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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99화 (599/687)

599화

웃음을 참는 제자는 내버려두고, 해골 교장은 볼라디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버두스와 달리 나름 열심히 일하는 교수인 만큼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배그렉 교수.

“......”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대답 없이 침묵했다.

해골 교장은 난처해졌다.

애초에 이런 위로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다른 교수라면 학파 지원금을 늘려주겠다고 하면 대번에 기운이 나겠지만, 애초에 배그렉 교수는 제자가 0... 아니, 1명밖에 없는 만큼 지원금도 별 의미가 없고..

보시오. 교수가 준비한 것과는 다르지만 제법 보람찬 시험이었을 것이오.

해골 교장은 위로와 함께 데스 나이트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데스 나이트들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배그렉 교수! 이게 진짜 시험이지요!

-실전만큼 진정한 시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걸 기말고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뭇등걸을 뽑아서 코피가 흐르는 걸 막던 거인도 동의했다.

-맞다. 이 정도면 좋은 시험이다.

눈치를 보던 이한도 슬쩍 거들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달래자 결국 볼라디 교수도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준비한 건 내년에 봐야겠군.”

그러면 되는 거요. 배그렉 교수. 하하.

“되긴 뭐가 됩니까?”

이한은 정색하고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그 해에는 그 해의 시험이 따로 있는 거지 왜 굳이 올해의 시험을 내년으로 넘긴단 말인가?

-마법사. 마법사. 코피가 안 멈춘다.

“잠깐만요.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볼라디 교수의 시험도 날아갔겠다, 이한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거인의 상처를 확인했다.

뒤에서 지나가다가 그걸 본 알카시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이에 ‘만점’이라고 거칠게 휘갈겼다.

*         *         *

“헉!”

깨어난 가이난도는 주변이 어둑어둑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둘러보니 앞에는 커다란 모닥불이 불티를 토해냈고, 근처에 펼쳐놓은 천막 아래에서 각 탑 학생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그 중 알파 가문의 앙라고는 찐득한 초콜릿 에클레어를 하나 잘라서 입에 집어넣는 중이었다. 가이난도는 에클레어의 끝모양만 봐도 어느 제품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메이킨 가문의 마법 같은 초콜릿 에클레어>로 가이난도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 상품 중 하나였다.

“혼... 혼자 먹다니!”

“으악!”

앙라고는 뒤의 침낭에서 갑자기 고함을 지르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유령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던 것이다.

“일어났으면 조용히 말할 것이지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너 구하느라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냐?”

“구해? ...아!”

가이난도는 그제야 자신이 흡혈괴물한테 납치당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세등등해져서 외쳤다.

“그래. 너 구하느라 춤도 포기하고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데.”

“...말이 안 되는데? 너희들이 날 구하려고 했다고? 이한이 아니라?”

가이난도는 정신이 없고 배가 고픈 와중에도 날카로운 지적을 선보였다.

그 말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내가 맞췄지? 응?”

“...하여간 우리도 같이 싸우긴 했다. 황자 놈아.”

“맞아. 고마운 줄 알아야... 야! 그걸 왜 먹어!”

은근슬쩍 다가온 가이난도가 탁자 위에 놓인 음식들을 와구와구 쓸어넣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겁했다.

“우걱. 같이 좀 먹자. 우걱우걱.”

“너희 탑으로 꺼져서 먹어!”

“뭐하냐?”

각종 치즈를 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구운 뒤 접시에 담아 내오던 이한이 가이난도와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워다나즈! 황자 놈이 미쳤어! 우리 걸 처먹고 있다고!”

“그냥 같이 좀 먹어. 어차피 기말고사도 끝났는데.”

“그걸 말이라고...”

항의하려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방금까지 이한이 서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불사조 탑 사제들과 같이 화덕 앞에서 정신없이 재료를 손질하고 볶고 다듬고 있던 워다나즈였다.

양심도 양심이지만 여기서 더 따졌다가는 한 대 맞거나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뭐... 알겠다...”

‘아니. 이 자식들이 철들었나?’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

맛에 투덜거리기는커녕 저런 반응을 보여주다니?

사실 지금 학기도 끝났겠다 식재료들 중 좀 묵은 것들부터 다 끝내려고 대대적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각종 치즈들은 프라이로 굽고, 오래 된 빵과 햄은 버터를 발라 구운 다음 치즈와 달걀을 섞어 올린 카나페를 만들어서 내놓고...

묵은 쌀들은 냇가에서 갖고 온 생선과 향신료를 듬뿍 넣은 리조또로 만든다거나 등등.

사실 오래 된 식재료들은 상하지는 않더라도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불평하는 놈들이 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일 년 가까이 에인로가드에서 머무르면서 혀가 최적화된 게 분명하군.’

이한은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을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진실을 모르는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은 너무나도 맛있다며 와구와구 퍼먹고 있었다.

“이한. 이한.”

“?”

생선 수프 한 그릇과 제국 중부풍 돼지고기 커틀릿 두 접시, 닭과 참새를 꿰어서 구운 꼬치 다섯 개, 우레걸음 교수의 특제 오두막 소시지 세 개를 끝장낸 가이난도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이한을 불렀다.

이제야 물어볼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 아. 배그렉 교수님이 기말고사를 그냥 넘긴 일 말하는 건가?”

이한은 오늘 있었던 가장 인상 깊은 일부터 말했다.

물론 가이난도는 그런 것에는 별 관심 없었다.

“그건 그냥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아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데...”

“그 괴물 있잖아. 괴물!”

“아. 맞아. 그것도 있었지.”

“......”

가이난도는 어이가 없었지만, 가이난도의 친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흡혈괴물이 가이난도를 데리고 가서 사라지려고 했는데, 용맹무쌍한 거인들과 데스 나이트들이 같이 와서 싸워준 덕분에...

“...어!? 내 외투, 내 외투는!?”

“미안하다. 흡혈괴물이 파괴했어.”

사실 거인들이 파괴했지만 이한은 토벌된 흡혈괴물한테 책임을 돌렸다.

나쁜 놈인 만큼 죄 몇 개 더 가져간다고 달라질 것 없으리라.

“말... 말도 안 돼! 이 저주 받을 괴물 같으니!! 어떻게?! 어떻게 내 외투를! 진짜 걸작이었는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었지.”

“그냥 적당히 잘 나온 정도?”

“아무리 잘 쳐줘도 평작이었어.”

다른 친구들은 홀렸던 기억들도 잊어버리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검은 거북이 탑이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물론이고 아산 같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그랬다.

“우리가 왜 그렇게 부러워했는지 모르겠네.”

“맞아, 맞아.”

“이... 이 자식들... 그렇게 부러워해놓고 없어지니까...!”

가이난도는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었다.

외투가 있었을 때는 눈도 못 떼던 놈들이 외투가 사라졌다고 저렇게 냉정하게 굴 줄이야.

“너... 네가 대답해봐! 너도 외투에 관심 많았잖아!”

가이난도는 아덴아르트를 불렀다. 추종자들과 같이 식사하고 있던 아덴아르트는 가이난도의 부름에 눈썹을 살짝 위로 휘게 만들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 아오! 분명히 갖고 싶어했다니까!?”

“확실히 그 외투는 흥미롭긴 했지.”

“그렇지? 그렇지?!”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가이난도는 신이 나서 몸을 돌렸다.

처음 보는 잘생긴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마치 고서나 옛 왕국의 조각상에서 볼 법한 미남자였다.

“어. 흰 호랑이 탑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어?”

“...무슨 뜻이냐. 황자 놈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발끈했다.

물론 푸른 용의 탑에 비하면 귀족다운 품위는 부족했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그게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다운 상무 정신과 호활한 기풍을 선택했기에 드러나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요즘 젊은 놈들이 내 시대의 아름다움을 따라가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

말과 함께 잘생긴 사람은 가이난도의 접시에서 자연스럽게 음식 하나를 뺏어먹었다. 가이난도는 자신이 반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지금 뭐하는...!!”

“교장 선생님 뭐하십니까?”

“...더 드실래요?”

가이난도는 얼어붙어서 접시를 내밀었다.

인간형이 된 해골 교장은 접시를 뺏더니 위의 음식을 비워버렸다.

“그 외투,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아마 재료도 그렇고 꽤 괜찮은 저주였을 텐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섞었는데 마법이 완성될 수가 있습니까?”

“아주 가끔은. 우연에서 마법이 탄생할 때도 있는 법이지.”

해골 교장과 이한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우르르 일어나서 다른 탑 테이블로 피신했다.

어지간하면 욕하고 쫓아낼 다른 탑 학생들도 같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게 허락해줬다.

“교, 교장 선생님. 낙, 낙제한 사람을 데려가려고 오신 건가요?”

가이난도는 이한 뒤에 숨은 채 물었다.

매 학기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해골 교장은 낙제한 사람을 징벌방에 가두는 걸 소소한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번에 낙제한 사람은 없다. 그보다 네놈은 대체 왜 언데드 계에 모래문어가 산다고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 언젠가 발견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해골 교장은 경멸의 시선으로 ‘귀납 논증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이난도는 괜히 솔직하게 대답한 스스로를 저주했다.

대화만으로 가이난도를 쓰러지게 만든 뒤 해골 교장은 이한을 보며 물었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

“금화 백 닢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그딴 계획 말고...”

해골 교장은 한숨이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이동 말이다. 이동. 보통 겨울방학 때는 그랑덴 시에 잘 안 머무를 텐데.”

“아. 네. 일단 워다나즈 가문으로 돌아가서 가주님을 뵈려고 합니다. 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 그보다 앞서서 해야 할 게 있다.”

해골 교장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가이난도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교장 선생님이 가이난도의 속마음을 읽었단 말인가?

“지금 저희 가문의 저택에 이한을 초대하는 일 말하시는 거죠?”

“......”

해골 교장이 손을 흔들자 가이난도는 바로 반대편 테이블로 공간이동됐다.

“황제 폐하께서 널 직접 뵙고 싶어하신다.”

“...!”

그 말에 이한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충격적이라 다른 질문들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잠깐. 황제 폐하와 독대하는 걸 가이난도가 알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알아도 된다. 그냥 옆에서 시끄럽길래 쫓아낸 거다.”

“...아, 예.”

“가주한테는 내가 연락을 이미 보냈다.”

“답장이 왔습니까?”

“아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워낙 바쁘셔서...”

“그렇겠지. 하여간 미안하게 됐지만, 네 겨울 방학 계획은 좀 바뀌게 됐다.”

해골 교장은 식탁보 위에 간단한 일정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황제 폐하를 뵙고 나서, 수도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난 다음, 새로 입학할 1학년 학생들 중 입학 절차가 까다로운 학생들을 확보하고, 마지막으로 워다나즈 가문의 저택에 이한을 내려놓는다.

그러고 나면 이제 이한은 행복한 겨울 방학 휴식을 보내면 됐다.

혹은 겨울 방학 노동을 하거나...

“어. 교장 선생님. 황제 폐하를 뵙는 건 그렇다쳐도 그 뒤에 좀 이상한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눈치 빠른 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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