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화
“마법사의 습격이다!!”
“뭐!?”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에 위층에 있던 용병들은 깜짝 놀랐다.
우그다는 재빨리 재생력 강화 물약을 꺼내 마시고 방패와 철퇴를 집어 들었다. 노련한 용병다운 반응이었다.
“감히 어떤 놈이!?”
“도둑 길드 놈들이 의뢰한 거 아닙니까? 건방진 놈들 같으니.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다들 침착해라. 마법사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니까!”
우그다는 부하들에게 강하게 외쳤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부하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장에 참가한 적 있는 용병들이라면 누구나 마법사를 두려워했다. 괴기스러운 주문이 영창되고 마법이 완성되면 옆에 있던 수십 명이 박살나는 건 예삿일이었으니 두려움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놈들의 마법이 강력한 건 그 준비 과정이 길어서다. 전장이면 모를까 이렇게 그쪽에서 먼저 들어온 이상 그리 강한 마법은 쓰지 못해!”
“과연...!”
“내 뒤를 따라와라. 마법사 놈의 목을 따버릴 테니까!”
우그다는 방패를 들어 올린 채 앞으로 솔선수범해서 나섰다.
이런 들개나 늑대 같은 놈들을 부리기 위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마법처리가 된 방패에 재생력 강화 물약까지 마셨으니, 어지간한 마법 한 방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꿀꺽-
계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 중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면 마법사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용병 놈들아. 거기서 그러고 있어봤자 다 보인다. 그냥 내려오지 그러냐.”
밑에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들은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속지 마라. 마법사 놈이 도발하는 거다. 마법은 한 번 쏘면 곧바로 다시 쏘지 못하니까!”
“그건 제대로 배워먹지 못한 길거리 잡놈이나 그렇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을 뚫고 검이 올라왔다. 시퍼런 냉기를 뿜는 검은 순식간에 직선을 그리며 용병들을 관통했다.
“아아아악!”
“크아아악!”
“왜, 왜 이러는 거냐! 어디서 보낸 거냐!”
우그다는 경악해서 외쳤다.
마법사의 실력은 예상보다 몇 배는 위였다.
이 인원이 일격에 제압되다니.
도둑 길드 놈들의 재산을 전부 다 털어도 이런 마법사를 고용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편지를 받았을 텐데.”
“편, 편지?”
“그래. 에인로가드에서 온 편지. 설마 못 받았나? 못 받았어도 억울해하지 마라. 못 받은 네놈 잘못이니.”
“아... 아니. 받았소. 받았소! 하지만 그게 진지한 편지인지는 몰랐소!”
“내가 성심껏 쓴 편지를 보고도 진지한 줄 몰랐다는 건가? 모욕적이군.”
상대 마법사의 대답에 우그다는 진땀을 흘렸다.
마법사의 괴팍한 성정머리는 우그다도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이 마법사의 실력을 보아하니 분명 성격도 비례해서 괴팍하리라.
“내가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랬소.”
“당연히 아는 게 없으니까 무시했겠지. 아는 놈이 무시했으면 그건 미친놈이지.”
“...말로 해결합시다. 말로!”
“말로? 지금도 말로 해결하고 있지 않나.”
해골 교장은 계단을 올라오며 피식 비웃었다.
“내가 말로 해결하지 않았으면 여기 있는 놈들은 이미 전부 죽었을 거다.”
“......”
“그리고 그런 말을 할 거였으면 철퇴는 내려놨어야지. 속 보인다, 쓰레기야.”
“!”
우그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자 움찔했다.
대화를 하면서 마법사를 방심시킨 뒤 마법사가 올라오면 근접전을 시도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법사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니.
우그다는 철퇴를 불끈 쥔 뒤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벽에 박혀 있던 검이 번개처럼 돌아오며 우그다의 몸을 관통해서 꿰뚫어버렸다.
쩌저저적!
“커... 커억.”
얼굴을 제외하고 완전히 얼음 동상으로 변해버린 우그다를 보며, 해골 교장은 충고했다.
“앞으로 편지는 무시하지 말도록.”
“내... 내 돈 주고 산 노예 놈을 왜...! 그런 놈은 마탑에서 쓰지도 못할 거다! 기껏해야 실험체로나 쓸 놈인데 왜 이렇게까지...”
빡!
뒤에서 듣던 이한은 살짝 분노해서 우그다의 턱을 수옥탄으로 날려버렸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네 물구슬 말이냐? 좀 심하긴 했지만 저런 쓰레기 하나 죽였다고 가책을 느낄 필욘 없지.”
“아니... 저 사람이 방금 떠든 걸 말한 거였습니다. ...어, 설마 죽었습니까?”
“죽었을 수도 있고 안 죽었을 수도 있고. 운 나쁘면 죽었고 운 좋으면 살았겠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 이쪽이군.”
해골 교장은 널브러진 용병들을 마치 구겨서 버린 종이뭉치처럼 대했다.
대충 발로 차서 건물 밖으로 날려버린 뒤 데스 나이트들을 시켜서 감옥에 데리고 가라고 명령했다.
끼이익-
문 안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에 이한은 인상을 찡그렸다.
용병 놈들이 노예를 사서 가둬놓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다른 노예들은 없었고 방 안 깊숙한 쪽에 천으로 덮인 우리가 보였다. 맹수를 가둘 때나 쓸 법한 금속제 우리였다.
“힘이 센 종족인가 봅니다?”
“글쎄. 천 치워봐라.”
해골 교장의 말에 이한은 다가가서 천을 치웠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안에 갇혀서 자고 있던 노예는 놀랍게도 고르곤 혼혈이었다.
“...어...”
에인로가드에 고르곤 혼혈이 입학해도 괜찮나?
이한은 순간 당황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고르곤은 석화 저주를 타고난 몬스터. 눈이 마주치면 적을 돌로 바꿔버리는 괴물이었다.
당연히 고르곤 혼혈도 어느 정도는 그 능력을 물려받았을 텐데...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쉽군. 고르곤 혼혈이 입학해도 되냐고 물었다면 가르시아 교수한테 그대로 전달해주려고 했는데.”
“......”
이한은 해골 교장의 못된 심보에 전율했다.
“깨워봐라. 데리고 나가야 하니.”
“잠깐. 교장 선생님. 눈을 뜨면 석화 저주가 발동될 거 아닙니까.”
“여기서 석화 저주 걸릴 사람은 없는데?”
‘사람이 자기밖에 모르나?’
이한은 투덜대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야 괜찮아도 저는...”
“너도 안 통한다.”
“...어, 그렇습니까?”
“바실리스크도 상대했었으면서 벌써 까먹은 거냐? 뭘 새삼스럽게.”
해골 교장이 한심하게 쳐다보자 이한은 살짝 머쓱해졌다.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해 둔감한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바실리스크의 사안은 버텨도 고르곤의 사안은 못 버틸 수도 있어서 여쭤본 거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깨우기나 해라.”
이한은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고르곤 혼혈 후배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쿨쿨!
“이런 상황인데 용케 잘 잡니다?”
“원래 몬스터 쪽 핏줄이 섞인 녀석들은 정신적으로도 터프한 편이다. 저렇게 잘 자는 거 보니 깨우기도 뭐하군.”
해골 교장은 마법으로 고르곤 혼혈 후배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쿨쿨 잠에 빠진 채 억지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기괴한 관절 인형 같았다.
“도중에 일어나면 주변에 석화 저주를 퍼뜨리는 거 아닙니까?”
“그렇군.”
해골 교장은 붕대로 후배의 얼굴을 코와 입만 빼놓고 전부 덮어버렸다.
“됐지? 가자.”
“교장 선생님. 돌아가실 때는 따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물론 해골 교장은 이한을 놔주지 않았다.
* * *
에안두르데가 눈을 떴을 때 느낀 건 공기가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평소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보다 훨씬 상쾌한 느낌이었다.
킁!
길게 호흡한 에안두르데는 다음에 있을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눈을 감고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나쁘지 않았다. 어떤 적이 오든 돌로 굳혀버리고 독을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여러 노예들을 만나왔지만 에안두르데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단순했다.
적이 나오면 싸운다.
이기면 배불리 먹고 지면 굶는다.
그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에안두르데는 다음 싸움이 언제쯤 열릴지 세어 보았다.
주변 환경이 바뀐 걸 보니 머지않아 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전투의 흥분과 전후의 포식에 에안두르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얼굴을 가려놓은 거지?’
고개를 끄덕인 에안두르데는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누가 붕대로 칭칭 감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투기장을 운영하는 자들이 감은 게 분명했다.
에안두르데는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싸움을 준비하는 자들은 ‘배당을 조절하기 위해서’나 ‘관객의 흥미를 위해서’같은 알기 힘든 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이것도 아마 그런 것이리라.
“교장 선생님. 얘 일어났는데요?”
“붕대 치워주고 식사하라고 해라.”
“지금 식탁에 정어리밖에 없잖습니까.”
“그럼 네가 펭에린한테 가서 부리 좀 때려줘라.”
“...그냥 제가 차리겠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에안두르데는 전투 자세를 갖췄다.
아마 붕대가 풀리자마자 싸움이 시작될지도 몰랐다.
킁!
에안두르데는 다시 한 번 호흡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붕대 좀 풀어줄게. 놀라지 마라.”
붕대가 풀어지는 순간 에안두르데는 행동에 나섰다.
최대한의 힘을 담아 상대를 쏘아보고 동시에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움직여 상대를 물었다.
“...어, 뭐하냐?”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후배를 쳐다보았다.
붕대를 풀어주자마자 마안을 사용하고 뱀 머리카락을 사용해 물다니.
소매 속에 있던 바실리스크가 괘씸해 죽겠다는 듯이 쉿쉿댔다. 명령만 내리면 물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
“후배.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에안두르데는 이한의 양 어깨를 붙잡고 훌쩍 뛰어올라서 목을 조르려고 시도했다.
그 동작에 이한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후배의 명치를 무릎으로 찍고 거리를 벌린 뒤 옆으로 걷어차서 날려버렸다.
“...헉! 내가 무슨 짓을...!”
이한은 자신이 한 짓에 경악하며 사과했다.
에인로가드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낸 탓에 공격을 받자 반사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킁!
에안두르데는 아직 지지 않았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이한은 바로 에안두르데의 머리를 한손으로 붙잡아서 바닥으로 꽉 눌렀다.
뱀 머리카락들이 일제히 물려고 하자 바로 소매 속의 바실리스크가 튀어나와서 살벌하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지 뱀 머리카락들이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힘으로 버텨서 일어나려고 낑낑대던 에안두르데는 체력이 다 소진되자 풀이 죽어서 항복 선언을 했다.
“졌슴니다...”
“그, 그래. 미안하다. 많이 아프진 않고?”
“괜찮슴니다...”
“지금 손 놓을 건데 다시 공격하진 않을 거지?”
에안두르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손을 놔주고 후배를 일으켜 세웠다.
“교장 선생님. 에인로가드 설명 좀 해주십시오.”
“바쁘니까 네가 해라. 후배 너무 많이 패지는 말고.”
“......”
이한은 해골 교장을 욕하고 에안두르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국에 아주 개같은 곳이 있는데...
“...그래도 마법을 배우고 인맥을 쌓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지. 네 마법 재능은 아주 뛰어나. 네가 여기서 마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식사는 나옴니까?”
“나오긴 하는데, 안에서 투쟁해야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이한의 말에 에안두르데의 눈빛이 반짝였다.
“가겠슴니다!”
“...잠깐. 네가 지금 너무 섣부르게 결정한 것 같은데. 내가 다시 설명해줄게. 그러니까 에인로가드는 아주 개같은...”
“적당히 해라! 애가 좋다는데 왜 그러는 거냐!”
쓸데없는 소리를 덧붙이는 이한의 모습에, 서재에 있던 해골 교장이 타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