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53화 (653/687)

653화

가이난도가 징벌방으로 끌려간 뒤 친구들은 각자 머물 객실을 소개받...

“워다나즈 님은 이 청각관을, 메이킨 님은 이 홍령관을, 닐리아 님은 이 우영관을...”

...지 않고, 각자 머물 저택을 하나씩 소개받았다.

놀랍게도 크라하 가문의 저택이라고 생각했던 커다란 건물은 그저 정문에 배치된 응접용 저택이었던 것이다.

이한은 크라하 가문과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가이난도를 구해올까?”

“참아, 이한! 크라하 부인께서도 오냐오냐해주는 것보다 평소 하는 것처럼 대해주는 걸 감사해하실 거야!”

요네르와 친구들은 이한의 양팔을 재빨리 붙잡았다.

눈빛을 보니 바로 가이난도를 구하러 가도 놀랍지 않아보였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전혀 농담 같지 않았는데.”

닐리아는 식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워다나즈가 저렇게 행복해하는 표정은 또 처음 봤던 것이다.

절망한 워다나즈도 무서웠지만 행복해하는 워다나즈는 그보다 좀 더 기괴한 무언가가 있었다.

“크라하 가문의 부(富)가 정말 대단하긴 하군. 이한. 북부에서 이런 가문은 없는데...”

“모라디 가문도 괜찮잖아?”

“하하. 이한. 모라디 가문의 영지가 크긴 해도 여기와 비교하면 감옥에 불과하지! 거긴 아무것도 없다고!”

“......”

더르규를 북돋아주려고 말을 꺼냈던 이한은 냉정한 더르규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험난하고 추운 제국 북부 땅의 평가에 가장 냉정한 건 북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닐리아는 자신이 머물 개인용 저택의 크기를 보며 질색했다.

저런 커다란 저택에서 혼자 사용인들과 지내야 한다니. 벌써 메이킨 가문에 처음 방문했을 때의 악몽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요네르도 다른 저택에 있다는 것!

“닐리아. 괜찮겠어?”

“무, 무슨 소리야? 나 완전 괜찮은데? 메이킨 가문이 훨씬 더 까다로웠는데? 이 정도면 완전 쉬운데?”

“......”

“......”

질문을 던졌던 이한은 물론이고 요네르도 황당하다는 듯이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닐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해명했다.

“메이킨 가문이 어려운 곳이라는 소리는 아니었어!”

“응, 알아.”

“진정해. 닐리아.”

이한은 요네르에게 눈빛으로 자주 놀러가 달라고 부탁했다.

요네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이한, 넌 뭐하려고? 설마 가이난도 구하러 가려는 건 아니지?”

“...아, 아닌데. 그냥 만나기만 하고 올 거야.”

*         *         *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풀려난 가이난도는 툴툴대며 친구들 사이에 앉았다.

워낙 가문의 부지가 넓고 각자 머무는 저택끼리 거리가 먼 탓에, 친구들은 응접용 저택 근처의 정원에 주로 모여 있었다.

“너희들 중 날 만나러 온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니!”

“무슨 소리야. 가이난도. 다들 만나러 갔었어. 그런데 너무 많이 오지 말라고 하셔서 돌아간 거지.”

“어, 정말?”

요네르는 그렇다는 듯이 엄숙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우리가 언제 만나러 갔었지?’

이한 말고는 안 갔던 거 같은데...

“나 없는 동안 뭐하고 놀았어? 마법사 카드 게임? 잡지 토론?”

“산책 좀 하고, 저택에 머물던 손님들 좀 만나고...”

“닐리아 님이 정말 대단했죠.”

시아나 사제는 감탄의 표정으로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다른 친구들도 동의를 표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손님들 사이에서 ‘닐리아 양은 언제 나오나요?’ ‘저도 만나보고 싶습니다’같은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다신 만나기 싫어...”

그러나 닐리아는 귀를 축 늘어뜨렸다.

저택에 나와서 산책하는데 오십 미터마다 한 명씩 처음 보는 귀족이 나와서 말을 걸어온 것이다.

머리가 새하얘져서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오늘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안 만났어? 너 만나려고 산책로 걷는 사람들이 좀 있었을 텐데.”

“투명화 물약 먹고 수풀 사이로 기어왔다. 왜!”

“...그, 그래. 물어봐서 미안하다.”

“크윽.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가이난도는 저택 사교계의 인기를 뺏어간 닐리아한테 질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닐리아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자식은 수풀 사이로 기어온 게 안 보이나?

“그거 말고는?”

“에안두르데한테 다들 이것저것 가르쳐줬지.”

이한이 후배를 가르치는 걸 보자, 다른 친구들도 각자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어졌다.

요네르는 약초학의 기초를, 닐리아는 산을 돌아다닐 때 주의해야 할 요령을, 더르규는 간단한 격투 기술을...

에안두르데는 풀이 죽은 채 구석에 앉아있었다. 그걸 본 가이난도가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드디어 우리 선배들의 대단함을 알아차린 거구나!”

“아니. 새 옷이 답답해서 저러는 거야. 에안두르데. 이런 옷도 입고 버틸 수 있어야지.”

“크르릉.”

“제대로 된 말로 대답해야지.”

“알겠슴니다...”

친구들이 떠드는 사이 알시클이 나타났다. 펭귄 수인 마법사의 얼굴은 도착했을 때보다 한층 더 피로해보였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하도 초대를 해대서... 정어리를 얼마나 먹은 건지 모르겠다.”

“저런. 거절하시지.”

“안 돼. 연구하려면 금화가 많이 필요하다고. 언제 어떻게 후원을 받을지 모르는데 무례하게 굴 수는 없지.”

알시클은 털썩 주저앉았다.

선배 마법사의 초췌한 모습에 후배 마법사들은 약간 감명 받은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의 위대함은 난해한 마법을 연구할 때도 드러났지만, 그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 인내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나기 마련인 법.

“참.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방문한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펭에린 님!!!”

“이러시면 안 되죠!”

“방금 존경하고 있었는데! 배신자!”

알시클은 후배 마법사들의 반응에 피곤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손님인데 방문을 어떻게 거절하냐?”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방문하면 저택에 눈보라를 불러오겠다고 해야죠!”

‘네 가문이잖아...’

펄펄 뛰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알시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다가 자기 가문 저택에 눈보라를 불러오라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그나마 이한이 냉정함을 되찾고 먼저 물었다.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방문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마 너희 소문을 들었겠지.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크라하 가문 저택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과연. 그러면 발드로가드 학생들의 목적은 다른 마법학교 학생들 상대로 비겁한 승리를 거둬 그 알량한 명예를 챙기려는 거겠군요.”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알시클은 이한까지 이러자 당황했다.

“그냥 다른 마법학교 학생들이니까 인사하려고 오는 거겠지. 마법사들끼리 인맥 만들어놔서 나쁠 거 없으니까. 그런 의도까진 없을 것 같은데.”

알시클의 말에도 학생들은 별로 받아들이는 기색이 아니었다.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수상한 꿍꿍이를 갖고 오면 어떡하죠?”

“걔네들 수준을 봤을 때 그냥 자기들 자랑 정도일 텐데...”

발드로가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마법사들이라, 마법에 그리 목을 매지 않았다.

와서 자기 자랑을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뛰어난 수준은 아닐 터.

“하여간 자랑은 한다 이거 아닙니까.”

“그야 발드로가드 학생들도 마법학교 출신 마법사니까, 자기 마법 자랑은 하겠지...”

“용서할 수 없네요!”

시아나 사제의 말에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택에 와서 마법 자랑을 한다면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에안두르데는 갸웃거리며 이한에게 물었다.

“발드로가드가 뭠니까?”

“하하. 적의 이름이란다.”

“적!”

‘진짜 말렸어야 했나...?’

알시클은 자기가 저택에 눈보라를 불러왔어야 했나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         *         *

“저기 봐! 발드로가드 학생들이야!”

“명예로운 발드로가드의 마법사라니. 대단하군!”

길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잉센과 바시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발드로가드의 이름이 서부뿐만이 아니라 제국 전역에 퍼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저택에 와있다는 거지?”

“그래!”

“마법 실력이 궁금한데. 에인로가드라고 하면 발드로가드와 맞먹는 제국의 마법학교잖아.”

“그렇지. 제국의 마법을 이끄는 쌍두마차!”

해골 교장이 듣는다면 그냥 바로 벌레로 변신시켜버릴 수준의 망언을 태연하게 늘어놓는 두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발드로가드에서만 일 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학생들이 제국 마법계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2, 3학년쯤 되는 발드로가드 학생들은 두 학교의 평가가 진짜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꽤 차이가 난다는 걸 조금씩 깨닫곤 했지만, 그걸 후배들한테 말해주진 않았다.

발드로가드의 품위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법사들을 제외한 제국의 일반인들은 두 학교를 비슷하게 생각했으니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또 아니었다.

“바시우. 너만 알고 있어. 난 선배들을 위해 가벼운 복수를 할 생각이야.”

“복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저번에 에인로가드에 방문했던 선배들 기억하지?”

잉센의 말에 바시우는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확실히 작년에 에인로가드 축제에 방문했던 선배들이 있었다.

“아. 맞아. 그랬었지.”

“그 때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은 비열하게 고학년 학생을 내보내서 선배들에게 망신을 줬어.”

“그래! 어떻게 그런 비열한 짓을...!”

둘은 분개했다.

작년 에인로가드를 방문했던 발드로가드의 학생들은 고작 2학년이나 3학년이었다.

그런 손님들을 망신주기 위해 에인로가드는 비겁하게 4학년 학생을 내보낸 것이다.

심지어 그 4학년 학생은 냉혹하고 비열해서(이야기를 전해준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발드로가드 학생들을 방심시키고 물 원소 마법으로 기습하는 악랄함까지 갖고 있었다.

“기습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냐. 기습했대. 무언가 속임수를 썼다고 하더라고.”

“하긴, 철저하게 대비하셨다는데 그렇게 손쉽게 당했다는 게 이상했어!”

듣다 보니 속임수를 쓴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학년이 높아도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5학년이었대.”

“뭐? 진짜? 4학년이라고 들었는데.”

“아냐. 선배들이 다시 알아봤는데 5학년이랬어.”

“5학년?! 더 비겁하군!”

잉센은 귀족의 명예가 더럽혀진 기분에 씩씩댔다.

4학년도 아니라 5학년이었다니.

정말 비열한 에인로가드 학생들이이었다.

“내 생각에 에인로가드는 귀족 말고 다른 족속들을 받아서 그런 거야. 기사부터 시작해서 노예까지 다 받는다잖아!”

“바시우. 그런 품위 없는 말은 하지 마. 교수님께서도 경고하셨잖아. 뛰어난 마법사는 혈통과 상관없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그건 그렇지만 지금 보라고. 우리 발드로가드는 명예로운데 에인로가드는 타락했어. 그 차이가 뭐겠어?”

바시우의 말에 잉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발드로가드 학생들이라면 절대 손님을 망신주기 위해 5학년 학생을 내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잉센. 어떻게 복수할 거야? 천박한 짓은 네 명예와 어울리지 않아.”

“간단해. 마법사인 만큼 마법으로 복수할 거야!”

잉센은 지팡이를 붙잡으며 선언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실력은 아직 몰랐지만, 바시우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잉센의 실력은 발드로가드 1학년 학생들 중 손에 꼽혔던 것이다.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몇 가지 마법들을 준비해놨어. 제국에 널리 퍼진 마법들이 아니라 에인로가드 학생들도 모를 걸. 이 마법을 풀어보라고 하면 과연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잉센, 네 마법은 네 명예만큼이나 대단해!”

둘은 서로 비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에인로가드 학생들한테 선배들의 더럽혀진 명예를 되찾아 올 시간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