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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22화 (622/687)

622화

이한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범죄자면 잡아야 하는 게 맞았다.

‘북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산다, 기사와 범죄자’라는 제국의 유명한 속언에서 알 수 있듯이 북부는 도망쳐 온 범죄자들이 많았다.

넓고, 험하고, 사람 없는 곳이 많은 만큼 도피처로 제격인 것이다.

이런 범죄자들을 붙잡는 것도 기사 가문들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혹시 범죄자를 잡아가면 지클린 님께서 만족하시지 않을까?”

“꿈 깨시지. 언니가 그런 걸로 만족할 리는 없을 테니까.”

“......”

이한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기준이 너무 엄한 거 아닌가?’

“그런데 신분을 확인할 방법이 있나? 혹시 그냥 공격해도 되나?”

정령이 범죄자 같다고 해서 꼭 진짜 범죄자란 법은 없었다.

정령도 상대의 사악함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인 만큼, 범죄자처럼 느껴져도 제국법 상으로는 범죄자가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안 되지. 여기가 에인로가드로 보여?”

지젤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에인로가드와 달리 밖에서는 확인도 안 한 상황에서 멋대로 공격을 날리면 안 됐다.

“그러면?”

“접근해서 신원을 확인해야지.”

“아쉽군. 에인로가드였으면 그냥 공격해도 됐을 텐데.”

지젤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새삼스럽게 에인로가드에 너무 물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북부는 정말 빌어먹을 땅이군.”

“쉿. 조용히 해라.”

용병들은 내뱉은 숨이 하얗게 김으로 바뀌는 걸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제국의 전역을 돌아다니는 용병들에게도 북부의 추위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물며 그게 겨울의 북부라면 더더욱 그랬다.

“지금 입 움직이는 것도 뭐라고 하는 거요?”

“멍청한 놈.”

“뭐? 누가 멍청하다고? 서로 피 좀 덥히게 부딪쳐볼까?”

“주변이 조용하다고 방심하지 마라. 북부에서는 언제든 몬스터들이 나타난단 말이다.”

북부를 몇 번 와본 경험이 있는 용병의 말에 다른 용병들이 움찔했다.

그 말을 듣자 주변의 한적함이 폭풍 전의 고요처럼 불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 주변은 뭐가 나올 게 없어 보이는데. 온통 눈과 얼음뿐이잖나.”

“네가 여기 토박이가 아니라서 안 보이는 거다. 하여간 그만 떠들어라. 몬스터든 기사든 순찰자든 관심을 끌어서 좋을 게 없으니.”

용병들은 힐끗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손님을 쳐다보았다.

금화만 주면 무슨 의뢰든 맡는 게 용병인 만큼 이번 의뢰도 맡았지만, 상대의 정체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이렇게 급하게 금화를 뿌려가며 용병들을 모아 북쪽으로 향하고 있단 말인가?

여기 있는 용병들처럼 제국법에 어긋나는 범죄를 몇 개 저지른 건 분명할 텐데, 그 이상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시발, 기사다!!”

“표정 관리해. 표정 관리하라고! 이보쇼. 가만히 계시오. 우리가 대답할 테니까.”

로브를 푹 눌러 쓴 의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은 긴장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북부에서는 허름하고 외진 곳이라 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었다. 가끔 이렇게 멀리 순찰을 나오는 기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두명이라고 해서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됐다. 근처에 다른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어린놈들인데.’

용병들은 다가오는 기사들의 나이가 새파랗게 젊은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정도면 갖고 놀 수 있었다.

“기, 기사 나으리. 무슨 일로 오시는 겁니까?”

가장 앞의 용병이 겁먹은 연기를 하며 말했다. 그 연기가 워낙 그럴듯해 다른 용병들도 감탄했다.

‘저 놈. 비싼 이유가 있군.’

‘의뢰를 수십 개나 해결했다는 게 허풍이 아니었어.’

용병의 실력은 그 용병이 해결한 의뢰로 증명됐다.

수십 개가 넘는 의뢰를 해결하면서 목숨 부지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용병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

특출난 능력이 없다면 저렇게 버티지 못했다.

그 연기에 속았는지 젊은 기사가 부드럽게 인사했다.

“아. 별 일 아닙니다. 이 인근에 몬스터들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 있나 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어이쿠, 그러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용병은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누가 봐도 감격한 모습이었다.

“저희 같이 천한 놈들을 기사 나으리께서 신경을 써주시다니...”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북부의 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조각처럼 잘생긴 기사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선이 가늘고 예쁘장하게 생긴 기사가 빤히 쳐다보았다.

용병들은 왜 저렇게 쳐다보나 의아해했다.

“...제법 기사로서 훌륭한데.”

“하하. 고맙다.”

‘아. 저쪽이 위인가.’

짤막한 대화에서 용병들은 저 두 기사의 상하관계를 대충 짐작했다.

아마 선이 가는 기사가 먼저 기사단에 들어왔고 잘생긴 기사가 뒤에 들어온 게 분명했다.

잘생긴 기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곧 야영지를 찾아야 할 텐데, 괜찮은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럴 것까지야...”

“북부의 손님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기사로서의 책무입니다.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으음.’

용병들은 떨떠름했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거절했다가는 오히려 이상해보일 것 같았다.

게다가 상대는 딱히 의심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말하는 걸 보니 아직 새파란 기사가 분명했다.

‘한 놈은 물렁물렁해. 다른 한 놈은 좀 까탈스러워 보이고.’

‘잘생긴 놈은 평민 출신인가?’

‘그런 것치고는 너무 반반한데.’

‘그렇긴 하군. 일단 받아들이자고.’

용병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기사님들의 가문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알파 가문입니다.”

“...나도.”

자리에 없는 친구의 가문을 슬쩍 빌리며, 이한과 지젤은 속으로 사과했다.

“알파 가문, 알파 가문. 그 이름을 꼭 기억해놓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자. 이쪽으로.”

잘생긴 기사는 절벽 아래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강이 가깝고 지형 덕분에 주변의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야영지였다.

“이런 곳이!”

“괜찮습니까?”

“예, 예! 호사입니다. 기사님 덕분에 이런 곳도 찾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야영지 준비하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

용병들이 당황해서 거절하려고 하는 순간 예쁘장하게 생긴 기사가 먼저 화를 냈다.

“지금 장난하는 거냐? 무슨 준비까지 도와? 여행하는 놈들 시중드는 게 기사가 할 일이냐?”

“에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만약 몬스터라도 만나면 어떡하려고.”

“헛소리 하지 마라!”

화를 낸 기사는 홱 등을 돌리고 거리를 벌렸다.

머쓱해진 용병들에게 잘생긴 기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만 저렇게 하는 겁니다.”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용병들이 보기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기사가 더 일반적인 기사였다.

보통 용병 놈들을 왜 도와주냐고 짜증을 내지, 이렇게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기사 나으리, 정말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샘솟아라.”

기사는 놀랍게도 지팡이를 꺼내서 휘둘렀다. 맑은 물이 샘솟아서 커다란 솥을 채우자 용병들은 깜짝 놀랐다.

“마법사셨습니까?!”

“하하. 간단한 것만 몇 개 할 줄 압니다.”

기사단 소속의 마법사들이 있긴 했지만 상대의 체격이 체격이라 당연히 기사라고 생각했던 용병들은 깜짝 놀랐다.

‘정말 평민 출신인가본데?’

‘그런가보군.’

마법사의 마법은 놀라웠다. 원래라면 훨씬 시간이 걸릴 야영지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용병들은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사실도 잊고 감탄했다.

“허...!”

“마법사 나으리, 정말 대단하십니다.”

잘생긴 마법사는 매우 쑥스러워했다.

“별 것 아닙니다.”

“이 정도 마법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야영지의 외벽이 만들어지고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잘생긴 마법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이봐! 마법사 나으리에게 커피라도 한 잔 따라드려.”

“하하. 아닙니다. 여행길에 커피도 부족하실 텐데, 저는 돌아가서 마시면 됩니다.”

잘생긴 마법사는 정말로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기다리던 기사와 함께 돌아서서 떠나갔다.

그걸 본 용병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휴...”

“정말 별 거 아니었군.”

“놀랐네, 정말. 순진한 놈이라 그런지 더 긴장하지 않았나?”

“맞소. 그래도 야영지는 깔끔하군그래!”

용병들은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풀리니 더 웃음이 나왔다.

“의뢰주를 보고도 한 마디도 안 하다니. 둔한 놈 보게!”

“그냥 추워서 저렇게 입었다고 생각했겠지! 크핫핫!”

이제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의뢰주가 로브 속에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기사 놈들이 알려준 야영지에서 머물러도 되나? 찜찜한데.”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보아하니 물렁물렁한 풋내기 놈들이에요. 의심하는 기색이 전혀 없더군요.”

“좋은 일 했다고 그냥 가버릴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만든 야영지를 버리는 것도 아깝지 않겠습니까?”

“마법이 대단하긴 해! 물을 떠올 필요도 없잖아.”

용병들은 평소 볼 수 없는 깔끔한 야영지의 모습에 감탄했다.

원래 이 추운 날씨에 야영지를 준비하려면 몇 배의 고생이 들어갔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파고, 얼음을 깨고 물을 구하고, 그 물을 또 끓이고, 땔감을 찾아오고...

그 모든 과정들이 친절한 마법사 하나로 해결이 되었으니 얼마나 편하단 말인가.

“커피 다 됐다!”

“으. 나부터 좀 주게. 몸이 얼어붙겠어.”

“나도, 나도!”

용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갓 끓인 커피를 부어넣었다.

그리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쿨쿨 잠에 빠져들었다.

*         *         *

“흠. 쉽군.”

“......”

이한과 지젤은 멀리서 투명화 마법 걸고 지켜보고 있었다.

-어, 숫자가 좀 많은데? 용병들까지 있잖아?

-골치 아프겠는데.

-모라디. 혹시 모라디 가문의 이름으로 멈추라고 하면 용병들이 말을 들을까?

-저런 놈들은... 보통 안 듣지.

노련한 용병들은 제국법보다 의뢰를 우선시했다.

확인 좀 하겠다고 하면 바로 공격을 하거나 시간을 끌면서 흩어질 터.

-그렇겠지? 평화롭게 제압하자.

-평화롭게 제압할 방법이 있나?

-있지. 나는 좋은 마법사를 할 테니까 너는 나쁜 마법사를 하라고. 그럼 경계심도 무뎌질 거야.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걸 하자고?

-걱정 마. 에인로가드에서도 통했으니까 밖에서도 통해.

그리고 실제로 통했다.

솥에 물을 넣을 때 수면 물약을 섞어 넣어 용병들을 모두 잠재운 이한의 솜씨를 보자, 지젤은 앞으로 워다나즈가 주는 물약은 좀 더 고민하고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신분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한은 용병들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의뢰주에게 외쳤다.

지팡이를 쥔 손은 위협적이지는 않아도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디서 나온 놈들이지?”

“북부 기사 가문은 제국법에 따라 행인들에 대한 적합한 검사권과 유사시의 체포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쪽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로브 쓴 사람이 중얼거렸다.

“매복하고 있었군...”

“예?”

“매복하고 있었군. 그렇지? 더러운 제국의 개새끼들아.”

‘어떻게 알았지?’

“프라흐갈 님은 너희 개새끼들의 음모에 굴하지 않고 강림하실 것이다!!”

“모라디!!”

이한이 외치자 지젤은 바로 쌍검을 뽑아들고 내달렸다. 아티팩트인 쌍검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며 그 힘을 끝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지젤보다 앞서 대기시켜놓은 샤르칸과 스켈레톤 전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광신도를 공격했다.

광신도는 허무하게 나뒹굴었다.

“크악!!”

“휴. 깜짝 놀랐네.”

“......”

지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으면서 엄살을 떤 친구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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