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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39화 (639/687)

639화

다들 깊게 감동하는 동안 아르실이 입을 열었다.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어. 친구들한테 선물을 주고 싶으시다고요? 굳이... 아니, 형님. 서운해 하시지는 말고요. 좀 위험한 게 있잖습니까. 진짜 안 위험한 걸로 주겠다고요? 저번에 저한테도 그러셔놓고... 그건 사실 위험한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걸 주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요? 아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한은 울컥했다.

안 위험한 걸 달라니까 왜 자꾸 부탁하지도 않은 애정을 담는단 말인가!

“이한. 정령어를 쓰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

요네르는 이한의 형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에는 약간의 사악한 기대도 섞여 있었다.

요네르가 미친 언니 때문에 부끄러웠던 것처럼, 이한도 미친 형제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무슨 선물?”

“잠깐. 가이난도. 정령어...”

“정령어가 중요해? 지금 선물이라고 하셨잖아! 선물이라고 하신 거 맞지?”

눈치 없는 친척은 이한에게 달려들어서 물었다.

안 그래도 신비해 보이는 사람이 선물을 준다고 하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물이라고 하셨는데, 좀 주의해야 해. 가이난도. 형님이 준 선물은 대부분 다 이상했다고.”

아르실은 살짝 시무룩해져서 변명했다. 물론 배은망덕한 동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가이난도가 마법사 카드 게임 좋아하냐고요? 좋아하긴 하는데... 아니. 형님. 쟤 마법사 카드 게임 관련 선물은 주지 마세요. 하루 종일 그거만 한다니까요.”

“뭐? 마법사 카드를 주셔?!”

가이난도는 정령어가 안 들림에도 불구하고 대화 내용을 기가 막히게 챙겨들었다.

“저요! 저! 저 받고 싶어요! 주신다면 평생 감사히 쓸게요!”

아르실은 흐뭇해하며 질긴 가죽으로 된 필통을 건넸다. 가이난도는 의아해하며 받았다.

“어, 혹시 공부하란 거야?”

“아니. 필통이 아니라 마법사 카드를 넣는 케이스라는데?”

“가죽 케이스구나!”

가이난도는 흐뭇해하며 케이스에 카드를 담았다. 그러자 아르실이 설명했다.

“평범한 케이스가 아니라는데? 마법사 카드 게임을 할 때 조언을 해줄 거래.”

“...!”

가이난도는 깜짝 놀랐다.

아티팩트 중에서도 자아나 지능을 갖고 있는 아티팩트는 극히 희귀했다.

하물며 그게 마법사 카드 게임 전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느 누가 비싼 비용을 들여서 마법사 카드를 조언해주는 아티팩트를 만든단 말인가.

“정, 정말?!”

“그런데 어차피 행운이 좌우하는 게임인데 조언이 의미가 있나?”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이한! 마법사 카드 게임에서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데!”

가이난도의 외침에 닐리아는 의아해했다.

“쟤 맨날 워다나즈한테 졌지 않아?”

“내버려둬. 내가 장담하는데 쟤는 조언 들어도 못 이겨.”

친구들의 음해에도 불구하고 가이난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낮은 승률의 원인에는 불운도 불운이지만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판단 실수도 꽤 큰 몫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언으로 그 실수만 없앤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후후. 이제 아무도 날 막을 순 없...”

“형님께서 가볍게 한 판 해보자고 하시는데, 어때?”

“좋아!”

가이난도는 화색이 되어서 케이스에서 카드들을 꺼냈다.

아르실도 웃으면서 카드를 꺼냈다. <떠돌이 책장수>나 <휘몰아치는 바람 정령> 같은 카드들을 본 가이난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별로 희귀하지도, 비싸지도 않은 카드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0분 후.

“......”

가이난도는 5전 5패의 충격으로 눈만 깜박였다.

진 것도 그냥 진 게 아니라 평소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졌다.

“이... 이한, 이거 틀린 조언 아니야?!”

이한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형님께서는 정령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그게 왜?”

“정령들이 네 카드 다 말해준다고. 이기기 힘들걸.”

“!?”

가이난도는 경악해서 정령들을 쳐다보았다.

신성한 카드 게임을 훼방 놓다니!

“어, 어떻게 정령들이 이럴 수가...! 어떻게!”

정령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낄낄 웃으며 아르실에게 말을 걸었다. 아르실도 같이 웃으며 정령들에게 대답해줬다.

“형, 형님께서 혹시 날 조롱하시는 거야?!”

“그냥 오늘 햇볕이 좋다고 하시고 계시는데.”

패배의 충격에 아찔해하던 가이난도는 타깃을 바꿨다.

“이한. 한 판만!”

“그래. 알겠어. 알겠어.”

평소라면 바로 뒤통수를 때리고 공부하라고 했겠지만, 오늘은 또 먼 길을 온 손님이라 마음이 살짝 약해졌다.

게다가 마부도 사라졌고...

‘적당히 져주면 좋아하겠지.’

이한은 가이난도의 행복을 위해 적당히 져줄 생각이었다.

사실, 이한이 이기면 몇 판은 더 하게 될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아르실이 준 가죽 케이스는 별다른 부작용 없는 평범한(아르실 기준에서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아티팩트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 <종려나무 기사단>을 내라구요?”

가이난도는 중얼거리며 가죽 케이스와 대화했다.

“하지만 이한이 지금 평원에 <재빠른 스켈레톤 전사>를 세 장이나 냈는데요? 여기서 저를 보호할 카드를 내지 않으면 다음 턴에 제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괜찮다구요? 못 죽인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믿고 <종려나무 기사단>을 내보겠습니다!”

가이난도는 자신만만하게 기사단 카드를 냈다. 휘황찬란한 빛과 함께 기사단이 카드 안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이한은 <재빠른 스켈레톤 전사>들을 지휘해서 가이난도의 남은 생명을 끝장내버렸다.

“...아, 아니!!! 괜찮다면서요!!!”

가이난도는 가죽 케이스한테 소리쳤다.

“운이 없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조언이 이러면 어떡해요! 제 판단이 맞았잖아요!”

“...한 판 했지? 난 이만.”

이한과 친구들은 가이난도가 가죽 케이스하고 싸우는 동안 재빨리 돌아섰다.

여기서 발목이 붙잡히면 몇 판은 더 해줘야 했던 것이다.

아르실은 닐리아에게 옥으로 만들어진 빗을 선물했다.

“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아티팩트죠?”

“빗질하면 잠깐 동안 적들이 찾지 못하는... 아니, 형님. 이런 물건이었어요!? 그런 거면 그냥 말해주시지...!”

아르실은 재미없는 물건이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요네르에게는 색이 계속 변하는 잉크가 담긴 잉크통을 선물했다.

“이건 주인의 적은 보지 못하는 글씨를 쓰는 잉크래. ...형님. 제발 앞으로 저한테도 이런 선물 주시면 안 됩니까?”

요네르는 깃펜을 들어 종이에 ‘가이난도 바보’라고 적었다.

“가이난도?”

“왜?”

가죽 케이스와 말다툼을 해서 진 탓에 씩씩대고 있던 가이난도는 고개를 돌렸다.

“이거 보여?”

“응? 종이잖아.”

요네르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아르실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인사했다.

*         *         *

인사를 끝낸 친구들은 저택에 찾아온 손님들이 으레 그렇듯이 저택을 둘러보고 이한의 새 후배와 대화했다(가이난도는 손을 물렸다).

그런 다음 서재에 다 같이 앉아 마법 공부를 시작했다. 딱히 마법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저택에 별로 할 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흘 정도 지나자 가이난도는 여기가 에인로가드인지 밖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애원했다.

“영, 영지 구경이라도 시켜줘. 이한... 난 여기서 더 있으면 죽을지도 몰라.”

“시끄러. 조용히 공부나 해.”

요네르는 친척에게 핀잔을 주며 깃펜을 놀렸다.

에인로가드가 방학에 과제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그 학습량을 생각해보면 사실 과제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 부족한 부분들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2학년 때 학교에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하는 것이다.

‘음. 닐리아도 쉬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이한은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닐리아는 어색한 자세로 입을 열려다가 굳어 있었다.

분명 가이난도의 말에 동의하려다가 요네르의 반응을 보고 멈칫한 것이리라.

“...구경도 나쁘진 않겠지. 궁금한 곳 있어?”

보통 대귀족 가문의 영지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심심할 게 없었다.

애초에 수많은 손님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머무는 만큼 꾸준히 새 무도회나 연회, 연극이나 공연 등이 열리는 것이다.

새로 온 손님들은 이런 초대에 응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그냥 가버렸다.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영지는 대귀족 가문의 영지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고 이질적인 곳.

손님은커녕 저택의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 만큼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가능한 거라면 영지 순찰.

가문의 영지를 둘러보며 바람도 쐬고 구경도 하는, 어느 가문이든 할 수 있는 즐거운 유희...

“이한 님. 현재 저택 서쪽 정원은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골렘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제압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알라르롱이 예의 바르게 말하고 복도를 걸어갔다. 이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서쪽 정원은 안 된다네.”

“......”

가이난도는 괜히 말했나 후회가 됐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계속 공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골렘 반란 정원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럼 북쪽! 북쪽으로!”

“북쪽에는 호수 미궁이 있어서... 경! 지금 호수 미궁 들어가도 괜찮나?”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이한 님. 호수 미궁의 물살이 한창 격할 때라 잘못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그렇다는데.”

셋은 ‘대체 호수 미궁이 뭐고 그게 왜 영지에 있어?’라고 묻고 싶었지만, 이한이 설명해준다고 데리고 갈까봐 꾹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저택에는 이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나가던 아르실이 이야기를 듣고 친절하게 말했다.

“형님께서 괜찮은 곳을 안내해주신다고요?”

“호수 미궁을?!”

가이난도가 깜짝 놀라서 외치자 이한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호수 미궁은 위험하다니까. 가이난도. 가고 싶어도 참아.”

“아, 아니... 난 호수 미궁을 가고 싶은 게 아닌데...”

아르실은 자기만 따라오라고 말하며 손짓했다.

동생의 친구들이 저택에 이렇게 왔는데 즐거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으음.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이한이 걱정하자 친구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형님께서 보통 추천하는 곳들은 다 좀 이상하고 위험했단 말이지.”

“괜찮을 거야.”

“맞아. 이한. 우린 에인로가드도 다녔잖아.”

친구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이한은 든든함을 느꼈다.

그래도 에인로가드를 같이 다닌 덕분에 서로 많이 단단해진 게 느껴졌다.

“그래. 너희 말이 맞아.”

앞으로 걸어가는 아르실 주변에 정령들이 하나둘씩 나오더니 흙길에 깔린 돌들을 치우고 수풀을 밀어냈다.

아르실이 다칠까봐 정령들이 알아서 치워주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정령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자 저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부러워하면 안 된다.’

이한은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안 보려고 노력했다.

사실 아르실이 마법을 안 배우는 것도 당연했다.

저렇게 정령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무엇하러 마법이 필요하겠는가.

이한처럼 정령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나 마법을...

‘아차. 내가 무슨 생각을.’

아르실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뒤에서 따라오는 이한 일행도 마찬가지로 빨라졌다.

정령이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라고요?”

멈춰선 아르실의 말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딱히 주변에 별다른 게 없었다.

쿠르르르릉-

대지 정령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입구를 만들어냈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대 무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가이난도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생,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이상하고 위험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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