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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32화 (632/687)

632화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칼도렌 공작은 입에 물린 재갈을 간신히 뱉어냈다.

공작은 붙잡혀서 끌려 온 와중에도 평소 갖고 있던 품위와 위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을 쏘아붙였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인가!”

셋은 떠들다 말고 멈칫해서 공작을 쳐다보았다.

이칼도렌 공작은 해골 교장보다는 다른 둘을 설득하는 게 훨씬 더 가능성 높다고 생각했는지 시선을 돌렸다.

해골 교장의 야심 넘치는 수제자와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중에 누가 더 말이 통할까?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이한은 이칼도렌 공작이 자신을 부르지 않고 알시클을 부르자 살짝 서운해했다.

이 상황에서는 알시클보다 자신이 더 믿음직스럽지 않나?

‘나하고 이야기한 적도 있을 텐데.’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알시클은 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했다.

그러나 제국에 펭귄 수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알시클 정도로 피가 짙은 펭귄 수인은 더더욱 그랬다.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아닌가! 지금 이 위법의 현장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셈인가?”

“아니. 고나달테스 님. 재갈을 물리시려면 제대로 물리셔야죠.”

알시클은 투덜거렸다.

괜히 재갈을 꽉 물리지 않은 탓에 이런 말까지 듣게 된 것 아닌가.

직접 말을 들은 이상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발을 빼기도 어려워졌다.

알시클의 차가운 반응에도 공작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엄하고 강하게 외쳤다.

“펭에린 가문의 명성을 생각해보게. 지금 가만히 있어도 될 것 같은가? 여기 이 둘의 악행을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인가!”

“...어, 잠깐. 왜 둘입니까, 전하?”

이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항의했다.

해골 교장이 납치했지 이한은 아무 상관도 없지 않은가!

물론 공작은 이한의 말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이미 공작 안에서 이한은 해골 교장의 수제자이자 이번 납치의 공범으로 확실하게 낙인찍힌 뒤였다.

“아무리 대마법사라 하더라도 제국법이 있는데 이런 짓을 멋대로 저지를 권한은 절대로...”

“아. 그만 징징대라. 어린 놈아.”

해골 교장이 귀찮다는 듯이 내뱉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납치했겠느냐? 당연히 납치해도 되니까 납치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말하면서도 공작은 두려움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해골 교장이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에인로가드에 들어온 네 부하 말이다. 설마 안 들킨 줄 알았더냐? 들어왔을 때 이미 붙잡아놨었다.”

‘와. 뻔뻔하시군.’

이한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일 년 가까이 못 찾다가(사실 조각상으로 변해 있으면 찾기 힘들긴 했다) 방학 직전에 찾아놓고서 원래 알았던 것처럼 허세를 부리시다니.

그러나 허세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공작은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부하의 연락이 끊겨서 실종되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붙잡혀 있었다니.

그렇다면 그 뒤에 해골 교장이나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찾아와서 했던 행동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그럼 대체 왜 가만히...”

“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려고 기다렸다. 재밌게 놀더군.”

“!!!!”

공작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평생 음모와 계략으로 제국의 정계와 사교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펼쳐왔던 자신이, 이렇게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농락당하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말도... 말도 안 된다...! 연기였단 말인가? 저 소년이 날 떠봤던 것도?”

“어, 그건 연기가...”

“맞다. 널 갖고 놀고 있었던 거지.”

“......”

이한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해골 교장의 계획을 망칠 수도 없지 않은가.

공작은 더 이상 외칠 힘도 없었는지 좌절했다.

수십 개의 아티팩트들을 걸치고 있었을 때에는 그리도 위풍당당했던 사람이 지금은 병든 노인처럼 초라해보였다.

그걸 본 해골 교장이 공작의 어깨를 두드렸다.

“힘내라. 네가 부족한 게 아니다. 내가 대단했을 뿐.”

“영생을... 영생의 비밀을 당신 혼자서 갖고 있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공작은 아까와 달리 발악하듯이 외쳤다.

“제국의 마법사들 중 가장 교활하고 음험한 당신이라면 분명 갖고 있겠지. 영생의 비밀을! 그걸 혼자 갖고 있다니. 그건 마땅히 제국의 귀족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제국의 귀족들이 아니라 너한테겠지.”

해골 교장은 심드렁했다.

때 되면 해골 교장한테 찾아와서 영생의 비밀을 맡겨놓은 것마냥 구는 늙은 귀족들이 언제나 나왔던 것이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별 감흥도 들지 않았다.

“하급귀족들한테 비밀 뿌리겠다고 하면 발작할 거면서 귀족을 대표하듯이 말하지 마라.”

“가장 고귀한 귀족들이 그 비밀을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뿐이다!”

“고귀의 뜻이 나하고는 조금 다르군.”

해골 교장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린 놈아. 너는 아마 네가 제국의 대단한 기둥이라도 된 것마냥 생각하고 있겠지? 네가 맡은 직함이 여럿이고 네가 책임진 일들이 여럿이니, 네가 사라지면 제국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이런 고민들을 했을 거다.”

공작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얼굴에는 희미한 수긍의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실상은, 네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란 게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은 일이란 거지. 네가 하는 일들은 네가 하지 않아도 제국에 별 상관없다. 아무도 하지 않아도 제국에 별 상관없다. 정말 제국의 대단한 기둥이 뭔지 아느냐? 여기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 같은 놈이 바로 대단한 기둥이다. 외계를 탐색하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괴물들과 악마들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게 정말로 중요한 일인 거고.”

해골 교장은 분노하지도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경멸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설명하듯이 귀찮음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그 권태로움이 공작을 더욱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네가 귀족들과 편안하게 소꿉장난을 칠 수 있었던 건 나나 가주나 황제 같은 자가 널 지켜주고 있어서다. 고귀? 네 선조가 옛 대혼란 때 뭘 하고 있었는지 아느냐? 성문이란 성문은 다 걸어 잠그고 자기 혼자 머리를 벽난로에 박고 있었다. 악마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면서 말이다. 평생 해낸 거라고는 아비 잘 만난 것밖에 없는 놈이 무슨 고귀함을 주장하느냐?”

해골 교장은 한 걸음 내딛었다. 공작은 순간적으로 도망치려고 몸을 꿈틀거렸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영생의 비밀이 알고 싶으냐? 알려주마. 난 영생의 비밀 같은 걸 숨긴 적이 없다. 어린 놈아. 너 같은 놈에게는 내 창고에 고대로부터 내려온 불멸의 보물들이 가득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내 창고에 잠든 건 흉악하고 저주 받은 아티팩트들 뿐이다. 너처럼 어린 놈이 갖고 나가는 순간 대륙에 재해가 닥칠 물건들이지. 설사 그런 보물이 있다 하더라도 너 같은 놈이 그걸 다룰 수 있겠느냐? 마법의 기초도 모르는 너 같은 놈이?”

해골 교장은 지팡이 끝으로 공작의 머리통을 툭툭 두드렸다.

“영생에 닿을 수 있는 비밀은 하나밖에 없다. 마법이지. 보물로 영생의 비밀을 찾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영생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니까.”

교장의 말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압도되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해골 교장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공작을 내팽개치고 말했다.

“에인로가드에 몇 년 정도 가둬놔야겠군. 혹시라도 징벌방에서 만나면 풀어주지 마라.”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비블레도 풀어준 거 보니, 혐오스러운 자들을 풀어주는 취미가 있는 줄 알았지.”

“......”

더 이야기해봤자 불리하단 걸 깨달은 이한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공작 전하는 왜 가두시려는 겁니까? 이미 다 터신 것 같은데...”

이칼도렌 공작은 돌아다닐 때도 성채 하나 정도는 그냥 살 수 있는 아티팩트들을 착용하고 다녔다.

해골 교장이 데리고 온 걸 보니 아마 그 아티팩트들은 전부 다 해제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해제했으면 분명 교장의 주머니로 들어갔으리라.

아티팩트들을 터는 동안 다른 걸 안 털었을 리는 없을 테니, 대충 저택의 재산도 꽤 긁으셨을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제 시작이지.”

해골 교장은 이한의 순진무구한 생각에 기가 막히다는 듯이 힐난했다.

요즘 젊은 놈들은 옛 전통을 잘 몰랐다.

옛날에는 귀족을 한 번 붙잡으면 그냥 갖고 있는 걸 터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귀족의 가문과, 귀족의 친가나 외가 쪽 가문 등등으로 확장시켜나가며 몸값을 뜯어냈던 것이다.

물론 상대도 호구가 아닌 만큼 쉽게 내놓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런 협상은 당사자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칼도렌 공작도 지금이야 최대한 배상금을 적게 내놓고 싶어하겠지만, 징벌방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갑자기 없던 재산들이 생겨나고 적절한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되리라.

“......”

“......”

이한과 알시클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제 슬슬 가죠?’

‘좋은 생각 같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고나달테스 님.”

“그래. 조심해라. 둘 다 고생 많았다. 학교에서 보자꾸나.”

해골 교장은 데스 나이트들과 함께 손을 흔들어줬다.

이한은 옆 객실에서 자고 있는 후배를 깨운 뒤 알시클과 함께 재빨리 마차를 빠져나왔다.

*         *         *

알시클은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평소 알시클과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이 전신에 가득했다.

에안두르데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결투 나감?”

“넌 멍청해서 좋겠다. 워다나즈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도 모르니 마음이 편하지... 악! 이 녀석이!?”

에안두르데는 바로 알시클의 정강이를 찼다. 기습을 당한 알시클이 비명을 질렀다.

-어, 저 녀석을 가문에 데리고 가게?

-예. 어차피 방학이 끝나면 에인로가드로 돌아갈 텐데, 그 때까지 같이 공부나 시키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하고 같이 있으면 이상한 거 배울까봐 걱정되는군요.

-저 녀석한테는 과분한데. 워다나즈 가문에 방문할 수 있다니.

-그 정도는 아닌데요? 알시클 님도 방문하고 싶으시면 방문하셔도 괜찮습니다.

-뭐? 정말?

-예. 저희 가문이 사람 초대 안 하는 건 그냥 가문에 사람이 없어서지 무슨 엄격한 규칙이 있어서가 아니거든요.

-잠, 잠깐만 기다려봐. 옷 좀 새로 맞추고.

-그러실 거 없습니다만...

준비를 끝낸 셋은 마을 근처에서 타고 갈 마차를 찾았다.

하품을 하던 마부는 셋을 보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워다나즈 가문의 저택으로 가주십시오.”

“......”

방금까지 편안하게 앉아 있던 마부가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았다.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워... 워다나즈 가문이십니까?”

“아니오?”

“??”

“????”

알시클과 에안두르데는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한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손님으로 방문하는 겁니다.”

“아... 휴. 그렇군요.”

마부의 긴장은 5% 정도 줄어들었다.

워다나즈 가문에 방문하는 손님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왜 거짓말을?”

“이 주변 사람들은 가문 이름 들으면 너무 두려워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 자기 가문 이름을 사기치나?’

알시클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차는 숲에 난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갔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 짙게 깔린 녹음이 마법사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다그닥다그닥-

“어. 워다나즈 가문의 기사들인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소리에 알시클은 기사들인가 싶었다.

넓은 영지를 갖고 있는 대귀족 가문들은 영지를 순찰하는 기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침입자들을 잡아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손님을 대접하고 들여보내는 역할도 했다.

말발굽소리를 들으니 분명 기사들 같...

수십 개의 말발굽을 가진, 부정형의 거대한 악마가 마차 앞에 도착했다.

-손님이시오?

“힉, 히익!”

겁에 질려서 딸꾹질하는 마부를 본 알시클은 갑자기 괜히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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