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5화 (595/687)

595화

팟!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흡혈괴물은 외투를 입은 학생을 붙잡아서 들어 올린 상태였다.

흡혈괴물 자신도 정신을 차리고 깜짝 놀라워했다.

무한한 마력이 담긴 피를 내버려두고 이런 옷가지에 먼저 집착하다니??

“꺄아아아아악!”

“춤, 춤추러 온 놈인가?!”

비명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무도장으로 뛰어든 흡혈괴물의 모습에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몇몇 학생들은 비명을 지를 시간에 좀 더 효율적으로 행동했다.

“그 괴물이다, 흩어져!”

“각자 대형으로!”

이한을 비롯해 각 탑에서 잔뼈가 굵은 학생들은 혼란에 빠진 친구들을 정신 차리게 하며 대응에 나섰다.

각자 거리를 벌리고, 진형을 갖추고, 필요한 마법을 시전하며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몬스터가 진형에 뛰어들어 붕괴시키는 걸 막을 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이한은 선공에 나섰다.

마법 전투에 있어서 시전 속도는 위력보다도 더 중요한 법.

“암흑이여. 휩쓸어라!”

지팡이 끝에서 암흑의 파동이 출렁이며 휩쓸듯 퍼져나갔다.

흡혈괴물이 가진 재생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저런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는 생명력 자체에 타격을 주는 암흑 원소가 유효했다.

흡혈괴물은 갑자기 넓은 면적의 마법이 날아오자 빠르게 기동하며 피했다. 한 번 뛰아서 무도장의 기둥에 붙더니 다시 한 번 뛰어서 천장으로 붙었다.

그러나 이한은 애초에 공격 한 번으로 흡혈괴물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흡혈괴물이 낯선 마법에 피하는 사이 이한은 각종 강화 마법들을 시전한 뒤였다.

<공간 인지>,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 <오고닌의 박무>, <배그렉의 일순 예지>까지 시전을 마친 이한은 살벌한 벼락 줄기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흡혈괴물의 재생력이라면 저 정도 벼락 마법은 맞으면서 버틸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던 이한은 마법을 시전하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붙잡았다.

돌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돌진에 대비해!

이한이 손짓하자 지젤이 바로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달려왔다.

그 사이 필요한 마법을 시전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창 수준으로 길어진 목검을 들고 흡혈괴물을 노려보았다.

워다나즈가 흡혈괴물의 발을 한 번이라도 묶는 순간, 마법으로 날카롭게 제련된 장병기들이 흡혈괴물의 몸통을 꿰뚫으리라.

-■■■■!

그러나 흡혈괴물은 벼락을 몸으로 맞으면서 가까이 접근하지도, 혹은 그 특유의 빠른 속도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대신 붙잡아서 들고 있던 학생의 외투 문양이 상할까봐 허겁지겁 몸으로 가리며 엉성한 움직임을 보였다.

“?”

갑작스러운 적의 난입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한은 그 위화감을 바로 알아차렸다.

마법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상대의 약점을 읽어내는 것.

지금 저 흡혈괴물, 설마...?

“놈은 가이난도의 외투를 탐내고 있다! 외투를 공격해!”

“?!?!”

친구들은 뭔 소린가 싶어 당황했지만 일단 이한의 말대로 행동했다.

이한도 황당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들이 방금 한 추측이 맞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애초에 이한의 마력을 탐내서 들어온 놈이 왜 가이난도를 덮쳤겠는가.

게다가 저번에 데스 나이트와 싸울 때 그렇게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던 놈이 지금은 어정쩡하게 움직이고 있다니.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이난도 이 자식 대체 뭘로 문양을 그린 거야?’

몬스터까지 취하게 만들다니.

어떤 배합인진 몰라도 정말 기묘한 걸 만들어낸 게 분명했다.

화르륵! 화염 속성의 안개가 무도장의 공기를 채우고 덤벼들었다.

친구들이 완성한 마법이 날아든 것이다.

아무리 화염이 재생의 약점이라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법.

흡혈괴물의 재생력은 저 정도 화력으로는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흡혈괴물은 마치 외투가 불에 닿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근육과 살점을 부풀리더니 형태를 변화시켜서 몸으로 막았다.

‘진짜다!’

‘워다나즈의 말이...!’

지젤이 날카롭게 외쳤다.

“놈은 외투를 공격받는 걸 겁내고 있다. 찔러버려!”

“어... 모라디. 근데 황자는?”

“...놈이 어차피 몸으로 막아설 테니,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쳐라!”

흡혈괴물이 만약 막지 못한다면 가이난도가 맞게 되겠지만, 지젤은 지금 상황에서 친구들이 그걸 감안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검 끝에 망설임까지 있다면...

“봐라. 황자도 동의하고 있어!”

‘기절한 것 같은데.’

가이난도에게는 다행히도, 흡혈괴물에게 붙잡히자마자 가이난도는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만큼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었던 것이다.

“산(酸)이여, 유령처럼 따라다녀라!”

시아나와 요네르가 물약을 촉매로 유령 형태의 하수인을 불러왔다.

산성 공격을 뿜어내는 유령이 무도장을 채우며 접근하자 흡혈괴물은 성가시다는 듯이 몸을 휘둘러 바람을 만들어냈다.

푹!

그러는 사이 화살 하나가 흡혈괴물의 몸통에 꽂혔다.

평범한 화살이라면 재생력으로 바로 밀어냈겠지만 화살은 기묘한 소리와 함께 흡혈괴물의 살점을 태웠다.

아덴아르트는 다시 호흡하며 화살을 활시위에 물렸다.

화살에 각인된 마법 문양이 빛을 발하고 옆에 소환된 정령이 추가로 힘을 불어넣었다. 화살촉에 발라진 끈적한 연금술 용액은 적의 근육을 녹이고 뼈에 화살을 단단히 고정시켜줄 것이다.

옆에 미친 학생이 한 명 있어서 그렇지 사실 아덴아르트가 전공하는 마법 학파의 숫자도 십 년에 한 번 보일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방금 보여준 다양한 마법의 연계가 그걸 증명했다.

“...후!”

한 번의 공격을 더 성공시킨 아덴아르트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눈으로 이한을 찾았다.

아까의 대화로 인해 워다나즈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아덴아르트는 딱히 가이난도의 외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외투의 문양이 이질적이고 신기해서, 어디까지나 순수한 학구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흑마법 학파의 비전으로 만들었을 텐데 아덴아르트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친구한테 물어본 건데 이렇게 오해를 하다니.

-■■...

흡혈괴물은 황녀의 화살에서 위협을 느꼈다.

바로 방향을 돌려 제압하려고 들었다.

“막아라!”

아덴아르트의 추종자들이 앞을 막아서고 마법을 발동시켰다.

저서클의 방어 마법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몇 겹씩 겹쳐서 견고하게 완성되면 쉽게 뚫기 어려운 법.

평소에는 언제나 아덴아르트의 발목만 붙잡는 학생들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여주는 충성심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기세를 느꼈는지 흡혈괴물도 공격하려던 걸 포기하고 다시 방향을 돌렸다.

“잘했다!”

이한은 추종자들에게 외쳤다.

계속해서 흡혈괴물을 압박하고 초조하게 만들어야 했다. 방금 추종자들이 겁을 먹고 물러났다면 흡혈괴물들은 저쪽으로 치고 들어갔으리라.

“이쪽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워다나즈 님!”

“그래. 든든하군!”

이한은 그렇게 외치고 다른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황녀 쪽이 일단락된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을 뿐더러, 흡혈괴물 같이 빠른 적을 상대할 때 발이 멈추는 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

졸지에 연계 마법을 성공하고서도 추종자들한테 공을 뺏겨버린 아덴아르트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추종자들의 등짝을 쳤다.

“앗, 황녀님. 무슨...”

“네가 지금 사선(射線)을 막고 있잖아! 비켜드려!”

“아차... 제가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파지지지직!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된다.’

이한은 두 건초더미 사이에 낀 당나귀처럼 머뭇거리는 흡혈괴물의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쉽게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놈이 생각보다 가이난도의 외투를 너무나도 아꼈던 것이다.

옷이 상할까봐 거칠게 덤비지도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면서 막고만 있었으니.

이대로 시간을 끌면 학생들이 훨씬 유리했다.

머지않아 데스 나이트들이 달려올 테니까.

-■■■■■■■■!

“워다나즈!!”

친구들이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흡혈괴물이 결심이라도 했는지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이한에게 미친듯이 덤벼들었던 것이다.

쏜살처럼 달려드는 모습은 제대로 움직임을 잡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이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배그렉의 일순 예지>가 놈의 움직임을 1초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흡혈괴물은 차라리 예측이 힘들게 복잡하게 움직이는 게 더 까다로웠다.

이런 식으로 알기 쉽게 직선으로 움직이면 이한처럼 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푹!

-■!

...이렇게 대응이 가능했다.

이한은 투우사처럼 옆으로 빠져나가면서 흡혈괴물에게 새벽별을 찔러 넣고 지팡이를 섬뢰창(閃雷槍)으로 만들어서 한 번 더 찔렀다. 놈이 살벌하게 울부짖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던 지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흡혈괴물의 몸이 순식간에 베여나갔다.

“...?!”

그 때 이한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놈이 가이난도를 들고 있지 않았다.

‘설마?!’

재빨리 시선을 돌리자 무도장 뒤쪽에 흡혈괴물의 꼬리 쪽 살덩어리가 기절한 가이난도와 함께 놓여 있었다.

아까 이한에게 덤벼들기 전에 스스로 꼬리 쪽을 잘라버리고 던져놓은 것이다.

스르르륵-

이한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에게 심하게 공격당한 흡혈괴물의 몸은 그 자리에서 즉시 재생하지 않았다.

대신 꼬리 쪽 살덩어리에서 재생을 시작했다.

‘당했다!’

꼬리를 잘라주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데스 나이트들한테 당했던 흡혈괴물이 도망쳤던 속임수.

육신의 일부를 잘라놓은 다음 그걸 기점으로 재생하는 속임수였다.

순식간에 재생을 끝낸 흡혈괴물은 가이난도를 다시 들어 올리더니 무도장 입구를 통해 뛰쳐나갔다. 방금 공격을 퍼붓느라 흐트러진 포위망은 흡혈괴물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쫓아!! 놈이 가이난도를 데리고 간다!!”

학생들은 기겁해서 달려 나갔다.

몬스터에게 이렇게 허를 찔리다니.

*         *         *

‘젠장. 상황이...’

이한은 가장 앞에서 달려 나가면서도 걱정이 됐다.

무도장 안은 넓더라도 사방이 막혀있어서 흡혈괴물의 움직임이 제한이 됐다.

대형을 짜서 포위망을 만들면 흡혈괴물이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밖은 달랐다.

얼마든지 흡혈괴물이 속도로 치고 빠지면서 학생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아산, 데스 나이트들 빨리 불러와라! 지원이 필요해!”

“알, 알겠다!”

“다들 무질서하게 쫓지 마라. 놈은 다시 덤벼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리를 벌렸던 흡혈괴물이 가이난도를 나무 위에 던져놓고 사납게 돌진해왔다.

이한에게 당했던 공격이 꽤나 아팠는지 아까와는 움직임이 달랐다. 나무를 차고 위로 올라가더니 다시 한 번 가지를 붙잡고 몸을 틀어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아까와는 달리 예지가 빗나갔다. 놈에게 강하게 걷어차인 이한은 뒤로 날아갔다.

“워다나즈!!!”

“괜찮으니까 대형 유지해!”

뒤에서 달려오던 학생들의 외침에 이한은 쿨럭이며 말했다.

각종 마법은 물론이고 마력을 끌어올려서 몸을 보호하고 있었던 만큼 그렇게 타격이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방금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주문을 외울 여유를 뺏기고 놈에게 선공이 넘어간 것도 거지만, 놈이 교활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게 컸다.

방금도 끝장을 내려고 덤벼드는 대신 이한의 상태를 가늠하듯이 확인하고 물러서지 않았던가.

꽤 교활하고 신중한 괴물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번다.’

이한은 불리하더라도 근접전에서 한 방 먹여 다시 주문을 외울 시간을 만들 결심을 다졌다.

놈의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계속 맞다보면 예지도 정확해지리라.

그 때 아산이 돌아왔다.

“워다나즈!!”

“아산!”

이 순간만큼은 아산이 정말로 반가웠다. 이한은 시선을 돌렸다.

데스 나이트들이 뒤에서 달려오고 있...

...지 않았다.

아산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건 거인들이었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