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4화 (594/687)

594화

“자. 이야기 끝난 거니까 이거나 꿰매.”

“아오. 가이난도 저 자식. 환상 마법을 듣게 했어야 했는데.”

투덜거리면서 바느질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이한은 의아함을 느꼈다.

어라?

“왜 다들 바느질을 하고 있지?”

물론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옷이라 하더라도 에인로가드의 험한 생활을 하다보면 헤지고 찢어지고 가끔은 불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친구들이 단체로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바느질을 하는 걸 보니 찢어진 걸 꿰매는 게 아니라, 마치 외투 위에 문양을 덧대는 것 같은...?

“너희 혹시 옷 위에 마법을 추가하려는 거냐? 그러면 그런 식으로 실을 대충 꿰매면 안 돼. 일단 마법 처리부터 해야 할 텐데.”

“어, 그냥 예뻐서 하는 건데.”

“...응?”

“그, 그린벨 교수님 시험 있잖아.”

<춤과 사교> 기말고사는 고되고 힘든 삶을 보내는 1학년 학생들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다.

어떤 공부도 어떤 준비도 할 필요 없이 그냥 가서 즐겁기만 하면 승리하는 시험.

물론 워 모 학생처럼 ‘시험이라면 분별력 있어야 하지 않나’같은 의견도 있긴 했지만 매우 극소수의견에 불과했다.

하여간 이 시험에 학생들이 거는 기대는 매우 드높았다.

성적과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더 화려하게 옷을 꾸미려는 학생들이 나올 정도로.

“그러니까 지금 성적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냥 춤 출 때 더 화려하게 보이려고 문양을 추가로 외투 위에 달고 있다는 건가?”

“응.”

이한은 오물덩어리를 보는 눈빛으로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분위기를 깨달은 친구들이 다급히 변명에 나섰다.

“아, 아니. 예쁘면 좋잖아.”

“그리고 문양은 마법에도 도움이 돼.”

마법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문양들은 마법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엄밀하게 계산된 문양이나 그런 거였지 지금 가이난도가 붙이는 <리치를 쓰러뜨리는 왕자> 문양 같은 건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냥 멋으로 붙이는 거였다.

“시험 공부는 다 했냐?”

“난 다 끝났는데.”

“나도.”

“......”

이한은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기말고사를 끝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났단 말인가?

“그, 그렇군. 그럼 열심히 해라.”

“워다나즈는 안 끝났나?”

“쉿. 당연히 안 끝났겠지. 그런 거 묻지 마.”

배려심 넘치는 학생 몇몇은 친구의 입을 막았다.

이한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앉아서 남은 시험들을 확인했다.

의외로 확인해보니 시험이 많이 남지는 않았다.

춤과 사교는 제외하고, 볼라디 교수의 시험, 알카시스 교수의 시험...

“잠깐. 너희 치유 마법 시험 남았잖아?”

“......”

“......”

친구들은 멈칫했다.

“가이난도?”

“그건 어차피 그냥 포기할 거라서 괜찮... 지 않구나?”

말하던 가이난도는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외투를 집어넣었다.

기껏 애써서 만든 문양이 뜯겨나가는 건 가슴 아파서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         *

임시 무도장.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경악의 시선으로 가이난도의 외투를 쳐다보았다.

“저 황자 놈...!”

“세상에, 저걸 봐.”

저 외투에 새겨진, 리치를 쓰러뜨리는 왕자의 문양은 너무나도 근사하고 멋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질투심에 부들부들 떨던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중얼거렸다.

“저 자식은 저걸 하느라 공부도 안 하고 시간을 날렸을 거야.”

“...맞아! 분명 그랬을 거다.”

하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패배감이 가득했다.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대가나 손해도 저 근사한 문양 앞에서는 하찮게 느껴졌다.

저 외투만 가질 수 있다면!

“요네르. 혹시 내가 모르는 마법이 저기 걸린 건 아니지?”

“그냥 예뻐서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탑 학생들이 질투와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가이난도의 외투를 보는 게 믿기질 않았다.

저 문양이 그렇게 탐나나?

‘다음부터는 문양을 추가해서 팔아야 하나?’

하지만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시간에 새 재료를 구해서 물건을 더 만들어도 모자란데 아무 쓰잘데 없는 문양을 추가해야 한다니.

저런 쓸데없는 건 만들고 싶지 않다!

이한은 자기 자신에게 의외로 아티팩트 제작자로서의 자존심이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가이난도 학생! 왜 거기서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어요? 빨리 들어오세요!”

무도장 안에 있던 크린발 교수는 발을 딸각거리며 가이난도를 불렀다.

일부러 무도장 앞에서 감속 저주라도 맞은것마냥 천천히 걷던 가이난도는 그제야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

가이난도가 가까이 다가오자 크린발 교수는 깜짝 놀랐다.

“춤꾼의 구두에 맹세코! 이런 멋진 외투는 제국 사교계를 돌아다닐 때도 본 적 없는데요?”

“후후. 감사합니다.”

가이난도는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든 외투의 옷깃을 다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도장 안은 에인로가드가 아닌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빛들이 굴절되고 산란되면서 다양한 색들을 안개처럼 뿌려댔고, 곳곳에 설치된 환상 마법들이 더욱 더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흘러나오는 연주곡을 체크하던 아산이 가이난도를 발견하고 말했다.

“가이난도. 연습상대 좀 해주겠어.”

“안 돼.”

“한 바퀴만 돌... 뭐?”

“안 된다고.”

“왜?”

“이 옷을 봐.”

가이난도는 시험 기간을 온통 갈아넣은 것 같은 아름다운 외투의 문양을 가리켰다.

그걸 본 아산은 깜짝 놀랐다.

“이, 이건... 밖에서 사온 거야?”

“밖에서 사오긴 무슨! 내가 직접 만든 거야.”

“그, 그래.”

고개를 끄덕이던 아산은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그런데 연습하자는 거하고 저게 뭔 상관인데?”

“이 외투가 상하면 안 되니까 연습 못한다는 거지.”

“...넌 100% 확률로 얼간이야.”

“흥. 내 외투를 질투하는군. 설령 내가 얼간이라 하더라도 난 외투가 있는 얼간이야. 넌 외투가 없는 아산이고!”

아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이난도의 기세에 압도된 탓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가이난도와 말싸움을 해서 밀리다니!

이건 말도 안 됐다. 저 외투의 근사함에 압도된 게 분명했다.

“두... 두고 보자. 가이난도!”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그러는 사이 요네르와 가볍게 연습으로 한 곡 추고 온 이한이 다가왔다.

하도 보는 놈들마다 ‘악! 저 외투가! 저 외투가!’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대니 슬슬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가이난도. 네가 밤에 잠도 안 자고 저걸 만든 건 잘 알겠는데...”

“아, 아닌데? 증거 있어?”

가이난도는 평소와 달리 좀 더 뻣뻣한 태도로 반항했다. 외투가 용기를 주고 있었다.

이한은 무표정하게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가이난도는 즉시 양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미안해! 앞으로 밤에 일찍 잘게!”

외투가 용기를 주긴 했어도 한계가 있었다. 지팡이를 보자 바로 가이난도의 제정신이 돌아왔다.

“뭘로 만든 거야 이거? 이 보라색은 채도가 좀... 높은데?”

이한은 1학년 암시장에 돌아다니는 물감이나 염료에 대해서는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사실 그냥 돌아다니는 물건에 대해서도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워낙 인맥이 넓은 만큼 소식이 안 들어올 수가 없었다.

1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는 물감이나 염료는 에인로가드의 강의실에서 잠깐 ‘빌렸거나’ 혹은 직접 만들었고, 투박한 단색 계열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 밖에 외출할 때 이런 원료도 조금 사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중요성이 밀리는 만큼 다양한 색을 갖추진 못했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지금 이 보라색은 밖에서 파는 보라색보다 신비하고 은은한 빛이었다.

이걸 가이난도가 어디서 구한 거지?

“...비밀 지켜줄 거지?”

“그래그래.”

“...진짜 지켜주는 거 맞지?”

“가이난도.”

“아, 알겠어. 말하면 되잖아.”

가이난도는 어지간히도 독점하고 싶었는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흑암관 있잖아.”

모르툼 교수의 공방이자 마탑인 흑암관.

이한처럼 흑마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그 뒤에 묘지들 있지. 거기에 독충을 처리하는 장소가 있더라고... 그런데 색을 보니까 예쁘다 싶어서...”

친구의 말에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지금 그러니까??

“독충의 독으로 옷을 염색했다고!?”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게 들리잖아!”

“이상한 게 맞으니까 그렇겠지.”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흑암관 뒤쪽에 독충을 버리는 곳이라면 딱히 정해진 규칙 없이 섞어서 버리는 곳이었다.

당연히 거기에서 발생된 독도 그 성분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섞여 있을 터.

독기(毒氣)가 사라질 때까지 내버려둬야 하는데 그 색이 예쁘다고 염색을 시도하다니.

겁이 없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나였다.

둘 다일수도 있었고.

“몇 번이고 확인했다고. 진짜 괜찮았어.”

가이난도는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나름 확인이란 확인은 다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외투를 입고서도 별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증거 아니겠는가?

“잠깐. 이 파란색도 좀 신기한데. 이건 뭐지?”

“흑암관에 파란색 뼈가 있길래 그거 갈아서 안료로 만들었... 악! 악! 이한! 안 돼! 문양 망가져!”

이한이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휘두르자 가이난도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빌었다.

몸의 고통보다 외투가 망가질까봐 더 두려웠다.

“가이난도. 연금술에서도...”

“나 연금술 안 듣는데?”

“...하여간 정확한 성분을 모르는 요소들을 닥치는 대로 섞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이한은 지금 가이난도의 외투에 무슨 정체불명의 상승작용이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물론 그냥 외투가 정말 멋져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걸 수도 있긴 했지만, 가이난도가 우연히 저주받은 외투를 만들어낸 걸 수도 있었으니까.

이한의 경고에 담겨진 뜻을 이해한 가이난도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 외투를 가져갈 거면 내 시체에서 벗겨가야 할 거야!”

“알겠다.”

이한이 시체에서 벗겨갈 준비를 하자 가이난도는 즉시 자신의 전략을 수정했다.

“제발, 이한!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당번일도 열심히 하고 디저트도 훔쳐 먹지 않을 테니까! 이번 시험 때까지만 입게 해줘!!”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가이난도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한은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입어라. 입어. 이 자식아. 대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하고.”

“응!!!”

이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섰다.

그렇게 걸어 나오는데 마침 아덴아르트가 조심스럽게 이한에게 손짓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

아덴아르트가 머뭇거리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뭐지?’

“동작 까먹은 춤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덴아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 문양 어떻게 만드는 겁니ㄲ...”

“......”

이한은 듣지도 않고 매몰차게 홱 돌아섰다. 아덴아르트는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충격 받은 표정으로 이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         *         *

흡혈괴물은 익숙한 마력의 방향을 찾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 학교에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 죽음의 기사들에게 토벌당할 뻔한 교훈은 흡혈괴물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몇 백 년 넘게 석관 안에서 잠들었다 하더라도 실수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은밀하고 조심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무한한 마력에 가까이 접근하는 감각이 들었다. 흡혈괴물은 무도장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열린 틈새 사이로 학생들이 즐겁게 떠들며 춤추는 게 보였다.

하지만 흡혈괴물에게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무한한 마력을 찾아 시선을 돌리던 흡혈괴물의 눈에 학생 한 명이 마침내 들어왔다.

눈부실 정도로 근사한 문양이 새겨진 외투를 입은 학생이었다. 마력과 상관없이 흡혈괴물은 그 외투에 시선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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