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화
그리고 변환 마법 기말고사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교수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는 분명 샤르칸의 앞발로 변신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용종 계열로 변신을 하게 되더군요.”
“마력 많아서 그렇습니다. 견딜 수 있는 형태가 많지 않다보니. 하다 보면 나아지겠죠.”
변신 마법은 경험이 상당히 중요했다.
형태를 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체질과 맞는 형태를 찾는 것까지 전부 다 경험이 쌓일수록 훨씬 수월해졌다.
이한처럼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학생일 경우 특히 더 경험이 많이 필요하리라.
“조급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욘라모 교수는 이한이 다른 학파 마법들도 같이 듣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런 상황에서 기말고사를 만점 받을 만큼의 변신 마법을 해냈다는 건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기보다는 미칠듯이 대단한...
하여간 그런 만큼 조급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이한은 교수가 저렇게 말하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보면 늘어나나보군.’
그러나 욘라모 교수의 눈에 이한은 어딘가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다른 교수들에게 들은 이한의 일화들이 욘라모 교수의 잠재의식에 선입견을 심어넣은 것이다.
조각상 같은 얼굴로 무표정하게 있으면 보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욘라모 교수는 어떤 조언을 해야 이 1학년 학생이 다음 학기까지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지 생각했다.
“저번에 받은 마도서, <애벌레부터 드래곤까지> 갖고 있습니까?”
“아. 예.”
저번 변환 마법사들의 모임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이한이었다.
오죽 인기가 좋았으면 가문의 마도서까지 받았을까.
“방학 때 그걸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꽤 좋은 마도서죠, 그거.”
이한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기말고사가 끝났는데 갑자기 교수가 과제를 추가로 내준 것이다.
어째서?
‘내가 뭔 잘못을 했나? 만점 받았는데?’
지금 다른 변환 마법 듣는 학생들은 종달새처럼 하하호호 지저귀며 강의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왜 이한만 과제를 추가로 받아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합니까?”
“얼마나?”
욘라모 교수는 고민했다.
아무래도 이한은 겨울방학 때도 바쁠 테니,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되는 데까지?”
“...!”
이한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되는 데까지라니.
사실상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다 해오라는 소리 아닌가!
‘용종 계열로 변신하는 게 그렇게 문제가 있나?!’
* * *
불사조 탑 앞에 천막을 치고 불을 피운 뒤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그런지 더럽게 공부하기 싫었다.
“도서관으로 이동해서 할까?”
“30분 전에 이동했잖아?”
“또 이동하면 공부가 잘 될지도 몰라.”
낙서를 끼적이던 가이난도는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이한. 삼각형 내각의 합이 190°이 나올 수가 있어?”
“...대체 어떻게 계산을 한 거냐?”
<기하학과 산술> 시험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필수 강의인데다가 그 난이도마저 지독해 몇몇 특수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온몸을 배배 꼬이게 만들었다.
이한은 열심히 작성하고 있던 수옥탄 마도서를 내려놓고 가이난도의 계산식을 확인했다.
뒤늦게 깨달은 가이난도는 배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한이 다른 강의 공부하고 있어!!”
“뭐!?”
“어떻게 그런 일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워다나즈가 이 강의에서도 수석인 건 알고 있었지만, 곧 이 시험을 앞두고서도 다른 시험을 먼저 준비할 만큼 자신감을 보여주다니?
심지어 아산이나 아덴아르트도 충격을 받았다.
둘도 혹시 몰라서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한 넌 내 마음을 몰라! 시험 전에 따로 준비 안 해도 될 만큼 자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겠어!”
공부도 하기 싫은데 잘 걸렸다 싶은 가이난도는 물고 늘어졌다.
마찬가지로 공부 하기 싫었던 다른 학생들이 따라서 외쳤다.
“맞는 말이야! 워다나즈 넌 우리 마음을 모른다고!”
“굳이 그딴 걸 알아야 해?”
요네르가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친구들의 목소리에 묻혔다.
“더 많은 간식과 휴식 시간을 보장...!”
“아니. 난 이미 기말고사 봐서 다른 거 공부하는 거야.”
이한은 가이난도의 주둥이를 봉인하면서 말했다.
그 말에 친구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덴아르트마저 미소 짓게 만드는 농담이었다.
아산은 한참 웃다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워다나즈. 기말고사를 먼저 봤다는 게 말이... 잠깐, 농담 아닌 것 같은데.”
아산은 이한의 얼굴이 100%로 진지한 걸 보고 당황했다.
어라?
농담이 아닌가??
“난 기말고사로 <주머니칼 요새> 설계 도우라고 하셔서 이거 먼저 보고서 제출했지.”
이한은 <주머니칼 요새>의 기초 청사진을 친구들 앞에 보여줬다.
복잡하게 얽힌 요새와 아티팩트들의 배치도를 본 친구들의 낯빛이 해골 교장을 본 것마냥 창백해졌다. 아덴아르트는 재빨리 입꼬리를 내리고 안 웃었던 것처럼 표정을 관리했다.
“이거 대신 같이 할 사람?”
“......”
“......”
“애들아?”
친구들은 모두 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숫자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조용해진 그 모습에 이한은 만족스러워하며 다시 마도서를 작성했다.
‘간식은 추가로 안 풀어도 되겠군.’
* * *
킬베덱은 한 때는 모험가였고, 가끔은 사기꾼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과거 속에 묻어둔 채 나름 정직한 잡화상으로 살고 있었다.
다 마을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에 불과한 킬베덱을 따뜻하게 환영해줬던 것이다.
그래서 킬베덱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정직하게 장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마을 밖의 사람들에게는 사기를 좀 치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정직하게 굴었다.
그건 다른 두 모험가 형제, 도이그와 그이도도 똑같았다.
이 두 형제도 마을 사람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양떼를 치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가축은 훔치지 않았다. 마을 밖의 사람들이 가진 가축만 슬쩍할 뿐이었다.
그들이 잊어버린 목가적인 삶은 그들의 영혼을 회복시켜줬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을 입구에서 마주칠 때마다 세 전직 모험가는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빌도츠칼의 영광이 자네에게 있기를.
-빌도츠칼이 더 이상 자네를 돌봐줘도 되지 않기를.
어찌나 영혼이 회복되었는지, 그들이 미치광이 마법학교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도 가끔씩 술자리에서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이도 같은 경우에는 독한 포도주를 세 병 정도 마시고 나면 ‘그 일이 행운이었을지도’같은 소리까지 했다.
물론 술에서 깨어나면 그런 소리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숙취도 숙취지만 정말로 끔찍한 기억이었기 때문이었다.
웬 괴물 같은 마법사한테 납치당해서 마법학교로 끌려간 다음 지독한 협박을 받아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와 싸워야 했던 일.
그리고 당했던 협박보다 더 지독하게 그 어린 마법사한테 공격당한 일까지.
이들이 모험가를 관두고 마을에 정착했으니, 얼마나 끔찍한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래도 마법사하고 엮일 일 없으니 마음이 편하ㄱ...
-여기 킬베덱이란 사람을 아나? 잡화상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마법이 없는 구리거울을 마법이 있다고 판 사람인데.
-누,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마을의 평화를 깨고 나타난, 온몸을 로브로 푹 가린 이방인의 모습에 킬베덱은 깜짝 놀랐다.
누군지는 몰라도 킬베덱의 오랜 경험으로 인한 직감이 매우 위험하다는 걸 경고해주고 있었다.
단순히 상대의 풍채가 단련된 기사처럼 크고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최근에 마을 외부 사람한테 마법이 없는 구리거울을 마법이 걸려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판 사실을 알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본능적인 감각이 위험하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이 이방인은 위험하다고!
-하하. 사실 자네가 킬베덱이란 걸 알고 한 질문일세. 죽은 지 오래 되면 이런 유치한 장난이 꽤 즐겁거든.
-...!!
킬베덱이 몸을 돌려서 도망치려고 하는 순간 이방인의 팔이 갑자기 늘어났다.
암흑으로 된 팔이 칭칭 킬베덱을 휘감자, 킬베덱은 순식간에 쓰러졌다.
-제국법으로 죗값을 치르기 전에 봉사활동 좀 하고 가게나.
-...!!
-무, 무슨 대체... 사람 살...
-쉿. 자네들도 그렇게 당당하게 사람 살려달라고 할 처지는 아니야.
이방인은 로브 안쪽에서 시퍼런 한기를 흩뿌리며 말했다.
-도이그와 그이도 형제 맞나? 최근에 말 두 마리와 소 한 마리를 훔친 두 형제?
-이익!
그이도가 몽둥이를 꺼내려고 하자 이방인은 그대로 뺏어서 그이도의 머리통을 갈겨버렸다.
도이그는 그 전투력에 질겁해서 양손을 올렸다.
-항복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도이그의 머리통도 갈겨버렸다. 그리고 셋을 칭칭 감아 말 뒤에 실었다.
-출발!
세 전직 모험가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움직이는 마차 안이었다.
마차 안에는 가지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이봐, 넌 어디서 왔나?”
“뭐... 뭐?”
“귀가 먹기라도 한 거냐? 어디서 뭘 하다 왔냐니까.”
“잡... 잡화상을.”
“잡화상? 잡화상 하면서 사기라도 친 건가?”
킬베덱의 말에 마차 안의 몇몇 이들이 조소를 흘렸다.
범죄자들끼리 모이면 범죄의 질이 얼마나 흉악한지로 계급이 정해지는 법.
잡화상 사기꾼은 잡범 중의 잡범이었다.
“원래는 모험가를 했다. 그러다가 은퇴한 거고.”
“여기서 모험가나 용병 안 하던 놈도 있나? 몽둥이 하나 꼬나 쥐고 마을 문 기어나가면 모험가고 용병이지.”
-야. 시끄럽다.
마차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기세 좋게 떠들던 범죄자들이 움찔했다.
킬베덱은 자신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들이 응징을 몇 번 당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지나치게 외부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 같나?”
“나도 모르지. 염병. 아마 흑마법사의 실험체로 팔려는 거 아닐까.”
“노예로 팔려는 걸 수도 있고.”
“최근에 노잡이 부족한 지역이 어디었지? 북부에 풍랑이 심해서 나가려는 노잡이들이 없다고 들었는데.”
“제기랄. 뭐든 좋으니까 흑마법사의 실험체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범죄자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두려움을 달래려고 했다.
그 순간 마차 창문 밖을 본 킬베덱이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
“저 놈 왜 저래?”
“말려! 입 막아! 같이 처벌받는다고!”
범죄자들이 웅성거려도 킬베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 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했다.
“머저리 병신 새끼야! 마차 문이 연다고 열렸으면 우리가 나갔겠지! 멈춰! 같이 죽고 싶냐!”
“비켜! 나가야 해! 우리 지금 에인로가드에 가고 있다고... 읍읍!!!”
범죄자들은 킬베덱을 제압해서 입을 막았다.
다행히 밖의 이방인은 들어오지 않았다.
“에... 에인로가드? 거기 마법사들 소굴 아닌가?”
“그,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불법적인 마법사들은 아니잖아?”
“그렇다면 우리 같은 범죄자들을 왜 데리고 가는데?”
“......”
잠깐의 침묵.
킬베덱은 괴력을 발휘해 범죄자들을 밀어내더니 다시 문으로 달려갔다.
“나갈 거야!!”
“저 미친 새끼 막아!!”
남은 범죄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대체 에인로가드가 어떤 곳이길래 저 놈이 저런단 말인가?
* * *
“안녕하십니까. 오리퓰라스 씨.”
이한은 제국 법무관으로 131년간 근무하고 있는 악마, 오리퓰라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자네도 안녕한가!
오리퓰라스는 유쾌하게 인사했다.
“오늘 기말고사 내용을 여쭤 봐도 될까요?”
어렵지 않네. 제국의 선량한 사람들과 사악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시험일세.
자세한 설명을 들은 이한과 학생들은 신기해했다.
“외부에서 손님들을 많이 데리고 온 건가?”
“사악한 사람들은 어떻게 데리고 온 거지?”
“아마 데리고 온 사람들 중 사악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