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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36화 (636/687)

636화

하급 정령과 계약한 마법사들의 숫자가 꽤 되는 만큼, 제국 사람들에게 정령은 생각보다 친숙하고 낯익은 존재였다.

당장 동화만 펼쳐 봐도 위험에 빠진 어린아이가 정령과 대화해가며 빠져나가는 내용들이 많을 정도로.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엄밀히 따져보면 대부분 허구였다. 평범한 사람들은 정령과 대화할 수 없었다.

정령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존재였고 그 벽을 넘기 위해서는 강한 계약이나 마법이 필요했다.

당장 펭에린 가문과 계약한 정령의 진명을 이한이 들어도 인식하지 못한 게 그 예시였다.

페르쿤트라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정령과 계약한 이한도 펭에린 가문의 핏줄이 아닌 이상 이름을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정령어를 할 수 있다니.

“정령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니... 아르실 님께서는 혹시 어떤 마법을 연구하시지?!”

“형님께서는 마법사가 아니신데요.”

“뭐?!!!”

알시클은 아르실이 정령어를 선천적으로 할 줄 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랐다.

이런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는데도 마법사가 아니라니.

“대체 왜!?”

“마법에 흥미가 없으시니까요?”

아르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뭐라고 말했다. 이한은 그걸 듣고 말을 전했다.

“마법에 별 재능이 없기도 했답니다.”

“......”

알시클은 무슨 소리냐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정령을 저 정도로 부릴 수 있으면 충분하지 뭔 손가락 하나로 하늘과 땅을 뒤집을 수 있어야 재능인가?!

“앗. 아닙니다. 하하. 에이. 너무 과찬이시네요.”

“뭐라고 하셨는데?”

“저와 비교하면 마법에 재능이 없으시다고... 이건 너무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형님께서 손님 오셨다고 절 너무 칭찬해주시네요.”

‘음. 그건 맞는 거 같기도.’

알시클은 무심코 속으로 동의했다.

정령에게 사랑받는 걸 제외한다면 눈앞에 있는 워다나즈 가문의 핏줄이 이한보다 더 마법에 뛰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선천적으로 정령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거지? 정령 혼혈들도 힘들 텐데...”

알시클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령 혼혈들 중 정령의 특성을 아주 강하게 물려받은 이들은 무성(無性)의 특징을 가진다거나 정령의 능력을 선천적으로 사용하는 식으로 차이점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그런 정령 혼혈들 중에서도 정령어를 선천적으로 구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자신과 아주 인연이 깊은 정령의 말 몇 마디를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정령어를 선천적으로 구사하고 저렇게 강한 친화력을 갖고 있으려면 혼혈이 아니라 그냥 정령 그 자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진짜 정령 아니야?’

알시클은 상대가 혹시 워다나즈 가문의 정령이 아닌가 하는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많은 의문들이 해결이 됐다.

정령어를 구사 가능하고(정령이니까), 이한과는 대화 가능하고(계약한 가문의 핏줄이니까)...

“펭에린 님?”

“어? 왜?”

알시클은 이한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두 워다나즈 가문의 형제가 알시클을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아르실은 흥미로운 눈빛을 던지는 중이었다.

“형님이 정어리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고 부탁하시는데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 마침 정어리가 먹고 싶었어.”

*         *         *

“그래. 그럴 수 있어. 악마도 부리는데. 맞아. 음. 그래. 그럴 수 있어. 악마도 부리는데.”

“펭에린 님. 그 소리 지금 거의 백 번째 하고 계시는데요.”

“고장난 축음기?”

후배의 말에 이한은 ‘쉿’ 소리를 냈다.

“그냥 펭에린 님은 놀라셨을 뿐이야.”

뒤늦게 충격에서 빠져나온 알시클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아니. 난 그저... 놀랐을 뿐이야. 너무 놀라운 능력이라서.”

“에이. 저도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뭐라고!? 너도 설마 정령하고 대화가 가능해?!”

알시클은 깜짝 놀랐다.

아까 형과 이야기를 나눈 건 같은 핏줄이라서가 아니라 본인도 정령어의 능력이 있어서였나!?

“아뇨. 형님과 달리 저는 가는 곳마다 정령들을 도망치게 만드는 능력을... 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

“......”

알시클은 황당했지만 옆에 있는 아르실은 웃음을 터뜨리며 탁자를 두드렸다.

“너무 놀라서 아르실 님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 드렸군... 죄송하다고 전해줘.”

“전혀 신경쓰지 않으신답니다.”

“아르실 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지?”

“형님은 보물을 찾아다니십니다.”

“오!”

알시클은 자신도 모르게 아까 아르실이 내려놓은 낡고 커다란 배낭을 쳐다보았다.

설마 저기에 든 게 고대의 아티팩트들이었나?

‘...?’

그러나 다시 봐도 배낭에 든 물건들에는 별다른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알시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게 보물인가?”

“예.”

“마력이 안 느껴지는데?”

“꼭 아티팩트라고 보물은 아니죠? 고고학적 가치를 가진 보물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 말에 아르실이 옆에서 뭐라고 첨언했다.

이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음. 저기 물건들은 30년도 안 됐다고 하네요.”

“그럼 어떤 가치가 있는 건데?”

“낡은 모습이 정취가 있다고 하십니다. 정령들한테 선물로 줄 거라고...”

“......”

알시클은 더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잡동사니였다.

저걸 까다로운 정령들한테 선물로 준다고?

알시클도 마법 연구할 때 정령의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었던 만큼, 정령에게 바쳐야 하는 선물의 조건 정도는 잘 알았다.

같잖은 선물을 바쳤다가는 괜히 분노를 살 수도 있었다.

-■■■■! ■■■■!

아르실이 이가 빠지고 금이 간 도자기 컵을 선물로 주자, 어깨에 앉아 있던 가뭄의 정령이 매우 기뻐하더니 정령계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에 알시클은 부리를 딱 벌렸다.

정령들이 저렇게 선물에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존재였나?

“놀... 놀랍다. 정말. 정령들이 저렇게 기뻐할 줄이야.”

“아참. 형님. 저 정령하고 계약했습니다.”

아르실은 페르쿤트라의 문양을 가리키며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여길 보십시오.”

이한은 참새 정령과 다람쥐 정령을 불러냈다.

아르실은 그 모습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정령과 친하기 힘든 동생이 저렇게 친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기특했던 것이다.

강대한 번개의 정령은 왜 그냥 넘어가는지 좀 궁금하긴 했지만...

탁-

참새 정령과 다람쥐 정령은 소환되자마자 아르실한테 달려가 양 어깨 위에 올랐다.

“자. 이쪽으로.”

이한은 두 정령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둘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아르실의 어깨 위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다.

그 모습에 이한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쪽으로 오라니까?”

정령들은 장난치느라 신이 나서 이한의 말을 듣지 못했다.

점점 더 비통과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이한의 표정을 본 알시클은 당황했다.

“야, 야. 움직여! 움직이라고!”

알시클의 외침에도 정령들은 정신을 못 차리다가, 아르실이 톡 건드리고 나서야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두 정령들은 쪼르르 이한의 앞으로 다가와서 어깨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한은 차가운 표정으로 거리를 벌렸다.

-!?

동생이 정령들과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르실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배낭을 뒤적거리며 이한을 불렀다.

“예. 형님. 아, 선물이요? 정말 괜찮습니다. 사악한 탐관오리 놈 밑에서 일 년 버틴 기념이라고요? 사악한 탐관오리 놈이 누구... 아.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알시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고나달테스 님하고 사이가 안 좋으신가?”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이 보물을 많이 사시니까요.”

제국 곳곳의 보물과 유물을 찾아다니는 아르실이었지만, 평범한 수집가와는 방식에서 차이가 났다.

제국 수집가들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모험가들이 발굴해낸 물건들을 경매장에서 산다면 아르실은 직접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것이다.

자신이 관심이 있던 유물들이 모험가 손에 넘어가 경매장으로 흘러간 뒤 가진 건 금화밖에 없는 수집가에게 들어가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었다.

‘아차. 나도 경매장에서 많이 사는데.’

알시클은 뜨끔했다.

재산 있는 귀족들 중에서 경매장에 나가지 않는 이들은 드물었다. 온갖 다양한 물건들이 경매장으로 흘러오는 만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던 것이다.

“펭에린 님도 보물을 많이 사냐고요? 에이. 펭에린 님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고, 고나달테스 님도 정말 너무하시지! 후학들을 위해 보물을 양보해야지, 그걸 다 자기가 긁어가다니!”

알시클은 다급히 고나달테스를 욕했다. 아르실은 동의한다는 듯이 웃었다.

“이 중에 하나 고르라고요? 그런데 형님. 형님께서 갖고 오셨던 보물들은 좀 위험한 게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다르다고요? 그런데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셨었잖아요.”

아르실은 오해라는 듯이 선량한 눈망울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정령과 닮은 그 겉모습은 원수라 하더라도 미워하기 힘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냉정했다.

“저번에 주신 선물은 태엽 돌리니까 괴물 나왔잖습니까. 알라르롱이 그거 잡느라 고생했습니다.”

“......”

알시클은 정신을 차렸다.

상대의 겉모습이 정령 같다고 해서 제정신이란 보장은 없었다.

‘정신 차리자. 여긴 워다나즈 가문이다!’

“이번엔 진짜 다르다고요? 열심히 골라서 갖고 오셨다고요? 으음. 정말 그러실 필요 없었는데... 알겠습니다. 이 단검은 뭐죠? 찌르면 상대의 피를 불태운다고요? 음. 이건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이 풍경화는 뭔가요? 제국 서쪽 끝의 해안가요? 아, 그냥 직접 그리신 그림이에요?”

아르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부를 여행하다가 저 멀리 오로라를 발견하고 동생 생각이 나서 슥슥 그려온 것이다.

‘이건 넘어가야지.’

그러나 이한은 바로 넘어갔다.

가치만 보면 이건 아까 저주받은 단검 이하였다. 아르실은 동생이 그림을 넘기자 살짝 서운해했다.

“이 목걸이는 뭔가요? 보석을 깨면 안에 악마가 나온다고요? 계약이 되어 있나요? 안 되어 있다고요. 음. 그럼 그냥 무작위로 공격하겠네요?”

아르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목걸이는 제국 남부 대사막의 유적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보물이었다.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디자인이었지만, 안에 든 악마의 이름이 있다는 점도 높게 평가할 만했다.

원래 뛰어난 선물은 깜짝 놀랄 만한 의외성이 있어야...

이한은 차갑게 목걸이를 넘겼다. 아르실은 아쉬워했다.

“이 망토는 뭔가요? 혹시 걸치면 광전사가 된다거나? 아. 그냥 방어의 망토에요? 그럼 이걸로 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안 바꿀 겁니다. 이게 좋아요. 안 지루한데요? 충분히 재밌는데요? 이 망토 디자인 보세요. 흥미로워요.”

“......”

알시클은 이한의 목소리만 들렸지만, 이상하게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것 같았다.

*         *         *

“당신은 제국 최고의 마부야!”

“후후. 맡겨만 주십시오.”

가이난도는 마차 안에서 드러누웠다. 제국에서 가장 편한 자세였다.

무려 말 여덟 마리가 끄는 마차였지만, 가문에서 직접 고용한 마부는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마차를 몰아댔다.

순식간에 바뀌는 주변 풍경에 가이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도착하겠는데?’

한창 달리던 마차가 갈림길이 보이자 잠깐 멈췄다.

마부는 말들도 쉬게 할 겸 마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보시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으로 가는 길이 이쪽이 맞습니까?”

“워다나즈 가문으로 가십니까?”

“그렇습니다. 손님으로...”

지나가던 사람은 갑자기 방향을 돌리더니 전속력으로 달아나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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