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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7화 (596/687)

597화

생각해보니 워다나즈 같은 학생이라면 마법이 안 걸릴 경우 마법을 좀 더 강하게 시전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아티팩트.”

“여기 있습니다.”

선배 한 명이 재빨리 아티팩트를 꺼내서 알카시스 교수의 손에 넘겼다. 마치 쇠막대처럼 생긴 아티팩트였다.

교수는 능숙한 동작으로 거인의 콧구멍 속에 아티팩트를 갈고리처럼 쑤셔 넣었다.

“강한 대마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치유할 때는 이런 식으로 몸 안 속에 직접 마법을 때려 박을 수 있어야 한다.”

-으그륵, 코, 코 아프다.

“참아라. 낫는 과정이니까.”

-마법사. 이 마법사 무섭다.

거인은 이한을 보며 울상을 지었지만 알카시스 교수가 무서운 건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다음 상태를 확인하고... 뇌진탕이군. 필. 뇌진탕 물약 제조법이 어떻게 되지?”

“동, 동백초 세 포기와 쥐방울덩굴 한 포기를 넣고 압축 주문을 시전한 다음 삼십분 동안 끓입니다. 그 다음 색이 검어지면...”

알카시스 교수는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필은 자신이 실수를 했나 싶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후배도 볼 수 있게 종이에 써라. 필. 이걸 아직도 일일이 말해줘야 하냐?”

‘후배는 1학년인데...’

필은 조금 억울했다.

1학년 후배한테 뇌진탕 물약 제조법을 알려줘야 한다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1학년 학생한테 왜 뇌진탕 물약 제조법을...?”

“아. 혹시 쟤가 걔야? 그 워다나즈?”

“난 필과 칠 선배님이 너무 괴로워서 만들어 낸 가상의 후배인 줄 알았는데.”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고 알카시스 교수는 거인의 입에 물약을 부어넣었다.

코가 아파서 눈만 끔벅이던 거인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나았다! 안 어지럽다!

“잘 됐군. 자. 방금 본 것처럼 거인들은...”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금 복원된 강의실 벽을 뚫고 다른 거인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

알카시스 교수는 그걸 보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밖에 나가는 게 낫겠군. 다들 밖으로 나가라.”

“거인들이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치유 마법 학생들은 불안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기말고사를 쉽게 끝내는 건 바라지도 않았으니, 제발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끝났으면 좋을 것 같았다.

*         *         *

밖에서는 세상이 끝날 것처럼 느껴지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인들과 흡혈괴물의 양보 없는 육박전.

거대한 덩치를 가진 전사들은 서로 조금도 밀려나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댔다.

-크아아아아!

-우어어아아!

거인들은 특유의 전투 함성을 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한 대 맞을 때마다 흡혈괴물의 몸뚱이가 밀려나가고 터져나갔다.

그러나 흡혈괴물도 만만치 않았다.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힘을 비축해 어떻게든 한 방씩 거인들에게 돌려주었다.

거인들은 방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특히 평소 자기보다 커다란 덩치에게 맞을 일이 없었던 만큼 흡혈괴물의 공격은 거인들에게 한층 더 깊은 충격을 줬다.

-자존심 상한다!!

-우으으! 우으으!!

거인들은 비틀거리며 코피가 줄줄 흐르는 코를 붙잡았다.

그 때 이한이 회복된 거인들과 달려왔다.

“다치신 분들은 뒤쪽으로 빠지십시오!”

-나, 나 안 다쳤는데?

“헛소리 하지 말고 뒤로 빠져라!”

알카시스 교수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살벌하게 외쳤다.

이 다크 엘프 교수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가 다쳤는데 안 다쳤다고 고집 부리는 환자였다.

-진짜 안 다쳤... 으아악!

갑자기 누군가 거인의 발목을 잡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거인이 앞으로 넘어지더니 교수 앞으로 쫙 끌려왔다.

“맡아라.”

“예!”

환자가 늘어날수록 교수의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치유 마법 학생들은 괜히 주절거리는 대신 빠르게 움직였다.

“자. 거인 분.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으. 너희 못 믿는다! 마법사 다 사악하다! 마법사! 마법사! 손 잡아줘라!

“......”

“......”

이한은 지금 선배들이 보이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럽게 창피하다.’

“...저 여기 있습니다.”

-으으. 다행이다.

필은 다른 친구들이 후배를 오해할까봐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

“후배가 친화력이 좋아서 그래.”

“그, 친화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거인하고 이렇게 친해질 수가 있나...?”

에인로가드에 다니면서 못 볼 꼴 많이 본 치유 마법 학파 학생들도 거인하고 친해지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왜 없겠냐! 너희들의 사고방식이 좁은 거지. 그... 그... 그... 일렌딜! 일렌딜 같은 녀석도 친화력이 좋아서 숲에 친구가 많잖아!”

“그 일렌딜도 거인 친구는 없잖아요?”

궁지에 몰린 필을 구해준 건 알카시스 교수였다.

떠드는 학생들 앞에 날카로운 절개용 단검이 날아와서 꽂혔다.

“시간이 썩어나냐?”

“아, 아닙니다!”

살의가 담긴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재빨리 거인의 치유를 시작했다.

이한도 열심히 거인의 자상(刺傷)을 치유했다.

“??”

선배들은 당황해서 이한을 쳐다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탓에 시선은 전달되지 않았다.

‘얘는 왜 하는 거지?’

‘글, 글쎄...’

선배들이야 기말고사가 거인 치유로 대체되었으니 일한다지만, 이 1학년 후배는 멀리 도망쳐야 할 상황에 왜 이러고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치유 마법을 또 잘했다. 거인 상대로도 별다른 추가 준비 없이 치유 마법을 성공시키는 걸 보니 필과 칠이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얘도 기말고사인가?”

“아무리 라그린데 교수님이 미치셔도 그렇지 1학년 기말고사로 거인 치유를... 음...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인가!

뒤늦게 도착한 데스 나이트들은 흡혈괴물의 변화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통 몬스터가 이 정도로 폭주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본능에 따라 교활하게 행동하는 몬스터가 이렇게 폭주하다니?

“그... 이야기하면 깁니다.”

-나중에 듣도록 하지. 일단 놈을 막아라!

데스 나이트들은 학생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다음 투창을 시작했다.

강한 음에너지가 부여된 창이 꽂힐 때마다 흡혈괴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움직임을 멈추고 움찔거렸다.

-거인들이여! 뒤로 물러나시오!

-싫다! 우리 사냥감이다!

데스 나이트들은 거인들의 반발에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기사답게 다시 외쳤다.

-거인들이여!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뒤로 전진해주시오!

거인들은 데스 나이트들의 말에 속아 뒤로 전진했다. 이한은 감탄했다.

‘나보다 한 수 위다!’

과연 오랫동안 기사로서 지낸 이들답게 보통 영리한 게 아니었다.

저렇게 거인들을 속여 넘길 줄이야.

-피를 꽤 많이 모은 모양이군. 보통 체력이 아니야.

-꽤 오래 걸리겠어.

데스 나이트들은 움직임이 둔화된 흡혈괴물을 보며 끌끌댔다.

기초적인 생명력이 워낙 질긴 놈이라 외부에서 공격을 퍼부어도 다 깎는 데에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그 정도로 강력합니까?”

-사실 저렇게 폭주한 이상 토벌하는 거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네. 그냥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내버려두면 그만이거든.

저런 식으로 폭주한 몬스터의 약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저렇게 덩치를 부풀린 순간부터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던 만큼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그러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공격하면서 기다리세나.

-워다나즈 군도 한 번 해보겠나? 저런 괴물과 싸우는 건 좋은 경험이 될 걸세.

‘이미 충분히 많이 싸웠는데.’

이한은 마음 같아서는 빠지고 싶었지만 데스 나이트들이 너무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러기가 힘들어졌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의 재롱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빛 같았다.

“음. 번개 마법으로 공격해볼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재밌는 아티팩트를 갖고 있으니 그걸 활용해보는 건 어떤가? 공간이동의 광석 말일세.

-좋은 생각 같습니다.

“...?”

데스 나이트들의 반응에 이한은 당황했다.

“저 공간이동의 광석 같은 거 없습니다만?”

-음?

-으음. 그. 지팡이 끝에 박힌 거 말일세.

이한은 자신의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나무 정령이 깃들어서 뼈대를 다지고, 끝에는 서리거인 왕이 준 푸른 원석이 박혀 있었으며, 그 옆에는...

“!?!”

이한은 처음 보는 광석에 깜짝 놀라서 지팡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게 뭡니까?!”

-...그, 그걸 우리한테 물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자네가 모르면...

데스 나이트들이 황당해하는 사이 이한은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그제야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거구나!’

예지의 샘물을 마시고 강제적으로 각성해 미래에 얽매였던 때가 분명했다.

공간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조각상을 쓰러뜨리고, 조각상에게서 광석 하나를 받았었는데...

분명 이한의 기억 속에는 있었는데 방금 되짚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던 것마냥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지하는 것도 위험하군.’

“죄송합니다. 떠올렸습니다. 공간이동의 광석이었군요.”

이한의 대답에 데스 나이트들은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주인님께서 많이 힘들게 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지팡이에 박은 보석도 까먹을 정도면 좀 심하군.

“아니 이건 교장 선생님하고 딱히 상관이 없는 일인ㄷ...”

-자. 한 번 해보게. 저런 식으로 질기고 튼튼한 몬스터 상대로 공간 마법은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때가 많지.

전투 경험이 풍부한 데스 나이트들은 생전에 공간 마법을 쓸 줄 알았던 마법사들과 함께했던 경험들을 털어놓았다.

공간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들은 희귀했고 제약도 많았지만, 적절하게 사용할 경우 그 위력은 매우 강력했다.

-고작 작은 돌멩이 무게 하나 정도라고 생각하지 말게. 작은 돌멩이 하나만 공간이동시킬 수 있어도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니까. 이걸 한 번 깊숙하게 이동시켜보게.

데스 나이트는 갈비뼈 속에 숨겨놨던 독약병 하나를 꺼내 이한에게 내밀었다.

이한의 지팡이에 박힌 공간이동의 광석은 고작해야 작은 돌멩이 무게 하나 정도를 옮길 수 있었지만, 마법을 얼마든지 응용하기 마련이었다.

“알겠습니다. ...사라져라!”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광석에 정신을 집중해 주문을 읊었다.

그 순간 막대한 마력이 증발됨과 함께 광석이 공간이동 마법을 완성시켰다. 독약병이 흡혈괴물의 몸 속 깊숙이 이동됐다.

-그런데 공간이동 마법은 너무 마력 소모가 심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티팩트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비교적 젊은 데스 나이트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다른 데스 나이트들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워다나즈 군에게 저 정도는 상관없네. 실제로 거뜬하잖나.

-본인도 자신 있으니 저렇게 과감하게 시전한 거지.

“...저 몰랐습니다만.”

이한은 정색했다.

보통 이런 건 쓰기 전에 말해줘야 할 것 아닌가.

데스 위저드가 아니라 데스 나이트라 그런지 마법에 관해서는 안전상식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뭐... 음... 하긴... 아직 1학년이니...

-앗. 저기 괴물이 괴로워하는군! 독이 아주 효과적인 모양이야!

데스 나이트들은 앞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이한은 해골들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움직였다.

-■■■■■!

무슨 독을 먹였는지 흡혈괴물의 형태가 마치 홍수 뒤의 진흙 무더기처럼 무너지며 옆으로 흩어져 내렸다.

그걸 본 데스 나이트들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얌전히 죽어라, 이 괴물 놈아! 정문 주변은 내버려둬!

다른 곳은 몰라도 에인로가드 정문은 외부의 손님들도 오가는 곳이라 한 번 박살나면 바로 고쳐야 하는 곳이었다.

기껏 길을 닦고 조각상들도 예쁘게 장식해놨는데!

그러나 그런 비명도 무색하게 흡혈괴물은 발악하며 정문 옆 조각상 장식 공원들을 싹 쓸어버렸다. 데스 나이트들은 비통에 차서 울음을 터뜨렸다.

“음, 데스 나이트 여러분들?”

-으흑흑... 왜 부르나, 워다나즈 군?

“혹시 조각상 중에 살아있는 사람도 있었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면 큰일 나지. ...설마 자네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을 조각상으로 만든 사람 있나?

-아, 아닙니다! 아마도!

-저는 아닐 겁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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