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05화 (605/687)

605화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던 이한은 뒤늦게 대답했다.

“아니 학교 예산으로 그런 짓을...?”

“학교 예산으로 하는 일이 아닌데?”

“......”

사비로 한다면 그건 더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한은 대체 신입생들하고 무슨 원수를 져서 그런 짓을 하나 묻고 싶었다.

“오해가 있으십니다. 제자님.”

드워프 인쇄업자가 이한의 표정을 보고 다급히 끼어들었다.

“이건 저희가 그냥 해드리는 겁니다. 고나달테스 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말입니다.”

“혹시 그렇게 말하라고 협박받으셨습니까?”

“네? 무슨 소리인지 잘...”

선량한 드워프 인쇄업자는 에인로가드 특유의 블랙 유머를 알아듣지 못했다.

“예전에 인쇄소의 정령이 폭주해 잉크 괴물이 튀어나왔는데, 그 때 고나달테스 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고나달테스 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전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교장 선생님...”

이한은 오랜만에 살짝 감동했다.

“이런 훈훈한 일을 왜 저한테 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하. 내 선행은 너무 많아서 전부 말했다가는 저 하늘의 해도 늙어 죽을 거다.”

‘진짜 개뻔뻔하시군.’

방금 살짝 감동한 걸 바로 치워버린 채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저희의 얼마 안 되는 봉사로 에인로가드의 침입자들을 막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맞습니다!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

이한은 의아해했다.

침입자들을 막다니?

“교장 선생님. 저 마도서는... 그... 신입생 애들이 보고서 현혹되라고 만든 게 아니었습니까?”

이한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미리 에인로가드에 대해 공부하고 왔다가 호되게 당했던 그 탈출의 기억이.

“뭐, 침입자들 중에서 저걸 보고 속는 놈이 나올 수도 있겠지.”

“......”

이한은 차마 선량한 인쇄업자들한테 진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다.

*         *         *

“고생했네. 내가 적어준 곳들에 보내주게나.”

해골 교장은 매우 교활하고 치밀했다.

입학이 확정된 1학년 학생들 중, 푸른 용의 탑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대부분 가문이 있는 놈들인 만큼 그 인근 서점에 그럴듯하게 배치해놓으면 언제나 걸려들었다.

그 끈질기고 집요한 노력에 이한은 전율할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어, 이거 <강아지 수인족 탐정 토베리즈>입니까?”

이한은 인쇄된 잡지를 보고 의아해했다. 가이난도가 되게 좋아하는 추리 잡지였다.

“네. 다음 달 분량을 미리 준비해놨습니다. 신문사에서 다음 달에 연재되는 내용이 아주 결정적이고 흥미진진해서 많이 팔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저 잡지를 좋아하나?”

해골 교장은 의외라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제국 신문의 경제, 사업, 마법란만 읽을 것 같은 놈이?

“가이난도가 좋아하거든요.”

“오. 그러면 미리 읽고 내용을 보내주는 건 어떠냐?”

“앗. 편지에 쓸 내용 없었는데 잘 됐군요. 감사합니다.”

“...그, 그래.”

해골 교장은 제자의 잔잔한 광기에 전율했다.

농담이었는데...

달칵-

회중시계의 시간을 확인한 해골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쉬었으면 슬슬 방심한 관료 놈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가자. 다시 설득해봐야겠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한은 인쇄업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메모해서 돌아왔다.

“뭘 물어본 거냐?”

“이 주변에서 사서 갖고 갈 만한 간단한 선물을 조사해봤습니다.”

“수도에 선물을 줄 사람이라도 있느냐?”

“예? 재무부 관료들한테 갖고 갈 생각이었는데요.”

“...왜!?”

해골 교장은 진심으로 질색했다.

하는 일이라고는 마법의 반대밖에 없는 기생충 같은 놈들한테 뭐가 아쉬워서 선물을 줘야 한단 말인가?

“보통 남을 찾아가서 부탁할 때는 호감을 사는 게 좋지 않습니까?”

“왜?”

“......”

이한은 그냥 설득을 포기했다.

“그냥 저는 사갖고 갈 겁니다.”

“흠... 확실히 네가 쓰레기는 잘 다루긴 하지.”

“제 친구들을 그렇게 말하시는 건 좀 너무하시잖습니까.”

“비블레를 말한 거였는데.”

‘아차!’

해골 교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기대했던 건 수도의 후원자들을 만나서 대화할 때였다.

-에인로가드는 제국 최고의 마법학교입니다. 학생들은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행복합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에인로가드에 더 후원을 해야겠군!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원래 쓰레기들도 참을성 있게 잘 대해줬다. 그건 해골 교장 본인에게도 없는 재능이었다.

어쩌면 이 사교 능력이 관료들에게 통할지도 모른다!

“...좋다! 너한테 한 번 맡겨보마.”

“예? 뭘 말입니까?”

“설득 말이다.”

이한은 해골 교장의 터무니없는 말에 경악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맡습니까??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솔직히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너무 쓰레기 같은 연구들이라.”

“아니...”

선배들의 연구 계획서를 들고 가서 지원금을 따내야 한다니.

듣기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당장 내년부터는 선배들도 만나게 될 텐데...

-저 녀석이 우리 연구 계획서를 탈락시킨 놈이라고?

-건방진 놈 같으니. 푸른 용의 탑의 수치다!

...처럼 시작부터 이상한 인식이 박히고 싶진 않았다.

“제가 실패하면 선배들한테 너무 죄송할 것 같은데요.”

“죄송 같은 소리 하고 있군. 후배한테 맡기고 자기 저택에서 드러누워 있는 놈들이 죄송할 일이지. 네 이름은 절대 말 안 할 테니 편하게 해라. 네가 하기 싫으면 그냥 계획서를 여기서 찢어버려도 좋다.”

해골 교장은 심드렁했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있는 1학년 학생이 에인로가드를 위해 쌓은 공헌도가 대부분의 선배들보다 높았다.

다른 학생들은 보고 좀 반성해야 했다.

“진짜 실패해도 뭐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 그래. 가벼운 마음으로 해라.”

이한은 한숨을 쉬며 연구 계획서를 받아들였다.

“<트롤이 먹이를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는 대체 어떻게 해야 설득을...”

“야. 그건 포기해라.”

해골 교장은 냉정하게 조언했다.

*         *         *

제국의 자랑스러운 심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실바스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나달테스 님이 오셨다고?”

“그래. 근데 안 보이시는 거 보니 포기하신 모양이군.”

“다들 고생이 많았네. 정말.”

“우리가 제국의 황금과 은을 지켜낸 거야!”

다른 관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실바스는 여전히 좀 불안했다.

‘이러다가 방심했을 때 다시 오시는 거 아닌가?’

똑똑-

“저, 계십니까?”

“엇. 들어오십시오.”

실바스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년의 모습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국 황궁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그 자체로 신분이 확인되고 증명된 이들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런 만큼 관료들이라 하더라도 여기서 위세를 부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방문객들이 권세를 믿고 관료들에게 행패를 부릴 때가 많았다.

-이 땅은 내게 사법권이 있는 영역이란 말이다! 왜 영지전을 허락하지 않는단 말이냐! 네놈이 내 가문을 모욕할 셈이냐!

-세금을 두 배나 더 내야 한다고? 네놈은 강도냐 관료냐? 황제 폐하를 내가 직접 대면하고 말씀드려야겠다. 전해라! 내가 폐하께 바칠 영약을 갖고 왔다. 집무로 피로하실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거다!

그러나 들어오는 소년은 매우 공손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신선한 손님의 모습에 실바스는 놀라워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음. 제가 마법사인데, 지원금을 요청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아아! 마법사셨군요. 길드에서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마탑? 여기 앉으십시오.”

실바스는 의자를 꺼내서 소년 쪽으로 밀었다.

보통 마법사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호감이 더 들었다.

마법사들이 저 소년의 절반만 예의를 지켜줘도 관료로서의 일이 훨씬 행복해질 텐데!

‘길드나 마탑의 막내인가.’

보통 이런 일에 어린 사람을 보내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소년의 외모를 보니 대귀족 가문 출신이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예법에 능한 귀족 출신이라면 어리더라도 이런 일을 맡을 수 있으리라.

실제로 보니 긴장 없이 능숙한 게 괜히 맡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거 선물입니다.”

“예?! 아니... 뇌물은...”

“뇌물이 아닙니다. 제국의 업무를 맡아서 노고가 많으실 텐데, 조금이나마 쉬셨으면 해서 사왔습니다.”

향긋한 커피의 향과 갓 구운 애플파이의 냄새가 사무실에 물씬 퍼져나갔다.

커스터드 크림과 사과의 맛이 떠올라서 실바스는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이런 선물은 처음 받아봅니다.”

‘??’

이한은 당황했다.

이런 걸 들고 오는 사람이 없었을 줄이야.

‘기본 아닌가?’

부탁을 하면서 속 보이는 뇌물을 바치는 건 하수였다. 아무것도 안 갖고 오는 건 중수였다. 은근하게 마음에 남는 선물을 갖고 오는 게 고수였다.

이한은 표정을 관리했다. 제국의 관료들은 언젠가 이한의 상사가 되어 이한을 밀어주고 당겨줄 이들이지 않은가.

언제나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이 앞의 <바위 정령의 사과잼 카페>에서 사왔습니다만 입맛에 맞을지...”

“거기 정말 좋아합니다! 뭘 좀 아시는군요!”

실바스는 익숙한 카페의 이름에 기뻐했다.

저 카페는 커피가 향기롭고 애플파이가 맛있는데다가 바위 정령이 싸주는 돌 수프가 참 든든한 곳이었다.

그걸 이렇게 받게 되다니.

“이보게들! 간식 좀 들고 하게!”

“간식이 어디서 났나? 나갈 시간도 없었을 텐데?”

“여기 이 손님께서 우리를 걱정해주셔서 사오셨다는군.”

“!”

“!!”

관료들은 충격과 감격의 시선으로 인사했다. 어떤 관료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살짝 맺힐 정도였다.

“자네 우는 거 아니지?”

“커, 커피가 매웠을 뿐일세.”

실바스는 아까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로 물었다.

“어떤 일로 지원금을 요청하시고 싶으십니까. 마법사 님? 사안에 따라서 어려움이 달라질 겁니다. 자연재해나 차원 재난이라면 바로 지원금과 함께 제국 기사단이 투입되지요. 그보다는 좀 어렵겠지만 독자적인 마법 연구라면 그 쓸모를 증명하셔야 합니다.”

이한은 머뭇거렸다.

‘그냥 <트롤이 먹이를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는 포기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냥 포기하고 시작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참. 정신이 없어서 가문도 묻지 못했군요. 어디에서 나오셨습니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워다나즈 가문...! 혹시 가문의 이름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오신 겁니까?!”

말하면서도 실바스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워다나즈 가문이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일개 관료가 아닌 황제 폐하에게 직접 연락이 갔을 테니까.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소속된 단체의 이름으로 오신 거군요. 놀랐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를 실제로 뵙게 될 줄이야. 이렇게 어린 분도 계셨군요.”

“제가 많이 어린 편입니다. 잠깐. 혹시 다이할 씨와 친분이 있으십니까?”

이한은 실바스의 책상에 올려진 사진에 주목했다.

실바스와 다이할, 그리고 몇몇 다른 젊은 관료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 맞습니다. 다이할을 알고 있습니까?”

“예. 꽤 친한 사이입니다.”

사실 그렇게 친한지 안 친한지는 이한도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 이한도 필사적이었다.

<트롤이 먹이를 선호하는 종족에 대한 연구>는 필사적이지 않으면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달카드 가문에는 종종 초대를 받았었고요.”

“역시.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시니 그럴 것 같습니다. 저는 달카드 가문의 가주님을 언제나 존경해왔습니다. 제 롤모델이지요.”

“사실... 달카드 가문의 소년 중 하나인 아산이 트롤에게 당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괜찮습니까!?”

“예. 다행히 무사했지만 저는 그 때부터 제국이 트롤의 위협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 것 아닌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마법사의 말에 실바스는 자신도 모르게 감동했다.

자기만 관심 있는 분야에 몰두해서 돈 내놓으라고 날뛰는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이 마법사의 이유는 얼마나 고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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