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76화 (576/687)

576화

 월요일.

 학생들은 긴장, 좌절, 공포, 후회, 해탈, 기대 등의 감정을 품고 기숙사 탑의 문을 나섰다.

 “지금 닐리아 기대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아, 아니. 이번 주 끝나면 학기 끝나서 기대하고 있었던 건데!”

 “겸손할 거 없어. 닐리아. 공부 안 한 건 우리니까 자신 있어 해도 돼.”

 “나도 자신 없다니까...!”

 마지막 주라는 것을 축복하듯이 하늘에서는 굵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다.”

 “따뜻하게 입으니까 제법 예쁜 것 같기도 하고.”

 “맞아. 더 내려도 될 거 같아.”

 학생들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낡고 헤진 외투를 걸치고 다니면 온갖 마법을 걸어도 찬바람이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지금처럼 든든하게 방한용품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밖에서 긁어온 옷감을 두텁게 두르고 외투 주머니 속에는 뜨거운 발열 물약을 넣은 학생들은 굵은 눈발에도 의연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닐리아는 정색했다.

 북부 산맥의 가장 추운 곳에서 밤을 새다보면 눈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무슨 큰일 날 소리를!

 “다들 다음 주까지 눈이 심해지지 않기를 기도해. 알겠어?”

 “미, 미안. 닐리아.”

 “우리가 잘못했어...”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은 닐리아 눈치를 보며 시무룩해졌다.

 그냥 흰 눈이 예뻤던 건데 닐리아는 너무 엄격했다.

*         *         *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강의실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마구간에 들러 토라진 폰리그를 달래주고 기숙사로 돌아가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사제들이 일찍 일어나 일을 거들어 준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난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이한 학생.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강의실 안에 준비한 기말고사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던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을 보고 의아해했다.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쉬라고 배려해줬는데 일찍 오면 어떡해요?”

 가르시아 교수는 손을 흔들며 옆으로 가서 앉아 있으라고 말했다.

 “다른 시험 준비나 하고 있어요. 어차피 기말고사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예. 그래도 일손이 필요하시면 불러주십시오.”

 이한은 걸어가며 시험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가르시아 교수의 기말고사는 이번 학기 동안 배운 생활 마법들을 총망라해서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수중 호흡>으로 깊은 물 속 안으로 들어가, <하급 해독>으로 독을 해제하고, <시야 증폭>으로 물 속에서 길을 찾고...

 저번 주에 가르시아 교수가 직접 보여줬기에 이한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 물이 더 어두워야 하지 않습니까?”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분명 가르시아 교수한테 ‘물이 더 어두워야 할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었는데?

 “아. 그거요. 보니까 저 정도만 해도 괜찮을 거 같더라구요.”

 “그렇습니까...?”

 ‘더 어두워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어두워야 할 것 같았지만, 이한은 일단 납득하고 넘어갔다.

 가르시아 교수가 저렇게 말한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으리라.

 “참. 교수님. 가짜 통로들은 추가됐습니까?”

 “아뇨.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거 같아서요.”

 “앗. 가짜 통로들은 추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에 암흑 원소를 푸는 건 막혔지만, 이한은 가짜 통로는 추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한층 더 흥미진진한 시험이 되리라.

 “너무 어려워져요.”

 “그렇습니까...”

 이한은 살짝 초조해졌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가르시아 교수가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줬는데 이한은 하나도 보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혹시 독은...?”

 “이한 학생. 앉아서 다른 거 공부하고 있어요.”

 “예...”

 이한은 아쉬워하며 자리에 앉았다.

 공부할 책을 꺼내서 읽고 있으니 가르시아 교수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물었다.

 “이한 학생.”

 “앗. 제가 일할 게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요. 혹시 거인 키워요?”

 “?!?!!”

*         *         *

 “나만 이한이 저기 앉아 있는 거 이상해?”

 가이난도는 시험 볼 준비를 하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한은 교수님 옆 의자에 앉아서 다른 학파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안 이상한데?”

 “먼저 봤겠지.”

 “아니면 그냥 통과했거나. 앞에 봐. 가이난도. 수중 호흡 제대로 걸었어? 저번처럼 물 뱉어내지 말고.”

 “한 번 실수한 거라고!”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거야. 자. 들어가.”

 풍덩!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생들이 한 명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워다나즈의 수옥탄과 그 기초 원리에 대하여>를 최대한 짜내서 쓰고 있던 이한은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시험을 끝내고 올라오는 닐리아에게 접근했다.

 “헉, 흐억. 속을 뻔했네...!”

 “닐리아. 닐리아.”

 닐리아는 다가오는 이한을 보며 반가워했다.

 가르시아 교수님의 기말고사는 생각보다 피곤하고 집중력이 소모되는 시험이었다.

 어둑어둑한 물속에서 함정에 걸리지 않고 정답을 찾아서 나오는 동안 조금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치고 피곤한 와중에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응원해주기 위해 다가오는 걸 보니, 이게 우정인가 싶었다.

 “자. 마셔.”

 “...고마워.”

 닐리아는 살짝 감동받아서 평소 보이던 날카로운 태도도 누그러뜨렸다.

 뜨끈뜨끈한 커피를 홀짝이던 닐리아에게 이한이 슬쩍 물었다.

 “혹시 물속이 너무 밝진 않았어?”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안에 들어갔을 때 통로가 너무 찾기 쉬웠다거나...”

 “아냐. 어둡고 찾기 힘들었어.”

 닐리아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물속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체력 소모도 만만치 않았다.

 “정말로? 네가 마법을 잘못 시전한 건 아니고?”

 “...워다나즈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닐리아는 매우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감동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이 대화에는 무언가 사악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것도. 자. 이것도 먹고.”

 “지금 간식으로 달래려는...”

 “참. 오늘 눈 많이 오던데. 그림자 순찰대는 역시 이런 날에도 움직이고 그런가?”

 “그런 편이지.”

 “와. 정말 대단해.”

 “별로 대단할 것까지야. 기본이지. 북부 산맥에 사는 사람들은 눈에 익숙하거든. 예전에 이런 적도 있었어. 산지기들이 쓰는 작은 오두막에 갇혔는데, 일주일 동안 눈보라가 치는 거야. 도저히 나갈 수가 없어서...”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른 친구가 나오고 있었다.

 “요네르. 요네르. 자. 여기 커피.”

 “응? 고맙...”

 “혹시 물속이 너무 밝진 않았어?”

 “......”

 잠시 고민하며 커피를 홀짝이던 요네르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이한을 빤히 쳐다보더니 역으로 물었다.

 “혹시 가르시아 교수님한테 시험 난이도 올리라고 했어?”

 “...?!”

 이한은 깜짝 놀라 친구를 쳐다보았다.

 요네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연금술 기말고사.

 우레걸음 교수는 학생들이 시약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오는 걸 보며 기막혀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너희처럼 편하게 시험 보는 녀석들은 또 처음이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칭찬 아니다.”

 “그럼 감사 안 합니다. 교수님.”

 우레걸음 교수는 랫포드를 거꾸로 매달고 말을 이어갔다.

 “원래 시험은 재료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데 이렇게 미리 준비해오다니...”

 “준비 또한 실력 아니겠습니까?”

 “워다나즈 너 때문이잖아!”

 우레걸음 교수는 뻔뻔한 수제자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밖에 나가서 시약을 싹 쓸어온 놈이!

 “그래. 준비도 실력이지. 뭐라고 하진 않겠다. 교장 선생님이나 외출을 싫어하지 난 너희들이 외출하는 걸 별로 신경 안 쓰거든.”

 “그럼 내려주십시오...”

 우레걸음 교수는 랫포드를 털썩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분필을 움직여 칠판에 글씨를 새겼다.

 저항의 물약

 ‘됐다!’

 이한은 물약의 이름을 보고 안심했다.

 시험 준비를 많이 한 학생들도 이한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저항의 물약>은 기말고사로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주제 중 하나였던 것이다.

 “저항의 물약이 뭐야?”

 “......”

 물론 모든 친구들이 공부를 많이 한 건 아니었다.

 우레걸음 교수는 강의 시간에 분명히 말했는데도 물어보는 학생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설명했다.

 “몇 번 말했지만, 이 저항의 물약은 폭넓은 방향에서 작용해야 한다. 가끔 어설픈 연금술사들이 한쪽에만 작용하는 물약을 만들고 착각하곤 하는데, 너희들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도록.”

 저항의 물약은 마시는 사람의 인내력, 그러니까 방어력 비슷한 걸 상승시키는 물약이었다.

 방어력 물약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방어력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던 것이다.

 화살이 날아왔을 때 피부가 단단해져서 튕겨내게 만드는 건 방어력 물약이었지만, 강력한 충격이 담긴 화살이 몸 내부를 흔들어도 통증을 줄여주는 건 저항의 물약이었다.

 가끔 특이한 몬스터들은 시각이나 청각에 접촉해서 데미지를 주곤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를 토하게 만들거나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쓰러지게 만드는 몬스터들이 이런 종류였다.

 또,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환상 마법사들은 상대의 오감에 접촉해서 마법을 걸곤 했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저항의 물약 같은 게 필수적이었다.

 ‘청동 절구로 빻은 웅석을 세 차례 걸쳐서 뿌리고, 지팡이로 두 번 방향을 바꾼 다음, 물이 황금빛으로 끓어오르면...’

 이한을 비롯한 연금술 우수 학생들은 거침없이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우레걸음 교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물었다.

 “미리 계량하는 걸 잊은 것 같은데?”

 그 말에 학생들이 밖에서 새로 사온 천칭 저울 아티팩트를 꺼냈다.

 알아서 추가 움직이며 계량을 해주는 저울의 모습에, 우레걸음 교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교장 선생님이 왜 그렇게 외출하는 걸 싫어하는지 알 것 같군!’

 신입생들이 아티팩트로 쉽게 물약을 만드는 걸 보니 괜히 트집을 잡고 싶어졌다.

 “흥. 저항의 물약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렇게 서두르다가는 분명...”

 펑!

 닐리아의 냄비 위로 불꽃이 솟았다.

 우레걸음 교수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흐뭇해했다.

 “자. 이렇게 된다. 저걸 다시 살리려면 참으로 힘들겠구나.”

 그러나 닐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냄비 안의 내용물을 전부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시약 가방에서 새 시약들을 꺼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실패해도 넉넉한 양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타격이 없었다.

 “......”

 우레걸음 교수는 내년 1학년 기말고사는 시중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시약들로 문제를 짜야겠다고 결심했다.

 “워다나즈. 효과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추천할 마법이 있나?”

 바트렉이 이한에게 말을 걸어왔다.

 연금술에 뛰어난 만큼,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물약을 대신 확인해주려는 모양이었다.

 “원래는 마신 다음에 마법으로 타격을 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면 오감에 자극을 주는 식으로 해야지.”

 시끄러운 소음이나 강렬한 냄새나 매운 맛 같은 걸로 물약이 잘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바트렉은 생각에 잠겼다.

 “자극이라...”

 “여기 양파 있네. 이건 어때?”

 “좋은 생각일지도.”

 “물약 마셨나? 먹어봐라.”

 이한은 바트렉에게 양파를 한 조각 먹였다.

 바트렉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잘못 만들었군.”

 “저런. 다음 물약 먹어봐라. 마셨나? 자. 여기.”

 “윽.”

 바트렉은 물약을 마시고, 양파를 먹고, 또 다음 물약을 마시고, 양파를 먹었다.

 어느새 바트렉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바트렉! 다시 만들어왔어!”

 “...이, 이건 잘 된 거 같은데. 양파가 안 맵군.”

 “정말?!”

 옆에서 보고 있던 이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닌데? 색이 탁하잖아.”

 “...아주 고맙다. 워다나즈. 내가 실수로 넘어갈 뻔했어.”

 “뭘 이런 걸 가지고.”

 이한은 바트렉을 응원했다.

 자기 물약을 다 만들고 같은 탑 친구들을 도와주는 저 모습이 매우 기특했다.

 “워다나즈. 넌 다 했으면 가라.”

 “좀 더 여과해서 순도를 높이려고 했는데요.”

 “만점이다. 가라.”

 “안 보셨잖습니까?”

 “만점이겠지. 비켜라. 만점 맞네.”

 “아니 그래도 열심히 만들었는데...”

 우레걸음 교수는 들고 있던 국자로 질척이는 이한을 강의실 밖으로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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