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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08화 (608/687)

608화

충격적이었지만 이한은 금세 회복했다.

원래 교수의 명령을 받고 자식을 돌보는 일은 제자의 몫이었으니까.

해골 교장의 자식은 아니었지만 대충 비슷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한은 냉정하게 손수건을 붙잡았다.

눈앞에 있는 건 커다란 골드 드래곤이 아닌 교수의 어린 자식이었다.

“후. 저를 이기실 순 없을 겁니다.”

흥! 워다나즈 네가 자신감 넘쳐도 조우린을 이길 수는 없을 걸!

어린 골드 드래곤은 잔뜩 신이 나서 외쳤다.

*         *         *

“......”

커피를 홀짝이며 인쇄소에서 집어 온 <강아지 수인족 탐정 토베리즈>를 읽고 있던 해골 교장은 눈앞을 힐끔거렸다.

토베리즈가 사악한 왕자의 트릭을 밝혀내고 선량한 리치의 누명을 벗겨주고 있었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 일어나는 광경이 너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혹시 저 녀석,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 아니라 워다나즈 가문의 유모 아닌가?’

물론 드래곤 상대로 손수건을 들고 마력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긴 했다.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한두번 당긴 다음에 지쳐 쓰러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수십 번 넘게 마력 줄다리기를 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이것도 어지간한 마법사들이 보면 기절할 만큼 정말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조우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윽! 크으윽!”

끄응...

열심히 마력을 퍼부어서 손수건을 자신 쪽으로 당기던 이한은 슬쩍 눈치를 보다가 마력을 줄였다.

자신의 방향으로 손수건을 당기는 데에 성공한 조우린은 뛸듯이 기뻐했다.

이겼다! 조우린이 이겼어! 워다나즈. 또 졌구나!

“크윽. 너무 분합니다.”

헤. 조우린이 강해서 미안하게 됐어.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한은 주먹을 쥐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분통해했다.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뭔 마탑 망한 마법사처럼 연기를...’

다시 도전할 거지?

“잠깐. 전하. 똑바로 네 발을 붙이고 앉아주십시오. 위험합니다.”

신나서 일어서려는 조우린을 이한은 엄격하게 제재했다.

괜찮아. 조우린은 안 넘어져.

이한은 대답 대신 엄하게 팔짱을 끼고 조우린을 쳐다보았다.

어린 골드 드래곤은 눈치를 보더니 얌전히 앉았다. 이한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수건을 내밀었다.

“훌륭하십니다. 전하.”

흥. 조우린은 당연히 훌륭하지!

‘미친놈인가?’

골드 드래곤 상대로 무슨 강아지 훈련하듯이 강하게 명령하는 제자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커피를 뿜을 뻔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저게 잘 먹히고 있다는 점이었다.

황제의 셋째는 정신이 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친해지기 쉬운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이 어린 만큼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가혹하게 대응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마력이 많은 만큼 친숙하게 느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골드 드래곤은 또 손수건을 잡아당겨서 승리했다. 이한은 아까와 정확히 똑같은 자세로 발을 구르면 분해했다.

“크윽. 너무 분합니다.”

재밌었다! 이제 다른 거 하자.

“역시 전하. 골라주시는 놀이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습니다.”

그래? 워다나즈 너, 정말 지혜롭구나!

“어떤 놀이가 있습니까?”

고나달테스가 만들어 준 씨름판.

드래곤과 씨름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한은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다른 놀이도 듣고 싶습니다.”

고나달테스가 만들어 준 마법사 카드.

‘나쁘지 않은데?’

이한은 반색했다.

마법사 카드 게임이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놀이였다.

“잠깐. 교장 선생님께서 만들어주셨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전하의 덱은 골드 드래곤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네 덱은 텅 비었다는 뜻이지.”

“제 카드가 없는데 어떻게 게임을 합니까?”

“그러니까 전하께서 언제나 승리하시는 거겠지.”

“......”

이한은 마법사 카드 게임은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조우린이 이기더라도 그냥 무작정 이기게 하면 재미를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우연성에 의존하는 마법사 카드 게임은 져주기도 쉽지 않았다.

고나달테스가 만들어 준 체스 세트도 있어.

“...이것도 혹시 변형 체스입니까?”

맞아! 워다나즈 너, 정말 정말 지혜롭다! 이건 골드 드래곤이야. 전후좌우 대각선으로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고, 브레스를 쓸 수 있어. 브레스를 쓰면 체스판 전역의 적 말들이 전부 죽어!

체스 역사에 길이 남을 변형 체스에 이한은 아찔해졌다.

“그런데 제가 체스는 잘 못 둬서 말입니다.”

어쩔 수 없지. 조우린은 관대하니까 넘어가줄게.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대신 워다나즈는 더 많이 놀아줘야 하노라.

이한은 무심코 알시클을 쳐다보았다.

여차하면 회복시켜서 던져놓은 다음 이한은 몰래 저택을 빠져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침착하자. 쓸만한 놀이가 있을 거다.’

“이건 뭡니까?”

고나달테스가 만들어 준 격구용 공. 그런데 이건 사람이 적어서 못 하지.

“격구용 공이라기보다는 바위에 가깝게 생겼습니다만...?”

이한은 격구용 공의 생김새에 의아해했다.

공보다는 그냥 거대한 바위처럼 생겼다.

“마력을 불어넣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거다.”

“아까 손수건도 그렇고 바위도 그렇고 왜 이런 특이한 아티팩트를 만드신 겁니까?”

“...전하께서 원하셨다.”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골드 드래곤의 모습에 이한은 진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기려고 만든 거구나!’

생각해보니 손수건도 그렇고 저 격구용 공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드래곤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자기가 무조건 유리하게 겨루고 싶다는 애새끼 드래곤의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팽팽해야 승리의 재미가 있다는 것까지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전하. 사람이 적어도 이 공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야, 워다나즈?

“자. 보십시오.”

이한은 바위처럼 생긴 공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공이 진동하며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쉭!

공이 동굴 깊숙한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이한은 조우린에게 외쳤다.

“전하. 저 공을 빠르게 찾아오시면 전하의 승리입니다!”

그렇구나! 기다리고 있어, 워다나즈! 또 패배하게 해줄 테니까!

조우린은 신나서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이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이걸로 아까보다 좀 더 편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겠군.’

아까 손수건으로 한 터그놀이, 아니 마력 줄다리기는 체력 소모가 좀 있었다.

놀이 자체에는 체력이 소모될 일이 없었지만 흥분한 골드 드래곤이 이길 때마다 몸을 들썩이는 탓에 이한도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공 물어오기, 아니 간이 격구는 체력 소모가 훨씬 덜했다.

이한은 가만히 앉아서 공만 쏘아 보내면 됐으니...

“......”

미친놈 보듯이 빤히 쳐다보는 해골 교장과 눈이 마주친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변명했다.

“불경한 뜻은 없었습니다.”

“그러시겠지...”

찾았다. 워다나즈!

골드 드래곤은 신이 나서 바위를 들고 달려왔다.

이한은 박수를 치며 외쳤다.

“황녀 전하의 승리십니다! 이런, 또 지다니!!”

하!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자!”

신이 난 조우린에게 짐짓 화가 난 척을 하며, 이한은 다른 방향으로 바위를 쏘아 보냈다.

*         *         *

이한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그리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어린 골드 드래곤과 놀아주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직접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힘들다!’

앉아서 공만 쏘아 보내는 것도 수백 번 넘게 하면 사람이 지쳤다.

마력은 멀쩡해도 집중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조우린은 아직도 지치지 않았다. 공을 들고 달려오더니 이한에게 외쳤다.

다음! 다시 덤벼보시지, 워다나즈!

옆을 보니 해골 교장도 조우린의 체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가진 마법사를 먼저 지치게 할 줄이야.

“전하. 전하.”

왜? 더 멀리 던지게?

“혹시 제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십니까?”

이한은 어떻게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골드 드래곤은 즉답했다.

없어.

드래곤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제외하면 그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조우린 같은 어린 드래곤이 제국 전역의 일에 관심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는 지금 에인로가드에 다니고 있습니다.”

에인로가드! 알아. 고나달테스의 영지잖아.

“맞습니다. 에인로가드에서는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예를 들어 저번에는 정령들이 대홍수를 일으킨 탓에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재밌었겠다!

“...예, 재밌었습니다. 저희는 만들어놓았던 나룻배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폭풍이 워낙 심해서 탄주어도 소환했습니다만...”

어떻게?

“버두스 교수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탄주어를 소환할 수 있는 시약을 구해다주셨거든요.”

이한은 해골 교장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슬쩍 진실을 바꿨다.

버두스 교수는 착한 사람 같구나.

“그건 아닙니다. 하여간 이 정령들이 일으킨 홍수 사태 때문에...”

이한은 에인로가드에서 홍수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하나씩 말했다.

더 길게 시간을 끌수록 더 오래 쉴 수 있는 것이다.

홍수 때는 뭘 먹고 살았고, 잠은 어떻게 잤고, 도서관에 요새를 세웠는데 눈치 없는 몬스터들은 쳐들어오고, 세이렌하고 친해져서 이제 세이렌이 이한의 얼굴만 봐도 달려오고...

처음에는 제국 전역의 일에 별 관심이 없다고 밝힌 조우린이었지만 점점 더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해골 교장은 에인로가드의 내밀한 뒷이야기까지 팔아가며 시간을 끄는 제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해골 교장이 보기에도 조우린을 상대하는 건 극한의 노동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일들도 제법 재밌지 않습니까?”

더!

“예?”

더 해줘. 워다나즈. 더! 조우린은 이야기를 더 듣고 싶구나!

“...그러면 친구들과 외출했다가 씨 서펜트를 만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이건 마법범죄자와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든 조우린의 시선을 돌리는 데에 성공한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다행히 에인로가드에서 일 년을 보내면서 이야기 할 사건은 많고 많았다.

구울의 왕이나 바실리스크는 물론이고 서리거인의 왕까지.

차원이 중첩되는 바람에 학교에 겨울이 찾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자 조우린은 너무나도 좋아했다.

고나달테스! 조우린도 에인로가드를 방문하겠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해골 교장은 입으로는 그렇게 대답하고 이한에게는 눈빛으로 신호했다.

-절대 안 된다.

예측불허인 조우린의 성격을 봤을 때 에인로가드로 데리고 갔다가는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난동을 피우다가 학생들한테 토벌이라도 당하면 한 수십 년은 토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야기 주제를 바꿔야겠군.’

“꼭 학교 안에서만 일들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아까 외출했다가 씨 서펜트를 만났던 것처럼 밖에도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한은 올해 만난 범죄자들을 늘어놓았다.

반마법주의자부터 시작해서 마법범죄자나 그냥 일반 범죄자까지.

‘...생각해보니 조금 많이 만나긴 한 것 같은데.’

골드 드래곤은 매우 흥미로워하며 들었다.

조우린이 궁금한 게 있는데.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전하.”

워다나즈가 이렇게 위기에 많이 빠지면 영지의 주인인 고나달테스 잘못 아니야?

“......”

“......”

이한과 해골 교장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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