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50화 (650/687)

650화

“그렇습니까? 사람은 다들 의외의 면모를 갖고 있잖습니까.”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이걸 만들었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젊었을 적 볼라디 교수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의외여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교장 선생님도 생전에는 미남이셨는데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한은 한층 더 유연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에는 한계가 없고 마법은 무한한 법이었다.

“...그건 너무... 오래 전 일이잖아. 배그렉의 젊은 시절이 그 정도로 고대는 아니지!”

알시클은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볼라디의 명예를 위해 애써야 했다.

거듭된 설득 끝에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설득을 받아들였다.

“하긴 아닐 수도... 뭐, 학교에 숨어든 마법범죄자가 만들고 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 배그렉이 한 짓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억지로 꺼낼 필요는 없잖아.”

누가 봐도 속으로 볼라디 교수를 범인으로 점찍고 대충 내뱉는 이한의 모습에 알시클은 울컥했다.

“그리고 주인이 누군지보다 더 우선인 건 여기 깃든 마법이야.”

“동의합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아티팩트를 얻었다는 게 중요했지.

이한이 동의하자 알시클도 흐뭇한 눈빛으로 후배를 쳐다보았다. 이럴 때는 같은 마법사로서 의견이 통했다.

둘은 동시에 서로에게 말을 쏟아냈다.

“일단 깃든 마법부터 익혀봐. 그럼 주인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꽤 쓸만한 아티팩트니 갖고 다니면서 위험할 때 쓰다가 여차할 때는 팔면... 예?”

“?”

“??”

알시클과 이한은 서로 한 번 쳐다보았다. 알시클은 대화를 정리하기 위해 날개를 퍼덕였다.

“잠깐. 내 의견은 여기에 깃든 마법을 익혀보란 거였지. 혹시라도 주인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새로운 비전 마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

“예.”

“네 의견은... 뭔 헛소린지 모르겠는데.”

‘아니 너무하시네.’

선배 마법사의 얼음처럼 차가운 대답에 이한은 항의했다.

“주인 찾기도 힘든 물건인데 뭔 주인을 만날 기회가 생깁니까? 그냥 아티팩트로 쓰는 게 일반적이죠.”

“마법은 마법을 부르는 거 몰라? 언제 어떻게 만날 줄 알고. 주인을 만났는데 마법을 못 익히면 얼마나 아쉽겠어. 마법을 배울 기회를 날리는 거 아니야!”

타고난 마법사답게 알시클은 어떤 마법이든 배울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아했다.

더군다나 다른 마법도 아니고 이런 회중시계에 시간 마법을 각인시킨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자라면 자신만의 독특하고 비범한 마법을 몇 개는 만들었을 터.

그 언젠가를 위해 반드시 준비해둬야 했다.

그리고 마법은 마법을 부른다는 옛 속담이 있지 않은가.

익혀놓으면 운명이 주인에게로 이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법이 마법을 부른다는 건 제 생각에 복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마법으로 검은 거북이 탑을 치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마법으로 흰 호랑이 탑을 치는 거죠.”

“......”

낭만적인 운명을 상징하는 속담을 지 멋대로 속물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에 알시클은 부리를 불만스럽게 딱딱 부딪쳤다.

“그리고 펭에린 님. 펭에린 님의 계획에는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여기 각인된 마법을 제가 못 익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애초에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시간 마법은 매우 난이도 높은 마법이었다.

이 회중시계에 각인된 <제한된 시간 가속> 같은 마법만 해도 익히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어갈 게 분명했다.

심지어 이한은 다른 마법도 같이 연구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이런 어떤 미치광이가 만든지도 모르는 아티팩트에 놀아나는 것보다는, 그냥 유용하게 아티팩트 자체로 사용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워다나즈.”

알시클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

“넌 익힐 수 있어.”

“아니 펭에린 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익힐 수 있다고 이 자식아. 알겠어? 익힐 수 있다고. 헛소리 하지 말고 익히기나 해. 오늘 안에 익혀.”

‘오늘 진짜 난폭하시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알시클의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         *         *

더르규는 천천히 말을 몰았다.

호화로운 마차를 타지도, 그렇다고 너무 비쩍 마르고 늙은 말을 타지도 않았다.

체격 잡힌 군마를 타고 당당하게 가문의 문양을 가슴팍에 새기고 움직이는 것이 기사의 여행이었다.

‘아니?’

저 멀리 위쪽 언덕에서 웬 한 무리의 용병들이 여행객을 둘러싸고 떠드는 게 보였다.

제국 가도 위를 지나가던 더르규는 바로 검을 붙잡았다.

그냥 지나가도 됐겠지만 더르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제국의 길 위를 걷는 여행자를 보호하는 건 기사로서의 의무였으니까.

설령 자기 가문의 땅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더르규는 바로 말에 박차를 가했다.

“으흑, 제 죄가 너무 깊습니다. 제가 돌이킬 수 있을까요? 이제라도 속죄할 수 있을까요?”

끄덕.

“정말이십니까? 이 피로 절은 손이 말입니까?”

끄덕.

“오... 오오!”

“속죄... 속죄하겠습니다!”

“검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어...!”

“?????”

더르규는 뭔 악신숭배자들이라도 와있나 싶었다.

거칠고 사나운 용병들이 무슨 순한 양처럼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정신 마법인가?!’

용병들 사이에 서있던 아르실은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다독여줬다.

그리고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용병들은 엉엉 울며 아르실의 뒤를 쫓아갔다.

“...내, 내가 뭘 본 거지?”

더르규는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쫓아가려고 했지만 놀랍게도 용병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유령에 홀린 기분이었다.

“초이 가문의 더르규 님 아니세요?”

“엇. 시아나 사제님.”

더르규는 저 멀리서 굴러오는 마차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플레맹 교단의 깃발과 마차, 사제들이 보였다.

과연 제국에서 규모로는 손꼽히는 교단답게 마차는 화려하진 않아도 크고 튼튼했다.

“대낮에 교장 선생님이라도 보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계시네요.”

“무슨 끔찍한 농담을...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르규는 말을 몰고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방금 본 광경을 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본인도 꿈을 꾼 것처럼 확신이 없었는데...

“플레맹의 지혜가 완전함으로 이끌기를 빕니다.”

“아. 그 완전함으로 더더욱 비범한 지혜를 보이겠습니다.”

사제들의 인사에 더르규는 열심히 떠올리며 화답했다.

적절한 대답에 플레맹 교단의 사제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들 중에 교단에 어울리는 예의 바른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물며 그게 어린 기사라면 더더욱 그랬다.

“초이 가문의 기사 분은 실로 기품이 있으십니다.”

‘이한 따라다니면서 배운 건데.’

더르규는 시아나 사제에게 물었다.

“워다나즈 가문 저택으로 가시는 거 맞습니까?”

“네네. 앞에 마을이 있어서 들렸다 갈 생각이에요.”

“교단 분들 전부 다...?”

“그건 아니고요. 다른 사제님들은 마을 때문에 오신 거예요.”

플레맹 교단의 사제들은 종종 제국을 순회하며 물약을 만들었다.

외진 곳에는 뛰어난 연금술사가 드문 법.

플레맹 교단의 사제들이 만들어 준 질 좋은 물약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우담화 마을은 외진 곳도, 플레맹 교단의 신전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아나 사제와 동행해줄 겸 사제들은 마을을 목적지로 정했다.

“마을에 가서 물약을 나눠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거든요.”

“음. 훌륭한 일입니다.”

더르규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플레맹 교단 사제들이 하는 이런 선행들은 북부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춥고 험난한 북부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선행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감동할 겁니다.”

“역시 그렇죠? 신전도 지어줄까요?”

“그, 그건 잘...”

더르규는 난색을 표했다.

이한과 달리 더르규는 다른 탑 학생들과 어울릴 때 영 어색함을 느꼈다.

사제들이 뭘 좋아하는지 더르규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사냥 이야기나 북부 몬스터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앗. 맞아. 이한이 이번에 북부에 방문한 거 아십니까?”

“!”

시아나 사제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괜찮은 화제를 찾은 더르규는 속으로 안도했다.

“모라디 가문에 방문했답니다. 저도 다른 친구들한테 편지로 들었습니다.”

“와. 모라디 가문에요?! 두 분 사이가 개같이 나쁘지 않았나요?”

“시아나 사제.”

플레맹 교단의 선임 사제 한 명이 경고의 뜻으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에인로가드에 들어가서 실력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동시에 성격이 지나치게 급해진 것 아닌가 걱정이 될 때가 있었다.

에인로가드에도 다른 사제들이 있을 텐데 어째서 저런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개같이 나쁘지 않았나요?”

‘작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더르규는 사제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자기 가문도 아닌 다른 교단 일에 끼어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둘은 투닥거리는 것 같아도 나름 친합니다.”

“어머. 진짜요?”

“예. 일 년 동안 같이 검술 강의를 듣고 힘을 합쳤는데 친하지 않을 리 없지요. 그저 겉으로는 사이가 조금 나빠 보이는 친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더르규는 둘을 열심히 변호했다.

어깨를 맞대고 같이 싸웠던 둘이 다투는 게 언제나 안타까웠던 것이다.

분명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쌓인 전우애가 있으리라!

물론 둘 중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수요 없는 변호였다.

“오...”

시아나 사제는 신이 나서 깃펜을 끼적였다.

다른 교단의 학생 사제들한테 편지를 보낼 때 쓸 이야기가 생긴 것이다.

“그럼 이번에 방문한 것도?”

“그렇죠. 우정의 증표죠.”

“그런데 초이 가문의 더르규 님 저택에는 방문 안 하셨잖아요?”

“......”

허를 찔린 더르규는 당황했다.

“꼭 방문해야만 친하단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만 보면 모라디 가문의 지젤 님이 초이 가문의 더르규 님보다 더 친한 게 되지 않나요?”

“...사실 모라디가 이한과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습니다.”

“?!”

궁지에 몰린 더르규는 기사의 명예는 길옆으로 갖다 던지고 모라디 음해를 시작했다.

“아니, 방금 친하다고 하셨잖아요?”

“나름 친하다고 한 겁니다. 원래 자주 싸웁니다. 제가 더 친하고요.”

‘이 사람 믿어도 되나?’

시아나 사제는 뱀 수인족 특유의 눈을 가늘게 뜨며 더르규를 쳐다보았다.

방금 하는 말에서는 허세의 냄새가 강하게 났던 것이다.

마치 푸른 용의 탑 황자가 하는 말처럼...

“제 생각에 이번 이한의 방문은 아마 모라디와의 나빠진 우정을 조금이나마 수습하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모라디가 나쁜 친구는 아니지만 성질이 독선적이고 날카로운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꼭 모라디가 더 친한 건...”

“알, 알겠어요.”

시아나 사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더르규를 말렸다.

“그리고 전 이한의 영지에 직접 방문하잖습니까. 제가 더 친한 거죠.”

“네...”

저 멀리 마을이 보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마을 앞쪽 길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엇, 혹시 플레맹 교단의 사제님들이십니까?”

“맞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이고, 아닙니다! 그...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예?”

“마, 마을 안에서 그... 누가 건초더미를 넘어뜨려서 완전히 광장이 난장판이 됐습니다. 치워야 해서요!”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 아닙니다!! 여행자 분들한테 그런 걸 부탁할 순 없지요! 그냥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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