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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43화 (643/687)

643화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너 흑마법사 맞니?!”

이한과 요네르가 동시에 구박했다.

차라리 바닥을 구르는 게 좀 나았다.

정신 마법은 잘못 맞으면 정말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해골 교장의 환상을 본다지만, 더 강한 정신 마법에 당할 경우 해골 교장이 뜨개질로 만든 스웨터를 선물해주는 환상을 볼 수도 있었다.

“차라리 바닥을 구르는 게 낫지!”

“살갗 좀 다치는 게 치유하기 쉬워.”

“맞아. 진흙 바닥 위를 구르더라도...”

“혹은 뼈 하나 정도는 부러지더라도!”

“옷이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더라도!”

“...알겠어! 알겠다고!”

가이난도는 넘어진 채로 성을 냈다.

이러다가 두 친구가 ‘목이 부러지는 게 낫지’라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고닌의 박무를 시전했는데도...’

이한은 가이난도를 구박하면서도 속으로는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현재 지금 이한 일행은 여러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오고닌의 박무>였다.

일행 주변에 환영의 안개를 쳐서 외부의 적들이 원거리 공격을 가할 때 초점을 분산시키는 마법.

하지만 파수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 마법을 날렸다.

이 내실 안에 새겨진 부조부터 시작해서 각종 마법들이 침입자의 위치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치이이이익!

다시 한 번 불씨가 날아들며 파수꾼을 태웠다.

이한처럼 화염 마법의 세기를 강박적으로 자제할 필요 없는 요네르는 화려하게 화염 화살을 날려 다른 파수꾼을 고꾸라뜨렸다.

그러나 파수꾼들은 계속해서 기어 나왔다.

“요네르, 마력 아껴! 숫자가 정해져 있는 놈들이 아닌 거 같다!”

“알겠어!”

요네르는 물약 가방에서 재빨리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물약을 꺼내서 던졌다.

주홍빛 화염으로 된 벽이 치솟으며 적들의 진입을 막았다. 닐리아는 그 사이 화살 네 개를 한 손 사이에 끼워놓고 한 대씩 쏘아서 가까운 적들을 처리했다.

가이난도는 아르실을 애타게 불렀다.

“아르실 님! 아르실 님! 저희 사고났어요!”

“가이난도. 고개 내밀지 말라니까! 냉기여, 방패로 부유하라!”

이한은 다시 한 번 주문을 시전하며 주변을 탐색했다.

‘저기다!’

무덤의 벽면에 새겨진 부조들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조각.

거기서 끊임없이 마력의 흐름이 이어지며 파수꾼들을 일으켜 세웠다.

“몰아쳐라, 페르쿤트라의...”

콰직!

충전된 벼락이 굵은 흔적을 남기며 벽면에 작렬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부조는 멀쩡했다. 날아온 마력을 완벽하게 분산시키고 흡수한 것이다.

“페르쿤트라, 이 도움 안 되는!”

“??”

친구가 갑자기 정령을 탓하자 요네르는 당황했다.

이한은 정령 욕을 끝내고 다시 생각했다.

지금 저 흐름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마력 망치는 접근해야 한다. 접근한다 하더라도 방어가 잘 되어 있으면 단시간에 깰 수 없다. 그렇다면...’

친구들을 지키며 원거리에서 마법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 방법.

그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순간 이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방법이 있었다.

-너도 마법의 카운터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예전에 마법범죄자와 엮인 이후로 해골 교장은 적들을 상대할 때를 대비해 몇 가지 가르침을 전수해줬다.

그 중 하나가 카운터, 혹은 역(逆)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개념이었다.

마법을 방해하거나 부술 때 꼭 외부에서 거대한 힘으로 부숴버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부수는 방법.

그렇지만 해골 교장은 마법범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 몇 개만 집중적으로 훈련시켰었다.

애초에 역마법이란 게 워낙 난이도가 높은 만큼 전반적으로 다 가르칠 수가 없었다.

말이 역마법이라 거창하게 들리는 거지, 결국 이건 그냥 자기가 마법을 깊게 이해하고 해체하는 방법론에 가까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나마 그 중에서도 한두개는 이한이 힘으로 부숴버렸고...

‘할 수 있나?’

이한은 내실 안을 흐르는 마력의 흐름에 더욱 더 집중했다.

그러자 미약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문을 열렸을 때부터 시작했던 암흑의 합창에서 나오는 음률이었다.

“!”

이한은 어떻게 파수꾼들이 친구들의 위치를 찾고 손쉽게 환상 마법을 걸었는지를 깨달았다.

이미 저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침입자들은 마법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가이난도는 친구가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옛 왕국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이한이 미쳤다!! 큰일났어!!”

“아니야. 멍청아!”

요네르는 멍청한 친척을 걷어찼다.

이한의 눈빛은 지극히 멀쩡했다. 에인로가드에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노릴 때 보여주던 그 눈빛이었다.

‘효과가 있나?’

들리는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며 이한은 주변의 변화를 확인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이한의 노래가 무덤의 합창과 비슷해지자 그 안의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파수꾼들이 학생들을 찾지 못하고 다른 곳을 확인한 것이다.

닐리아는 아까부터 마음을 짓누르던 두려움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 가이난도도 조금 더 침착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된다!’

이한에게 행운이 따라줬다.

만약 다른 마법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역마법을 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덤에 자리 잡고 있는 마법은 음악 마법이었고, 이한은 예전에도 한 번 노래를 자신의 노래로 막아낸 적이 있었다.

바로 세이렌의 노래였다.

노래와 노래가 충돌하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 ■■!”

이한은 점점 더 무덤의 노래가 끼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이한의 노래가 영역을 지배하고 있음을 느꼈다.

마법사가 어떤 영역을 지배한다는 건 돈을 내고 그 땅을 샀다는 뜻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과 의지로 그 공간을 확고히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해골 교장이 에인로가드를 자신의 영지로 삼은 것처럼, 마법사는 자신의 영역에서는 절대적인 유리함을 가지고 들어가기 마련.

‘이 노래는 영역을 지배하는 권능의 노래였나.’

파수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며 침입자들의 위치를 정확히 노리고 환상 마법을 건 것도 설명이 됐다.

어느 순간 무덤의 노래가 완전히 끝났다. 동시에 파수꾼들도 갑자기 힘을 잃고 사라졌다.

“...끝, 끝난 거지?”

가이난도는 엉망이 된 꼴로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 같다.”

“다시는 무덤에 안 들어갈 거야!”

‘흑마법 배우는데 그럴 수가 있나?’

이한은 무덤의 노래가 시작된 부조로 다가갔다. 가장 크고 화려한 조각이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색을 잃고 잠잠해졌다.

끼기긱.

“?”

확인하던 이한은 악공을 새겨 넣은 조각이 깨져나올 것처럼 흔들리는 모습에 의아해했다.

툭 소리와 함께 조각이 깨져나오더니 그 안에서 둘둘 말아놓은 양피지가 굴러떨어졌다.

‘이건...?’

이한이 모르는 글자와 양식이었지만, 악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까 그 합창을 기록한 악보인가?’

“!”

밖에서 헤카톤케이레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르실은 뒤늦게 난장판이 된 무덤 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이난도는 진흙투성이에 망토가 너덜너덜했다.

다른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하여간 가이난도는 진흙투성이에 망토가 너덜너덜했다.

“갑자기 안에서 파수꾼들이 튀어나와서... 형님은 괜찮았다고요? 그야 형님은 정령들이 보호해주니까 아마 저 암흑 합창도 별 영향을 못 끼쳤겠죠.”

아르실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한과 친구들에게 사과했다.

별다른 일이 없을 무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고가 발생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형님. 어쩔 수 없었던 일인데요.”

“난 안 괜찮아...”

가이난도가 진흙을 털어내며 중얼거렸지만 친구들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아르실은 이한이 그렇게 말해주자 다행이라는 듯이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는 동생을 칭찬했다.

“...아니. 형님. 그건 아니죠.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이한은 바로 정색했다.

하도 이한이 강하게 정색하자 닐리아는 궁금해져서 물었다.

“뭐라고 하셨는데?”

“역시 나한테 이런 무덤은 별 문제도 아닐 줄 알았다고 하시잖아.”

닐리아도 강하게 정색하며 아르실을 노려보았다. 아르실은 동생과 동생 친구들의 반응에 시무룩해져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         *         *

랫포드는 능숙하게 늙은 말을 달랬다.

가끔 여행 때 네 마리니 여덟 마리니 호화롭게 다니는 귀족들도 있었지만, 랫포드 같은 전문가 입장에서 그건 ‘저를 털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쾌적한 여행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맛없는 먹잇감처럼 보이는 것.

랫포드는 일부러 늙고 덩치 작은 말을 고르고 허름한 옷을 입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순례자나 떠돌이처럼 보였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물어보시오.”

“이쪽이 우담화 마을 맞습니까?”

랫포드는 신중했다.

괜히 워다나즈 가문의 이름을 묻거나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상대가 ‘워다나즈 가문의 관련자라니 돈이 많나?’라는 흑심을 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소. 이쪽 제국 가도를 따라 쭉 걸어가면 석류나무가 보일 텐데, 그러면 우담화 마을에 다 온 거요. 우담화 마을은 무슨 일로?”

“먼 친척 분께서 편지를 보내셨는데, 한 번 찾아와서 일을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열쇠공 길드 소속 직공입니다.”

“누군진 몰라도 참 좋은 친척을 두었군그래!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저기 파멸의 다리 근처 붉은 벽돌집에 찾아와 주시오. 마침 괜찮은 자물쇠를 구하고 있었는데.”

“하하. 감사합니다.”

랫포드는 완벽하게 대화를 끝냈다.

정보를 얻고 마을 사람의 호의까지 샀으니 완벽한 여행자였다.

‘근데 파멸의 다리라고 하지 않았나?’

랫포드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귀를 의심했다.

마을의 다리는 보통 마을 출신 유명한 영웅의 이름을 따서 짓거나(고나달테스 다리), 사건의 이름을 따서 짓거나(선량하신 황제 폐하의 등극을 축하하는 다리), 지형의 이름을 따서 짓기 마련인데(세 강물 다리)...

파멸의 다리는 대체 어쩌다 지은 거지?

‘마을에 무슨 파멸적인 일이라도 있었나?’

랫포드는 능숙하게 마을에 도착해 여관으로 들어갔다.

마구간지기한테 제국 동화 한 닢을 던져주고 말을 맡긴 뒤 자신은 여관의 구석에 앉았다.

‘음. 좋은 마을이군.’

곳곳에서 느껴지는 활력에 랫포드는 미소지었다.

가난한 마을과 부유한 마을은 여관의 공기부터가 달랐다. 이렇게 시끄럽고 노랫소리가 크게 오가는 여관은 마을의 부유함을 상징했다.

“개소리. 네놈이 감히 날 속이려고 해?!”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닥쳐라. 수염에 맹세코 내 은화를 돌려주지 않으면 가슴팍에 쇠뇌로 구멍을 내주마!”

“?!”

웬 드워프 여행객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관주인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봐, 경비병 불러!”

“어딜 나가려고 해! 문 밖으로 나가는 놈은 다 뒤질 줄 알아!”

드워프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쇠뇌를 흔들었다.

아마 마을 사람들과 제국 은화를 걸고 마법사 카드 게임을 하다가 진 모양이었다.

‘끼어들어야 하나?’

랫포드는 고민했다.

좋은 마을이라면 자기가 마법사인 게 알려져도 크게 문제가 없을 터였다.

워다나즈 가문에 가기까지 무슨 일이 또 있겠는가.

“손님. 그만하십시오!”

“너나 그만하고 입 다물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네놈이 어쩔건데?!”

드워프 여행객은 여관주인의 멱살을 강하게 잡은 채로 외쳤다.

전장 생활을 했는지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여관주인은 캑캑대며 점원한테 외쳤다.

“모자, 모자 갖고 와라!”

“?”

랫포드는 뭔 모자를 말하는지 의아해했다. 점원이 허겁지겁 모자를 갖고 와서 여관주인에게 씌워줬다.

그 순간 여관주인은 드워프 여행객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더니 쾅 내려찍었다.

“이 자식! 어디서 행패야!”

“...?!”

‘대체 마을 여관주인이 왜 근력 강화 아티팩트를 갖고 있냐?!’

랫포드는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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