지간한 몬스터들이 흉내내기도 힘들 만큼 강한 재생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재생력은 강한 능력이지만 그만큼 대가가 필요하다.”
이한은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마법일수록 많은 마력, 긴 시전 시간, 복잡한 시약 등을 필요로 하듯이 흡혈괴물의 재생력도 마찬가지였다.
“피를 계속 찾던데, 재생력의 연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성 높다. 피는 주술적으로도 강력한 시약이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방어력이나 다른 여러 능력들을 희생시켜야 그만한 재생력이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놈은 속도도 상상을 초월하지 않았던가.
“아마 수백 년은 됐겠지.”
흡혈 능력을 가진 몬스터는 제법 많았지만, 어제 흡혈괴물이 보여준 수준의 능력은 최소 수백 년은 된 몬스터나 보여줄 법한 능력이었다.
“에인로가드에 수백 년 넘은 몬스터들도 돌아다닙니까??”
“천 년 넘은 몬스터들도 있다.”
이한은 순간 ‘교장 선생님이요?’라고 물으려다가 멈칫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지하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었거나 동면하고 있었겠지.”
‘공포 그 자체군.’
흡혈괴물보다도, 훨씬 더 오래 묵은 몬스터들이 지하실 어딘가에 잡동사니처럼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무서웠다.
이게 마법학교인지 지옥대미궁인지...
파직!
마침내 번개가 형태를 이루자 이한은 반색했다.
완전하진 못해도 새로 형태 하나를 어떻게든 만든 것이다.
“참. 교수님. 하나 성공한 것 같습니다. 물체의 형태를 핵으로 삼긴 했지만 그래도...”
“단검인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말에 단검이나 구슬을 핵으로 삼아 번개 원소의 형태를 새로 만들었나 싶었다.
단검은 창의 파편 형태.
구슬은 이한이 최근 가장 많이 다룬 형태.
둘 다 쉽고 친숙한 형태였다.
그에 비해 어려운 형태라면 갑옷이나 방패. 그리고 망토 정도.
번개 원소는 방어에 어울리지 않는 만큼 면적을 넓혀서 유지시키는 갑옷이나 방패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망토는 거기서 부드럽게 나부끼는 속성까지 갖고 있었으니 한층 더 어려운 축에 속했다.
“아닙니다.”
“구슬?”
“망토 형태로 어떻게든 고정시켜봤습니다. 보십시오.”
이한은 뿌듯한 표정으로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망토를 가리켰다.
그걸 본 볼라디 교수는 자신이 제자를 너무 과소평가한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