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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71화 (571/687)

571화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지만 들은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긴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가 예전부터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기말고사 때 거인들에게 부탁해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그게 싸움일 줄은 몰랐는데...’

 거인들과의 시험은 여러 가지가 가능했다.

 거인들이 맡기는 일 처리하기.

 거인들과 수수께끼 시합하기.

 거인들과 티타임 가지기 등등.

 그 많고 많은 것들 중에 싸움이라니.

 매우 간단하고 알기 쉬운, 볼라디 교수다운 시험 방식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한은 예의상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한 번 물어봤다.

 “거인들이 춤 좋아하는 거 말하는 건가요! 당연히 좋아하죠! 춤 싫어하는 사람이 제국에 어디 있겠어요! 그런 사람은 문화적 소양이 없는 사람이죠!”

 ‘난 싫어하는데...’

 졸지에 거인 이하의 문화인이 된 이한은 떨떠름해했다.

 “그거 말고, 거인들이 이상한 소리 한 거 있잖습니까.”

 “원무곡 말고 해학곡으로 추겠다고 한 건 조금 그렇긴 하지만 이상한 것까지는...”

 “저하고 싸우겠다고 한 거 말입니다.”

 “아!”

 거인들이 어떤 춤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춤이 어울리는지 떠들던 크린발 교수는 뒤늦게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몇 번이고 확인했거든요!”

 “어떤 무기를 들고 어떤 전략으로 싸울지도 말해줬습니까?”

 “그, 그렇게까지는...”

 평소에 언제나 경쾌하게 통통 튀듯이 말하는 크린발 교수였지만 이번만큼은 당황했다.

 1학년 신입생의 질문이 너무나도 처절했던 것이다.

 “거인들이 싸우기 싫어해서 조언을 하나 해줬어요!”

 “어떤 조언을...?”

 이한은 살짝 겁이 났다.

 교수의 조언이라고 해서 꼭 이한에게 좋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이다.

 만약 ‘학생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날카로운 무기를 써라’같은 조언이면...

 “숨어 있으라고!”

 “예?”

 “싸우기 싫다면 숨어 있으면 되지 않겠어요? 기말고사 기간 동안에만 숨어 있으면, 모든 일들이 해결되겠죠!”

 “아니. 교수님. 그런 임시방편으로 해결이 될... 되나?”

 이한은 크린발 교수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이상하게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아니면 지금 거인들과 힘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 그럴듯하게 들리는 걸 수도 있었고.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다.’

 거인들이 숨는다->볼라디 교수가 못 찾는다->기말고사는 자동으로 패스가 된다->만점을 받는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

 물론 볼라디 교수는 조금 슬퍼할 수 있겠지만, 이한은 교수를 믿었다. 분명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런 조언을 해주시다니.”

 “아! 끝난 게 아니에요!”

 “??”

 “이거 받으세요!”

 숨을건데도아줘

 -힘쎈이들

 크린발 교수는 거인들이 손수 쓴 편지를 전달했다.

 아무래도 거인들은 숨는 데에 익숙한 종족들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에인로가드의 미친살인마라면 더더욱.

 “방금 뭐라고?”

 “예? 에인로가드의 교수님이라고 했습니다만?”

 “그... 그런가? 잘못 들었나보군요!”

 크린발 교수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내가 거인들을 숨길 수 있을까?’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내일부터 주말이었고, 주말이 끝나면 곧 에인로가드의 마지막 주, 기말고사 주간이 찾아왔다.

 당연히 주말은 기말고사 준비를 하며 보내야 했다.

 거인들을 숨기면서 기말고사 공부까지 가능할까?

 ‘흠. 하지만 생각해보니 기말고사 공부는 평소에 해둔 걸로 괜찮을 거 같다.’

 이한은 다른 탑 학생들의 공적이 될 소리를 태연하게 하며 계산했다.

 평소에 미리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한 사람은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거인들하고 잘못 부딪치면 기말고사고 뭐고 일주일 내내 누워있어야 할 테니...’

 “감사합니다. 교수님. 거인들을 숨기러 가보겠습니다.”

 “힘내요! 워다나즈 학생! 교장 선생님한테는 비밀로 해둘게요!”

 크린발 교수는 눈을 찡긋거리고 가버렸다.

 이한은 뒤늦게 ‘교장 선생님 시험이 아닌데요’라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교수는 멀어진 뒤였다.

 ‘상관없겠지.’

 해골 교장은 원래 욕먹는 걸 좋아하니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         *         *

 지옥의 도살장 같은 에인로가드에도 금요일 오후는 조금 한가로운 공기가 맴돌곤 했다.

 강의를 마친 학생들이 주말을 기다리며 나른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몇몇은 본관 앞 잔디밭에 앉아 마법사 카드나 체스를 뒀고, 몇몇은 그 옆 공터에서 맨몸으로 격구를 했다.

 어떤 학생은 의자를 갖고 와서 <토베리즈, 사악한 흑마법사의 계략을 파헤치다>를 읽었으며, 어떤 학생은 에인로가드의 저주를 뚫고 어떻게든 편지를 써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번 주는 달랐다.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들의 얼굴에는 비장감이 맴돌았다. 평소에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던 학생들도 책을 몇 권씩 들고 있을 정도로.

 “가자.”

 “그래.”

 척척척-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비장한 얼굴로 걸어오자, 간단하게 기도하고 있던 티질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제님. 워다나즈 좀 불러와주시겠어요?”

 “아. 네. 용건은 무엇으로 남겨드리면 될까요?”

 “공부 좀 도와달라고...”

 “...아, 네.”

 사제의 눈빛이 살짝 한심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변했다.

 그 눈빛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얼굴을 붉혔다.

 ‘우리를 한심하게 보는 거 아니야?’

 ‘기분 탓이겠지. 사제님들이 그러실 리가 없어.’

 물론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변명이 있었다.

 그들이 공부를 하나도 안 했거나, 전혀 준비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워다나즈한테 업혀가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름 공부를 했지만 혹시 놓친 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묻기 위해 학년 수석한테 물어보려는 것뿐.

 “그러니까 우린 부끄러울 게 없는 거다. 알겠지?”

 “맞아. 아주 말 잘했어.”

 “...?”

 일행 속에 끼어 있던 아덴아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들이 다 같이 가자고 꼬드겨서 나왔는데, 막상 말을 들어보니 별로 좋은 일행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혹시 여기 계속 있으면 공부 안 하는 학생으로 보이는 거 아닐까?

 “어. 너희 나 빼고 공부했어? 나 아직 안 했는데??”

 “쉿. 닥쳐. 가이난도.”

 “다른 탑 학생들 앞에서는 품위를 유지해야지. 이 자식아.”

 “못 했어도 다 했다고 해. 그냥 확인차 물어보는 거라고 하라고.”

 “......”

 “황녀님 어디 가세요?”

 “...개인실에 두고 온 게 있습니다.”

 아덴아르트는 슬금슬금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만큼 다른 탑 학생들한테 이상한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물론 추종자들은 아덴아르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제가 다녀올까요?”

 “아니...”

 “뭘 두고 오셨습니까?”

 “그게...”

 “간식이겠지 뭐.”

 가이난도가 남은 쿠키를 입에 쑤셔넣으며 말했다.

 공부가 시작되면 ‘넌 이 자식아 문제 풀고 먹어야지 처먹으러 왔냐’란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기에 미리 먹어놔야 했다.

 가이난도는 스스로의 현명함에 살짝 감동할 지경이었다.

 “아니 무슨 말을!”

 “지금 누구한테!”

 “간, 간식 아니었어?”

 끼익-

 “너희 뭐하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한이 탑 안에서 나왔다.

 친구들은 워다나즈를 반가워하...

 ...려다가 당황했다.

 “너야말로 뭐하는데??”

 워다나즈가 마치 산맥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가?”

 “산 속에 좀 갔다 오려고.”

 “왜??”

 “기말고사 대비해서 할 일이 있어서. 다 같이 공부하려고 온 건가? 기특한데. 내가 저번에 공부하라고 한 내용들은 다 한 번씩 읽고 왔지?”

 “어...”

 “으어...”

 “그...”

 학생들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읽... 었지. 앞부분... 이긴 한데.”

 “나, 나도 읽었어. ‘이 마도서를 집필하며, 후대에 이 말을 바치겠다’라고.”

 ‘그건 그냥 서문이잖아.’

 이한은 친구들의 수준을 빠르게 파악하고 혀를 찼다.

 아덴아르트는 창피해서 추종자들 뒤에 숨었다.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미안한데 난 이번에 산에 가야 해서 못 도와줄 것 같아. 아. 황녀님. 대신 도와주시겠습니까?”

 들킨 아덴아르트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왜 들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숨은 거였나?’

 이한은 상대의 반응에 의아해했다.

 추종자들이 모여 있으면 아덴아르트는 자동으로 그 근처에 있을 텐데, 숨는 의미가 있나?

 “황녀님이라면 다른 학생들을 충분히 도와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앗. 네. 해보겠습니다...”

 “그럼 다들 열심히 해.”

 이한이 그렇게 인사하고 떠나려고 하자 친구들은 무심코 배웅하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워다나즈!”

 “??”

 “우릴 두고 그냥 가면 안 되지. 도와줄게!”

 “맞아. 우린 친구잖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우르르 참여를 외치자 이한은 감동하는 대신 차갑게 쳐다보았다.

 “공부나 해라.”

 “......”

 “으응...”

 가이난도는 슬쩍 짊어졌던 배낭을 조용히 다시 내려놓았다.

*         *         *

 ‘고민이군.’

 산을 올라가면서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거인들을 숨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이쿠루샤 씨가 협조를 해줄지 모르겠군.’

 다른 거인들과 달리 현명하고 지혜로운 거인인 이쿠루샤는 볼라디 교수와 나름 친한 사이였다.

 그런 사람이 볼라디 교수와의 약속을 배신하고 이한의 편을 들어줄까?

 아무래도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협조해주겠네.

 “역시 힘드신... 예!?”

 -협조해주겠다고.

 “괜찮으시겠습니까?”

 -물어봐놓고 괜찮냐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이쿠루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한을 내려다보았다.

 -이유가 궁금한가?

 “예.”

 -그래. 잘 듣게.

 이쿠루샤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보통 1학년 학생과 거인을 싸우게 한다면, 현명한 사람들은 말린다네.

 “......”

 그건 그렇긴 했다.

 “그래도 교수님과 약속하신 게 있어서 안 될 줄 알았습니다.”

 -내가 직접 지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협조해주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네. 그리고 <거인학살자> 대마법사가 나와 봤자 거인들에게 좋을 일이 없으니...

 볼라디 교수가 부탁해서 이한과 거인을 친하게 만들고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장이었지만, 사실 이쿠루샤는 거인과 신입생의 결투를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그냥 이걸 내켜하는 사람은 고나달테스 공 정도 되는 미친 마법사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쿠루샤는 제정신이었다.

 만약 크게 다친 신입생이 원한이라도 가져서 거인들에게 훗날 복수하려고 하면 얼마나 피가 흐르겠는가.

 ‘뒷말은 무슨 소리지?’

 물론 이한은 이해하지 못했다.

 -자. 그래서 어떻게 숨길지 생각은 해봤나?

 “이 주변의 지형을 먼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거인이 사라지면 수색을 하실 테니, 찾기 힘든 비밀스러운 곳부터 확인해보려고요.”

 -학교 안은 어떤가?

 “...예?”

 -학교 안 말일세. 에인로가드의 본관 건물. 내가 알기로 그만한 곳이 없을 텐데.

 “본관 건물은... 확실히 숨을 곳이 많긴 한데...”

 이한은 이쿠루샤의 말에 당혹스러워했다.

 물론 에인로가드의 본관은 그 역사만큼이나 무한한 넓이를 갖고 있었다.

 오죽하면 해골 교장 본인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을까.

 잘 찾아내면 거인들을 숨길 곳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으리라.

 ‘옮길 수 있나?’

 하지만 옮기는 게 문제였다.

 이한의 말을 잘 듣는다지만 충동적인 거인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 본관 안까지 들어간다?

 “지금부터 투명화 마법을 연습해서, 거인들을 전부 덮을 수 있을까요?”

 -...그런 식으로 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네.

 무식하게 마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신입생의 모습에, 이쿠루샤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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