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화
“와, 정말 친절한 마을이네요!”
시아나 사제는 감탄했다.
교단의 다른 사제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놀라워했다.
보통 외부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위해 이렇게 신경을 쓰는 마을 사람들은 드물었던 것이다.
“여기 신전을 만들어도 참 좋을 거 같아요.”
“동의합니다. 시아나 사제.”
어느 곳이든 평등하게 신앙을 펼쳐야 한다지만, 그 마을이 따뜻하고 상냥한 곳이라면 조금 더 기쁠 수밖에 없으리라.
-도둑놈이 도망갔다!!
-잡아!! 오늘 안에 못 잡으면 가문에서 사람 온다고!!
-이 사람들아! 다들 빨리 나와! 사제님들이 밖에 오셨다고! 들어오시기 전에 붙잡아야 해! 제국에서 여행가면 안 되는 마을로 소문나고 싶나 다들!
-하필이면 왜 오늘! 평화로운 날도 많은데!
“...??!”
* * *
계속 못하겠다고 투덜거리는 후배를 위해 알시클은 시간 마법의 기초 설명에 나섰다.
자신의 전문은 아니었지만 워낙 악명 높은 마법인 만큼 어느 정도는 알았던 것이다.
“워다나즈. 어느 마법이든 시작은 탐지나 인지부터지.”
“예.”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내기 마법사들은 언제나 손가락 하나로 운석을 떨어뜨리고 휘파람 하나로 교수들을, 아니, 적들을 기절시키는 걸 꿈꿨지만 사실 그건 뛰어난 마법사들도 보여주기 힘든 고등한 경지였다.
언제나 마법은 평범하고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됐다.
원소 마법이라면 원소를 느끼는 것부터.
환상 마법이라면 환상을 보는 것부터.
치유 마법이라면 병을 인식하는 것부터.
그렇듯 시공간 마법도 탐지나 인지에서부터 시작됐다.
“<시간 인지>나 <공간 인지>지. 사실, 이 두 마법은 시공간 마법을 탐구하지 않는 마법사들도 제법 익히고 있는 경우가 있어. 유용하거든.”
“맞습니다. 저도 <공간 인지>는 익히고 있습니다.”
“......”
알시클은 경악해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갓 1학년 마친 학생이 동의하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공간 인지>를 익혔다고? 대체 어쩌다가?”
마법사 근처의 공간을 정확하게 머릿속에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공간 인지>는 1서클 마법이었지만 어지간한 2서클 마법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가끔씩 이렇게 서클을 뛰어넘는 괴악한 난이도의 마법이 있었다.
이런 마법은 당연히 1서클 배울 때 같이 배우는 게 아니라 3서클 배울 때 배우는 거였는데...
“선배 한 분이 가르쳐주셨는데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놈이랑은 상종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알시클은 질색했다.
탈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한에게 <공간 인지>를 가르쳐줬던 모라디 가문의 발파탄은 졸지에 미친 선배로 취급받게 되었다.
심지어 이한이 먼저 가르쳐달라고 했는데도!
“에이. 나쁜 분은 아닙니다.”
“고나달테스 님도 나쁜 분은 아니시지.”
‘그냥 나쁘지 않나?’
“<공간 인지>를 안다면 설명은 더 쉬워지긴 하겠네. <시간 인지>도 비슷한 계열이야.”
자신의 근처에 어떤 사물들이 위치해 있고 그 사물들 사이의 거리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파악시켜주는 <공간 인지>는 재빠른 적들을 상대할 일이 많은 전투 마법사들부터 시작해서 공간 마법이 걸린 유적을 탐사하는 모험가들까지 요긴한 마법이었다.
<시간 인지>도 비슷했다.
이 마법을 시전하면 초, 분, 시로 지나가는 시간을 시계가 없어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고 어떤 일의 시작과 끝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측정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정밀한 물약을 만드는 연금술사나 상대의 마법을 파악해야 하는 전투 마법사들에게 쓸모 많은 마법이었다.
“참고로 <시간 인지>는 나도 익혔지.”
“<공간 인지>는 안 익히셨습니까?”
“어. 필요가 없어서.”
“......”
“......”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딱히 알시클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가끔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이상하게 조용해질 때가 있었다.
서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 가만히 있게 되는 시간이 동시에 찾아오는 때.
“정말 필요가 없어서 안 익힌 거다!”
“네?”
“무슨 말씀을...?”
요네르와 닐리아는 ‘에인로가드에는 어떤 클럽들이 있을까’하고 이야기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뒤늦게 자신의 오해를 깨달은 알시클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니까 필요가 없어서 안 익힌 거라고. 난 전투도 모험도 안 하니까...”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죠. 워다나즈처럼 다 익히는 게 이상한 거지.”
둘과 달리 가이난도와 에안두르데는 알시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의 뜻이 통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아오. 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자식들이.’
“...워다나즈, <시간 인지>나 익히자.”
“예. 지금 다 익혔습니다.”
“......”
알시클이 적어준 주문과 시전 시 마력 흐름을 받아든 이한은 선배 마법사가 떠드는 사이 <시간 인지>를 익혔다.
그걸 본 알시클은 이번 주 안에 반드시 워다나즈 저택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지옥 같은 저택이다...!’
“너 어제 못 익힌다고 하지 않았냐?”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시간 인지>나 <공간 인지>는 다른 마법사들도 많이 익힌다고 하셨잖습니까. 이건 별개로 봐야죠.”
“......”
알시클은 이한의 입을 날개로 때리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알시클 본인은 몰랐지만 이건 해골 교장도 종종 느끼는 충동이었다.
“다음은 뭡니까?”
“드음은 그그를...”
“예?”
“다음은 과거를, 그러니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읽어내는 거다.”
부리를 꽉 문 탓에 발음이 부정확해졌던 알시클은 침착을 되찾고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알시클도 익히지 않고 다른 마법사들도 대부분 익히지 않은 시간 마법의 전문적인 분야였다.
“이 마법사 카드를 보자. 이 마법사 카드는 과연 1년 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제가 저택에 온 손님한테 따냈어요!”
가이난도가 신이 나서 외치자 알시클은 말 잘했다는 듯이 지팡이로 마법사 카드를 쳤다.
“1년 전에는 저택에 온 손님한테 있었을 것이고, 2년 전에는 또 다른 사람한테 있었겠지. 이 카드가 거쳐 온 시간을 읽어내는 게 진정한 시간 마법 입문이라고 할 수 있어.”
시간을 다루는 건 다른 원소처럼 그 원소만 불러와서 조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법사의 영역 자체를 격리시키듯 잘라내서 별도로 개입하는 과정이 필요한 만큼, 기초적인 연습도 어마어마한 난이도가 필요했다.
이 <과거 탐지>는 그런 기초 연습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
물체에 남은 시간의 흐름을 마법사가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도록.
“이제 이 카드를 가져가서 과거를 읽어낼 수 있도록 연습을...”
푸드득!
저택의 창문 앞에 거대한 검독수리가 날아들었다. 검독수리의 목에는 초승달 문양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앗. 왔군!”
“뭐가요?”
“초승달 경매에서 산 물건. 네 투구에 대한 값을 내야지.”
“앗. 이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으셨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한은 살짝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시클이 과연 어떤 물건을 사왔을까?
후배의 기대를 느꼈는지 알시클은 후후 웃으며 포장을 뜯었다.
“짜잔!”
버클러 크기의 둥그런 은 방패가 포장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풍스러운 양식과 문양이 옛날에 만들어진 유물이라는 걸 느끼게 했다.
이한은 깜짝 놀랐다.
“이거 안 비쌌습니까?”
“그렇게까지 비싼 건 아니야. 왜냐하면 흠집이 많고, 낡았고,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 아니고, 보석도 없고, 효과도 실전용이거든...”
“......”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유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너한테는 꽤 쓸만한 것 같아서 골랐어. 방패에 걸린 마법이 좋았거든.”
“어떤 마법이길래요?”
“투사체 감속.”
“?”
닐리아는 알시클의 말에 멈칫했다.
<투사체 감속> 마법은 그렇게까지 희귀한 마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자체는 귀한 물건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영구적으로 새겨진 물건의 경우였다.
당장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주기적으로 산맥 아래로 내려가 부여 마법사들한테 마법을 부탁하곤 했다.
장비에 일시적으로 마법을 건 뒤 사냥을 나서기 위해서였다.
그 때 자주 보이는 마법 중 하나가 <투사체 감속>이었다.
적들이 던지는 무거운 투사체를 느리게 만들어주는 만큼 인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리 어렵지 않아서 부여 마법사라면 어지간해서는 쓸 줄 안다는 점이 유리했다.
“워다나즈.”
닐리아는 이한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내가 알기로 투사체 감속 마법이 그렇게 좋은 마법이 아닌데, 혹시 사기당하신 거 아닌...”
“...말이 감속이지, 다른 거다!”
알시클은 후배들의 반응에 발끈했다.
하여간 에인로가드 출신들은 다 하나같이 난폭하고 무례한 놈들이었다.
“같은 감속이라도 그 원리는 제각각이지. 보통 투사체 감속은 염동력 계열이나 바람 원소를 사용해. 하지만 이 <잘하른의 은 방패>는 시간 마법으로 투사체를 감속시킨다고.”
“!”
이한은 알시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닐리아도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런 식으로 번거롭게 막는 겁니까?”
“...마법사는 원래 쓸데없는 짓을 하잖아. 나도 몰라. 심심했나봐.”
마법사한테 ‘왜 그걸 굳이 마법으로?’라고 묻는 건 금기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마법은 그런 식으로 묻는 순간 절반 넘게 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이건 알시클 본인이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에인로가드를 다닐 테니까 이런 방패가 괜찮겠다 싶었지. 그리고 시간 마법에 익숙해지기도 좋을 거고.”
“감사합니다. 펭에린 님. 확실히 에인로가드에서 이런 방패는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시간 마법에 익숙해지겠다는 이야기는 왜 안 해.”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하.”
속마음을 들킨 이한은 은 방패를 잘 챙겼다. 이 방패가 얼마나 쓸만한지는 몰라도 투구보다는 훨씬 유용할 게 분명했다.
“이한. 이한.”
“?”
“카드 돌려줘...”
“......”
이한은 아까 마법 연습하려고 받아간 <성 이악투스> 카드를 가이난도에게 돌려줬다.
가이난도는 카드를 받자마자 품속 깊숙이 집어넣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아무한테도 뺏기지 않겠어!’
* * *
“저희 왔어요!”
더르규와 시아나까지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둘을 마중 나온 골렘은 고개를 숙이더니 정원으로 가버렸다.
“와. 워다나즈 님. 영지에서 골렘이 대신 일해 주는 건가요?”
“그렇지.”
“정말 제국의 마도명가답네요!”
이한은 영지에 악마가 가끔 나온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한 사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둘 다 오면서 별 일 없었고?”
“마을 분들이 너무 친절하던데.”
“맞아요. 자꾸 선물을 주셔서 당황스러웠어요.”
가이난도는 투덜댔다.
“내 마차... 내 마부...”
“그건 마을 사람들 잘못이 아니잖아. 가이난도.”
“흥. 마을 사람들이 마부를 쫓아냈을 수도 있잖아.”
“마을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친구들이 먼 길을 와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것 같자(한 명 빼고) 이한은 안도했다.
이 정도면 초대한 사람으로서 미안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다 모였으니까 내일 도시로 나들이나 가볼까?”
“내일이요!? 오늘 왔는데요?”
시아나 사제는 당황했다.
“그럼 모레?”
“어, 저택에 계신 분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저택 주변에 있는 마을들도 방문해서 봉사하고... 일주일은 걸릴 것 같은데요...”
“......”
“......”
시아나의 말에 친구들은 복잡미묘한 시선을 교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