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55화 (655/687)

655화

“어, 어떻게 초면에 저렇게 끔찍한 말을?”

시아나 사제는 경악해서 중얼거렸다.

에인로가드 학생들 사이에서 5학년이라는 말은 가문을 모욕하는 것보다 더 심한 말이었다.

아무리 원수여도 그렇지 어떻게 상대한테 에인로가드에 계속 있으란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진, 진정하세요. 사제님. 발드로가드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일 수 있잖아요.”

“어떤 마법학교도 5년 썩으라는 게 좋은 뜻은 아니겠죠!”

잉센은 플레맹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뱀 수인 학생의 말에 당황했다.

사제가 너무 입이 거칠었던 것이다.

‘사제가 아닌가...?’

“5학년이란 게 무슨 소리지?”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이한이 마침내 말을 꺼냈다.

별다른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요네르는 이한의 조각 같은 얼굴 아래 숨겨진 미세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철벽 같은 친구라 하더라도 5학년까지 다니란 말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게... 그...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선배님, 맞으십니까? 에인로가드의 5학년...”

“?”

“?????”

이한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당황했다.

뭔 학년?

“5학년?”

“예. 5학년... 어, 4학년이십니까?”

“......”

그제야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이한의 학년을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친구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저 자식들, 왜 워다나즈가 5학년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랑덴 시에서 했던 일들 때문 아닌가?”

“내가 뭘 했다고?”

“구울의 왕하고 싸우고 바실리스크하고 싸우고 씨 서펜트하고 싸우고 반마법주의자하고 싸우고 마법범죄자하고 싸우고 그랬잖아?”

“...그, 그랑덴 시에서 안 한 것도 있는데.”

이한은 반박할 말이 없어서 말꼬리를 잡았다.

물론 별로 효과는 없었다. 친구들은 이한의 말을 무시했다.

“하긴 소문은 빨리 퍼진다잖아. 나도 이런 소문 들었으면 4학년 선배라고 생각했을 걸.”

“저쪽은 5학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상한데. 그랑덴 시와 에인로가드에서 일어난 일이 저렇게 멀리 퍼질 리가 없잖아.”

이한은 다시 말했지만 친구들은 또 무시했다.

“얘들아, 혹시 내 말이 안 들리니?”

“저...”

발드로가드의 두 학생들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당황했다.

“선배님께서 5학년이 아니십니까?”

“오히려 왜 5학년이라고 생각한건지가 궁금합니다만.”

그 말에 바시우가 옆에서 잉센에게만 들리게 작게 말했다.

“이런, 4학년이었나봐.”

“......”

이한이 어이가 없어서 바시우를 쳐다보는 사이 잉센이 해명에 나섰다.

“작년에 저희 학교 선배들께서 에인로가드를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아, 그렇게 된 거였군.”

잉센의 말에 이한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뭔데?”

“저번에 축제 때 나이튼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 기억해?”

“뭐였지? 제국 강수량과 그에 따른 도로 피해, 그리고 보수 비용 계산?”

“제국의 요새망 유지를 위한 마법사 숫자?”

“이한의 마력으로 가능한 에인로가드 내 연구들?”

하도 과제를 많이 내주는 교수였던 만큼 친구들의 대답은 중구난방이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하지도 않은 게 있었다.

“다 틀렸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주시지도 않은 거잖아.”

“아. 이한. 마지막은 너 없을 때 교수님이 말하신 거야. 넌 그 때 외부에서 맡긴 주머니칼 요새 의뢰 수행하고 있었어.”

“......”

이한은 경악했다.

자리에 없는 사이 자신을 친구들한테 팔아넘기려고 하다니!

“...그걸 말한 게 아니다. 축제 때 나이튼 교수님이 만드셨던 빛과 환상의 조각상 있잖나.”

“아.”

그제야 친구들은 이한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작년 축제 때 여러 외부인들이 찾아왔었고, 그 외부인들을 대접하겠다고 1학년 학생들인 그들이 열심히 준비도 했었다.

그 중 하나가 알펜 교수의 마법진이었다. 빛과 환상을 만들어내는...

“그건 과제가 아니라 워다나즈 네가 교수님이 시키지도 않은 걸 해내버린 거잖아...?”

“쉿. 닐리아. 이한도 상처받는다고.”

요네르는 닐리아를 말렸다.

아무리 악의가 없는 질문이라 하더라도 이한이 상처받을 수 있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대충 과제라고 하자고. 하여간 그 때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와서 마법진을 망가뜨렸었잖아.”

“맞아. 그랬었지.”

“하여간 발드로가드 놈들은... 읍읍.”

이한은 가이난도의 입을 막고 마저 설명했다.

“그 때 내가 배웠던 마법으로 운 좋게 대체했었고.”

축제에 손님으로 방문한 발드로가드 학생들은 실수로 알펜 교수의 마법진을 망가뜨렸었다.

당연히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그걸 비난했고, 괜히 싸움이 나서 같이 혼날까봐 걱정되었던(그리고 그 전에 이미 발드로가드 학생들을 물 구슬로 패기도 했었기에) 이한은 싸움을 말리고 <아지르모 부여>로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했다.

“그게 왜?”

“그 때 발드로가드 학생들이 나한테 선배라고 하더라고...”

“......”

“......”

친구들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길래 다른 학교 선배한테 선배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

“그쪽 교수님한테 말해서 오해를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군.”

“그래도 다행이네요!”

시아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미친놈들이 워다나즈 님한테 5학년 가라는 줄 알고 화낼 뻔했거든요.”

“그러게 말야. 하하. 나도 당황했어.”

‘시아나 사제님이 말이 좀 거칠어지지 않았어?’

‘그냥 불사조 탑 사제님들이 전체적으로 다 변하신 편이야.’

닐리아와 요네르가 소곤거리는 사이 이한은 돌아서서 잉센과 바시우를 마주했다.

“왜 그런 오해가 생긴 건지 알 것 같습니다. 발드로가드 학생분들이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한은 알펜 교수의 마법진과 관련해서 무슨 훈훈한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낯선 마법 때문에 선배라고 착각한 것까지 참 유쾌한 일이었다.

“하하. 참 이런 우연도 다 있지요. 소문이란 건 믿을 게 안 됩니다. 그렇죠?”

“...아, 아니. 그것도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었습니까?!”

“...?”

예상 밖의 반응에 이한은 다시 당황했다.

어라?

‘이것 때문이 아니었나?’

“그... 망가뜨린 마법진을 고쳐준 사람이... 어어...”

“이상한데...? 이, 이중인격...?”

그러나 이한의 당황은 잉센과 바시우의 당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둘은 거의 세계가 무너진 듯한 충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물 구슬로 비열하게 발드로가드 학생들을 공격한 고학년 학생과, 환상 마법을 망가뜨린 발드로가드 학생들을 친절하게 도와준 고학년 학생이 같은 사람이었다니.

“잠깐. 그럼 대체 뭐 때문에 날 5학년이라고 생각한 겁니까?”

“그, 물구슬로 선배님들을 패시지 않았습니까? 잠, 잠깐만. 이것도 틀린 소문인가?”

“...아뇨. 그건 진짜긴 합니다.”

“......”

어색한 침묵이 응접실 안을 가득 맴돌았다.

*         *         *

이한이 같은 나이고 발드로가드 선배들을 물 구슬로 팬 뒤 마법진을 망가뜨린 걸 도와줬다는 사실을 잉센과 바시우가 받아들이기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가이난도는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둘을 쳐다보았다.

가이난도였다면 5분 정도면 이해했을 것이다.

‘저렇게 멍청하다니!’

“그러니까... 물 구슬을...”

“그건 좀 오해가 있습니다. 정당한 결투나 마법 대결이 아니라 축제의 놀이, 여흥 같은 거였죠.”

이한은 매우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당사자들이 있었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거짓말이었다.

말이 축제의 놀이고 여흥이었지 참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목숨을 걸고 물 구슬을 피했던 것이다.

그게 결투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결투란 말인가?

“축제의 놀이 같은 거였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발드로가드의 선배들한테 망신을 줬다니? 완전히 잘못된 소문입니다. 그런 소문은 믿으시면 안 됩니다.”

“하, 하지만 선배님들이 5학년이라고 하셨고, 무시무시하게 당했다고 하셨...”

“그건 농담이네요.”

“농, 농담?”

요네르의 지원에 이한은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 말을 받았다.

“짓궂은 농담입니다. 에인로가드의 선배님들도 짓궂은 농담을 할 때가 있지요. 지하 복도에 독을 푼다거나...”

“????”

“...들어오는 신입생들을 놀린다거나. 그런 농담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정말로?”

이한은 강하게 둘을 압박했다.

노려보면서 ‘내가 너희 선배들을 마법으로 짓밟았다는 이야기를 정말이라고 믿는 거냐!’하고 압박하자, 잉센과 바시우는 크게 흔들렸다.

“그... 그런가...? 농담이었던 건가...?”

“하, 하지만 그건 분명히 진담이었다고. 선배들이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벌벌 떨었는데...”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연기입니다.”

“연, 연기?!”

“선배들은 후배들을 골려주는 것에 언제나 진심이기 마련. 연기를 하는 것도 당연하죠.”

“...!”

잉센과 바시우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발드로가드의 선배들은 언제나 명예롭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귀족 중의 귀족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말... 말도 안 돼! 선배들은 귀족이신데!”

“하하. 귀족이라고 거짓말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이건 후배하고 친해지려는 선의의 거짓말 아니겠습니까.”

이한은 가차없이 발드로가드의 선배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뒤 수습까지 마무리했다.

“그, 그런 건가...”

“우리가 선배들을 너무 믿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우리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걸 믿어야 했는데.”

“맞아. 물 구슬을 피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마법의 실력을 증명하는 건 아니니까. 선배들은 그걸 알고서 우릴 놀린 걸지도.”

가소로운 소리였지만 이한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이한으로서도 <발드로가드의 코뼈수집자> 같은 칭호를 갖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정정당당한 결투에서 이겼다면 명예롭기나 하지, 축제에서 발드로가드 학생들 코뼈를 물구슬로 부러뜨린 건 악명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수습됐나. 두고 보자. 발드로가드 놈들.’

이한은 괘씸해했다.

기껏 망가뜨린 마법진을 도와줬는데 축제에서 코 좀 맞았다고 그걸 퍼뜨리다니.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된 결투를 신청해주리라!

“무슨 헛소리를!”

“?!”

가이난도는 넘어가지 않았다.

“물 구슬 못 피하면 마법 못하는 거지! 못 피해놓고서 어딜 변명이야!”

“무슨 소리야, 그건 별개지!”

잉센은 가이난도의 외침에 자신도 모르게 존대를 버리고 항변했다.

바시우도 동감했는지 외쳤다.

“마법의 실력은 얼마나 빠르게 시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위대한 마법을 시전하느냐로...”

“안 들려, 패배자!”

“듣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물 구슬을 피하는 건 마법 실력에 상관이 없다니까? 위대한 마법사 바콴탈라나도...”

“안 들려, 흙 파괴꾼들!”

“마법은 저잣거리의 진흙탕에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라 훨씬 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우우! 패배자! 흙 파괴꾼들! 패배한 흙 파괴꾼들!”

“이이익!”

가이난도의 조롱과 도발에 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황, 황자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품위 없게 행동을...! 바시우의 말이 맞았어, 넌 황족으로서의 품위가 없어!”

“패배자래요, 패배자래요, 패배자래요, 패배자래요!”

친구들은 감탄했다.

‘발드로가드에서는 저 정도 싸움도 안 하나?’

‘저런 도발을 왜 못 버티죠?’

이한은 속으로 걱정이 됐다.

‘저러다가 마법으로 붙자고 하면 위험한데.’

상대가 마법 시전이 가이난도보다 느리고 서툴러도 종합적인 마법 실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에인로가드의 교육 방식이 특이해서 그렇지, 제국의 마법사들 중에는 시전이 느리고 서투른 마법사들도 많았던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마법을 다급히 완성해야 하는 일이 드문 만큼 큰 결점도 아니었다.

가이난도가 약한 분야로 겨루면 위험할지도 몰랐다.

“이... 마법만 믿고 무례하게 굴다니. 마법만 잘하면 다인 줄 알아? 명예가 없고 품성이 없으면 그 마법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설령 네가 학년 수석이라 하더라도!”

“???”

그러나 잉센과 바시우는 가이난도에게 대결을 신청하는 대신 꼬리를 내리고 비판했다.

시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금 누구 말하는 거예요? 워다나즈 님 욕하는 건가요?”

“가이난도 말하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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