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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82화 (582/687)

582화

“어떻게 슬라임이 저런 행동을 하는 거지?”

이한의 중얼거림에 지젤은 빤히 쳐다보았다.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짐작가는 게 없단 말인가?!

친구의 시선을 느낀 이한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나?”

“딱히 아무것도. 멈춰!”

지젤의 외침에 저 아래 쪽에서 달려오던 학생들과 기사들이 멈칫했다.

이한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놈들 중 몇 명이나 슬라임인 거지?’

일단 가짜 이한 가짜 지젤 가짜 더르규는 확실했지만 다른 놈들은 누가 슬라임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공격해서 확인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랬다가는...

‘대번에 우리가 가짜가 되겠지.’

가짜 이한이 놈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제대로 설득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가짜 이한의 뒤에 서있었으니까.

그걸 속냐고 화내고 싶었지만 이한은 인내했다. 화내는 건 나중에 해도 됐다.

지금은 역으로 설득할 때였다.

‘아무리 시프팅 슬라임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진짜는 따라올 수 없을 거야.’

이한은 지젤과 시선을 교환했다. 두 친구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할 수 있지?

-물론이지.

나름 일 년 동안 동고동락한 친구들 아닌가.

강력한 변신 능력도 추억은 속이지 못하는 법이었다.

“말해! 가짜 모라디! 멈추라고 했으면서 왜 그러고 있지? 혹시 무슨 거짓말을 할지 고민하고 있는 건가?”

“아니 어떤 새끼ㄱ...”

아래쪽에서 빠르게 선동을 시작하길래 어떤 놈인가 싶어서 쳐다본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가짜 이한이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개짜증나네.’

지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한을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이한은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라디. 저쪽을 노려봐야지.”

“닥쳐. 할 거니까.”

목청을 가다듬은 지젤은 검을 겨누고 아래에 모인 친구들을 향해 외쳤다.

“이 머저리들아.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거야! 속고 있다고!”

“!”

“어... 어?”

지젤의 외침에 친구들은 멈칫했다.

평소 흰 호랑이 탑 휴게실에서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지젤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자 가짜 지젤이 나서서 부드럽게 친구들을 설득했다.

“진정해. 친구들. 가짜가 들켜서 마음이 초조해진 거니까.”

“그... 그렇군!”

“역시 모라디야.”

“......”

“......”

이한과 지젤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너희 눈은 혹시 나중에 아티팩트로 바꾸려고 가짜 눈 넣고 다니는 거냐? 저게 어떻게 모라디야? 너무 친절하잖아!”

이한의 외침에 비탈길 아래 친구들은 코웃음치며 반박했다.

“모라디는 원래 이랬거든?”

“맞아. 워다나즈가 성질만 안 긁으면 모라디도 원래 친절하고 점잖아!”

‘저런 말도 안 되는 음해를?’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음해에 분노했다.

모라디는 원래 저런 성격이었지 이한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닌가?

“생각해보니 처음 만났을 때는 좀 더 점잖았던 것 같기도 하고...”

“너 저 아래로 내려갈래?”

“아니. 지금 설득하려고 기억을 되짚는 거잖아. 그보다 모라디. 네 친구들은 네가 가면 쓴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걸로 설득해보면 안 되나?”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게?”

“진심인데. 네 친구들 보라고.”

지젤은 비탈길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없는 사이에 슬라임하고 뭔 대화를 나눴는지 푹 빠진 모양이었다.

“좋아. 좋다고.”

지젤은 분노를 얼굴에서 치우고 표정을 관리했다.

필요할 때면 가끔씩 나오는 친절하고 점잖은 지젤이었다.

“다들...”

“저 가짜 모라디가 연기한다! 듣지 마라!”

가짜 이한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한은 진짜 저 슬라임을 죽이고 싶어졌다.

“역시 워다나즈야!”

“워다나즈의 눈을 속일 순 없지!”

그리고 저 슬라임에게 속는 흰 호랑이 탑 놈들도!

이한은 으르렁대며 외쳤다.

“아니, 모라디야 그렇다 치자. 지금 저게 나로 보이는 거냐? 대체 왜?”

“다들. 저 가짜의 말에 속지 마. 저 가짜가 너희들을 속이려고 하고 있어. 너희들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나를 믿어라! 내가 너희들의 구원자다!”

“워다나즈...!”

“너란 녀석은...!”

이한은 진짜 뒷목을 잡을 뻔했다.

저런 입에 발린 말을 한다고 믿다니??

“지금 저런 말에 넘어가는 거냐? 진심으로?! 너희들은 너희가 알아서 지켜야지 누가 지켜줘! 달콤한 소리 좀 한다고 넘어가면 어떡해!”

“가짜의 말은 듣지 마! 나를 믿어라!”

가짜 이한이 단호하게 외치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홀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비탈길 위에 있는 사나운 가짜와 비교해봤을 때, 그들 옆에서 계속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워다나즈야 말로 진짜 워다나즈 같았다.

‘틀렸군.’

이한은 좌절감을 느꼈다.

설마 가짜한테 설득으로 질 줄이야!

지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잠깐. 더르규가 있잖아. 더르규로 설득해보자.”

“가짜가 더 인기 좋을 것 같은데.”

이한의 말에 지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지만 그래도 말은 던져봤다.

“초이. 네가 진짜라면 어디 한 번 말해봐라.”

“......”

가짜 더르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이한과 지젤은 당황했다.

가짜 더르규로 위장하고 있는 슬라임은 조금 학습이 덜 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비탈길 아래의 학생들은 의기양양해져서 외쳤다.

“후후. 가짜들아! 더르규는 그런 거에 속지 않는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거지!”

“......”

지젤이 경악해하는 사이 이한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모라디.”

“?”

“내 생각에 저 놈들은 모두 다 슬라임이다.”

“뭐?”

“다 슬라임이라고. 그것 말고는 말이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부 다 슬라임일 수는...”

말하던 지젤은 순간 흔들릴 뻔했다.

그런가?

설령 워다나즈의 말대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저들 중 절반 넘는 인원은 슬라임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 멍청함이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그래. 꽤 많은 숫자가 슬라임일 수는 있겠어.”

“그렇지?”

이한은 지팡이를 들었다.

애초에 슬라임이 몇 안 된다고 생각하고 설득으로 해결하려고 한 게 실수였다.

전부 다 슬라임이었는데!

“시간 좀 끌어줘. 한 번에 칠 테니까.”

“알겠어. 모두 쓸어버려.”

*         *         *

가짜 이한과 가짜 지젤과 가짜 더르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진짜 학생들이었다.

“......”

“......”

이한 일행은 눈덩이로 두들겨 맞아 널브러진 학생들을 착잡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크아악...”

“믿었는데...”

“믿긴 뭘 믿어 머저리들아!”

지젤은 뻗은 친구의 등짝을 걷어차려고 했다. 이한과 더르규는 간신히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릴 수 있었다.

“대체 그 슬라임들이 뭐라고 했는데?”

“가짜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조심하라고...”

“그러니까 힘을 합쳐서 돌아다녀야 한다고...”

듣던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 말을 한 놈들을 의심할 생각은 안 해봤고?”

“진짜 같았다니까!”

‘이 자식들은 누가 사탕만 주면 다 진짜라고 생각하겠군.’

경멸의 시선으로 한심한 학생들을 쳐다본 이한은 혀를 차며 일어섰다.

“알겠으니까 시험 끝날 때까지 쉬고 있...”

“저기 가짜가 친구들을 공격했다!!”

“......”

이한은 비탈길 아래에 새로 찾아온 한 무리의 학생들과 그들을 이끄는 가짜 이한, 지젤, 더르규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들 싸울 준비하자.”

“잠, 잠깐. 우리가 설득해볼...”

쓰러진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말했지만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         *         *

다음날.

잉걸델 교수와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산맥을 쳐다보았다.

과연 산맥의 추위를 견뎌낸 학생들이 어떤 얼굴로 돌아올까?

“교수님. 이제 슬슬 알려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어떤 몬스터를 미리 준비하셨습니까?”

기사 중 한 명이 못내 궁금했는지 슬쩍 물었다.

추운 산맥이란 시련은 기사들 모두 알았지만, 잉걸델 교수가 따로 준비한 몬스터는 기사들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험은 곧 끝나고 학생들이 돌아올 테니 물어봐도 큰 상관은 없으리라.

잉걸델 교수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음. 다들 실망할까봐 두렵습니다만...”

“무슨 그런 말씀을. 잉걸델 교수님의 선택을 누가 실망하겠습니까.”

“강화된 황소? 아니면 멧돼지?”

“아무래도 겨울날 산맥인 만큼 눈과 밀접한 몬스터 아니겠습니까? 흰눈도치나 아이스 드레이크 같은?”

기사들의 추측을 재밌게 듣고 있던 잉걸델 교수는 슬슬 정답을 알려줄 때라고 생각했다.

“시프팅 슬라임들을 준비했습니다.”

“예?”

“뭔 슬라임이요?”

“시프팅 슬라임 말입니다.”

잉걸델 교수는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살짝 신이 났다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만큼 이번 시프팅 슬라임들을 고심해서, 또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한테 들었는데 시프팅 슬라임 같은 몬스터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그렇겠죠. 여기는 에인로가드니까요.”

“이거다, 싶더군요. 물어보니 다른 교수님들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어...”

“으음...”

기사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잉걸델 교수가 신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슬라임들을 받고서 강의 때마다 학생들을 관찰하게 했습니다. 기말고사 주간이 찾아오자 제법 그럴듯하게 변신하더군요. 학생들은 자신을 찾아오는 가짜 친구들을 가려내며 설산의 추위를 버텨내야 하는 겁니다. 좋지 않습니까?!”

교수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끝냈다.

에인로가드의 다른 교수들에 비해 밋밋한 시험을 내는 것 같아 평소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좀 자신이 있었다.

다른 교수들도 좋다고 말했고...

“그, 교수님.”

“좀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

잉걸델 교수는 그제야 기사들의 표정을 깨달았다.

기사들은 지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저희도 나름 혹독하게 훈련시키기는 하지만...”

“훈련된 시프팅 슬라임을 잠입시키는 건 좀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지...”

기사들의 반응에 잉걸델 교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하, 하지만 학생들은 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강의들은 더 위험한 것들도 많이 나왔거든요.”

물론 기사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사들은 다른 강의에서 뭐가 나오는지 몰랐으니까!

기사들은 그냥 잉걸델 교수가 과장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교수님까지 이렇게 시험을 볼 이유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만...”

“맞습니다. 교수님.”

‘이, 이상하군. 대체?’

잉걸델 교수는 진땀을 흘리며 당황스러웠다.

전장에서 아군이 전부 퇴각하고 사방에는 적들로 가득 찬 상황도 지금보다는 덜 당황스러웠다.

그.. 그런가?

‘내가 너무 과하게 냈단 말인가?’

잉걸델 교수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다른 에인로가드 교수들과 이야기해가면서 아주 적절한 시험을 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니다.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이 에인로가드를 몰라서 저런 반응을 보인 걸 수도 있다. 분명 에인로가드를 안다면 다르게 생각할지도...’

“앗. 학생들이 돌아옵니다!”

기사들이 손을 뻗으며 산맥 입구를 가리켰다.

하루 동안 산맥에서 보낸 학생들이 위풍당당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이한 일행만 위풍당당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들것에 실려 썰매로 끌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잉걸델 교수는 바로 제정신이 돌아왔다.

‘아. 내가 너무 과하게 낸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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