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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1화 (591/687)

591화

‘말도 안 되는 학교 같으니.’

이한은 투덜거리며 액막이를 만들었다.

어차피 불평해봤자 교수들은 들어주지도 않으리라.

“나눠져라, 깃들어라.”

주문과 함께 보라색 뼈에 마법이 깃들었다.

예지 마법 강의라고 하지만, 사실 시간을 따져보면 예지 마법보다 그 외의 마법을 더 많이 배웠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시전하는 <하급 대가 분산>이었다.

마법을 시전할 때 시전자에게 들어오는 리스크를 다른 물건들에 분산시키는 마법.

물론 강력한 예지 마법 같은 경우 이런 마법으로도 감당이 불가능했지만, 1학년 학생들이 치는 점술 수준이라면 이 정도도 충분했다.

옆에 있는 티질링 사제는 능숙하게 삼각형을 중첩시켜가며 액막이를 만들었다.

저주 받은 아티팩트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들은 이런 저주를 견디고 방어하는 데에 능했다.

도형이나 숫자를 사용한 수비학(數秘學)으로 액막이의 구조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도 교단의 지혜 중 하나였다.

1차 완성을 끝낸 티질링은 이마의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은 다음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아직 뼈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

“아. 진짜 더럽게 단단하네.”

이한은 이를 갈며 뼈를 두드렸다.

일반적으로 아티팩트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가지는 특성은 높은 마력 전도율이었다.

한마디로 마력이 잘 통하고 오래 머무르는 소재여야지 아티팩트로 쓰기 좋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파셀레트 교수가 (강제로) 쥐어준 보라색 뼈는 대체 무슨 재질인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마법을 튕겨냈다.

액막이 아티팩트는 튼튼해야 한다지만 아무리 튼튼해도 마법 자체가 걸리지 않는다면 무용지물.

이한은 눈을 감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해내는 수밖에.’

마법이 안 걸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튕겨내는 거라면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이한은 뼈를 잡고 마력을 미친듯이 불어넣었다. 원래라면 즉시 터져나가야 했지만 뼈는 그 재질이 튼튼했는지 진동만 할 뿐 어떻게든 견뎌냈다.

‘길들인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방법은 방법이었다.

이한의 마력에 물든 물건이라면 이한의 마법도 튕겨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한 번.

두 번.

세 번...

다른 친구들이 각종 금속과 준보석들을 사용한 구슬들로 액막이의 구조를 바꿔가고 간단한 점술로 테스트를 하는 동안 이한은 뼈를 깎고 또 깎았다.

“워다나즈. 괜찮냐? 시간이...”

“아.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겠냐!”

“아, 아니. 걱정되어서 한 소리야.”

“재촉을 하면 더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아티팩트란 건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겠냐.”

‘아, 아티팩트 장인!?’

말을 건 친구는 이한의 모습에서 수십 년 동안 아티팩트를 만든 장인의 환상을 느꼈다.

이한은 툴툴대면서 뼈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정도면 걸릴 것 같은데... 아직 부족한가.”

“워다나즈 정말로 시간이...”

쾅!

뼈 기초 작업을 끝낸 이한은 번개처럼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지팡이를 휘둘러 뼈를 쪼개고 모양을 변화시킨 다음 그 위에 마법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나눠지고, 깃들어라. 나눠지고, 깃들어라. 나눠지고...”

다른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연속해서 마법이 시전됐다.

빠르게 주문을 읊는 모습에서 마력 고갈이나 탈진, 마법 역류가 걱정됐지만 이한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작업을 해냈다.

그 뒤로도 이한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쪼개지고 모양이 변화된 뼈들이 정확한 위치로 움직였다.

“세, 세상에...!”

“아발카인이 환생했나봐!”

몇백년 전의 아티팩트 장인의 이름까지 나올 만큼 이한의 작업 속도는 놀라웠다.

학생들은 그저 눈만 깜박이며 작업을 지켜볼 뿐이었다.

착착착착착!

조립을 끝내고 마무리를 마친 이한은 탁자 위에 액막이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워다나즈! 워다나즈!”

“노역의 천재!”

“그건 욕 아니야?”

강의실 앞에 앉아 있던 파셀레트 교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험중이다.”

“앗. 죄송합니다. 교수님.”

*         *         *

시험이 끝나고 이한이 제출한 액막이를 확인한 파셀레트는 감탄했다.

다른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사실 아티팩트는 재료가 큰 영향을 주긴 했다.

해골 교장이 주고 간 뼈는 무려 지옥혈맥양의 뼈였으니 그걸로 완성시킨 아티팩트의 성능이 다른 것보다 뛰어나도 놀랍지는 않았다.

정말 놀라운 건 제한된 시간 안에 이 뼈를 어떻게든 길들여서 액막이 아티팩트로 완성시켰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파셀레트 교수도 시험 중반까지만 해도 ‘남은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을까?’하며 의아했었으니까.

재료를 제압하는 강한 힘도 힘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진 군더더기 없는 작업 속도도 큰 몫을 차지했다.

“버두스 교수에게 배운 건가?”

“...그르륵.”

이한은 혀 저주를 맞은 마법사처럼 앓는 소리를 냈다. 파셀레트 교수는 순간 이한이 저주에 걸렸나 싶어 당황했다.

“괜찮은 거 맞지?”

“...괜찮습니다. 버두스 교수님한테 배운 거 맞습니다.”

‘방금 뭐였지?’

교수는 의아했지만 이한의 표정이 심각해서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액막이 잘 만들었다. 쉬운 재료가 아닌데 용케 길들여서 만들었어. 이 정도라면 쉬운 점 몇 번 정도는 충분히 견뎌낼 거야.”

“감사합니다.”

이한은 증오, 분노, 원망, 슬픔을 감추고 표정을 관리했다.

그 다음 교수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만.

“사실 네가 이걸 자청했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괜찮나 싶었지만, 역시 미래란 건 알 수 없는 법이지.”

“그렇... 예? 자청이요?”

“이거 쓰겠다고 자청했다면서?”

이한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교장 선생님이 그러셨죠?”

“어.”

“교장 선생님이 혹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으셨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한은 이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셀레트 교수는 예지 마법의 달인이면서 왜 저런 뻔한 사실이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해골 교장이 낄낄대며 뭔가 주고 갔을 때에는 수상한 낌새가 있는 게 당연한 것인데.

‘공범인데 모르는 척 하는 거 아니야?’

이한은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그야 네가 아무 말도 없이 시험을 시작하길래, 네가 자청한 게 맞겠구나 싶었지.”

“......”

*         *         *

티질링은 강의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이한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착각이겠지?’

얼음 조각상 같은 소년이 눈물을 흘릴 리 없지 않은가.

“괜찮으십니까?”

“티질링 사제. 난 언젠가 리치를 쓰러뜨리고 싶어.”

“...네?”

“아무것도 아니야. 시험은 잘 봤나?”

“95점 나왔습니다.”

“저런. 너무 상심해하지 마. 다음에 잘 보면 되지.”

“......”

티질링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이, 이것도 잘 봤다고 생각합...”

“그래. 그런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한 거지. 훌륭해.”

“......”

신전에 저주 받은 아티팩트를 비싸게 팔려는 사기꾼이 찾아와도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티질링이었지만,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앗!’

티질링은 자기 자신이 지팡이를 꽉 쥐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서 힘을 뺐다.

대체 무슨 짓을?

‘화제를 돌려야겠다!’

“이제 남은 시험이 어떻게 되십니까?”

“춤하고 환상마법, 치유마법 정도.”

“저는 이번 시험으로 다 끝났습니다.”

티질링은 대답하고서 놀랐다.

자신의 목소리에 뽐내는 듯한 기색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 지금 나보다 시험 빨리 끝났다고 자랑한 건가?”

“아, 아니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티질링은 황급히 부정했다.

자기 자신이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자랑할 수도 있지... 해도 괜찮아. 내가 많이 듣는 게 내 잘못이지 네 잘못은 아니잖아.”

“정말 실수였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시험이 끝나면 누구나 즐겁기 마련이니까.”

정확한 이유는 시험이 끝나서가 아니었지만, 티질링은 자세히 말하는 대신 반성의 의미로 침묵하기로 했다.

“?”

그렇게 침묵하려던 사제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런데...”

“물어볼 거라도 있나?”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시험은 아직 안 보시지 않았습니까?”

“...아차. 그랬지? 하하. 내 정신 좀 봐. 이걸 잊고 있었네.”

이한은 호탕하게 웃었다.

티질링은 그 모습에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뭘까?

“그걸 잊으실 리가 없...”

“앗, 티질링 사제! 저기 창문 밖을 봐! 애들이 에인로가드의 표어를 깃발에 새겨 넣었군! 제법 괜찮은데?”

기초 제국 문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에인로가드에 어울리는 표어를 하나씩 깃발에 새겨서 뽐내듯이 걸었다.

-부자유를 통한 자유의 추구!

-걸린 놈이 나쁜 놈이다!

-별빛보다 은밀하게, 달빛보다 냉철하게!

“...저게요?”

“나, 나름 괜찮지 않나?”

*         *         *

“어...”

“환상 마법 시험 맞지?”

이한보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은 키르민 교수의 마탑 근처를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원래 환상 마법의 달인인 만큼 공방 주변도 변화무쌍하긴 했지만, 오늘은 좀 더 특이했다.

마탑 대신 헛간 수십 채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키르민 교수는 평소처럼 현을 튕기는 듯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환영했다. “안녕하세요. 쿠 교수님.”

“어, 기말고사는 환상 마법으로 싸우는 거 아니었어요?”

학생들 중에는 환상 마법 대결이 기말고사 아닐까 예상했던 이들이 제법 됐다.

워낙 중점적으로 다뤘던 만큼 기말고사에서도 다룰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키르민 교수는 쾌활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런, 저런, 저런. 강의 시간에 많이 다뤘다고 기말고사에 꼭 나오란 법은 없지.”

‘아쉽군.’

이한은 환상 마법 대결이 기말고사가 아니라는 것에 살짝 실망했다.

그게 시험이었다면 쉽게 만점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안심하고 있구나. 워다나즈. 하긴, 저번에 나 같은 교수하고 대결한 게 조금 그랬지? 시험 때도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겠다.”

“네? 시험 때는 다른 친구들하고 붙는 거 아닙니까?”

키르민 교수는 이한의 질문에 아주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는 멈칫했다.

“아. 진심으로 물은 거구나.”

“...예.”

“그럴 순 없지. 의미가 없잖아.”

“때로는 의미 없는 것도 확인의 뜻으로...”

“무슨 소리를. 볼라디도 그런 시시한 식으로 시험을 통과했다고 하면 실망할걸.”

‘실망 좀 시켜도 되지 않나?’

사람은 실망 좀 한다고 죽진 않았지만 교수와 싸우면 죽을 수도 있었다.

“자. 오늘 기말고사 시험은 간단한 간이 미궁 만들기다. 앞으로 에인로가드를 다니다보면 느끼겠지만, 자신의 장소를 지킬 방법은 생각보다 중요해.”

제국의 동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법사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탑을 세워서 공방으로 사용하는 걸 좋아했다.

물론 그런 곳은 그냥 건축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의 보물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방어 수단도 필수적으로 있어야 공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뛰어난 환상 마법사들은 수천 명의 군대가 몰려와도 자신의 자취가 발견되지 않는 법.

“이틀 동안 각자 간이 미궁을 만들고, 그 뒤에 다른 학생들의 간이 미궁에 들어가 보게 될 거다. 미궁이 얼마나 침입자를 잘 막아내는지 평가할 거고. 질문 있는 사람?”

학생 몇몇이 손을 들었다.

“그래. 뭐가 궁금하지?”

“워다나즈... 아차. 다른 학생의 미궁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떻게 정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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