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45화 (645/687)

645화

“워다나즈 가문 영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겁니다. 참. 워다나즈 님. 이번 방학 때 교장 선생님과 같이 돌아다니셨다면서요?”

“응. 후배들 중에 들어오기 싫어하는 애들을 설득했지.”

“대체 왜?!”

가이난도는 옆에서 듣다가 경악했다.

대체 왜 그런 악행을 저지른단 말인가?

친구들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후배들 중에 기억에 남는 후배 있었어?”

“음. 기사로 재능이 있고 초능력까지 타고난 후배가 있었는데...”

“오.”

“싸움을 싫어하더라고.”

“??”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가 싸움을 싫어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에인로가드에서 싸움을 싫어해도 괜찮나?

“하지만 잘 설득했지.”

“푸른 용의 탑 학생은 없었어?”

“펭에린 님 가문 출신의 후배 있더라. 실력이 괜찮던데.”

이한의 말에 요네르와 가이난도가 매우 흥미를 보였다.

펭에린 가문의 후배라면 푸른 용의 탑으로 들어올 것 아닌가.

물론 신입생 보호의 규칙 때문에 당장 2학년 때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탑에 뛰어난 후배가 들어온다는 사실은 반가웠다.

“성격은?! 성격은 어때?!”

“실력이 있으니까 자신이 넘치지.”

“이런!”

가이난도는 탄식을 내뱉었다.

후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법 실력이나 지혜가 아닌 성격이었다.

공손하고 선배를 존중할 줄 아는 후배가 들어와야 하는데!

“혹시 마법사 카드나 요리는 어때?”

“그걸 왜 물어보는데...”

닐리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혹시 후배 중에서 새 워ㄷ, 새 보모를 찾는 거야?”

“방금 워다나즈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어?”

“아, 아니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랫포드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저 같은 후배는 없었습니까?”

“있었지. 잘 됐다, 랫포드. 네가 만나면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할걸?”

이한은 잘 됐다 싶어서 빌도츠칼 교단의 카르레 사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흥미진진하게 듣던 랫포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표정이 구겨졌다.

“아주 멍청한 후배입니다!”

“그, 그런가?”

“욕심만 많아서 길드에 들어가지도 않다니. 길드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저런 후배는 아마 기숙사에 들어와도 혼자 행동할 겁니다.”

랫포드는 보기 드물게 화를 냈다.

같은 도둑 출신이라 하더라도 사고방식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음. 둘이 한 해 동안 못 만날 테니 다행이군.’

이한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랫포드는 이한을 보며 물었다.

“워다나즈 님. 그 멍청한 후배한테 따끔하게 훈계해주셨겠죠?”

“물, 물론이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했어.”

“아주 잘 하셨습니다! 또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 그러니까 친구들을 챙겨줘야 한다고...”

랫포드의 기세에 압도된 이한이 거짓말을 하는 사이, 옆에 있던 에안두르데가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제야 한 명 빼놨다는 걸 깨달은 이한은 서둘러 외쳤다.

“참. 여기 검은 거북이 탑의 든든한 후배가 있어!”

이한의 칭찬에 에안두르데는 뿌듯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닐리아와 랫포드는 기특한 후배를 칭찬해줬다.

“너처럼 든든한 후배가 와서 다행이야.”

“맞습니다. 아주 기대가 되는군요.”

“기대는 무슨...”

가이난도는 에안두르데한테 안 들리게 투덜거렸다.

아직도 후배한테 물린 손목이 아픈 기분이었다.

“참. 워다나즈 님. 다른 분들은 더 안 오십니까?”

“온다고 편지를 보낸 게 더르규하고 시아나 사제 정도인데, 얘네는 언제쯤 도착할지 모르겠군. 곧 오지 않을까?”

“나 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펭귄 수인이 피곤한 얼굴로 들어왔다.

다른 친구들이 올 줄 알았던 학생들은 알시클을 보고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펭에린 님.”

“다들 반갑다.”

알시클은 헝클어진 깃털을 다듬고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걸 본 요네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물약이라도 만드시려구요?”

“아니. 워다나즈가 부탁해서.”

“......”

“......”

요네르는 경악해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지금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을 약초 심부름꾼으로 부려먹었단 말인가?

나름 제국의 젊은 신진 마법사들 중에서는 꽤 유명한 마법사인데...

‘대체 어떻게 부탁한 거지?’

요네르는 친구가 정신 마법을 쓴 건가 살짝 의심했다.

혹시 먹을 걸로 꼬드겼나 싶었지만 그런 건 가이난도한테나 통할 것이고...

“여기 정어리입니다. 안 계시는 동안 좀 튀겨놨어요.”

“와! 고맙다.”

알시클은 아무렇지도 않게 접시를 받아서 부리에 휙 던져 넣으며 자리에 앉았다.

‘먹을 걸로 꼬드겼다고!?’

사실 알시클이 이한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본인도 신세진 게 많아서였다.

저번 실험에서 그렇게 마력을 아낌없이 퍼부어줬는데 이런 심부름 하나 못 해주겠는가.

게다가 앞으로 또 어떻게 부탁할지 몰랐는데...

‘정어리를 정말 좋아하시나봐.’

“아르실 님이 떠나셨다고?”

“예.”

이한에게 이야기를 들은 알시클은 신기하다는 듯이 부리를 딱딱거렸다.

보통 귀족들이 떠날 때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원래라면 호화로운 연회가 열리고 악기 연주와 함께 각종 행사가 따라와야 하는데, 아르실은 누가 워다나즈 가문 사람 아니랄까봐 훌쩍 떠나버렸다.

“워다나즈.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가주님도 그렇고 가문의 다른 분들도 사교계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사교 행사에는 어떻게 참가했지?”

물론 저택에는 충성을 맹세한 호위기사들과 골렘, 악마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있다고 사교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가문의 사람들이 같이 참가해서 격식을 차려주지 않으면 사교 행사에 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친척 분들이 도와주셨죠. 보통 거기 가서 했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정어리 튀김을 우물거리던 알시클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워다나즈 가문의 방계가 있었나?’

만약 그랬다면 훨씬 더 유명했을 것 같은데 왜 들어본 기억이 없지?

“참. 펭에린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이한은 무덤에서 받은 악보를 꺼냈다.

원래 천천히 해독해 볼 생각이었는데 아르실의 말이 워낙 의미심장해서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이번 영지 뒤편 고대 무덤에서 찾은 악보입니다만, 혹시 문자를 읽으실 수 있나 해서요.”

“너희 영지 뒤편에는 고대 무덤이 그렇게 흔하게 나오는 거냐...?”

알시클은 당황해하면서도 악보를 받았다.

모처럼 이한이 질문을 던졌겠다,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 줄 생각이었다.

사실 이럴 때가 아니면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 앞에서 능력을 증명할 때가 드문 것이다.

‘기분 탓이겠지만 가끔 날 외모로 먹고 사는 마법사로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알시클은 악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시대 글자인지 바로 떠오르지가 않았다.

“으으음. 으으으으음...”

길고 긴 신음소리.

보다 못한 이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르셔도 괜찮...”

“아, 아니야! 아는 글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아, 예.”

알시클은 양피지가 뚫어져라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옆에서 같이 보던 랫포드가 별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이거 가왕국(假王國) 시절 문자 아닙니까?”

“가... 가왕국! 맞아, 가왕국 시절 문자! 크, 크윽! 1분, 아니, 30초만 더 줬으면 나도 떠올릴 수 있었어. 진짜로!”

알시클의 필사적인 변명에 랫포드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당,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변명이 아니라니까!”

“펭에린 님. 진정하십시오. 이게 먼저 맞히는 놀이가 아닌데요.”

“크으윽...!”

알시클은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다시 앉았다.

가왕국 시절, 그러니까 가짜 왕국 시절이란 뜻의 이 시대는 제국 역사학자들의 악몽 같은 시대였다.

제대로 된 왕은 없고 왕을 참칭하는 자들만 많았던 이합집산의 시대.

대륙의 역사에서 통합된 것보다 분열된 경우가 더 많았지만 가왕국 시절은 그 분열의 경우가 유독 심했다.

알시클은 체면을 회복하기 위해 가왕국 시절 문자책을 꺼낸 뒤 악보를 떠듬떠듬 읽기 시작했다.

“왕의 희생을 찬미하노라... 성벽 앞에 닥친 불운을 왕께서 막아내셨느니... 대충 찬미가이자 장송가 같은데, 제목 밑의 음표나 가사는 안 읽힌다. 아마 네게 귀속된 것 같아.”

“!”

정령의 이름은 그 계약한 상대만이 읽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마법 중에서도 특정한 상대만이 읽고 외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알시클은 악보의 음표와 가사가 아무리 읽어도 들어오지 않자 노련한 마법사답게 이 악보에 걸린 마법을 알아차렸다.

“형님께서 이 노래가 제게 도움이 되실 거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뭘까요? 찬미가나 장송가를 제가 부르고 다닐 이유도 없을 텐데.”

“아마 노래 가사가 아니라 노래에 걸린 마법 때문이겠지.”

이한에게 무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은 알시클은 예리하게 아르실의 의도를 짐작했다.

이 이름도 없는 고대 왕국의 노래를 아르실이 워다나즈한테 추천한 이유는 그 가사나 음률 때문이 아니었다.

그 노래가 가진 힘 때문이었다.

“주변의 영역을 이 노래가 지배했다면서? 그게 생각보다 대단한 거거든.”

“!”

자기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많은 공을 들였다.

당장 마법사의 공방이나 마탑만 해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마법을 새겨놓던가.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영역을 지배하는 게 힘들다는 뜻이었다.

온갖 힘이 불규칙하게 흐르는 드넓은 공간을 개인의 의지로 통제한다니.

하지만 이 고대 왕국의 마법사들은 무덤에 새겨진 노래로 그 비슷한 걸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마법의 맥이 끊겼지만 대단한 일임은 확실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도 그래. 애초에 음악 마법 같은 건 연구할 가치도 없었으니까.”

“교장 선생님께서는 차라리 언령을 배우라고 하셨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령이 무슨 공중 부양 주문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알시클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해골 교장이 양심 없는 건 알았지만 정말로 양심이 없었다.

음악 마법을 배우지 말라고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언령을 배우라니...

‘그런 뜻이었나?’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알시클의 설명을 듣자 아르실이 왜 이 악보를 잘 간직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르실은 이한이 마법사로서 영역을 통제하는 요령을 익히길 바라는 게 분명했다.

지금 알려진, 영역을 통제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은 훨씬 더 복잡하거나 난이도가 높았다.

당장 언령 마법의 난이도와 비교한다면 이 악보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 비해 이 잊혀진 왕국의 음악 마법은 다른 마법들이 제공할 수 없는 교묘한 지름길을 이한에게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펭에린 님은 이 마법에 관심이 없으신 겁니까? 듣기로는 꽤 대단해보이는데...”

알시클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관심이야 있는데 딱 봐도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하잖아.”

“아.”

“왕국 사람들도 아마 무덤에서만 연주하게 했을 걸. 너하고 맞지 나하고는 안 맞을 거야.”

에안두르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실력이 떨어지는 검니까?”

“아니야!”

“아니야. 에안두르데. 실례되는 말 하지 마렴.”

이한은 후배의 입을 막았다.

지금 배워야 할 마법들이 매우 많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마법은 확실히 한 번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이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건 예전에 해골 교장이 한 번 보여준 본인의 고유세계였다.

영역을 지배하는 걸 넘어서 영역을 자신의 규칙으로 바꿔버리는 마법의 극의.

물론 이 음악 마법을 완벽히 익힌다고 해서 고유세계를 쓸 수 있지는 않겠지만, 그 머나먼 길의 첫 발자국 정도는 뗄 수 있을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펭에린 님. 한 번 열심히 연습해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바이올린도 선물받았는데.”

“그래. 지금 연습하려고?”

알시클은 기대되는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본인이 익힐 수 있는 마법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자신이 모르는 마법은 궁금한 게 마법사였다.

“아뇨. 일단 약초 좀 캐오려고요. 의뢰 깨려면 양이 부족해서.”

“...약초는 내가 캐올 테니까 넌 음악 마법 연습해라.”

알시클은 참지 못하고 정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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