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26화 (626/687)

626화

‘저딴 걸 고민이시라고...’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고, 지젤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자신의 언니 아닌가.

“그냥 제 검술이나 봐주세요. 그보다 워다나즈한테 검술을 왜 보여주셔야 하는데요?”

연무장에 다른 사람이 없자 지클린은 평소의 엄격한 모습을 버리고 좀 더 편하게 동생의 질문에 대답했다.

“보여주기로 약속했으니 그렇다.”

‘그랬나?’

지젤은 의아해했다.

언제 그런 약속을?

“어째서 그런 약속을?”

“예전에 거인 검사와 싸운 이야기를 하니 검술을 보고 싶다고 박수치던데.”

“......”

그건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 아닌가?

지젤은 워다나즈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아첨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잘 알았다.

해골 교장이 황자를 징벌방에 보내도 옆에서 ‘훌륭하신 선택이십니다 하하’라고 할 수 있는 독한 놈 아닌가.

“기회가 있겠죠.”

“만날 일이 별로 없잖나?”

‘그러게?’

지젤은 언니가 핵심을 찌르자 멈칫했다.

확실히 이번 겨울이 예외였지 보통 워다나즈가 가문의 영지에 방문할 일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잘 됐네요!”

“지젤.”

‘아차.’

지클린의 표정이 엄해지자 지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친구는 소중히 여겨야지.”

“아니...”

“허세부리지 말고.”

“허세가 아니라... 큭. 제가 잘못했습니다.”

언니의 고집을 잘 아는 지젤은 그냥 자기가 포기했다. 지클린은 다행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런데 검술 보여주는 거면 저번 사냥에서 보여주셨기도 했고... 기회가 많지 않았나요?”

“그건 아무래도 제대로 된 시연이 아니니.”

지클린은 검집을 손가락으로 탁 두드리며 말했다.

원래 검술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 검술을 직접 대면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직접 대면을 하기 위해서는 연습이라 하더라도 대결을 하는 게 좋았다.

“......”

지젤은 경악했다.

가문 내의 기사라면 모를까 외부인을 상대로 지클린이 대련을 해줘도 되나??

“그, 그건 좀...”

“지젤. 친구는 소중히...”

“아니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 이런 소리를 하죠!”

지젤은 정말 워다나즈를 위해서 이렇게 나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지클린이 외부인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근육을 파열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는단 말인가?

“저도 무조건 같이 불러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알겠다. 알겠어.”

지클린은 동생이 투정부리는 모습에 귀엽다는 눈빛을 보냈다. 지젤은 어이가 없어서 뒷목을 잡을 뻔했다.

대화가 끝나자 연무장에 기사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지클린은 방금까지 보여줬던 편한 태도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예의를 갖췄다.

“지젤. 검술을 한 번 보겠습니다.”

“예. ...잠깐만요, 언니. 아버지가 워다나즈를 왜 계속 데리고 있는 거죠?”

검술 이야기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놓치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가주가 워다나즈를 데리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외부 손님과 무슨 할 이야기가 많다고 저렇게 계속 데리고 있는 거지?

“지젤. 검술에 집중하십시오.”

‘아 진짜.’

*         *         *

가주의 시종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다.

언제나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있던 가주가 생전 처음 보는 흡족한 눈빛으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한 가주가 저 정도라면 거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무슨 일이냐?”

“아, 네! 지클린 님께서 이야기할 게 있으시다고...”

“긴급한 게 아니라면 기다리도록 전해라. 자. 더 이야기해보게. 워다나즈 군. 북쪽 절벽의 높새바람 장벽도 개선 가능하다?”

“확인하진 않았지만 이제까지 해결했던 것과 같은 구조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말 놀랍군. 다른 마법사들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네.”

“사실 시약을 절감하는 대신 마법사 개인의 부담이 심해지는 방식이라 그렇습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요.”

‘에인로가드에서 자주 했다고 하지 않았나?’

가주는 속으로 의아해했다.

마법사 개인의 부담이 심해지는 방식이면 에인로가드 내에서 자주 사용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워다나즈 군. 이런 걸 그냥 선의로 받을 수는 없네.”

“하하. 아닙니다.”

사실 이한도 돈으로 받고 싶긴 했다.

하지만 여기는 에인로가드가 아니라 제국의 법과 규칙이 살아 숨쉬는 바깥이었다. 아무나 붙잡고 돈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해골 교장과 같이, 가문의 친구로 초대받아서 머무르는 상황인데 보수 공사 명목으로 금화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가주도 그걸 잘 알았다. 손님한테 한두번 이상 시키는 건 초대한 쪽에서도 무례한 일.

“교장 선생님께 부탁해서 에인로가드로 정식 의뢰를 보낸다면 어떻겠나?”

“!”

이한은 가주의 말에 감탄했다.

역시 모라디 가문처럼 대가문을 다스리는 가주답게 아주 사람이 예의바르고 선량하고 친절하고 훌륭했다.

공짜로 더 해달라고 하는 대신 제대로 된 보수를 지불할 준비부터 하다니.

‘역시 모라디 가문이 괜히 북부의 방패가 아니다. 훌륭한 가문이야.’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답한 이한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저런 식으로 의뢰를 받으면 결국 이한이 여기 북부 영지에 한 번 더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괜찮나?

‘아니다. 어차피 의뢰 받으면 나갈 텐데 아는 곳이 낫겠지.’

이한은 예외적으로 1학년 때도 밖에 나갔지만(그리고 씨 서펜트와 싸웠다), 2학년부터는 종종 에인로가드에 들어오는 의뢰를 받아 밖으로 나가곤 했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직업인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지. 더 말해줄 게 있나?”

“감히 제가 어떻게...”

“오만은 제국에서 선호하는 덕목은 아니지. 하지만 난 유능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오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건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니까.”

‘교장 선생님하고 친하신가보군.’

이한은 어디서 많이 들었던 캐치프레이즈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가주는 방금 자신이 한 발언이 호감도를 살짝 깎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런 손님이 오는 일이 얼마나 있겠나? 그저 순수하게 듣고 싶을 뿐이지. 부담 갖지 말고 말해주게. 마법이 아니어도 상관없네.”

가주는 애정과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고작 1학년을 마친 학생이 영지 전체의 마법 설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니.

워다나즈 가문이라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다.

이런 천재라면 마법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의 신선한 조언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 사실 이런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이 가문의 영지에는 북부의 다른 기사 가문에서 온 견습기사들이 많잖습니까?”

“그렇지.”

여기 영지에는 모라디 가문의 이름 하에서 훈련받고 교류하려는 다른 기사 가문의 자제들이 많았다.

물론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북부 내에서 강해질 가문의 이름과 힘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제가 보기에 여기 견습기사들은 좀 너무 여유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유시간이 많다?”

가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이한의 이야기를 좀 더 집중해서 듣기 위해서였다.

“예. 남는 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떠들고, 다른 손님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흠. 하지만 기사라면 다른 가문의 기사들과 나누는 교류도 필수적인데.”

“맞습니다. 저도 서로 인맥을 쌓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하지만 그걸 핑계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심심해서 놀러 온 기사들에게 계속 시달린 이한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진심은 가주에게도 전달되었다.

‘...옳은 말이다!’

언제나 효율과 합리를 추구하는 가주에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하는 지적은 통렬하고 뼈아팠다.

자기 자신이 먼저 고쳐야 할 악습을 외부인한테 지적받다니.

“정해진 시간을 제외하면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에인로가드 방식처럼 말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겠나?”

에인로가드 방식이라고 하니 더욱 더 그럴듯하고 효과적으로 느껴졌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다른 가문의 기사들이 머무르는 숙소 지역을 지도 위에서 가리켰다.

“자. 여기 있는 이 숙소는 영지의 너무 중앙에 있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다른 곳으로 놀러가기 너무 좋은 구조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탑들은 전부 다 여기 절벽 쪽으로 몰아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감히 몰래 나오지 못하고...”

“......”

가주는 활활 타오르는 얼음 같은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진심으로 수석 부관으로 삼고 싶은 젊은이는 정말 처음이었다.

가문과 학교만 아니었다면 어떤 제안을 해서라도 옆에 앉혔을 텐데!

*         *         *

“대체 뭔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한 거야?”

“별 이야기 안 했는데?”

며칠 동안 계속 먹고 자고 가주와 이야기만 한 것 같았다.

이한은 호밀빵 위에 절인 청어와 튀긴 양파를 올린 뒤 한 입 크게 먹었다. 가주와 같이 식사할 때는 아무래도 긴장한 만큼 편하게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알시클이 농담조로 말했다.

“모라디. 속지 마십시오. 워다나즈가 말하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건 절대 믿을 수 없으니까.”

“앗, 저 두고 빙벽 수리하러 가신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야... 내가 미안하다니까...”

이한이 대놓고 예의 갖춰가며 부르자 알시클은 매우 당황했다.

“편하게 알시클이라고 불러줘! 평소처럼!”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님.”

“다신 안 도망칠 테니까...! 진짜 미안하다니까! 고의가 아니었어! 야, 다음에 무슨 부탁이든 하나 들어줄게! 진짜! 정어리 백 마리를 먹는 부탁도 좋아!”

“하하. 알시클 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 언제나 편하게 불렀잖아요?”

둘의 촌극을 구경하던 지젤은 하품을 하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뭔 이야기를 했냐고.”

“별 거 안 했다니까. 영지 예쁘다, 영지 좋다, 아. 가주님께서 에인로가드에 의뢰 맡기신다던데. 학기 도중에 올 테니까 같이 할래?”

“뭐? 그럴 리가 없는데.”

지젤의 말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왜지? 에인로가드에 의뢰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비싸니까.”

“......”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유에 이한은 순간 지젤이 농담하나 싶었다.

그러나 알시클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에인로가드는 비싸지.”

“그 정도입니까?”

“나도 가끔 마법 실험 보조 때문에 에인로가드 학생 부를까 싶다가도 비용 보면 참게 되거든.”

“아니, 그런데도 학교에 돈이 부족한가?”

“그야 마법 실험은 더 비싸니까.”

‘선배들은 대체 뭘 어떻게 낭비하는 거지?’

황금 욕조에서 금화로 목욕을 해도 이것보다는 덜 쪼들릴 것 같은데...

“마법 이야기를 해서 오래 걸린 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

“밖에서 온 기사들이 머무는 숙소가 바뀌었습니다. 절벽 끝으로요.”

알시클의 질문에 지젤은 별 생각 없이 설명했다.

이한은 움찔했다.

‘너무 열을 올렸나?’

“어째서?”

“글쎄요. 기사들의 훈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워다나즈. 네가 며칠 동안 이야기하는 동안 중요한 일이 있었어.”

“내일 저녁이 만찬회인 거? 나도 알아. 걱정하지 마.”

“내일 오전에 언니가 너하고 대결할 거야.”

“...너무 비열하군, 모라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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