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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81화 (581/687)

581화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눈보라가 휘몰아치자 시야가 좁아졌다.

“샤르칸. 부탁한다.”

이한은 녹주옥 표범을 불러내서 길을 확인했다.

평소 익숙하던, 표식이 될 만한 지형들이 사라지는 만큼 더 조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한과 친구들이 이미 방한용품으로 단단히 무장했다는 점이었다.

“가르시아 교수님 덕분이군.”

“버두스 교수님 강의 시간에 만들었잖나?”

더르규의 질문에 이한은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마침 샤르칸이 돌아왔다. 표범은 앞을 지나가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앞으로도 꽤 걸어가야 하는데, 계속 업고 다닐 수는 없을 것 같군.”

“워다나즈. 귀찮아도 이것들을 절벽 밑으로 던질 순 없어.”

지젤은 모처럼 워다나즈를 한 번 놀려보려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한과 더르규는 지젤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건 좀...”

“...농담이었는데.”

“그, 그렇군.”

“농, 농담이었군.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야. 그냥 둘 다 닥쳐.”

지젤은 다시는 이 자식들한테 농담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한? 좋은 방법이 있나?”

“일어나라, 뼈로 이루어진 전사들이여.”

이한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스켈레톤 전사 세 구가 느릿하게 견습기사들을 등에 업었다.

“이러면 되겠지.”

“어. 그런데 이한.”

“왜 그러지?”

“만약 여기 기사들이 일어나면?”

“...안대 좀 줘볼래?”

이한은 견습기사들을 묶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에 안대까지 채웠다.

그리고 나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됐겠지?”

“......”

“......”

지젤과 더르규는 그 모습을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들을 잠재운 다음 꽁꽁 묶어서 스켈레톤한테 업게 하는 모습이 마치...

‘진짜 사악해보이네.’

‘옛 이야기에 나오는 흑마법사 같다.’

“왜 그렇게 쳐다보지?”

“스, 스켈레톤 활용법에 감탄하고 있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이한은 더르규의 칭찬에 살짝 쑥스러워했다.

*         *         *

“으윽.”

라브다는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마차에 앉아 있었는데, 그 뒤에 명치에 강한 통증이...

“헉!”

라브다와 견습기사들은 눈을 떴다.

처음 보는 오두막집 안이었다.

밖에서는 살벌한 바람소리가 들려왔지만 투박하게 만든 벽난로가 불을 활활 태워 냉기를 몰아내고 있었고...

찬장 쪽에는 양고기 통조림과 달걀 조금. 완두콩과 마멀레이드, 설탕, 소금, 찻잎, 커피가루 등등이 알차게 차있었다.

‘어디지??’

“일어났구나!”

국자를 들고 냄비 안을 확인하던 이한은 견습기사들이 일어난 걸 보고 후다닥 달려왔다.

“걱정했다. 너희들이 쓰러져서!”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워다나즈? 여긴 어디고?”

이한은 멈칫했다. 마치 지젤과 시선을 교환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기억 안 나나? 마차가 습격을 받았다! 몬스터가 마차를 공격했잖나!”

“그... 그랬나?”

“그래. 간신히 너희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었지.”

이한과 지젤은 산맥에 사는 살벌하고 기괴한 몬스터가 어떻게 마차를 공격하고 견습기사들을 집어삼키려 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더르규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양파를 썰었다.

아무리 봐도 저렇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고... 고맙다. 부끄럽군. 도움만 받다니. 우리가 앞을 막았어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산맥은 위험한 곳이야.”

“거인도 있었나? 소문에 여기 거인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뭐, 거인도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이한은 견습기사들이 원하는 대로 몬스터의 수준을 올려줬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면야!

“그럼 여기는?”

“아마 사냥꾼의 오두막이겠지.”

“여기 사냥꾼도 있나?!”

‘잘 설득한 것 같군.’

이한은 친구들과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했다.

다행히 가장 큰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연히 이 산장을 발견한 거다!

‘이대로 하루만 있으면 된다.’

견습기사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음. 이런 곳을 사용해도 되나?”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몬스터를 상대할 준비나 하자고. 교수님께서도 찾아올 거라고 말하셨으니까.”

“?”

이한은 멈칫했다.

“교수님께서 뭐라고 말하셨다고?”

“음? 산맥에 몬스터가 있으니까 상대할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방금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러셨지. 몬스터가 찾아온다고. 그런데 그건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면 당연한 일이잖아?”

“......”

물론 라브다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위험한 지역이라면 몬스터가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에인로가드에서 단련된 이한의 감각은 저 말에서 다른 의미를 유추해내고 있었다.

‘이상한데?’

쿵쿵쿵-

그 순간 누군가 산장의 문을 두드렸다. 더르규는 덧대놓은 나무판자를 들어 올려서 창문 밖을 확인했다.

“!”

놀랍게도 그건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다.

반쯤 눈에 파묻힌 채로 덜덜 떠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산장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도, 도와줘!”

“문... 문 좀 열어줘! 얼어 죽을 것 같아!”

“바트렉, 클트란?! 너희. 여긴 어떻게...?!”

“습, 습격을 받아서! 추, 추워. 문 좀 열어줘!”

더르규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산장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마비되어라!”

이한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마비 저주를 갈겼다.

마법 중 가장 그 시전 속도가 빠르고 적중 범위가 넓은 저주 계열의 마법인 만큼, 마비 저주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중했다.

“크... 윽!”

“!?”

더르규는 깜짝 놀라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이 대체 왜 마비 저주를 시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스르르륵-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몸이 마치 슬라임처럼 허물어졌다. 그러더니 꿈틀거리며 이형의 몬스터로 변했다.

“셰이프 시프터!”

지젤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셰이프 시프터 계열의 몬스터들은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습을 변환시키는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도플갱어였지만, 꼭 놈만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 눈앞의 시프팅 슬라임도 악명 높은 셰이프 시프터 계열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것도 상당히 고등한!

“조심해, 파고들지 못하게 해! 셰이프 시프터가 대열에 파고들면 까다로워진다!”

지젤은 쌍검을 뽑아들고 간격을 만들었다. 저 슬라임이 들어와서 변신을 활용하면 일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슬라임은 당황했는지 모습이 연달아 바뀌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 모습을 몇 번 따라하다가 이한을 눈여겨봤는지 이한으로 변했다.

“공격하지 마! 난 네 친구야!”

“그래!”

지젤은 호쾌하게 이한으로 변한 슬라임의 얼굴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이제까지 본 검격 중 가장 아름답고 깔끔한 일격이었다.

촥!

마비 저주에, 마법이 부여된 검격까지 당하자 슬라임에게도 꽤 타격이 간 모양이었다. 다급히 산장 문 밖으로 피하더니 쌓인 눈 속으로 몸을 던졌다.

‘놓치면 골치 아파진다!’

“샤르칸. 가라!”

표범이 으르렁거리며 튀어나갔다. 후각으로 반응하는 샤르칸은 이런 셰이프 시프터 몬스터를 상대할 때 한결 유리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한은 스켈레톤 전사들을 불러와 문 앞에 세웠다. 혹시라도 모를 침입을 대비해서였다.

콰직!

샤르칸은 눈 속으로 파고들려는 시프팅 슬라임의 발목을 정확히 물어뜯었다.

슬라임은 발목 부분을 포기하고 다시 한 번 형태 변환을 시도했다. 눈이 워낙 많이 쌓여서 놈을 붙잡기가 쉽지 않았다.

“눈이여, 모래로 변해라!”

이한은 다급히 주문을 외웠다.

모래를 암석으로 변환시키거나 암석을 모래로 변환시키는 건 많이 연습했었지만, 눈을 모래로 변환시키는 건 연습해 본 적이 없었다.

즉석에서 눈과 모래의 특성을 떠올리며 이한은 마법을 완성시켰다.

그러자 쌓여 있던 눈들이 흩어지며 모래로 변했다.

‘됐다!’

“섬뢰창!”

이한은 지팡이에 번개를 불러와 형태를 고정시켰다. 볼라디 교수가 혹독하게 시킨 덕분에 주문을 길게 외우지 않아도 생략이 가능해졌다.

파지지지직!

번개의 창이 정확히 슬라임을 찌르자, 슬라임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기본적으로 슬라임은 매우 단순한 구조의 몬스터라 일정 이상의 피해만 가하면 핵이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쓰러졌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이렇게 당황하거나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렇지!

“...정말 에인로가드 교수님 다 되셨군!”

이한은 탄식했다.

이 시프팅 슬라임을 누가 어디서 구했겠는가.

잉걸델 교수가 다른 교수들한테 부탁해서 구해온 게 분명했다. 꽤 희귀한 슬라임이니 교수들의 도움 없이는 만들지 못했으리라.

‘그냥 마법 걸린 황소와 싸우던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

이한은 기말고사에 숨겨진 잉걸델 교수의 사악한 계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학생들을 산맥에 흩어놓은 다음, 미리 훈련시킨 시프팅 슬라임들을 풀어서 학생들을 공격시키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시험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친구의 모습을 한 슬라임에 방심했다가 호되게 당하리라.

“말, 말도 안 돼.”

더르규는 아직도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분명히 바트렉처럼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따라한 거지?”

“아마 교수님께서 몰래 학습시켰을 거다. 우리가 못 보는 사이 우리를 관찰시키셨겠지.”

시프팅 슬라임에 대해 번개걸음 교수한테서 배운 적 있는 이한은 나름대로 정보가 있었다.

슬라임들은 고등한 사고가 불가능한 일종의 원시군집체였다.

당연히 지성으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보고 따라하는 것에 가까웠다.

더르규는 경악했다.

“그렇게까지?!”

“나도 놀랐다. 하지만 에인로가드의 교수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한은 슬라임의 잔해를 치웠다.

그 잔해는 마치 잉걸델 교수에게 가진 마지막 신뢰의 조각 같았다.

‘이제 잉걸델 교수님도 무조건 에인로가드의 교수라고 생각해야지.’

매우 실례인 생각을 하는 사이 라브다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들, 정말 대단하다. 우리가 도와주러 왔는데 민망할 정도군.”

“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이한은 훈훈한 분위기를 보고 시프팅 슬라임에게 살짝 감사했다.

라브다가 ‘왜 머리가 수면 물약을 먹은 것처럼 아프지’라고 물어보면 귀찮아졌는데, 슬라임 덕분에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워다나즈. 슬라임인 걸 바로 알아챈 건 정말 감탄했다.”

“맞아.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차이를 알아차리다니.”

“평소 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위화감이 느껴지더군.”

더르규는 이한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정작 내가 못 알아차리다니!’

앞으로 친구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더르규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시프팅 슬라임이었나?’

이한도 속으로 놀라워했다.

그냥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방해하러 온 줄 알고 제압하려고 한 거였는데, 아예 몬스터였을 줄이야.

정말 방심할 수 없는 에인로가드였다.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야겠다.’

“동쪽 비탈길.”

대화를 듣지 않고 밖을 관찰하던 지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쪽으로 접근 중. 열 명 넘는데.”

“...!”

이한은 산장의 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이쪽을 향해 열 명이 넘는 학생들과 견습기사들이 오고 있었다.

“접근하지 못하게 하자.”

“그래.”

둘은 의견이 일치했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뭉쳐오는 건지는 몰라도, 산장에 다 넣을수도 없었고 뒷감당도 하기 힘들었다.

하다못해 시프팅 슬라임이 사이에 있으면 더더욱...

“......”

“......”

그러나 일련의 무리가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이한과 지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무리에도 이한과 지젤, 더르규가 있었던 것이다.

가짜 이한이 진짜 이한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가짜들이다!”

“아니 이런 미친...!”

이한은 경악했다.

분명 슬라임의 지능은 이한을 보고 학습해서 따라하는 수준일 텐데 어떻게 저런 선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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