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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0화 (590/687)

590화

마법사는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는 법이라지만, 이건 정말로 궁금하군.

오리퓰라스는 진지하게 물었다.

이전에 들어온 학생들이 사용한 방법들은 오리퓰라스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방법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보여준 방법은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제국 법무관으로 131년간 근무한 오리퓰라스의 눈을 속이다니.

대체 어떤 방법으로?

“사실...”

사실?

“그러니까... 그런데 이거 밝히면 성적에 영향 있습니까?”

없네! 그만 애태우고 말해주게!

오리퓰라스는 호기심에 몸이 달아올라서 외쳤다.

로지네 교수도 아닌 척 시치미를 뗐지만 귀는 쫑긋거리고 있었다.

“그, 사실 제가 예전에 싸워서 붙잡은 적 있던 범죄자입니다.”

“......”

“......”

로지네 교수도, 옆에 있던 선량한 제국 시민 우발도 할 말을 잃었다.

킬베덱은 수치스러움에 고개도 들지 못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킬베덱의 귓가에는 ‘저런 어린 마법사 한 명도 못 이기고 붙잡혔다고?’란 환청이 들려왔다.

그리고 사실 그 환청은 대충 맞았다.

‘대체 언제 싸운 거지? 어지간해서는 신입생하고 만날 일도 없을 텐데?’

‘아무리 마법사라도 그렇지 아직 어린데 저렇게 잡히다니. 별로 실력이 없는 모험가였나보군.’

킬베덱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변명에 나섰다.

“실은 그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

만점... 만점!!

감동으로 부르르 떨던 오리퓰라스가 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쳤다.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방법이었다.

*         *         *

“특이한 시험이었어 정말.”

“연기하시는 분 잘하더라. 진짜 범죄자 같던데.”

“......”

이한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친구들을 겁주기 싫어서 참았다.

밖에서 범죄자들을 납치해서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들어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 어차피 기말고사도 얼마 안 남았다.’

그 많던 시험들이 차례대로 끝나가고 점점 주말이 가까워지자 학생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이한이 보기에도 이번 기말고사는 올해 봤던 시험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었다.

놀랍게도 학생들의 얼굴에 좌절, 고통, 절망, 후회 등등의 감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라면 시험 기간에는 특히 저런 감정들이 흉터처럼 깊게 새겨져 있어야 했다.

역시 이런 데에는 기말고사 전에 있었던 대탈주 사건이 컸다.

따뜻한 식사와 편안한 이부자리, 그리고 넉넉한 교보재가 있다면 마법을 공부하면서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다!

이 비결을 깨달은 학생들은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나도 놀랐다.’

친구들이 배 부르고 등 따뜻해지는 것만으로 이렇게 강해질 줄이야.

이한은 나중에 해골 교장을 만나면 한 번 말해볼까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별로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군.’

“계십니까?”

-들어와! 들어와!

지독한 독 안개를 통과하고 거인들이 머무는 지하 창고에 도착한 이한은 안으로 들어갔다.

시험을 보는 동안에도 이한은 거인들을 종종 찾아와서 확인하곤 했다.

일주일 가까이 머물러야 하는 만큼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거인들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한의 말을 잘 들어줬다. 거인과 쌓은 우정은 이런 지하 창고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별 일 없군.’

몇몇 거인들은 코를 크게 골아대며 자고 있었고, 몇몇 거인들은 창고 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었으며, 몇몇 거인들은 거인 체스(체스와 비슷했지만 거인과 산맥파괴양만 말로 사용하는 변형 체스였다)를 두고 있었다.

“별 일 없으셨죠?”

-있었다!

“?!”

이한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혹시 식량이 떨어지셨습니까?”

-아니다! 그보다 마법사, 우릴 먹보로 생각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거인 여러분들은 너무 적게 먹어서 제가 걱정될 정도입니다.”

이한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거인들은 이한의 아첨에 너무나도 즐거워했다.

-그래? 그런가?

“예. 제가 저번에 말한 가이난도란 친구 아십니까? 그 친구가 먹는 양은 훨씬...”

-아! 그 스튜가 들어 있는 냄비를 머리에 쓴 친구?

-망토로 불을 끄려다가 옷이 다 타버린 친구?

-탑 위에서 날아보려다가 와이번한테 납치당한 친구?

“마지막은 아닌데요?”

이한은 의아해했다.

마지막은 이야기 한 적 없었던 것이다.

거인들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라? 아니었나?

-이상하다? 그럼 누구지?

-난 이미 가이난도라고 했다. 다른 거인들한테도 말했다.

-그럼 그냥 가이난도라고 하자!

거인들이 알아서 타협하는 동안 이한은 이야기를 원래대로 돌렸다.

“무슨 별 일이 있었습니까? 식량이 아니라면 혹시 다른 선배들이 찾아왔다거나...?”

-아. 마법사들 여기 온 적 있다.

“!”

이한은 긴장했다.

다른 선배들이 이 지하 창고에 접근하는 건 가장 가능성 높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거인이 있다고 소문을 내거나, 혹은 볼라디 교수한테 직접 말할 수도 있었으니까.

‘음. 아니다.’

이한은 방금 생각했던 위험성 중 볼라디 교수한테 직접 말하는 가능성은 제외했다.

아무리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봐도 볼라디 교수한테 직접 말하는 선배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들어왔습니까?”

-아니. 접근하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친구들이 데리고 도망쳤다.

“......”

이한은 아직도 농도 높게 펼쳐진 독과 흑마법 함정들을 떠올리자 조금 걱정이 됐다.

흑마법 학파의 선배들이 가진 이미지가 이한 때문에 괜히 나빠지면...

‘어쩔 수 없다. 나중에 해명하는 수밖에.’

이한은 내년에 2학년이 되면 꼭 흑마법 학파의 선배들을 위해 대신 변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식량도 마법사도 아니면 뭡니까?”

-여기 괴물 왔었다.

“에인로가드에 괴물이 너무 많아서...”

이한은 괴물이라고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솔직히 숫자로만 놓고 보면 학생보다 괴물이 더 많은 게 에인로가드였다.

“혹시 날아다니는 해골 같은 건 아니죠? 그건 진짜 위험합니다만.”

-그거 말고!

-저번에 마법사가 말해준 흡혈괴물이다.

“...!!!”

이한은 깜짝 놀랐다.

에인로가드 지하 어딘가에 있다가 깨어나서 데스 나이트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흡혈괴물.

당연히 산맥으로 도망갔을 줄 알았는데...

학교 지하에서 다시 발견될 줄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봤다. 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우릴 보고 도망쳤다.

-아주 꽁지가 빠지게!

거인들은 자부심 넘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으음.’

그러나 이한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상대가 거인을 보고 도망친 건 그럴 수 있었다. 거인들은 아무래도 강력한데다가 싸워봤자 좋을 게 없는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도망쳤다니.

상대가 생각보다 교활하고 지능적이라는 뜻이었다. 저번에 데스 나이트한테 당한 걸 교훈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했다.

학습 능력이 좋은 몬스터만큼 성가신 놈도 없는 법.

‘기말고사 끝날 때까지만 안 마주치면 되는데.’

-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

-그 놈이 마법사 찾는다.

-맞아. 마법사 냄새 맡더라.

“...?!?!!!!”

이한은 오늘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놀랐다.

“절... 찾는다고요? 착각이 아니라?”

-착각 아니다. 마법사 냄새 맡는 거 안다.

-맹수들 자주 그런다. 양도 화나면 화나게 한 사람 냄새 맡아서 허리 부러뜨린다.

여기 에인로가드 산맥의 거인들은 사나운 몬스터들을 목축하는 재주가 뛰어났고, 그런 만큼 몬스터들의 움직임에서 그 의도를 추측하는 데에도 능했다.

그만큼 거인들이 흡혈괴물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건 무게감이 있었다.

“절 왜 쫓아오죠? 제가 딱히 잘못한 게... 음, 없진 않지만 데스 나이트들이 더 잘못한 것 같습니다만.”

흡혈괴물과 싸울 때 이한도 공격을 조금 하긴 했지만 데스 나이트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원한을 갚고 싶다면 데스 나이트들을 먼저 쫓아가야 하지 않나?

-무슨 소리냐. 마법사?

-마법사, 아직 짐승 잘 모른다. 양 더 키워봐야 한다.

거인들은 이한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몬스터들의 습성에 대해 아직 경험이 적었던 것이다.

-짐승은 맛있는 먹잇감을 쫓아가지 자길 때린 사냥꾼을 쫓아가지 않는다.

-맞다, 맞아. 마법사한테 꽂힌 게 분명하다.

“!”

그제야 이한은 거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거였나??’

흡혈괴물이 여기 지하 창고에 온 건 남은 이한의 냄새를 쫓은 게 분명했다.

그랬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거인들을 만나 도망치긴 했지만...

‘마력 때문인가? 젠장.’

생전 처음 만난 흡혈괴물이 이한에게 군침을 흘리는 건 마력밖에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마법사. 우리가 할 말 있다.

-맞다. 맞아.

자고 있던 거인들도 일어나고 벽화를 그리던 거인들도 다가오고 거인 체스를 두던 거인들도 게임을 멈췄다.

정확히는 지던 거인이 멈췄다. 이기던 거인은 씩씩 화를 냈다.

다 모인 거인들은 팔짱을 끼며 단호하게 결심을 밝혔다.

-우리가 호위를 서주겠다.

“...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짐승 놈은 성가실 거다. 특히 마법사한테는 더더욱.

“...아, 아니.”

순간 솔깃했던 이한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거인들이 든든해도 경호로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볼라디 교수의 시험을 떠나, 즉시 전 학년에 미친 학생으로 소문이 퍼질 테니까.

-저 후배가 거인을 호위로 데리고 다닌다더라.

-진짜 개미친놈인가봐...

“그럴 순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발각되면 안 됩니다.”

-아. 맞다.

-그랬지.

거인들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시무룩해졌다.

이한이 걱정되는데 밖에 나갈 수 없다니.

“저 괜찮습니다. 제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가?

-지금 그 힘 센 마법사 피해서 숨어 있는 거 아니었나?

거인들은 제국어에 서투른 거지 멍청한 게 아니었다.

치사하게 사실을 휘둘러 아픈 곳을 찔러오자 이한은 움찔했다.

“...배그렉 교수님은 조금 예외적이고요.”

-날아다니는 해골도 못 이기지 않나?

“교장 선생님도 좀 예외...”

-그 똑똑한 사람-트롤은?

“가르시아 교수님도... 아니, 진짜 저 정도면 몸 잘 지키는 편입니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인들이 짠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사. 괜찮다. 원래 마법사는 병약하다.

-튼튼한 전사가 지킨다. 마법사는 보호받는다. 원래 그렇다.

‘억울하다.’

이한은 비교 상대들이 너무 센 탓에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정말 잘 지키는 편인데!

-마법사. 도움 필요하면 우리 불러라.

-우리가 도와주러 가겠다.

“예... 감사합니다.”

이한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잠깐. 교장 선생님한테 속은 거 아니야?”

파셀레트 교수는 기말고사 직전에야 당연히 먼저 떠올렸어야 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어려운 시험을 달라고 하진 않을 것 같은데...”

해골 교장이 ‘이한은 더 어려운 시험 보고 싶어하더라’라고 말해서 그렇게 준비했다지만, 잘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학생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반응을 보면 알겠지! 그게 거짓말이라면 자기가 말할 거야!

다른 인격의 외침에 파셀레트 교수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교장의 말이 거짓이라면 학생 본인이 ‘교수님 제 시험이 이상합니다’라고 말할 테니까.

옆에 다른 친구들이 받는 재료와 전혀 다른 재료를 받는데 눈치를 못 챌 리 없었다.

잠시 후.

학생들이 들어왔다.

각자 자기 자리에 도착한 학생들은 재료와 시험 내용을 확인했다.

이한도 확인하더니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시험을 시작했다.

‘어... 진짜였나?’

파셀레트 교수는 해골 교장한테 살짝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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