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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80화 (580/687)

580화

“말이 너무 심하잖나...”

견습기사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지젤을 쳐다보았다.

물론 워다나즈 가문처럼 제국을 대표하는 마법사 가문 출신을 기사단에 추천하는 건 전례가 드문 일이긴 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반응을 예측하기 힘들기도 했고.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라면 기사단에 추천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당장 저번에 너도밤나무 기사단의 기사들과 같이 반마법주의자들을 토벌한 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워다나즈라면 추천한 사람의 명예를 같이 드높이면 드높였지 실추시킬 리는 없었다.

뛰어난 기사단에 가입할 수 있으니 워다나즈도 좋고, 뛰어난 인재를 추천했다는 명예를 얻을 수 있으니 모라디도 좋고...

“모라디는 자기 가문이 워다나즈 가문하고 친밀하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다.”

이한은 모라디를 위해 나섰다.

아무래도 기사단에 자기 가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건 상대방이 실수를 할 경우 자기까지 명예에 먹칠이 가니, 꽤 친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추천하는 순간 주변에서 ‘오 꽤 친한가보군’이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한의 행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젤은 즉시 부정했다.

“아닌데? 내가 왜 워다나즈 가문과의 친분을 거절하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워다나즈 너?”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지젤 입장에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기사 가문이 아니라지만 워다나즈 가문 같은 대귀족 가문과의 친분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나서 이득 볼 게 없는 것이다.

“아니... 야...”

이한은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지젤의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물론 지젤도 만만찮게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우리 가문이 워다나즈 가문하고 친밀하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소리는 왜 하는데? 워다나즈 가문에서 불쾌하게 여기면 어쩌려고?’

‘아니. 우리 가문 사람들은 제국 신문도 안 봐. 무슨 말을 하던 신경도 안 쓸 걸.’

보다 못한 더르규가 나섰다.

“워다나즈는 평소에 기사단에 들어갈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그래서 모라디가 황급히 반응한 거지. 말이 거칠었지만 양해해다오.”

“그래. 바로 그거지.”

“맞아. 바로 그거야.”

이한과 지젤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한 입장에서도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오해를 받는 건 매우 위험했다.

기사만큼 힘들고 고생하는 직업도 드물었으니까.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게 욕설과 무슨 상관이지?’라고 반응할 수 있었지만 견습기사는 일단 받아들였다.

평소 더르규와 친분도 있는데다가 다른 게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워다나즈. 너라면 기사단에 와도 뛰어나게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기사단에도 마법사들은 있다. 그 분들은 많은 존중을 받으며 기사들을 도와주시지. 모라디. 너희 가문이 있는 북부의 기사단...”

‘닥쳐. 눈치 없는 새끼야.’

지젤은 이번에는 속으로 삼키는 데에 성공했다.

기사단에 추천하고 싶으면 지가 추천할 것이지 왜 자꾸 지젤한테 권한단 말인가?

다행히 더르규가 또다시 대답해줬다.

“워다나즈는 졸업하고 나서도 에인로가드에 머무를 거다. 교수님들과 같이 마법을 연구해야 하니까.”

“정신나갔냐 더르규!?!?”

이한은 기겁하며 외쳤다.

이번에는 더르규가 살짝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         *         *

견습기사들과 학생들이 서로 오해를 풀고 머리를 맞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니까 우리 여섯이서 하루 동안 저 산맥에서 보내야 하는 거다.”

견습기사의 말에 이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디서 시작하는지 위치를 아나?”

“당연히 아니지! 하하. 워다나즈. 그러면 시험이 안 되잖아.”

‘이런 눈치 없는 새끼.’

이한은 속으로 견습기사를 욕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이야 안에 갇혀 있었다지만 이 기사들은 밖에서 오면서 그거 하나 못 캐묻고 뭐했단 말인가.

잉걸델 교수도 이들한테는 좀 더 너그러웠을 텐데.

“워다나즈. 큰일인데.”

“왜지?”

지젤이 속삭이며 묻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물론 어디서 시작하는지 듣진 못했지만, 이게 큰일까지는 아니지 않은가.

“원래 산장에 들어가서 하룻밤 지내려고 했지.”

“그랬었지?”

“...이 새끼들이 그걸 용납할 것처럼 보여?”

“뭐? 아니. 당연히 용납하...”

말하려던 이한은 멈칫했다.

견습기사들의 눈빛이 생각보다 너무 올곧고 똘망똘망했던 것이다.

어라?

“잠깐. 다들.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다른 친구들 중에 이런 친구들이 있거든. 산속에 미리 오두막을 숨겨놓고 거기 대피하려는.”

이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견습기사가 질색을 했다.

“그런 비열한 짓을 한다고? 대체 어느 누가?”

“워다나즈. 지금 교수님한테 말해야 한다. 누구지?”

“...글쎄. 나도 지나가다 들어서.”

견습기사들의 반응에 이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한은 잠깐 핑계를 대고 친구들을 따로 불렀다.

“아니. 기사 가문 출신들은 다 이런가? 산장 준비하는 것도 실력 아니야? 거기 들여놓을 물자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한은 친구들에게 심정을 토로했다.

밖의 도시에서 편하게 지내다 온 견습기사 놈들이 대체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산맥 곳곳에 들키지 않게 산장을 만들려고 이한과 친구들은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고생했다.

밤에 당번을 맡아 나왔을 때 몰래 올라가고, 새벽 일찍 일어나 몰래 올라가고, 낮에 남는 시간에 몰래 올라가고...

그 안에 넣을 물자들은 또 밖에서 힘들게 구해 온 천금과도 같은 물자들이었다.

그걸 무시하다니!

“원래 기사 가문 출신 중에서도 일찍 기사단에 들어간 사람들이 더 완고한 편이긴 하지.”

지젤은 이한의 말에 동의하며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기사단에서 한 사람 몫을 해내기 위해 견습기사로 훈련받은 이들은 고집이 강하고 타협을 할 줄 몰랐다.

그것까진 괜찮은데 에인로가드 학생들한테까지 그걸 강요한다는 게 문제였다.

“하긴 흰 호랑이 탑 애들은 타협 잘 하긴 해.”

“그래. ...뭐?”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이한?”

지젤과 더르규는 자신도 모르게 항의했다.

나름 기사 가문 출신인데 타협 잘 한다는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타협 잘 하는 편 아닌가?”

“어떤 근거로 그딴 음해를?”

“저번에 너희 탑 학생 한 명이 목검 암시장에 팔아먹던데. 확인해보면 검 없는 애들 몇 명 있을 걸.”

‘미친새끼들.’

지젤은 속으로 같은 탑 학생들을 욕했다.

정말 어디 가도 창피한 새끼들이었다.

“그... 정말 배가 고팠을 거다. 아주, 정말로 배가 고팠을지도.”

“야... 초이. 그냥 입 다물어.”

지젤은 눈치 없는 오크 친구에게 손짓했다. 말할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 탑이 얼마나 타협 잘하는지가 아니야.”

‘니들이 물어봤잖아.’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친구들을 배려해서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푹 숙인 더르규도 더르규고 지젤의 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저 도움 안 되는 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지. 곧 시험이 시작될 거야. 시간이 없어.”

“맞는 말이군...”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잉걸델 교수야 마법사와 기사들이 조화롭게 협력하라고 묶어놨겠지만 역효과였다.

당장 산맥의 산장 찾아서 들어갈 생각이었던 셋에게는 걸림돌 그 자체였으니까.

고민하던 이한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떠오르는 건 하나밖에 없는데.”

“나도.”

“나도 하나 떠올랐다.”

셋은 의외라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다 같이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더르규는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일 년 동안 같이 싸운 보람이 있구나!’

평소 지젤과 이한의 사이가 너무 좋지 않아서 언제나 마음을 졸였는데, 이런 걸 보니 약간의 희망이 느껴졌다.

결국 시련이야말로 전우애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다 같이 말해볼까? 셋. 둘. 하나.”

“잠재운 다음 제압하자.”

“기절시킨 다음 제압해.”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응?”

더르규는 당황했다.

다른 두 친구의 대답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고 견습기사 셋과 호흡을 맞춰서 극복하는 게 올바른 임기응변 아닌가?

지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그건 더르규의 고민과는 좀 다른 방향의 고민이었다.

“잠재울 수가 있나?”

“친구들하고 수면 물약 만들어 놓은 거 있어. 추위 방지라고 말하면 될 거야.”

“아. 훨씬 평화롭겠네. 좋아. 그렇게 가자고.”

이한과 지젤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견습기사 셋을 잠재운 다음 묶어서 데리고 가자고!

“왜 그래, 더르규? 뭐 보완할 거라도 있나?”

“...아무것도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제압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하. 맞는 말이야.”

“뜻이 통해서 편하네.”

두 친구의 말에 더르규는 쓸쓸하게 미소지었다.

*         *         *

덜컹, 덜컹-

“마차로 이동할 줄이야!”

엥게 가문의 라브다는 놀라워했다.

설마 이 산맥을 마차로 이동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에인로가드가 괜히 마법사들의 학교가 아니었다.

“라브다. 분명 흡검의 달인이었지?”

“달인까진 아니다. 나는 아직 멀었지.”

이한의 말에 라브다는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엥게 가문의 검술은 흡(吸)의 묘리에 집중한, 제국에서도 희귀한 검술.

안 그래도 가문의 검술에 자긍심을 갖는 게 기사들인데 라브다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 자긍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나도 흡의 묘리를 연습하고 있지만 그걸 검술에까지 응용하다니. 상상도 하기 힘들어.”

“고맙... 응?”

라브다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떻게 연습하고 있는 거지?’

애초에 흡의 묘리가 연습한다고 되는 거였나?

“자. 다들 이걸 마셔라.”

이한은 둥그런 유리병 안에 든 물약을 건넸다. 견습기사들은 호기심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게 뭐지?”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물약이다.”

“오. 고맙다.”

꿀꺽꿀꺽-

견습기사들이 차례대로 물약을 마시는 걸 본 이한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혹시 마차 어디로 가는지 파악되나?”

“전혀.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 같은데.”

눈을 감고 마차가 움직이는 방향을 체크하던 지젤은 인상을 찌푸렸다.

창문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까부터 이 마차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방향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탈길을 올라가다가도 갑자기 아래로 꺼지고, 또 뒤로 이동하고...

도중에 몇 번 날거나 공간이동을 한 게 분명했다.

쿵, 끽!

마차가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내리라는 신호였다.

이한과 친구들은 잠이 든 견습기사들을 묶은 다음 한 명씩 업고 내렸다. 그러자 마부 없는 마차는 빙글 돌아서더니 빠르게 아래로 사라져갔다.

“눈이 점점 심해지는데...”

더르규는 앓는 소리를 내며 주변을 확인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쪽 산맥에는 거인도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거인을 만나지는 않겠지.”

“거인 걱정은 안 해도 돼. 지금 거인은 없어.”

“그렇군. 고맙다... 어, 이한.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더르규가 물었지만 이한은 대답하지 못했다.

지도를 보며 이 주변의 위치를 확인하느라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찾았다. 여기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내가 준비한 산장이 나와.”

“으... 대체 무슨 일이...?”

라브다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일어나려고 했다.

지젤은 검의 폼멜로 라브다의 명치를 힘껏 갈겼다. 라브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다시 잠들었다.

“무슨 일이지?”

지도에서 눈을 뗀 이한이 묻자 지젤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것도 아냐.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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