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화
다행히 해골 교장은 데스 나이트들의 이간질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황제를 대면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깊이 생각해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음... 불안하군.
한참 깊이 생각하던 해골 교장은 침음성을 토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한을 데리고 황제 폐하를 만났을 때 좋게 끝나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워다나즈 학생한테 잘 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운라데는 눈치를 보고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사실 이운라데는 해골 교장이 왜 저렇게 걱정하는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물론 2학기 때에도 신입생치고는 과한 활약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여름방학 때 일은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거잖습니까.”
-저. 이운라데 님. 씨 서펜트 잡은 건 알고 계시죠?
-참고로 그거 말고도 더 있소.
“예?”
이운라데는 멈칫했다.
잠깐 생각하던 이운라데는 즉시 말했다.
“워다나즈 학생한테 잘 말해서 모두 입을 다물면 황제 폐하께서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괜히 에인로가드 졸업생이 아니군.
-저 지독한 생각 보게나.
데스 나이트들이 수군거렸지만 이운라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게 다 살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겠는가.
반응이 느린 사람은 에인로가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입단속은 당연히 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워다나즈 녀석에게 말실수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제까지 에인로가드에는 여러 부류의 천재들이 들어왔지만, 이한처럼 눈치 빠르고 사교성 좋고 모든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천재는 극히 드물었다.
보통 천재란 것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하나에만 뾰족하게 능력이 집중된 놈들이 대부분인 만큼, 이한의 저런 원만함은 더더욱 눈에 띄었다.
“그러면 더더욱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네가 그러니까 수석을 못하는 거다.
‘아니...’
이운라데는 억울했다.
졸업하고 나서도 성적 갖고 구박을 받아야 하다니?
-주인님. 무엇을 걱정하는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워다나즈 군이라면 사정을 설명하면 잘 협력할 겁니다.
너희들이 맞을지도 모르지.
해골 교장은 선선히 인정했다.
그 태도에 다른 사람들이 더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놈의 광기는 나처럼 선량한 대마법사가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음해를.’
이운라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해골 교장이 남들한테 광기라니.
더군다나 워다나즈 학생처럼 선량한 신입생한테?
지금 속으로 내 욕을 했겠지. 이운라데.
“아, 아닙니다!”
이해한다. 너처럼 수석도 못해본 녀석은 알 수 없는 경지니까. 하지만 내게는 놈의 광기가...
쾅!!!
본관 앞뜰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교장과 이운라데, 데스 나이트는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온갖 폐품을 얼기설기 기워서 만든 것 같은 골렘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버두스 교수님. 도와주십시오! 놈을 멈춰야 합니다!
-왜? 잘 굴러가잖아. 지금 멈추면 골렘에 타격 가는데?
-이대로 가면 경로 위에 있는 것들을 다 박살낼 것 아닙니까!
-왜 이제 와서 그래? 너도 알고 있었을 거 아냐.
-아니, 교수님께서 괜찮다고 하셨잖습니까! 괜찮으니까 만들라고 하셨...
-그래. 괜찮다니까? 무시하고 골렘 마저 만들어. 멈추지 말고.
“...저, 저거. 폐품으로 골렘 만든 겁니까??”
이운라데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도 1학년 기말고사 때 버려지고 부서진 물건들로 즉석 아티팩트를 만드는 시험을 보긴 했었지만, 기껏해야 정수(淨水) 아티팩트나 위치 탐지 아티팩트 정도가 다였다.
아무리 하급에 임시라 하더라도 고작 1학년 학생이 동력원을 갖추고 굴러가는 골렘을 만들다니.
그것도 폐품으로???!
봤나?
해골 교장은 놀라지 않고 말했다.
저게 놈의 광기다.
본인은 멀쩡해보여도 옆에서 계기만 생기면 얼마든지 미친 짓을 해대는 게 워다나즈의 문제였다.
만약 황궁에 갔다가 관료 한 명이 ‘고나달테스 공한테 배웠으니 악마 공작도 잡겠습니다 하하’라고 농담이라도 던지면 ‘알겠습니다 잡아보겠습니다’하고 칼춤을 출지도 몰랐다.
‘그리고 황제와 관료들은 나한테 책임을 묻겠지.’
관료들부터 황제까지 ‘대체 평소에 무슨 교육을 시킨 거냐’ ‘저 파렴치한 대마법사가 고대 방식으로 제자를 학대하고 있다’같은 소리를 해댈 걸 생각하니 없는 심장이 맥동칠 정도로 억울했다.
왜 제자 놈이 멋대로 미친 짓을 하는 게 본인의 잘못이란 말인가?
“말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골렘 터지면 사고 납니다!”
골렘이 위험한 이유는 그 동력원 때문이었다.
그만한 덩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힘의 양도 늘어났고, 그러면 당연히 동력원도 상당히 강력한 아티팩트를 사용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제국 신문에 <골렘 길드에서 또 폭발 사고 발생!> <도시 위원회는 골렘 길드를 시 외곽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밝혀...> 같은 기사가 그냥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내버려둬라. 알아서 잘 할 거다.
“아니... 곧 폐하 만나야 하는데 말려야죠!”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 폐하를 만나기 몇 주 전에 겪는 폭발 사고가 정서적으로 좋을 리 없었다.
황제를 대면해서 ‘몇 주 전에 폭발 사고 겪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지겠는가.
끼기기긱-!
그러나 골렘은 이운라데의 외침이 무색하게 힘을 잃고 정확히 정지했다.
저 멀리 본관 앞뜰에 정지한 골렘 위에 서있던 워다나즈 가문의 신입생이 욕설과 함께 착지했다.
손에는 골렘의 동력원이 들려있었다.
놀랍게도 저 신입생은 움직이는 골렘의 몸통에서 동력원을 빼낸 것이다!
직접 봐도 믿기 힘든 어마어마한 묘기였다.
-교수님 제안은 다시는 안 믿을 겁니다!
-어? 왜? 왜 화내는데? 나 덕분에 골렘 만든 거 아냐?
-이게 만든 겁니까! 하마터면 같이 죽을 뻔했는데!
-잘 정지시켰잖아?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버두스 교수한테 달려들려는 이한을 다른 친구들이 황급히 말렸기 때문이었다.
-네가 참아! 워다나즈!
-교수님이야! 교수님!!
* * *
이한은 에인로가드에 들어오고 나서 몇백번이고 했던 생각을 또 다시 했다.
‘교수를 믿다니!’
“...기운 내. 워다나즈.”
“그래도 시험은 끝났잖아.”
“그래. 시험은 끝났지.”
기말고사 도중 버두스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실수였었다.
-다 됐습니다. 교수님.
-어? 이게 다야?
-...잘 만들지 않았습니까? 나름 방어도 되고 하는데...
-에이. 더 재밌는 거 만들자. 만들 수 있어.
-잠깐. 다른 학생들은 그냥 통과시키셨으면서 왜 저한테만...
-이거 봐. 이거 보여? 이게 뭐게?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 골렘의 다리로 썼던 부분이야. 이건? 청동 청소 골렘의 팔이고. 또... 여기 있다. 이건 백병전용 골렘의 투구고. 자. 알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보야? 이걸 합쳐서 골렘을 만들어보란 거지!
-...예?? 그게 가능합니까? 전 골렘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골렘이란 게 원래 이렇게 누더기처럼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지...
-괜찮아. 괜찮아. 자. 여기 마법진들이 남아 있거든. 이런 일부를 합쳐서 만드는 건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워.
-확실히 조립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보다는 쉽겠지만, 그건 원래 동일 골렘으로 만들어졌을 때 아닙니까? 서로 다른 골렘의 부분을 합쳐서 만들면 무슨 역효과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작동도 안 될 텐데...
-아냐. 괜찮아. 보니까 괜찮더라.
-진짜 괜찮은 겁니까?
-그럼!
-...그럼 한 번 해보긴 하겠습니다만...
버두스 교수의 사악하고 무책임한 속삭임에 넘어간 이한은 서로 다른 골렘의 일부를 어떻게든 묶고 합치고 연결시켰다.
마력 회로나 마법진의 계산이 달라서 생기는 오차는 그냥 그 부분에 마력을 때려 넣고 뭉개버렸다.
반쯤 망가진 동력원에 어떻게든 각종 수리를 가한 다음 작동만 시켜보자는 일념으로 마력을 불어넣으니...
-움직입니다! 아니, 정말로 움직일 줄은...
-내가 만들어보라고 했잖아.
-잠깐. 교수님. 골렘이 멋대로 움직이는데, 기동어나 명령어가 어떻게 됩니까?
골렘을 만들 때 그 골렘을 가동시키고 조종할 수 있는 기동어나 명령어를 안에 삽입하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이번처럼 서로 다른 부품을 짜 맞춘 키메라 골렘의 경우 버두스 교수가 알아서 미리 파악을 해뒀으리라.
-그런 거 없는데?
-예?
-그런 거 없다고. 서로 다른 부품을 연결했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면 어떻게 명령합니까?
-이제 만들어 넣어야지.
-...지금 움직이는데요?
-위에서 만들어서 집어넣어.
-저 그거 배운 적 없습니다!
-그래? 여기 책.
-버두스 교수님. 도와주십시오! 놈을 멈춰야 합니다!
-왜? 잘 굴러가잖아. 지금 멈추면 골렘에 타격 가는데?
...결국 이런 일들을 겪게 된 것이다.
골렘의 마력 회로에 접촉해 마력을 불어넣은 뒤 힘으로 움직임을 멈춘 다음 간신히 동력원을 빼낼 수 있어서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숲이 박살나던 이한이 박살나던 혹은 버두스 교수가 박살났을 것이다.
“그냥 제출을 했어야 했는데.”
‘워다나즈한테도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살코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만약 살코였다면 버두스 교수가 그런 소리를 했을 때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폐품을 조립해서 골렘을 가동시키라는 건 불가능한 소리였으니까.
“살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아, 아니. 버두스 교수님은 참으로 사악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우리 석공 길드였다면 저런 사람은 무릎을 꿇리고 그 위에 커다란 바위를 올려서 압슬형에 처했을 텐데!”
“오... 그런 좋은 방법이?”
이한은 솔깃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살코는 친구의 마음속에 깊은 증오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워다나즈. 번개걸음 교수님 시험이나 준비하러 가자.”
“맞아. 버두스 교수님은 잊어버려.”
친구들의 응원에 이한의 표정도 조금 풀렸다.
그 때 멀리서 부여 마법을 안 듣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야. 너희 시험 보면서 사고쳤다면서?”
“뭔 실수를 했길래 골렘이 기어나오냐? 부여 마법 공부 좀 제대로... 으악! 악! 워다나즈! 왜 이러는 거냐!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가볍게 놀려주려던 학생들은 살벌하게 날아드는 물구슬에 기겁하며 도망쳤다.
워다나즈의 실수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다.
* * *
“페가수스다!!!!”
시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른 학생들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과 같이 걸어가던 친구들도 페가수스란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페가수스?!”
“그 페가수스...!?”
제국에는 여러 희귀한 환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페가수스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여러 비행 탈것, 그러니까 와이번이나 그리폰 같은 맹수들은 시시때때로 주인을 위협하고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제국 신문에 올라오지만...
...페가수스는 비교적 신사적이고 예의바른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번개걸음 교수님이 대체 이만한 페가수스들을 어떻게 빌려오신 거지?”
“교수님은 제국에서 손꼽히는 탐험가시잖아. 분명 인맥으로 빌려오셨을 거야.”
학생들은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번개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이런 페가수스들은 부르는 게 값인 만큼 돈이 있더라도 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걸 그냥 학생들을 위해 준비하다니.
“너무 그렇게 볼 거 없다.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교수님... 저는 교수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 말은 다른 교수들 앞에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걸? 자. 너희들이 치러야 할 시험은 오늘 이 페가수스를 설득하는 거다. 참고로 건방지게 착각하지 마라. 페가수스는 와이번에 비해 착하지만, 절대 만만한 녀석은 아니거든.”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페가수스는 직접적으로 주인을 잡아먹지 않을 뿐, 아무나 등에 태워주고 돌아다닐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제국의 환수들이 언제나 주인의 자격을 따졌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의 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페가수스는... 성실성과 명예였지.’
일 년 동안 얼마나 동물들을 잘 돌봤고, 또 평소에 얼마나 명예로운 행동을 했는가?
페가수스는 자격이 있는 사람의 영혼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한은 페가수스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녀석은 매우 호의적으로 눈을 깜박이며 시선을 보내왔다. 이한이 해온 일을 안다는 눈빛이었다.
‘알아주는구나!’
이제까지 해온 모든 일에 감사하며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번개걸음 교수가 이한을 불렀다.
“잠깐. 워다나즈.”
“예?”
“넌 가까이 가면 안 되지.”
“어째서입니까!?”
“그야 폰리그가 질투할 테니까...?”
“......”
상상하지도 못한 소리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소매 속에서 바실리스크가 매우 동의한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