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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15화 (615/687)

615화

‘후. 넘어갔군.’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닐리아가 방학 동안 그림자 순찰대를 탈출할 수 있도록 교장의 서명을 위조했었던 것이다.

다행히 교장의 신경은 밑의 기사들에게 쏠린 모양이었다.

“하여간 도움 안 되는 놈들 같으니...”

“쏘라고 명령하시면 몰래 쏘겠습니다.”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의 은근한 말에 해골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저번에 쏜 걸로 만족하자꾸나.”

“......”

이한은 옆에서 나누는 대화에 경악했다.

물론 북부 산맥의 사냥꾼들과 그 밑의 기사들은 사이가 좋기 힘들었다.

산맥의 깊숙한 곳을 목숨 걸고 오가며 정찰하는 사냥꾼들 입장에서 기사들은 그저 도움 안 되고 떽떽대기만 하는 거만한 놈들이었다.

그에 비해 북부의 기사들 입장에서 사냥꾼들은 안 그래도 척박한 가문의 물자란 물자는 다 뜯어가면서 계속 더 달라고 불평하는 야만스러운 놈들이었다.

‘그래도 화살 쏘는 건 좀 심했다.’

*         *         *

북부의 기사들은 통나무집 앞에 앉아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못한 어린 견습기사 한 명이 살짝 화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북부의 명예로운 기사들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게 맞는 겁니까? 분명 오늘 오겠다고 했는데!”

하늘 같은 기사들이 가만히 있는데 감히 자신이 먼저 건방지게 화를 내다니.

원래라면 몽둥이가 날아들었을 테지만, 견습기사를 가르치는 노기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오호. 네가 그러면 나무꾼들이 돌아오면 한 마디 해보려무나.”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

화를 내려던 다른 기사들은 노기사의 말에 동작을 멈추고 미소지었다.

어린 견습기사는 그런 상황도 모르고 씩씩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에서 한 무리의 나무꾼들이 올라왔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 인근의 나무꾼들이었다.

다양한 종족들로 구성된 북부 산맥의 나무꾼들은 커다란 덩치와 그 덩치가 작게 느껴질 만한 도끼를 들고 걸어왔다. 이들이 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달궈진 육체에서 나오는 김이 뿜어져 나왔다.

“......”

견습기사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나무꾼들의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그 모습에 기사들은 킬킬댔다.

이 북부 산맥 주변의 자유민들은 다른 지역의 자유민들과 달랐다.

이 험악한 지역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무력과 담력 없이는 힘든 일인 것이다.

특히 여기 산맥 나무꾼들은 그 중에서도 유명한 이들이었다.

선천적으로 힘을 자랑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어 어지간한 몬스터 무리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소탕하는 이들!

“이... 이... 이렇게 기사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견습기사는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못하고 외쳤다.

그 외침에 나무꾼들은 견습기사를 마치 머저리 보듯이 쳐다보았다.

“뭡니까. 기사 나으리들. 시비 걸러 오셨나?”

“감, 감히! 감히...!”

“미안하네. 이해해주게. 아직 어린 놈이라 그래.”

노기사가 웃으며 견습기사의 입을 막았다.

“우리가 온 이유는 자네들도 잘 알지 않나. 너무 아까운 재능이라 그래.”

그 말에 나무꾼들은 뺨을 긁적였다.

사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나무꾼, 울간.

나무꾼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덩치와 강한 힘으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당연히 이런 유명세는 주변의 기사들 귀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녀석이 싫다잖소. 이미 도망쳐 나왔는데.”

놀랍게도 울간은 몇 년 전에 견습기사로 훈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유명세를 떨쳤던 만큼 그 때부터 기사들이 찾아와서 권했던 것이다.

간곡한 권유에 울간은 기사들을 따라가서 견습기사로 훈련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다시 나무꾼들에게 돌아왔다.

“우리도 이유를 잘 모르겠군. 분명 견습기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았는데 말이야.”

“우린 이유를 알지. 답답한 기사들보다 자유로운 나무꾼으로 살기를 선택한 거 아니겠소.”

나무꾼들은 동료의 말에 낄낄댔다.

몇몇 기사들이 발끈했지만 노기사는 팔을 뻗어 제지했다.

“이야기나 하게 해주게.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듣고 싶어서 그래.”

“다른 견습기사 놈들이 따돌린 거 아닌가?”

“그건 아니야.”

“어떻게 확신하쇼?”

“그야 울간이 다른 견습기사들을 다 때려눕혔으니까...”

첫 날 숙소에서 울간은 다른 견습기사들을 다 때려눕히고 이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했다.

울간이 말 한 마디만 하면 다들 죽는 시늉까지 했다는데 따돌림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 역시 울간이야.”

“시시해서 그만둔 거 아닌가?”

나무꾼들의 탄성에도 노기사는 침착을 잃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기사로 이 북부를 오고 다녔지만 울간처럼 확신이 드는 재목은 드물었다.

-이 녀석은 기사를 위해 태어난 녀석이다!

커다란 덩치와 강력한 완력, 뛰어난 반사신경과 심지어 선천적인 초능력까지.

잘 키우면 북부에 전설적인 기사가 하나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꾼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울간은 나무꾼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운 녀석이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기사단으로 데리고 오겠다.’

이번에는 나이도 좀 더 먹었으니 자신이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리라.

“기사는 시시하지.”

“???”

“하지만 마법사는 시시하지 않다!”

“...?!”

북부 기사들은 웬 미친 이방인이 시비를 거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가 얼굴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제국 마도방벽의 수호자가 그림자 순찰대를 거느리고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각, 각, 각, 각, 각...”

“각각각각각하라. 꽤 괜찮군.”

“여,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북부 기사들은 당황했다.

보통 고나달테스가 이 척박한 땅에 올 때는 커다란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산맥의 순찰대 요새에 걸린 마법이 파괴되었다거나, 몬스터 대군이 등장했다거나...

그 중 노기사는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다.

“설마 울간이 에인로가드의 학생으로 뽑혔습니까?!”

“그렇다.”

“말, 말도 안 돼!”

“왜. 덩치 크면 마법 못 하나?”

고나달테스의 말에 그림자 순찰대원들은 뒤에서 비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기사 나으리들은 편견에 가득 차셨군!”

“맞아, 맞아!”

“......”

기사들은 다음에 그림자 순찰대에 보내는 물자에 꼭 침을 뱉겠다고 다짐했다.

“아... 아니. 울간은 아무리 봐도 기사로 타고난 재목이잖습니까.”

“놈의 완력이 좀 이상하지 않았나? 덩치를 감안해도? 아마 마력에 대한 감응력이 타고난 걸 거다. 배우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마력을 다루는 거지. 게다가 초능력까지 있다면서? 제대로 교육 받지 않은 마법사가 흔히 보여주는 현상이군.”

“오...”

나무꾼들은 해골 교장의 말에 솔깃해하며 쳐다보았다.

꽤 대단한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더 신뢰가 갔다.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귀함과 지성의 아우라가 흘러넘쳤다.

“아니, 마력과 초능력 모두 다 기사에게도 필요한 능력입니다!!”

기사들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기사도 오러를 뽑아내려면 마력을 다룰 줄 알아야 했고, 초능력 또한 마법사보다는 기사에게 더 유용한 능력이었다.

마법사야 어차피 공부로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무엇하러 초능력 같은 것에 집착하겠는가.

마법사들이 초능력을 ‘원시 마법’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노기사는 여유로운 고나달테스의 태도에 의아함을 품었다.

저 해골 교장께서 이렇게 느긋하게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으신 거지?

*         *         *

“난 산이 싫어.”

앞에 가던 알시클은 헉헉대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육체 단련을 소홀히 한 마법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에안두르데는 한심하다는 듯이 알시클을 쳐다보았다.

“한심!”

“아니. 원래 마법사들은 허약한 사람들이 좀 많아.”

“?”

에안두르데는 이한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머쓱해진 이한은 변명했다.

“예외도 있긴 해.”

“왜 단련을 안 함니까?”

“그게 마법의 편리함이 워낙 뛰어나서...”

“게으름!”

“아니. 게으름이랑은 좀 다른... 맞나?”

지금 이한 일행이 따로 도는 이유는 간단했다.

해골 교장의 명령 때문이었다.

-신입생 놈이 없는 거 보니 아직 다른 곳에 있나보군. 내가 기사 놈들을 현혹시키고 있을 테니 찾아라.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에인로가드에 들어오게 해.

-예? 어떻게 말입니까?

-쉽지. 네가 평소 하던 것처럼.

-...아니...

이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해골 교장은 훌쩍 가버렸다.

남은 이한은 알시클과 후배를 데리고 울간을 찾으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

“눈이여, 흔적을 가르쳐다오.”

알시클이 주문을 외우자 눈송이들이 바닥에 남은 발자국을 드러냈다.

다행히 성공하자 알시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마법은 흔적을 찾는 마법이었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장소에서 쓰지 않으면 마법 자체가 실패했다.

뒤에서 보는 어린 마법사들이 있어서 실패할까봐 걱정됐는데 다행히 성공한 것이다.

‘휴. 다행이군.’

“와. 이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렇게 어려운 마법은 아니야. 나중에 가르쳐줄까?”

“감사합니다. 저는 예지 마법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한이 점을 칠 때 쓰는 색색의 돌멩이를 다시 집어넣자 알시클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예지 마법을? 여기는 공방이 아니라서 부담이 심할 텐데?”

보통은 ‘벌써 예지 마법을 쓸 줄 안다고?’라고 물었겠지만 알시클은 이제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지 않을 만큼 이한과 친해진 상태였다.

“아. 이 정도는 마력으로 어떻게든 감당이 되더군요.”

“......”

알시클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뿌린 눈송이 발자국을 쳐다보았다.

슥슥슥-

“왜 지우십니까?!”

“이건 잊어버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진짜!”

알시클을 말리는 사이 에안두르데는 킁킁대며 사람의 위치를 찾았다.

“저기, 저기!”

에안두르데는 이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저 멀리를 가리켰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인간이 도끼로 나무를 찍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깜짝 놀랄 만큼 빨랐다.

‘저 녀석. 에인로가드에 입학하면 땔감은 걱정이 없겠군!’

에인로가드의 시장균형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인재의 발견에 이한은 놀라워했다.

알시클도 옆에서 같이 신기해했다.

“덩치는 전사 같은데 꽤 마법의 재능이 있잖아? 초능력까지 쓰네.”

“초능력 말입니까?”

“그래. 염력 같군. 지금 도끼에 염력을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어.”

“정말 신기하군요.”

‘니가 더 신기해...’

알시클은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평범한 초능력에 비하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훨씬 더 신기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울간은 마법사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혹시 기사들...?!”

“아니. 우린 에인로가드에서 온 마법사다. 울간.”

알시클은 어린 나무꾼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에인로가드 말입니까...?”

“그래. 네게 마법의 재능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다. 잠깐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나?”

울간은 도끼를 내려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마법이라니...”

“견습기사로 수련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만둔 이유를 물어볼 수 있나?”

알시클의 질문에 울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라면...”

“아닙니다. 사실 제가 제대로 대답했어야 했는데. 그. 제가 말입니다...”

울간이 결심한 표정을 짓자 다른 셋은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대체 뭔 이유가 있었길래 저러는 건지 궁금하긴 했다.

대체 왜?

“...싸움을 싫어합니다.”

“......”

“......”

잠깐 침묵이 돌았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알시클이 말했다.

“그렇다면 에인로가드가 더더욱 잘 어울리겠군!”

“그,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울간이 솔깃해하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싸움 싫어하는데 에인로가드 와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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