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8화 (598/687)

598화

지더프는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예전에 공작 휘하의 기사와 나눴던 쓸데없는 옛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석화 마법 같은 저주를 맞고 오랫동안 방치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럴 일이 있겠나?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법 아닙니까. 지더프 경.

-그런 저주를 맞았는데 오랫동안 방치되려면 그 전에 발각돼서 죽겠지.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란 거다.

-제 생각에 몸이 통째로 바뀌는 만큼 굶어죽진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몸이 굳어버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좁은 지하감옥에 오랫동안 갇힌 죄수들은 몸이 뒤틀리잖습니까.

지더프는 오랫동안 저주에 걸려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인데도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어색했다. 바람이 조금 불었는데도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으... 으... 어...”

말을 하려고 해도 뻣뻣하게 굳은 혀와 입술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걸 본 데스 나이트들은 기겁해서 달려왔다.

-아이고!!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저는 아닙니다!

-나도 아니오!

그들 중 누군가가 실수로 손님 한 명을 조각상으로 만든 다음 저기다 던져놨다고 생각한 데스 나이트들은 최선을 다해 지더프를 돌봤다.

-손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오랫동안 조각상이 되어 있었으면 몸에 힘이 안 들어갈 거다. 일단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회복부터 해야 해!

-그 술 좀 꺼내보게. 감각이 돌아오게 해야겠어.

데스 나이트들은 수상쩍을 정도로 석화 저주 대응법에 대해 잘 알았다.

곧바로 지더프를 눕히더니 입가에 호박색 증류주를 몇 모금 부어넣었다.

“으으. 으으.”

지더프의 안색이 아까보다 덜 창백해졌다. 데스 나이트들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에인로가드의 용암’만큼 효과 좋은 술도 없지.

-일단 눕히게. 팔다리를 주무른 다음 라그린데 교수를 불러야겠어.

회색빛 세상에서 정신을 차린 지더프는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영원히 조각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는데, 용케 풀려나긴 한 모양이었다.

‘...안 들킨 건가?’

뻣뻣한 눈꺼풀 근육을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자 들킨 것 같지는 않았다.

웬 탁한 붉은색 슬라임 시체 같은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학생으로 보이는 마법사들은 뒤쪽에서 거인들을 치료하고 있었으며...

‘?!?!’

지더프는 초현실적인 광경에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다행히 아직 목이 굳어 있어서 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정신 차리자. 상황을 파악해야 해.’

일단 대마법사의 하수인인 데스 나이트들은 별다른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 지더프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게 분명했다.

-라그린데 교수. 여기 오랫동안 조각상이 된 손님이 있소만...

“작작해라. 정신 나간 깡패들아. 또 마음에 안 든다고 손님을 조각상으로 바꿔서 던져놓은 거냐?”

-무, 무슨!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워다나즈 군 오해하겠네!

알카시스 교수의 일갈에 데스 나이트들은 허둥대며 부정했다.

몇몇은 이한에게 ‘교수의 음해에 속지 말라’며 외쳤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평소에 조각상으로 자주 바꾸셨나보군.’

그래도 교수는 혀를 한 번 차더니 원기 회복용 물약을 던져주고 가버렸다.

데스 나이트는 물약을 지더프의 입가에 부어넣었다.

“으... 어... 아.”

-이제 말은 할 수 있나보군. 괜찮나? 이름이 어떻게 되지?

“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더프는 교활하게 변명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게 유리했다.

데스 나이트들이 오해를 하고 있으니 그걸 자극해주면 쉽게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주인님의 해골에 맹세코 우린 큰일 났네.

-쉿. 아직 끝나지 않았어. 기억을 되살리면 되는 일 아닌가.

데스 나이트들은 서로 기운을 북돋우고 응원하며 결심을 다졌다.

-워다나즈 군. 저 기억을 잃은 사람의 기억을 되살릴 방법이 있을까?

“저 1학년입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네만?

“...잘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다시 라그린데 교수에게 부탁해봅시다.

-라그린데 교수는 화낼 것 같은데...

“밖, 밖으로만 돌려보내주시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더프는 겁먹은 일반 제국민을 연기하며 벌벌 떠는 척을 했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들은 더욱 미안해졌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꼭 자네의 기억을 되찾아주겠네.

‘왜 이상하게 어디서 본 것 같지?’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지더프의 모습이 낯이 익었던 것이다.

저렇게 생긴 조각상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자네들 뭐하고 있나?

뒤에서 해골 교장이 둥둥 뜬 채로 날아왔다. 옆에는 볼라디 교수가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인님. 실수로 조각상으로 변해 있던 손님 한 분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설마 또 조각상으로 바꿔서 처박아놨나? 불만이 있으면 그냥 말로 하라고 했잖... 아니! 저 놈 침입자 놈이잖아!! 뭐하고 있는 거냐!

해골 교장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외쳤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지더프는 온몸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서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앞에 있던 소년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이한은 바로 지팡이로 지더프의 턱을 날려버렸다.

빡!

-......

죽, 죽일 것까지는 없었는데... 하여간 잘 했다.

*         *         *

기말고사 주간마다 해골 교장은 몇몇 요주의 교수들에게 확인을 하곤 했다.

-잘 준비하고 있나?

-잘 준비하고 있지.

-그래. 정말로 잘 준비하고 있나?

-잘 준비하고 있다니까? 왜 그래?

-하하. 사실 물어본 게 아니었네. 당장 자네 창고 열어보게. 준비 안 되어 있으면 저 솥에 오늘 비버 탕국이 끓여지게 될 걸세.

그 중 특별 요주의 교수는 기말고사 주간 전부터 확인을 들어가곤 했지만, 다행히 볼라디 교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거인들에게 부탁해 시험을 보려고 합니다.

-...오...

‘저번 주부터 확인할 거 그랬나?’

볼라디 교수에게 이번 기말고사에 대해 들은 해골 교장은 상대의 주의등급을 더 올려야 하나 고민이 됐다.

사실 이제까지 제자가 없어서 광기가 덜 드러났던 걸지도 몰랐다.

보통 교수들과 시험에 관해 이야기하면 ‘난이도를 올려라’라고 말하는 해골 교장이었지만, 이번에 볼라디 교수가 내놓은 시험은 진짜 좀...

-에이! 이대로 가도 될 것 같소!

-감사합니다.

조금 찜찜했지만 해골 교장은 볼라디 교수의 시험을 허락해줬다.

교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시험이 어렵다고 말릴 순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어서, 해골 교장이 볼라디 교수를 부르는 일이 조금 늘어났다.

-잘 되어가고 있소?

-예.

-정말로 잘 되어가고 있소?

-물론입니다.

볼라디 교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해골 교장이 볼라디 교수의 시험에 감탄한 나머지 자꾸 묻는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뿌듯함이 담긴 미소를 본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고용한 교수라지만, 정말 양심이 없나?’

해골 교장도 제자들에게 시련을 주는 걸 좋아했지만 그걸 양심상 뿌듯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교수는 진심으로 뿌듯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골 교장보다 더 악질이었다.

‘저러니까 제자가 없지.’

매우 무례한 생각을 하며 해골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시험이 시작되면 꼭 구경하고 싶군.

배그렉 교수가 양심이 없는 것과 별개로 이 시험은 솔직하게 구경할 가치가 있었다.

거인들을 이렇게 동원하는 시험을 또 언제 보겠는가. 한 번 봐두면 십 년 넘게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시험의 진정한 특별함은 거인들을 동원했다는 점이 아니었다.

동원한 거인들을 데리고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 화려한 퍼레이드처럼 정교하게 장애물을 구성했다는 점이 진정한 특별함이었다.

배그렉 교수처럼 깊은 실전 경험을 쌓은 전투 마법사만이 구성할 수 있는 시험!

과연 워다나즈 녀석이 이번 시험에서 어디까지 통과할 수 있을까?

‘궁금하긴 하군.’

-주인님!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그래. 알아서 잘 처리해라.

데스 나이트의 보고에 해골 교장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따지고 보면 에인로가드 전역에서 하루에 괴물이 대여섯마리는 나올 텐데 그걸 왜 다 일일이 보고한단 말인가.

-주인님! 괴물이 정문 주변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이런 머저리 놈들이!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냐. 만약 정문 주변이 파괴되면 용서하지 않겠다!

-......

데스 나이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외부에서 볼 수 없는 곳에서는 괴물이 수십 마리는 나돌아 다녀도 됐지만, 외부인들이 오고 가는 정문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해야 했으니까.

누가 초대라도 받았는데 괴물이 튀어나오면 그 날로 기부금의 1/3은 깎이는 것이다.

지금 가봐야겠군. 배그렉 교수.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이미 완벽합니다.”

볼라디 교수는 또 한 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뿌듯함이 담긴 미소가 괜히 얄미워서 해골 교장은 짜증이 났다.

‘시험이 망쳐지면 좋겠... 아차. 내가 무슨 생각을.’

순간 배그렉 교수가 얄미워서 워다나즈의 편을 들어줄 뻔한 것이다.

알겠소. 그럼 가세!

해골 교장과 볼라디 교수는 빠르게 허공을 날아 정문 근처에 도착했다.

벌써 요란하게 치고받았는지 쓰러진 1학년 학생들과 치유 마법 학파 고학년들에게 치료 받고 있는 거인...?

?

해골 교장은 거인들이 왜 여기 있나 의아했지만 일단 무시하고 정문부터 확인했다.

피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조각상 공원이 부서지고 도로가 조금 날아가긴 했지만 정문은 멀쩡했고 무엇보다 외부인이 휩쓸리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해골 교장의 눈에 데스 나이트들 한 무리가 들어왔다.

해골 교장은 노기를 띤 시선을 던졌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막지도 못한 놈들이 무슨 딴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자네들 뭐하고 있나? 설마 또 조각상으로 바꿔서...

*         *         *

지더프를 쓰러드린 이한은 자신이 오히려 당황해하며 물었다.

“정말 침입자입니까?”

그럼 내가 죄 없는 손님을 침입자라고 우기겠느냐?

“......”

-......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이한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으십니다!”

두 박자는 늦은 것 같은데... 하여간 침입자 놈이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여기 정문 조각들 사이에 숨어 있었군. 본관 심층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데스 나이트들이 급히 아첨했다.

-맞습니다. 용케 여기까지 왔군요.

-하지만 주인님의 눈빛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네놈들이 지금 침입자를 보살펴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해십니다! 침입자가 죽으면 또 안 되니까 일단 충격을 받지 않게 달래주고 있었던 겁니다.

데스 나이트들은 추하게 변명했다. 해골 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놈들이 부하라니!

너는 왜 그러고 있느냐?

“...아! 침입자 놈이 정문까지 오다니, 정말 비열한 놈이라고 욕하고 있었습니다!”

이한은 재빨리 외쳤다.

생각해보니 저 놈이 정문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이한이 창고를 치우느라 저기다 던져놨기 때문이었다.

별로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사실이었다.

-미안하다. 마법사. 우리 싸우느라 힘들다.

-많이 맞아서 좀 쉬어야 한다. 끙. 머리 울린다.

“......”

뒤에서 거인들과 볼라디 교수가 대화하는 게 보였다. 볼라디 교수는 여전히 냉정한 얼굴이었지만  충격에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해골 교장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저런... 안타깝게 됐군. 배그렉 교수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저도 실로 안타깝습니다.”

방금 웃지 않았냐?

“기분 탓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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