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화
“왜 그래?”
“아, 아니. 방금 저 사람이...”
마부는 당황해서 손가락을 뻗었다.
그냥 길을 물었을 뿐인데, 무슨 와이번을 본 것마냥 전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가이난도는 그 모습을 보고 진지하게 말했다.
“마차를 무서워하는 사람인가봐.”
“...?”
마부는 가이난도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발언은 헛소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세상에 마차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다. 이 분께서는 에인로가드에 다니시는 분. 무식한 마부인 나보다 훨씬 더 잘 아시겠지.’
마부는 방금 자신이 한 불경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어리시긴 해도, 지금 마부가 모시고 있는 분은 제국 황실의 핏줄이자(순위는 좀 낮았지만) 에인로가드에 재학 중인 마법사였다.
그 지혜는 절대로 얕볼 수 없었다.
“예. 그럼 계속 가보겠습니다.”
“엇. 저기! 한 사람 더 있다!”
“!”
이번에는 조랑말 위에 짐을 올리고 걸어오는 행상인이었다.
꽤나 노련한 행상인이었는지 얼굴은 거칠고 흉터가 가득했다. 눈빛에서는 제국의 뜨거운 남쪽 사막부터 추운 북쪽 빙하까지 가리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의지가 번뜩였다.
이렇게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행상인들만큼 든든하고 묻기 좋은 사람도 없었다. 마부는 서둘러 외쳤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물으시오.”
“워다나즈 가문으로 가는 길이 이쪽이 맞습니까?”
“워다나즈 가문으로 가시오?”
“그렇습니다. 손님으로...”
행상인은 재빨리 조랑말 위에 올려놓은 짐을 꺼내서 마부한테 닥치는 대로 던졌다. 마부는 깜짝 놀라서 얼굴을 가렸다.
“억! 이게 뭐하시는...”
행상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조랑말도 짐도 챙기지 않았다.
“......”
“...저 사람도 마차를 무서워하나본데?”
‘뭔가 이상하다!’
마부는 슬슬 이상함을 강하게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마차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워다나즈 가문이란 이름을 무서워하는 거였다!
아까 지나가던 사람은 그렇다 쳐도 산전수전 다 겪은 행상인까지 그냥 도망을 치다니.
“도련님.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워다나즈 가문에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닐까요?”
“아니야. 이한이 별 일 없댔어.”
“이한이라는 분은 누구시죠?”
“내 친구.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참고로 내가 제일 친한 친구야.”
“...?”
마부는 멈칫했다.
워다나즈 가문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객관적인 외부인한테 물어봐야지, 가문 당사자한테 ‘너희 가문 괜찮니?’라고 물어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만약 그 이한이라는 친구가 사악한 흉계라도 꾸미고 있다면...
워다나즈 가문의 무시무시한 소문들은 마부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크라하 가문에서 ‘헛소문이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해줬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갑자기 다시 떠올랐다.
혹시 헛소문이 아니었다면?
‘아, 아니야. 이 분께서는 에인로가드에 다니시는 분... 친구가 수상한 음모를 꾸몄다면 먼저 알아보셨을 거다!’
마부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쉭!
가이난도는 마차 창문 밖으로 구겨진 종이를 던졌다. 마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뭘 던지신 겁니까?”
“아. 산술 문제. 비밀이야. 나중에 새가 몰래 뜯어갔다고 하려고!”
“......”
가이난도는 자신의 지혜에 감탄하느라 마부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을입니다. 잠깐 쉬었다 가시죠.”
대귀족 가문의 드넓은 영지는 독립적인 공간에 가까워서 그 안에 마을들과 사용인들이 따로 있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영지도 당연히 그럴 것인 만큼, 지금 보이는 우담화(優曇華) 마을은 가문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자 영지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마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부에게는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끽!
마부는 <구름 위의 조각배> 여관 앞에 마차를 세웠다.
“도련님은 여기 계십시오.”
“응.”
가이난도는 <강아지 수인족 탐정 토베리즈>에 푹 빠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쪽으로!”
여관의 하인이 재빨리 뛰쳐나와 마구간으로 손짓했다.
확실히 이 마을은 도시까지는 아니어도 꽤 규모가 되고 번성한 마을이었다. 마을의 여관에서 말 여덟 마리 마차를 망설이지 않고 받아주는 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작은 마을 같은 경우에는 공간이 부족해 그냥 외곽에 묶어두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잘 됐다. 이렇게 큰 마을이라면 분명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다.’
마부는 굳게 다짐했다.
작은 마을이면 모를까 큰 마을에서는 누군가 한 명쯤은 제대로 된 정보를 말해주기 마련이었다.
“...?”
여관 문을 여는 순간 마부는 위화감을 느꼈다.
드넓은 1층 곳곳에는 낡고 둥근 나무 테이블들이 빈틈없이 들어찼고, 마을 사람들과 여행객들이 곳곳에 앉아서 커다란 양철 잔에 술을 가득 담아놓고 있었다.
안쪽 카운터에는 주인이 능숙한 솜씨로 술통을 손보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음유시인들까지 모여서 앉아있었다. 번성한 마을에 걸맞은 대형 여관이었다.
그런데...
‘왜 소리가 없지?’
놀랍게도 이 여관은 소름끼칠 만큼 조용했다.
마을 사람들도, 여행객들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주인도 조용했고 심지어 음유시인들도 연주를 하지 않았다.
“누...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쉿!”
마부의 질문에 가까이 있던 마을 사람 한 명이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입 다물게. 이방인.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니까.”
“...??”
“여기 앉게. 빨리.”
마부는 영문도 모르고 마을 사람 옆에 앉았다. 마을 사람은 인상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왔군. 자네도 운이 없어.”
“무, 무슨 뜻이신가요?”
“저기 밖을 보게.”
마부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십 개의 말발굽을 가진, 부정형의 거대한 악마가 느적느적 마을을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 옆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악마 위에 짐꾸러미를 올린 채 종이를 들고 중얼거렸다.
“흠. 다음은... 초콜릿이 필요한가? 아, 이 자식. 초콜릿만 먹을 거 같은데...”
-혹시 에인로가드에서 자식을 낳으셨습니까...?
마부는 기겁해서 넘어질 뻔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더욱 더 기겁해서 마부를 붙잡았다.
“이방인, 누굴 죽이려고 이러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대, 대, 대, 대체 저게 뭡니까?”
“워다나즈 가문의 악마지.”
마을 사람들은 경외심과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워다나즈 가문의 이름을 말했다.
“대마법사의 하수인!”
“대대대대대마법사께서 대체 왜 악마를 마을에 보내신 겁니까?”
“우린들 알겠나?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마부는 그제야 왜 여관이 쥐죽은듯 조용한 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여관뿐만 아니라 마을 밖도 다 조용했다.
지금 사람들은 무슨 트집이라도 잡힐까봐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래도 워다나즈 가문은 제국을 지키는 마법사 가문인데...”
“말 잘했다. 이방인. 네가 저 악마한테 가서 말해봐라.”
마부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 여관 이름이 왜 <구름 위의 조각배>인지 아나?”
“글, 글쎄요?”
“주인이 젊었을 적에 조각배를 끌고 호수에 나갔다가 구름 위로 끌려간 적이 있어서다.”
대화를 듣고만 있던 옆에 앉은 드워프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드워프들에게는 속담이 있네. 대마법사하고는 엮이지 마라. 아무리 대마법사가 정의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좋을 게 하나 없어. 인생을 파멸시...”
덜컥!
“!?!?!”
여관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멈췄다.
대화하는 사이 여관 문이 열리더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들어온 것이다.
“마구간에서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저는 말이 아닙... 알겠습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소년은 걸어오더니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레몬설탕절임 좀 사갈 수 있겠습니까? 잡화점에서 들었는데, 여기 레몬설탕절임이 그렇게 맛있다고...”
쿵!
주인은 재빨리 레몬설탕절임이 든 통을 통째로 꺼냈다. 소년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제제제제 마음의 선물입니다!”
“조금만 퍼주십시오.”
소년은 레몬설탕절임을 좀 담더니 고민에 잠겼다.
“혹시 자몽도 있습니까?”
“자자자자자몽 말입니까? 예!”
“자몽 맞죠? 잠깐, 이거 좀 잠깐 들어주십시오!”
-이럴 거면 왜 마구간에 보내신 겁니까... 불평하는 건 절대 아니고...
소년은 손이 부족하자 악마를 불렀다.
여관은 오늘 조용했던 것 중 가장 조용해졌다. 바늘이라도 떨어지면 천둥처럼 들릴 것 같았다.
“이거 떨어뜨리시면 안 됩니다.”
-예...
“하나 드릴까요?”
-예...
“맛있으십니까?”
-너무 맛있네요...
“다행입니다. 하하.”
소년은 악마와 담소를 나누더니 설탕절임을 다 챙겨서 나갔다.
사람들은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봤소? 우리가 왜 입을 닥치라고 했는지...”
마부는 대답하는 대신 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닐리아는 메이킨 가문의 마차 안에 앉아 밖을 힐끔거렸다.
‘앗. 저 꽃 맛있는데.’
순간 마차를 세우고 꽃을 따온 다음 요네르한테 먹어보라고 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닐리아는 자제했다.
마부가 보면 속으로 비웃을지도 몰랐다.
-세상에! 메이킨 가문의 따님께서 어떻게 저렇게 야만스럽고 천박하고 거칠고 짐승 산채로 뜯어먹는 사냥꾼하고...
“잠깐! 마차 세워 봐요!”
요네르는 마부에게 외치더니 마차 문짝을 열고 뛰어 내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꽃을 채취한 다음 헐떡이며 올라왔다.
“...이 꽃, 바람 장벽 물약 만들 때 좋거든. 놀라게 해서 미안해.”
요네르는 닐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었는지 설명했다. 닐리아는 매우 기분이 좋아졌다.
“아냐, 그 꽃 맛있기도 해! 저기 봐. 저 사람도 꽃을 먹고 있... 악!”
“???”
요네르는 닐리아가 비명을 지르자 당황해서 마차 밖을 쳐다보았다.
익숙한 친척이 우울한 얼굴로 풀밭에 앉아서 꽃을 우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
“......”
꽃을 우물거리던 가이난도가 고개를 들었다. 메이킨 가문의 마차를 본 가이난도가 울먹이며 외쳤다.
“요네르!!!”
“출발!”
요네르는 냉정하게 외쳤다.
그러나 가이난도는 믿을 수 없이 잽싼 동작으로 마차를 붙잡았다.
“나야! 나!”
“네가 가짜 아니란 걸 어떻게 증명하지?”
“...여, 여기. 이한이 준 숙제가 있어!”
“가짜네. 출발!”
방학까지 귀찮은 친척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요네르는 냉정하게 명령했다.
하지만 닐리아는 마음이 좀 약해졌다.
“어, 어떻게 된 건지는 좀 물어봐도 되지 않나?”
“...에휴. 후회할 걸.”
요네르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가이난도는 울먹이면서 올라왔다.
“무슨 일인데?”
“마부가 도망갔어!”
“네가 잘못했겠지.”
“아니야!!”
가이난도는 서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마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마차 안에 자기를 두고 사라져버렸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도망갔대. 흑흑.”
요네르와 닐리아는 시선을 교환했다.
짐작가는 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 마부한테 잡지 읽으라고 강요했어?”
“마부한테 흑마법 썼겠지.”
“마부한테 간식 사달라고 졸랐지?”
“마부한테 숙제 대신 해달라고 한 거 아니야?”
“다 아니거든?!”
가이난도는 친구들의 의심에 분노했다.
이 자식들은 친구라고 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