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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38화 (638/687)

638화

“내가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쉬는 시간에는 무료하실까봐 마법사 카드 게임도 같이 해줬다고!”

‘그래서 도망친 거 아닐까?’

요네르는 속으로 의심했지만, 친척을 배려해서 더 이상 묻지는 않기로 했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저택에 데려다 줄 테니까.”

“내 마차도 갖고 가주면 안 돼?”

가이난도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처럼 부탁했다.

이한에게 줄 선물부터 시작해서 각종 짐들이 다 마차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요네르는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어이없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쳐다보며 물었다.

“누가 몰 건데?”

“내가 마차 몰 수 있긴 한데...”

닐리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요네르가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닐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아냐. 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

“몰 수 있다잖아! 몰 수 있다잖아!”

“앞으로 마차 못 붙잡게 옆에 장치 달아놔야지...”

요네르의 중얼거림에 닐리아는 다급히 대답했다.

“별로 안 귀찮은걸.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마차 모는 게 안 귀찮을 리가.”

말은 탈 줄 알아도 마차를 몰 줄 아는 귀족들은 의외로 드물었다.

마부들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차를 몬다는 것 자체가 꽤 난이도 있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여러 말들의 호흡과 방향을 일치시키며 관리해야 했으니...

“몇 마리인데? 네 마리면 조금 힘들긴 할 텐데 어떻게든...”

“여덟 마리.”

“......”

닐리아는 가이난도의 대답에 멈칫했다. 요네르는 한숨을 푹푹 쉬며 물었다.

“대체 왜 여기까지 오는데 여덟 마리 마차를 갖고 왔는데?”

“멋지잖아...”

“여, 여덟 마리는 무린데.”

닐리아는 머쓱해졌다. 기껏 된다고 해놓고 말을 바꾸게 되다니.

“당연히 무리지. 신경 쓰지 마.”

“이번 기회에 한 번 시도해보면 안 돼?”

“닐리아. 그냥 쏴버려.”

가이난도는 ‘흡’하고 입을 다물었다. 요네르는 머리칼을 빙글거리며 꼬다가 말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다.”

“요네르...!”

가이난도는 기대 섞인 눈빛으로 친척을 쳐다보았다.

역시 괜히 마법사가 아니었다.

난관에 빠졌을 때 마법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왜 마법사겠는가?

“마차 가서 가방에 넣을 짐만 챙겨. 이한 줄 선물은 꼭 잊지 말고.”

“...어, 마차는?”

“두고 가야지 뭘 어떡해.”

“......”

가이난도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고 열었다가 다문 다음 축 늘어진 어깨로 밖에 나갔다.

그리고 재빨리 돌아서더니 외쳤다.

“먼저 출발하면 다음 학기 때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알겠어. 알겠어.”

닐리아는 멀어지는 가이난도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투덜댔다.

“말하는 거 봐. 기껏 태워줬는데 먼저 출발할 거라고 의심하다니!”

“맞아. 에인로가드 다니더니 눈치가 빨라졌네. 어떻게 알았지?”

“......”

*         *         *

아르실 워다나즈는 이한이 타준 레몬차를 마시고 감탄하며 박수쳤다.

동생의 솜씨를 칭찬하는 모습에 알시클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형님. 이 레몬설탕절임은 마을에서 사온 건데요.”

“......”

“......”

아르실은 당황하지 않고 다시 칭찬했다.

“차를 만든 솜씨가 대단하다고요? 그런데 이거 물만 부었...”

“워다나즈. 그만. 그만해.”

알시클은 자신도 모르게 말렸다.

한쪽 말은 모르는데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식사가 나왔다. 검소하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식사였다.

갓 구워낸 빵과 잼, 쌀과 달걀, 고기를 기름으로 볶은 것(이한이 좋아하는 요리였다), 그리고 알시클의 몫으로 요리한 정어리까지.

솜씨나 각각의 재료는 뛰어났지만 놀랄 만큼 메뉴가 적고 검소했다. 알시클은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하는 두 형제를 보고 놀랐다.

“평소에도 이렇게 먹어?”

“평소에는 좀 더 간편하게 먹죠? 보통 혼자 먹어서.”

오늘은 아르실에 알시클까지 와서 이렇게 차린 거지 평소에는 더 간단하게 때우는 편이었다.

알시클은 경악해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이렇게 노예처럼 쓸쓸하게 먹었다고?”

“...아, 아니. 제가 편해서 그런 건데요.”

기사들은 밖을 순찰하느라 바쁘고 이한 혼자 먹는데 거창하게 차려봤자 부담되기만 할 뿐이었다.

아르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형님. 제가 검소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그냥 먹기 편해서... 그 때 제가 해준 게 맛있었다고요? 뭘 말하시는 거죠? 그 샌드위치는 그냥... 재료 얹어서 빵 덮은 건데요.”

아르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좋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해줬다.

알시클은 그 모습에 자기가 방금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워다나즈가 이상한 거였겠구나!’

아마 자기가 마법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간단하게 먹은 게 분명했다.

‘설마 에인로가드에서 식사 안 나온다고 한 것도 이런 건 아니겠지.’

식사는 멀쩡하게 나오는데 공부하느라 못 먹은 걸 저렇게 표현한 거였다면...

알시클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들었다면 달려들어서 깃털 뽑을 생각을 속으로 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친 아르실은 테이블 위에 잡동사니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기름이 담긴 유리병, 낡은 수첩, 문양이 새겨진 우산, 질긴 가죽으로 된 필통, 옥으로 만들어진 빗, 색이 계속 변하는 잉크가 담긴 잉크통, 깃펜, 숫돌 등등...

알시클은 갑자기 저걸 왜 꺼내나 의아해했다.

“형님. 저 망토 골랐습니다. 안 바꿀 겁니다. 재미없다고요? 괜찮습니다. 저 재미없는 거 좋아해요. 저 우산이 번개를 부르는 우산이라고요? 아니, 비오는 날에 쓰는 물건이 번개를 부르면 위험하잖습니까. 저 그냥 망토 쓰겠습니다.”

“......”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깨달은 알시클은 조심스럽게 가까이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평범한 숫돌처럼 보였지만 돌 안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검이 주변 적들을 스스로 공격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자기 주인까지 포함해서!

‘...혹시 동생을 싫어하시는 건 아니겠지?’

알시클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아르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동생에게 이 물건, 저 물건을 기쁘게 권했다. 그 얼굴 어디에도 악의는 없어보였다.

“펭에린 님한테도 드리자고요? 그거 나쁘지 않겠네요. 펭에린 님. 형님께서 선물을 드리고 싶어하시네요. 하나 골라보시죠.”

“잠깐, 여기 있는 물건들 다 위험하다며.”

“무슨 말씀을.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위험했으면 선물로 주지도 못하죠. 자자.”

‘이, 이 자식! 날 자기 형한테 바쳤어!’

알시클은 이한이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형이 자꾸 위험천만한 물건을 마음의 선물로 주려고 하니 화살을 돌려서 자신한테 던진 것이다.

“저, 저는 괜찮...”

“형님께서 손님으로 오셨는데 설마 선물을 거절하시는 건 아닐 거라고 하시는데요.”

“진짜 그렇게 말하신 거 맞지??”

알시클은 분했지만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손님으로 온 이상 별다른 이유 없이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상대방의 체면도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최대한 덜 위험한 걸로... 으. 아무나 들어왔으면 좋겠...’

벌컥!

“안녕하세요.”

“!”

요네르 일행이 들어오는 모습에 알시클과 이한은 벌떡 일어섰다.

“어서 와!!”

“드디어 왔구나!”

“그, 그렇게 기다렸어?”

생각보다 너무 뜨거운 반응에 요네르와 친구들은 당황했다.

이한이야 그렇다 쳐도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씨는 왜 저러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오면서 힘든 건 없었지?”

“힘든 건 없었는데, 사람이 너무 없지 않아? 산맥보다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 정도인가?”

이한은 닐리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까지 특이한 것 같진 않은데...

“다른 건?”

“...나한테만 편지 안 보내는 건 아니지...?”

닐리아는 주변 눈치를 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하하. 물론 오해야. 저번에 바로 보냈다고.”

“그,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혹시라도 괜한 소리 때문에 ‘편지 안 보내는 사람’ 명단에 올랐나 싶어 노심초사했던 닐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이 분은?”

“아. 형님이셔. 워다나즈 가문의 아르실. 정령어로 이야기하셔서 말을 알아듣기는 힘들 거야.”

“???”

“??!”

요네르와 닐리아가 경악해하는 사이 이한은 가이난도와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래? 마차라도 뺏긴 사람처럼?”

“실제로 뺏겼어!!”

“뭐? 왜? 어쩌다가?”

진상을 아는 요네르와 닐리아는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한의 형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는지가 훨씬 궁금했다.

“잠깐, 정령어로 이야기하는 게 무슨...”

“대체 그게 뭔...”

“잠깐만. 이거 먼저 듣고.”

이한은 친구들을 달랜 뒤 가이난도의 마차가 왜 사라졌는지 물었다.

듣고 보니 마차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마부가 갑자기 도망친 것이었다.

“혹시 잡지 읽으라고 강요하거나 흑마법 썼거나 간식 사달라고 졸랐거나 숙제 대신 해달라고 했거나 마법사 카드 게임 하자고 한 거 아닌가?”

“...마, 마법사 카드 게임 하자고 하긴 했는데...”

“그거 때문에 도망친 거겠군.”

“아니, 마법사 카드 게임 하자고 한 게 그리 큰 죄야!?”

“계속 하자고 하면 죄가 되는 거지. 나중에 마차는 찾아가면 돼. 누가 가지고 가진 않을 거다.”

이한의 말에 닐리아는 의아해했다.

영지 앞의 마을은 꽤나 규모가 컸다. 그리고 규모가 클수록 도둑의 숫자도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당장 북부 산맥 아래 마을들도 지키는 사람 없이 말을 묶어놓으면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는데, 여기라고 괜찮을 이유가 있나?

“왜? 누가 가지고 갈 수도 있잖아.”

“허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라르롱은 투구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한의 친구들이 방문한 덕분에, 노기사의 기분은 매우 좋은 상태였다.

“여기 마을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 그냥 선의만 믿기에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닐리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 보는 기사,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강한 기사라 말을 거는 것도 긴장이 됐다.

“선의를 믿는 게 아닙니다. 마을의 규칙 때문입니다. 만약 마을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이제 워다나즈 가문에서 사람을 파견해서 해결해주기로 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보통 거기까지 가기 전에 알아서 해결을 하더군요.”

알라르롱은 찻주전자의 차를 따르더니 홀짝이며 설명했다.

제국에 특색 없고 개성 없는 마을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담화 마을은 워다나즈 가문의 영지와 가장 가까운 덕분에 좀 더 강한 특색과 개성을 갖고 있었다.

대귀족 가문들 중에서도 특히 역사가 깊고 강력한 가문들은 주변 영지의 재판권이나 징세권, 치안권 등등을 갖고 있기 마련.

워다나즈 가문 또한 그랬다.

“워다나즈 가문은 제국에서도 손꼽히게 낮은 세율과 안전한 치안으로 영지민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마을 사람들도 깊게 감사하고 있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도둑이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습니다!”

알라르롱의 말에 이한은 몇 번 들어서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 먹을 간식을 준비했다.

워다나즈 가문이 영지를 잘 다스려서 영지민들이 귀찮게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질릴 정도였다.

“워다나즈 가문이 의무를 다하는 만큼 마을 사람들도 보답하려고 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허허.”

알라르롱의 말에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 모두 감명 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들으니 참 아름다운 미덕이 가득한 영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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