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04화 (604/687)

604화

“그... 애들이 착합니다.”

오!

“뭘 ‘오’입니까.”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황제 자리가 싫어도 그렇지 착하다는 말에 저런 반응은 좀 과했다.

착하다는 건 세상만물을 가엾게 여긴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황제의 자격이 있을지도...

“그리고 딱히 착하지도 않습니다.”

냉혹한 리치는 골드 드래곤의 희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저번에 보니 다른 탑 학생 음식 훔치던데 뭘.”

“아니 그건 정당한 경쟁이죠...”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가이난도를 변호했다.

“그리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가이난도 음식 많이 훔쳤습니다.”

“가이난도를 말한 게 아니다.”

“...예???”

충격적인 말에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해골 교장은 학생들의 저열한 식량 확보 경쟁에 대해 더 이상 떠들기 싫었는지 화제를 바꿨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도 여기 뛰어난 마법사가 있지 않나.

“폐하...”

해골 교장은 갑작스러운 칭찬에 흐뭇해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지원금 좀 더 주십시오. 4학년 학생들이 시약으로 사용할 순금 골렘이 필요합니다. 높이는 최소 15m에 무게는 20톤 이상으로...”

드래곤은 자네를 말한 게 아니었는데...

황제는 눈을 깜박이며 이한을 가리켰다.

네가 있으니 그 착하기만 한 애들도 더 성장할 수 있겠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뛰어난 마법사 옆에 있다고 다 성장합니까.”

왜 그러나. 자네도 그... 이악투스였나, 그 아이를 성장시켰잖나.

“일부러 저를 모욕하시는 겁니까? 그 놈은 제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 놈입니다!”

조용히 하게. 성장하면 좋은 거지.

황제는 자꾸 떽떽대는 해골 교장이 짜증이 났는지 콧김을 내뿜었다.

여하튼 오늘 대화 즐거웠네. 오수. 자네 제자가 자네와 친한 모습이라니.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게 제일 놀라운 일인데... 드래곤도 나이가 들었나보군.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

“......”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대화의 끝을 알리듯이 황제는 지혜로운 눈동자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네게는 기대가 많단다. 꼭 네 친구들을 성장시키지 않더라도, 훌륭하게 성장해서 좋은 마법사가 되거라.

“예. 좋은 마법사가 되어 제국의 관료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한은 기회를 엿보다가 번개처럼 아부를 날렸다.

황제를 이렇게 대면하게 될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럴 때 기특한 인상을 남겨야했다.

그러나 황제는 기특해하기보다는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다.

관료...?

오수의 제자가 관료 이야기를 꺼내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던 것이다.

‘아. 마령관 이야기였나.’

오수가 짊어지고 있는 제국의 과업 중 하나를 벌써 같이 짊어지고 싶어 하다니.

스승의 괴팍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참 기특한 제자였다.

생각해보니 이런 마법사가 워다나즈의 자식이라는 게 믿기질 않았다.

오수와 같이 신물을 들고 찾아와서 드래곤을 저주 받은 운명에 빠뜨린 게 마치 어제 일 같은데...

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추억을 떠올리니 감상에 젖기보다는 분노가 치솟았다.

마음 같아서는 가주가 맡을 제국의 과업을 늘리고 싶었지만, 워다나즈 가주의 성격을 보면 별 의미도 없는 짓이었다.

침착하게 분노를 가라앉힌 황제는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으마.

“예!”

*         *         *

“고생했다.”

해골 교장은 진심을 다해 말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 제자는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다.

만약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겨울 내내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다 교장 선생님의 지도 편달 덕분입니다. 하하.”

이한은 간사하게 대답했다.

“녀석.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네 공이다. 온갖 귀찮고 까다로운 잡놈들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혓바닥의 힘이지.”

‘표현이 좀 욕하시는 것 같은데.’

“자. 그러면...”

해골 교장은 품속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제각각 크기도 다르고 색도 다른 꼬질꼬질한 종이 뭉치들이었다.

웬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것 같은 모습에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주워오셨습니까?”

“네 선배들이 나한테 부탁한 연구 계획서인데.”

“다시 보니 참으로 서기(瑞氣)가 감도는 것 같습니다.”

“됐다. 대부분 쓰레기 같은 연구들이니까. 음악 마법처럼.”

해골 교장은 종이 뭉치들을 슥 훑어본 뒤 다시 한 번 질색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같은 연구들이 참으로 많았다.

-다치지 않은 상황에서 꾸준히 회복 물약을 장복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연구

-제국의 지역에 따라 만족도 높은 환상 마법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연구

-가장 효율적인 지팡이 휘두르는 동작에 대한 연구

-트롤이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

“으윽. 다시 봐도 쓰레기 같군. 정신 마법이 왜 필요하겠느냐? 다들 이것만 휘둘러도 피를 토할 텐데.”

“......”

“후. 가자. 관료들을 쥐어짜러. 펭에린이 관료들을 충분히 반하게 만들었으면 좋겠군.”

“이 연구들의 지원금을 요청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쓰레기 같아도 해야 할 일이니까.”

해골 교장은 혀를 차며 종이 뭉치들을 정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학생들을 불러서 징벌방에 처박고 싶었지만 원래 성취를 위해서는 실패도 필요한 법이었다.

본인처럼 비범한 마법사야 실패 없이 성공한다지만, 해골 교장은 명석한 두뇌로 모든 마법사들이 자신 같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 나는 실로 저주 받은 운명을 가지고 있구나. 나처럼 괴로운 대마법사가 또 어디 있겠느냐?”

‘방금 말만 없었으면 훨씬 더 멋있으셨을 텐데.’

이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해골 교장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문을 열었다.

화려한 방 안에는 관료와 알시클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냉기 마법이란 게...”

“역시 펭에린 님. 이야기 하나하나가 참 재밌고 교훈적입니다!”

알시클이 말을 할 때마다 관료들은 까륵대며 감탄했다.

그러나 이한이 보기에 딱히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솔직히 알시클의 외모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갔다.

“그보다 펭에린 님. 배가 고프지 않으십니까?”

“괜찮은데요.”

“요리사를 불러서 정어리를 갖고 오게 하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제가 정어리를 삼키는 걸 보고 싶어서 이러시는...”

“아, 아닌데요? 아닙니다!”

관료들은 황급히 부정했다. 알시클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보다 에인로가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에인로가드는 제국 최고의 마법학교입니다. 학생들은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행복합니다.”

“혹시 고나달테스 각하께서 써주신 문구입니까?”

아무리 알시클이 귀여워도 관료들은 에인로가드의 이름이 나오자 제정신을 차렸다.

해골 교장은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감히 사람을 음해하다니.”

“힉!!”

“고나달테스 각하!!”

관료들은 재빨리 일어나더니 방의 구석진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이한은 저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덜컥!

관료들은 비밀문을 열더니 옆의 방으로 도망쳤다. 해골 교장은 한숨을 쉬며 공간을 비틀었다. 관료들이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 고나달테스 각하. 여긴 폐하의 궁전입니다. 또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정문에는 기사단도...”

“닥쳐라. 좀. 안 해치니까.”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셔놓고 공격하셨잖...”

“몇 년 전 일을 언제까지 기억에 담아둘 생각이냐? 너희는 왜 그렇게 속이 좁은 거냐!”

해골 교장은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호통을 쳤다.

제국의 관료라는 작자들이 이런 사소한 일에만 오래 매달려서 귀찮게 구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 공격했던 거였나?

“아무리 저희를 공격하셔도 예산을 더 이상 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관료들은 오들오들 떨면서도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말했다. 해골 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지 않나. 여기 제국의 어린 마법사들이 열심히 작성한 계획서가 있네. 좀 들어보게. 구미가 당길지도 모르잖나.”

“...예...”

관료들은 듣기 싫다는 표정을 팍팍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해골 교장만 아니었다면 대번에 축객령을 내렸을 것이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내놓는 연구 계획서란 건 언제나 허황되고 값비싼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지금도 황제의 명령으로 에인로가드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여기서 더 예산이 들어가면 다른 건전한 마탑이나 마법사 길드들이 얼마나 박탈감이 들겠는가.

어쩌면 이런 계획서들을 막아내는 것이야말로 제국 재무부의 사명일지도 몰랐다.

“자. 들어보게. 일단 <트롤이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인데...”

“......”

관료들은 시작부터 정색했다.

대체 저 연구를 어떻게 하려는 건지 듣기만 해도 두려웠다.

*         *         *

“쉽지 않군.”

해골 교장은 혀를 차며 방을 나왔다.

<트롤이 먹이로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를 들은 관료들은 질색하며 절대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이한이 보기에도 이건 확실히 쉽지 않아보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른 관료들을 좀 더 설득해봐야지.”

“윗선에 직접 접촉하는 건요?”

“먼저 아랫놈들 중에 쓸만한 놈들을 몇 놈 포섭해야 한다. 윗놈들은 더 꽉 막힌 놈들이야.”

이런 추가 예산을 타낼 때에는 밑에 있는 놈들부터 몇 명 이상 설득해서 데리고 가야지, 위에 있는 놈한테 대뜸 들이 밀어봤자 별 효과가 없었다.

애초에 해골 교장이 말하면 예산을 안 내줄 생각부터 하고 있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소문이 퍼졌을 테니 놈들이 숨었겠군. 잠깐 놈들이 방심하게 시간을 주자꾸나.”

“......”

이한은 할 말을 잃고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지만, 해골 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따라와라.”

“이번에는 어디입니까?”

“인쇄소.”

“아. 내년에 필요한 책을 찍어내시는 겁니까?”

“눈치가 빠르구나. 그래. 맞다.”

해골 교장은 황궁을 나와 수도의 길을 따라 내려갔다.

잉크와 뜨거운 종이가 찍어지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쇄소가 골목 깊숙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잘 지냈나.”

“고나달테스 님! 영광입니다. 올해도 이렇게 오셨군요!”

“그래. 건강한 걸 보니 기분이 좋군.”

드워프 인쇄업자가 모자를 벗고 해골 교장을 반가워하는 모습에 이한은 신기해했다.

하긴 생각해보니 관료가 아니면 해골 교장을 그리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인쇄소라면 해골 교장이 일종의 큰 손 아니겠는가. 이런 고객이 오면 누구라도 기뻐할 것이다.

“이 분은 제자십니까?”

“맞네. 내가 말한 건 준비됐나?”

“예. 물론입니다. 이봐! 준비해라!”

드워프 인쇄업자는 직원들과 함께 금속활자를 조판하기 시작했다.

마법이 깃든 금속활자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차례대로 조판되더니 금세 구성을 갖추었다.

해골 교장은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하게.”

철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준비된 종이가 책의 페이지로 변하기 시작했다.

숙련된 인쇄업자들은 완성된 페이지를 옮기고 마법진 위의 정령들한테 부탁해 추가로 손질했다.

자기가 준비한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한 감정으로 그 모습을 구경하던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떤 마도서입니까?”

해골 교장은 완성된 책을 하나 읽어보며 대답했다.

“가짜 지도가 든 마도서다. 제국 전역에 뿌려서 네 후배들을 속일.”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